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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진짜 경계선은 이-팔 사이에 있지 않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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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진짜 경계선은 이-팔 사이에 있지 않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0. 23. 22:03

진짜 경계선은 이-팔 사이에 있지 않다


슬라보이 지제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2023-10-22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저지른 야만적인 공격은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비난받아야 한다. 이 전제 아래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이 공격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먼저 대다수 팔레스타인인의 삶이 절대적인 절망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 자주 있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 공격을 생각해 보자. 평범한 팔레스타인인이 자신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에게 접근해 칼로 찌른 뒤 자신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들은 어떤 조직을 배후로 두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해방!’ 같은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적 기획이 아니라 그저 완벽한 절망 상태에서 나온 행위였다.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악화했다. 그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영토의 합병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과 연합해 새 정부를 구성했고, 극우적 인물들로 내각을 채웠다. 네타냐후 정권의 이스라엘은 사실상 신정국가다. 이 정부의 첫번째 원칙은 “유대 민족은 이스라엘 땅의 모든 지역에 대해 배타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다. 이스라엘 정부는 갈릴리, 네게브, 골란고원, 유대와 사마리아 등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촉진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이렇게 공식적으로 배제하는 상황에서 협상을 거부한다고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하마스 공격은 이스라엘이 그간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장악 시도로 깊은 내부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해 읽어야 한다. 지난 몇개월 이스라엘은 네타냐후의 사법부 장악 시도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충돌로 심각한 분열로 치달았다. 그러던 중 하마스 공격이 일어났다. 분열은 종료되었고, 대신 국가 통합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부 분열이 외부로부터의 공통의 적이 출현해 갑자기 극복되는 익숙한 상황.

이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이스라엘이 반유대주의에 비판적이면서 협상 의지가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스라엘 극우파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모두 반유대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인이 다 광신적 국가주의자가 아니듯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극심한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고 이런 상황이 악한 일들이 발생하는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자신의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과 과거 비슷한 역사를 겪은 유대인들이 기묘하게 닮았다는 사실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지만, 1940년대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영국군에 저항하던 유대인들이 그렇게 불렸다.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논쟁이 있지만, 그 뒤에는 지난 수십년 림보 상태에 갇힌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있다. 그들이 사는 땅은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지구’, ‘유대와 사마리아’인가, 또는 139개국이 인정하고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인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유대인만이 시민인 ‘정상’ 국가를 세우는 것을 방해하는 임시 정착민이자 걸림돌로만 취급해 왔다. 이스라엘은 한번도 그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강경파는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경계선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강경파 사이에 그을 게 아니라, 두 극단 세력들과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믿는 이들 사이에 그어야 한다. 우리는 두 극단 세력과 협상해선 안 되며, 대신 반유대주의와 싸우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상적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두 투쟁은 동일한 투쟁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테러에서 방어할 권리를 무조건 지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점령지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처한 절망적 상황에 무조건 공감해야 한다. 두 입장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 생각이 문제의 해결을 사실상 막는 일일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

[출처: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31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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