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강의노트] 코로나 팬데믹,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3) 본문
* 교육공동체벗에서 3회 동안 진행했던 강의의 준비노트입니다. 실제 강의와는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요즘 제가 고민하는 교육적 문제를 정리한 것이라 올려봅니다. 강의 도입부만 올리고, 주요 내용은 참고도서를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강의노트] 코로나 팬데믹,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3)
-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대화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8. 13

벌써 마지막 날입니다. 저희 주제가 ‘코로나 팬데믹,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였죠. 어쩌면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찾아보는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기능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이 아이들의 삶에 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기본적인 생활습관, 관계맺기 등은 집에서 혼자 모니터를 본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는 부차적인 것들을 떨구고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 그 자체입니다. 인간적인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개별적 특성을 기질론이라는 틀로 바라보았고,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 어려움이 없는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세대는 아이들일 것입니다. 어제 수업이 끝나고 유치원교사를 하시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어린아이들 중에는 다시 기저귀를 차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아이들은 발달의 지체를 겪고 있고, 심지어 퇴행하는 경우까지 발생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유치원, 학교는 어쩔 수 없이 가정과 마을의 기능을 일부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사이자 부모, 치유자, 마을의 어른 역할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이제는 경찰과 검사, 판사 노릇도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지요.
이제 곧 개학입니다. 우리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야 합니다. 문제행동이 너무 심한 아이도 있고, 전반적으로 산만하거나 무기력하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 앞에 서는 우리는 어떤 질문을 안고 있어야 할까요? 먼저 이 아이들이 원하는 교사의 모습은 무엇일까,입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선생님의 표정은 어떤 것일까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갖길 원할까요?
아이들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자아를 가진 존재들입니다. 자기 삶이 귀한지 모르는 아이가 있을까요?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한 애정이 없는 아이가 있을까요? 만약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하찮게 여기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치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원합니다. 자신의 어려움, 억울함, 욕구불만과 내적 필요를 선생님이 알아주길 원하겠지요. 하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의도와는 반대로 거칠게 표현하거나 침묵 속에서 답답해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말하지 않아도요. 그냥 상투적인 수준이 아니라 내면 깊이 속마음을 알아주길 원합니다. 이상하지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원하다니요. 여러분은 그러실 수 있나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이 있으신가요?
이것은 굉장한 자기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맞춰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게 조상님들의 통찰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나요? 아니, 그것보다 잘 들을 수 있나요?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나요? 어제 아이들의 문해능력장애, 공감능력장애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이런 현상의 원인을 잠깐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이것을 인류 발달의 흐름상 피치못할 사정이라고 말합니다. 근대 이후 사람들은 시민 개념을 확고히 합니다. 저마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과거에는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오래 살았지요. 개인주의라는 것은 아주 근대적인 현상입니다. 집단, 사회, 공동체보다 나를 더 중요시하는 모습은 반사회성을 띌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시대는 사람들의 반사회적 힘이 아주 강하게 발달해 있음을 우리는 피부로 느낍니다. 신문 지면에도 연일 그런 뉴스지요. 남의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투성이입니다. 오로지 자기 얘기, 자기 주장, 자기 불만을 호소할 뿐입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화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에 대해 무조건 비도덕적으로 몰아가기 어려운 현상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들은 점점 의식이 깨어나 주체적인 자아를 인식하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회의를 하면 잘 끝나지 않고 길어지는 걸 느끼죠. 다들 의견이 분분합니다.
문제는 반사회적 힘이 과도해질 때 생깁니다. 어제 균형감각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는데요, 우리 삶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지금 시대의 문제는 반사회적힘이 너무 강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 반대편인 사회적 힘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반사회적 힘이 반감에서 나온다면 사회적 힘은 호감에서 나옵니다. 반사회적 힘이 말하기라면 사회적 힘은 듣기입니다. 어떻게 말하고 들을 것인가, 물론 여기에서의 핵심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니까요.
대화 관련 참고도서
이재영,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 피스빌딩
마셜 로젠버그, 캐서린 한 옮김, <비폭력 대화>, 한국NVC출판사
케이 프라니스, 강영실 옮김, <서클 프로세스>, 대장간
김훈태, <부모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유유
_______,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 교육공동체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