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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오후여담] - 최현미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 5. 29. 12:03

경험의 멸종 [오후여담]

최현미 논설위원

2025-05-27

 

 

10대 청소년들이 친구와의 다툼을 고소·고발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4년간 명예훼손죄 피의자 중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2021년 162명, 2022년 189명, 2023년 254명, 지난해 283명으로 늘어났다. 상당수 미성년자가 미성년자를 고소한 경우이다. 절반 이상은 범죄 요건도 성립되지 않아 불송치로 종결됐다고 한다. 10대들의 딥페이크, 사이버 불링 등이 심각해진 탓도 크지만, 갈등이 곧바로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세태도 생각해볼 거리다.

 

우리 청소년들의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한국교육개발원의 최근 발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개발원이 만 15세 학생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6개국과 비교해 보니, 학습 능력에서는 수학·과학 2위, 국어 3위로 최상위였지만 친구 관계 형성에선 36위로 꼴찌였다. 삶의 향유 항목에서도 일상생활 27위, 여가생활 36위로 최하위였다. 공부는 잘하지만, 일상에선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의 최근 ‘서울학생종단연구’에서도 최근 3년간 초중고등학생 모두 우울감이 높아졌다.

 

동시에 나온 이들 경고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원인은 소셜미디어였다. 자아 개념이 불완전한 청소년들이 SNS나 유튜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소통하면서 관계 맺기가 어려워지고 심리적으로도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은 책 ‘경험의 멸종’에서 역사적으로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증폭시켜 왔지만, 오늘날엔 직접 경험을 앗아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SNS와 유튜브로 보고 듣고 만나고 심지어 맛보고, 기억은 데이터로 저장한다. 급기야 전 세계 청소년의 53%는 좋아하는 기술을 잃느니 후각을 잃겠다고 답했다. 살아있는 육체를 통한 직접 경험의 멸종 위기다.

 

전 세계적으로 각종 청소년 SNS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호주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 금지법까지 통과시켰다. 우리의 대응은 느려도 너무 느리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물과 공기가 된 시대에 규제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AI 디지털 기술에 대한 대응만큼이나 책을 읽고, 뛰고 달리고, 친구들과 대화하게 하는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멸종되는 직접 경험을 살려내야 한다. 

 

최현미 논설위원

 

https://www.munhwa.com/article/11508258

 

경험의 멸종[오후여담]

10대 청소년들이 친구와의 다툼을 고소·고발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4년간 명예훼손죄 피의자 중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2021년 162명, 2022년 189명, 2023년 254명, 지난해 283명으

ww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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