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의 저학년 통합교과 활동 (3) - 기질에 따른 교육 본문
기질에 따른 교육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한때 자기주도적 학습이 유행했고, 지금도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되곤 한다. 학생 스스로 학습목표를 세우고 그에 필요한 학습전략과 학습자원을 선택해 학습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면 이것은 초등 저학년 아동에게는 발달단계상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고학년 또는 청소년기의 아동에게도 기질에 따라 일부의 학생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방식일 수 있다. 내적 동기와 의지가 강한 기질의 경우에는 그러한 방식이 맞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 과도하게 자기주도적 학습이 강요되면 좌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자아가 독립한 성인의 경우에는 스스로 학습해 나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동의 경우에는 발달과 기질을 고려한 개별화 교육이 필요하며, 그것의 선행 작업 중 하나가 기질 파악이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네 가지 유형의 기질론을 제시한다.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에서 기원한 담즙질, 경혈질, 점액질, 우울질이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계절에 비유해 담즙질을 여름, 경혈질을 봄, 점액질을 겨울, 우울질을 가을 기질이라고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계절의 이미지와 네 가지 기질이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가. 경혈질(Sanguinisch) – 봄 기질
얼었던 냇물이 졸졸졸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새싹이 돋아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은 경혈질이다. 나비가 팔랑이며 날고 아지랑이도 피어오른다. 이처럼 봄 기질은 공기처럼 가볍고 빛처럼 반짝이는 특성을 갖는다. 이들은 외부적인 일에 관심이 많고 인간관계를 잘 맺으며, 늘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갖는다. 반면에 하던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을 어려워하며, 너무 많은 일에 관심을 갖다 보니 산만해지기 일쑤이다.
나. 담즙질(Cholerisch) – 여름 기질
나뭇잎이 무성해져 마치 불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여름은 담즙질을 상징한다. 강렬한 태양이 세상을 지배하며 만물은 활발하게 움직인다. 때로 햇볕이 너무 뜨거운 날에는 동물도 식물도 축 늘어진다. 여름 기질은 이처럼 강한 성격을 지닌다. 자기주장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강하게 밀어붙이고 비판을 용납하지 못한다. 어느 자리든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며,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실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심약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화를 낸다. 봄 기질이 호리호리한 몸집이라면 여름 기질은 다부지고 목이 짧은 편이다.
다. 우울질(Melancholisch) – 가을 기질
낙엽이 떨어지고 날씨가 점점 스산해지는 가을은 우울질의 모습이다. 나무는 결실을 맺는 동시에 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바람은 점점 서늘해지며 밤이 길어진다. 마음이 허전하고 옛날 생각에 상념에 젖기도 한다. 사색에 잠긴 채 고개를 숙이고 낙엽 진 거리를 하염없이 걷는다. 가을 기질은 행동보다 생각이 많은 유형이다. 생각이 많은 만큼 부정적인 경향을 띠고 과거의 일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심사숙고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부분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있지만, 성숙한 가을 기질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놀라운 통찰력과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라. 점액질(Phlegmatisch) – 겨울 기질
겨울 기질은 점액질로서 이런 그림을 떠올리면 정확할 것이다. 한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고 눈이 펑펑 내린다. 세상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들판 위에 홀로 있는 오두막집은 따뜻하다. 난로에는 장작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집안에 있는 사람은 창문으로 슬쩍 바깥 풍경을 보고 고개를 돌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집에는 음식이 아주 많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어도 만족감이 차오른다. 겨울 기질은 대체로 그런 마음의 상태이다. 바깥일에는 냉담해 보일 정도로 관심이 없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익숙한 일은 꾸준히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일을 익히려면 특별한 계기가 필요할 정도이다. 이런 겨울 기질은 먹는 것을 좋아하고 쉬는 것과 자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동글동글 통통한 체형이 많다. 마르고 키가 껑충하게 큰 가을 기질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어떤 기질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학생 개별의 특성을 정확히 인식할 때 개별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맞춤형 수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높고 진지한 여름 기질과 가을 기질은 자기주도적 학습에 어느 정도 적합한 모습을 보이지만, 주의력이 약하고 산만한 봄 기질과 겨울 기질에게 주도적인 학습을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름 기질에게 섬세함과 배려심을 키워주는 것만큼이나 가을 기질에게는 자신감과 활동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한 교육적 과제이다. 봄 기질에게 어느 정도 학습과제를 완수할 수 있도록 끝임없이 격려하고 확인해 주어 성취감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한 노력이라면 여기에 더해 학습에 대한 흥미를 계속 북돋워주는 것은 겨울 기질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겨울 기질을 위해 교사는 수업의 모든 과정을 익숙하게 구조화해야 하며, 인내심을 갖고 겨울 기질 특유의 학습 속도를 기다려주어야 한다.
학생의 기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바꾸려 드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교사는 학생의 기질을 파악하기 전에 자신의 기질부터 인식해야 하고, 성숙한 기질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네 가지 기질을 모두 계발해야 한다. 몹시 고통스러운 과제지만 피할 수 없다. 네 가지 기질이 골고루 발현되었을 때 교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로울 수 있고,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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