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의 저학년 통합교과 활동 (1) - 발도르프교육이란 무엇인가? 본문
발도르프교육이란 무엇인가?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발도르프교육은 개별적인 아이의 발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개인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교육이다.”
- 유네스코 국제 교육회의
2019년은 발도르프교육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가 세워진 것은 1919년 독일 남부의 슈투트가르트로, 이곳에 위치해 있던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회사의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가 발도르프학교였다.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이어진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 사회는 혼란에 휩싸여 있던 때이다. 이후 발도르프교육은 개혁교육의 일환으로 여겨졌고, 1994년 제44차 유네스코 국제교육부장관 회의 때는 21세기 미래교육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 현재 전세계의 발도르프학교는 1182곳에 달한다. 이는 세계발도르프학교연맹에 소속된 학교의 숫자로, 아직 연맹에 소속되지 않은 신생학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우리나라에는 17개의 발도르프학교가 있으며, 공식적으로 등재된 학교는 10개이다. 지역마다 공교육 교사들이 운영하는 발도르프교육연구회도 존재해 다양한 실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발도르프교육의 철학은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 박사가 체계를 세운 인지학(Anthroposophie) 사상이다. 슈타이너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독일과 스위스 등 독일어권에서 주로 활동한 철학자이자 교육자, 문필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 괴테 문서실에서 일하며 괴테의 자연과학 분야의 출간을 책임지기도 했고, 평생 사회변혁을 위해 노력했던 실천적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가 집대성한 인지학의 핵심에는 독특한 인간학 사상이 있다. 교육학뿐 아니라 의학, 건축학, 농법, 약학, 예술, 종교 등 다방면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준 그의 사상은 특히 발도르프교육을 통해 꽃을 피웠다. 슈타이너는 교육이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단지 물질적 존재일 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혼적인 존재이며, 저마다 고유한 자아의 존재라는 것이 인지학적 인간학의 주요 내용이다.
인간을 신체, 영혼, 정신의 3구성으로 이해하는 슈타이너의 관점은 우리가 추구하는 전인교육의 이상에 가깝다. 그는 영혼의 3구성인 사고, 감정, 의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조화롭게 계발해야 참다운 인간교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자아는 신체 발달이 완성되는 만 21세 경에 독립되어 자유로워지며, 이때까지 발달단계에 따라 의지와 감정, 사고의 성장이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인이 되었을 때 올바르고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영유아기와 아동기에 조기교육이나 암기교육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일수록 지성이 중심이 아니라 판타지와 예술, 움직임 등이 주가 되는 교육이 행해져야 청소년기에 비로소 인지 발달을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물질주의와 주지주의가 지배적인 오늘날, 교육뿐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강조되는 것은 사고, 즉 지적인 측면이다. 학교교육 역시 지성의 도야가 감정이나 의지의 발달보다 압도적으로 중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습이 곧 지식습득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필 시험과 석차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는 입시교육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육계 전반에서 교육의 주체이자 대상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이기도 하다. 교육현장에서도 교과서나 교육과정, 수업방법론이 강조될 뿐 교육의 지향점으로 무엇을 삼아야 할지, 정작 가르쳐야 할 아동이 누구인지 등에 대해서는 그 중요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그 결과 교실에서조차 컴퓨터와 TV가 없으면 수업이 안 될 지경이며, 심지어 아동에게 태블릿과 VR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슈타이너의 발도르프교육학은 로크나 루소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교육철학과 다른 결을 갖는다. 자유주의 교육사상이 개인에 대한 ‘구속 없는 상태’를 중시하면서 아동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기존의 교육제도를 비판했다면, 발도르프 교육사상은 아동에 대한 적절한 보호와 안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아동 인격의 독자성과 내적 능력의 자유로운 발전을 목표로 하는 것은 자유주의 교육과 유사하지만 아동이 스스로 학습 활동을 계획하고 평가방식까지 선택하는 의사결정의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저학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서머힐 학교처럼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학교와 비교한다면 발도르프학교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심지어 발도르프학교는 교실에 컴퓨터나 TV가 없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8학년까지 일체의 전자기기도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유행하는 스마트 교육과도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다.
발도르프교육학은 교육의 기초를 인간 그 자체에서 찾는다. 교육은 정신적 존재인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문화행위이며, 사람과 사람의 내밀한 만남을 의미한다. 특히 아동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 만남이자, 학생 서로간의 만남을 통한 공동체 경험이다. 초등학교에서 교사는 권위 있는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 선다. 아이들은 교사의 권위를 존중하며 내적으로 의존하는 가운데 교사가 안내하는 배움을 경이롭게 체험한다. 교사는 바르게 서는 자세에서부터 또박또박 말하는 태도, 단정한 판서, 학습주제에 대한 흥미,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제스처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학습이란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를 느끼고 경험하며 스스로 행해 보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배움이다. 발도르프교육은 컴퓨터나 TV 같은 전자기기의 도움 없이 교사와 학습자의 직접적인 만남 및 학습자간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때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사는 학습자의 발달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누구나 배움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발달특성에 따라 적절한 교육내용이 제공되면, 기질에 따른 적절한 방식으로 참여해 배울 수 있다. 이때의 교육내용은 지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의지적 내용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발도르프교육은 이러한 통합의 기반에 예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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