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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사회 문제의 핵심 - 1. 사회 문제의 진정한 형상> 요약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사회 문제의 핵심 - 1. 사회 문제의 진정한 형상> 요약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5. 10. 11:39

1. 사회 문제의 진정한 형상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정리

 
 
- 슈타이너는 현시대 인류의 진정한 내적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1차세계대전은 대다수 민중의 의지와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결정적 비판이다. 사회주의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 슈타이너는 인간 천성으로부터 나오는 자극이 절대로 파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정신-문화적 창조력을 놓쳐왔다. 그들은 부르주아 세력과 똑같이 경제 영역에 주로 관심을 쏟았다.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른 평등한 경제 체제를 완성하면, 모든 기업을 국유화하면 사회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 인류의 의식은 계속해서 발달하고 내적 욕구는 분명해졌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들 앞에서 잘못된 사고로 인해 사람들은 무능력해졌다. 사회주의는 당을 통해 변혁을 시도했으나 당은 사회적 사실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했다. 따라서 사실에 기반한 실재적 사고방식, 올바른 과학이 필요하다.
 
- 프롤레타리아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오늘날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을 채우는 것은 실증주의적 자연과학이다. 과학적 성격을 띠는 개념들로 자신의 계급 의식 내용을 규정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한계를 갖는다. 왜곡된 사고방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기술, 기계,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영혼을 채워주지 못한다. 중세 장인들은 직업(길드: 석공, 직물공, 목수, 조각가, 유리공예가 등)에서 충만감을 느꼈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인간적인 성장과 자아 실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노동자들은 기술이나 자본주의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으니 과학에서 그것을 찾고자 노력했다.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이 직접적인 삶에 대한 인간적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다.”
 
- 실증주의 과학 또는 유물론적 과학에 따른 사고방식에서는 인간적 의식의 요구에 맞추어 만족할 만한 내용으로 이끌어 갈 정신적 추진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종교는 영혼으로서의 인간을 정신적 현존과 관계 맺도록 했지만 자연과학은 인간을 물질적 자연의 일부로 여기게 했다. 영혼으로서 인간을 떠받치는 흐름이 상실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연과학을 받아들이면서 정신적 자극을 잃고 영혼적으로 공허해졌지만(“현대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낡은 생활 관계로부터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지배 계급은 여전히 낡은 세계관의 전통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이 역시 해체되고 사람들은 사이비종교에 현혹되고 있다.
 
- 지배 계급과 달리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산업화와 자본주의 시대를 다르게 맞이했다. 지배 계급은 과학적 표상 양식을 수용했지만 여전히 낡은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인간적인 생활 질서에서 영혼적으로 뿌리 뽑히고 말았다. 이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들에게는 과학이 생활 신조가 된 것이다. 과학적 사고 양식은 정신적 양식으로서 우리가 정신세계에 뿌리박고 있다는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프롤레타리아는 절실히 원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 생활이다. 현대 사회 문제의 진정한 형상은 이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과학이 필요하다. 정신 생활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대다수 민중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신-문화적 삶이다. 그것은 철학이고 예술이며 과학이다. 그들의 영혼을 채워줄 올바른 정신 생활이 이데올로기로 간주될수록 민중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생산 수단의 국유화같이 외적 접근은 결코 그들의 내면을 채워줄 수 없다.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회주의 운동은 강력한 주지주의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경우에는 영혼 생활의 일부일 뿐인 과학적 사고 양식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는 인간 전체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정신 생활의 추구가 필요하고 진정으로 원하지만 그것을 이데올로기로 여기고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추구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인류의 정신 생활은 사회적 요구에 대해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정신적 추구가 없이 제도적 틀 속에서 분주할 뿐인 모습이 아닐까? 모든 제도가 인간 개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인간 영혼에 대한 관심 없이 제도화되어 있기에 개인은 소외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 생활의 무기력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동시에 그 정신 생활의 무기력에 대한 인정을 혐오하기 때문에(이데올로기라고 여기면서) 그 병이 더욱 악화되어 간다. 그러기에 물질적 쾌락을 추구하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 프롤레타리아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경제 생활이다. 인간 존엄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경제 생활에서 생겨난 계급 의식이다. 경제 생활을 개혁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믿는데, 이것은 대단히 외적인 접근일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든다. 그러나 결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 자신이고, 인간의 노동이다. 인간의 노동력 역시 상품이 되면서 비인간적인 느낌 속에서 사회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를 오로지 경제 문제로만 만든다면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간 노동력은 경제 영역이 아닌 정신-문화 영역이 원천이다. 능력과 소득은 분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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