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사회삼원론 - 벤자민 체리 (5) 본문
질문이 있으시거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 선생님께서는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본주의 자체는 인간 발달의 한 단계입니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문제없다고 봅니다. 마치 사회주의 사상이 하나의 이념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영역을 넘어서 지나치게 더 나아갔을 때 해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어떤 기계를 구입하고 판매하는 데 돈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 기계로 어떤 물건들을 또 만들고 이익을 얻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요. 하지만 거기서 창출된 돈으로 정치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거나 통제하려 할 때, 그리고 언론이나 교육, 의료계에 영향을 주려고 할 때 그것은 굉장히 심각한 병입니다.
우리 신체의 각각의 기관들은 고유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기관들은 서로 협업해서 일을 합니다. 간이 신장이 되지 않는 것처럼 각각은 그저 각자의 일을 하고 서로 협업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에서는 자기가 맡은 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각각이 고유한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업은 우리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죠. 재화를 생산해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모든 걸 지배해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광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아주 돈이 많아서,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아는 심리학자들을 고용해서 그 사람들에게 물건을 광고하라고 시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위험한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게 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을 보면 2~3년마다 한 번씩 차를 바꾸고, 우리는 또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서 2~3년마다 업그레이드 된 컴퓨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영향 또는 압력을 받아서 젊은이들은 광고에 나오는 굉장히 세련된 휴대폰을 구입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야지 굉장히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마 짐작컨데 90% 이상은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일 것입니다. 쓰레기 수거차에 넣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고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재활용이 될까요?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읽은 바에 의하면 아주 극소량만 재활용이 된다고 읽었습니다. 바다에는 쓰레기 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지구를 파괴하고 싶은 걸까요? 이 모든 것이 과잉 생산으로 인해서 일어났습니다. 과잉 생산을 하는 이유는 생산자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하고 그것이 광고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새로운 것을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고 뒤에 숨은 지능과 기술은 어디서 왔을까요? 다 문화 영역에서 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문화 영역은 부를 창출하는 그런 영역이 아닙니다. 문화는 이런 경제 영역에서 지원을 받아서 이루어져야 되는 그런 영역입니다. 문화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선물로 주어지는 돈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돈을 벌게 되면 아주 기꺼이 부모에게 돈을 주겠지요. 아니면 그 반대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잘 지내지 못하면 부모가 또 아이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이 생각을 가족 너머로 좀 더 확장을 해보면, 세상의 매우 많은 사람이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단체들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난민이나 아니면 동물보호단체나 그런 기관들에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기부하는 것은 순수한 선물입니다. 기부에 대한 어떤 보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죠.
내가 기부한 돈이 아주 좋은 곳에 쓰인다, 그게 아이건 동물이건 간에 그런 데 잘 쓰인다는 그 기쁨, 감사함 그런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슈타이너가 이야기한 것은 ‘경제 영역에서 창출한 부가 아주 순수하게 여기 문화 영역에 주어져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화 영역에서 다시 경제 영역로 이렇게 갈 수 있는 건강한 교류가 이루어집니다. 과학 분야도 경제 영역에 있으면 안 됩니다. 과학은 문화 영역에 머물러야 하지만 이렇게 압도당했죠. 지배당했습니다.
정치 영역의 역할은 양쪽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의 영역이 다른 영역에 지배당하거나 간섭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문화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건강은 지금 사업 모델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료 분야가 사업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지금은 그저 돈이 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라는 것은 단지 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는 풍부한 삶의 경험입니다.
경제 영역에서 우리는 모두 경제적 활동을 하는데, 동시에 우리 모두는 문화 영역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영역이 협력을 한다기보다 매우 일방적인 과잉 생산의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배우고 가르칠 수 있으며 우리의 건강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에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게 적절한지, 어떤 게 적절하지 않은지. 우리는 진정으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건강한 판단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았습니다.
법률과 관련해서 정치 영역은 법을 만드는 동시에 만든 법들이 다 준수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학교에도 사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이들, 청소년들의 교육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학교 건물이 있어야 하고 의자, 펜, 연필, 종이 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여기 경제 영역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다 같이 서로 얽혀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는 경제 영역의 자유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세상에 미치는 결과에 관계없이 가능한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부가 있다면 나는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영역은 박애, 형제애의 가치를 따라야 합니다. 자유는 문화 영역의 가치입니다. 이 말은 내가 자유롭게 생산할 수 없다거나 경제와 관련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능한 개인들이 자본에 대한 자유로운 재량권을 갖고 풍부한 성과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그 목적이 사적 이윤 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미치는 결과를 고려해야 하고, 생산을 통해 발생한 이득은 사회 전체에 전해져야 합니다.
문화 영역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부모와 동등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릅니다. 개인 고유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화 영역은 진정한 개성의 영역입니다. 회사 사장이나 생산된 상품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 모두 학교에 다녔습니다. 모두 문화 영역을 거쳐 왔습니다. 물론 학교 안에는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이 모두 필요합니다. 정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특정 규칙이 있습니다. 권리 및 책임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돈의 흐름도 있습니다. 사회삼원론이 주창된 지도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현한 이상적 조직이 있을까요? 이렇게 균형 잡힌 경제와 문화적 상호 작용은 제가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벨레다나 스토크마 같은 회사가 있긴 합니다. 그런 조직들은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직들은 사회삼원론이라는 개념에서 생겨났고, 기본적으로 부의 흐름과 관련이 있지만 부의 흐름은 소수의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자신이 이 전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며, 회사가 잘 될 때는 추가로 돈을 더 많이 받고, 힘들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회사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과 일만 하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 학교를 하나의 사회라고 봤을 때 그러면 교사와 학생과 부모들은 각각의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역할들을 더 잘 해야 이상적인 사회삼원론을 구현하는 학교로서 자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먼저 이 학교라는 것이 문화적인 조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정치적인 조직이나 정부 집단이 아니죠. 어떤 물건을 생산해내는 그런 조직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발달과 관계가 있습니다. 물론 학교의 어떤 분들께서는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역할도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학교의 재정이 어떤지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하겠죠. 그런데 그 재정적인 것이 학교를 지배하게 된다면 학교는 불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선생님들이 “우리는 돈은 몰라. 우리는 훌륭한 발도르프 교육만 할 거야.” 이렇게만 한다면 그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아니겠죠.
그래서 어떤 면에서 저는 사회삼원론이 개인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살아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은 하나의 아이디어로, 그 다음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삼원론 그 자체가 하나의 완전성(completeness)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완전성이라는 것은 학교의 건축뿐 아니라 여러 측면의 질적인 부분이 다 잘 갖추어져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학교에는 규칙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한 그룹의 사람들을 위한 규칙이고, 다른 그룹을 위한 규칙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겠죠.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건강한가요? 건강하지 않다면, 어떤 학급의 부모들 사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다면, 그 문제를 잘 다루어 줄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시간을 가진 사람이 학교에 있나요?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주로 학교의 이러한 측면에 관여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행정은 주로 물품을 구입하고 배분하는 등의 일에 관여합니다. 또한 이 모델에서는 주로 부모가 학교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재정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학교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것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학교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갑니다. 교사와 부모의 관계가 반드시 이 행정 부분에서 계속 주시되어야 하는 아닙니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교사들은 항상 이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들이 재정적으로 우리가 지금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다 했을 때, 존재하는 최고의 책상을 주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하게 그런 일에 잘 대처해야 하겠습니다.
학교는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더 건강해질 수 있고 아니면 건강이 아주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건강이 회복될 수 있지요. 그리고 경제 영역은 단지 돈만이 아닙니다. 경제는 서비스와 상품의 생산, 분배, 소비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요,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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