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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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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서클 진행자를 위한 조언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7. 5. 17:29

서클 진행자를 위한 조언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서클(대화모임)은 상담과도 다르고 조정과도 다릅니다. 상담이나 조정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은 뭔가 해결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세요. 진심으로 참여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해법을 찾으시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몰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서클은 참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해법은 찾지 못해도 좋습니다.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으면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서클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털어놓고 공감받으면서 각자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클을 진행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은 서클 참여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학생들 이렇게 하면 되겠지, 또는 어른들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면 초등학교 1학년인지, 중학교 2학년인지 정확히 확인해서 그 학년 아이들의 특성은 무엇이고 요즘 그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게 무엇인지, 요즘 그 아이들의 문화가 어떠한지 사전에 파악해서 준비해 갈 때 훨씬 집중도 있는 시간을 갖겠지요. 

 

그리고 참여자들과 어떤 주제와 목적으로 서클을 할 것인지, 진행자 스스로 명확해져야 합니다. 참여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여운을 길게 가져가려면 진행자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내가 이 사람들과 무엇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깊이 들어갈지는 대상과 목적에 대한 이해가 분명할 때 가능합니다. 이 부분은 경험이 누적되면서 심화되실 겁니다. 막연하게 준비해서 가면 끝나고 '아, 망했다' 이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그러면 다음 번에 더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겠지요. 

 

또 진행자로서 필요한 것은 참여자들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클을 한다면 전체 아이들을 장악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진행자가 자신 없어 하고 힘이 없으면 이야기가 잘 집중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질문을 던져도 학생들이 통제되지 않고 혼란스러우면 성공적일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하는데, 아이들이 저쪽에서 떠들고 있고 돌아다닌다면 진행자로서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진행을 하면 결과적으로 반응이 좋을 수 없습니다.  "얘들아, 여기 선생님 이야기에 집중 좀 해줘." 하면서 환기를 시켜줘야 합니다. 대화가 전반적으로 지루해지거나 분위기가 산만해지면 간단한 놀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진행자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학생들은 진행자 선생님이 전체를 그렇게 장악하고 능숙하게 이끌어가주시길 기대합니다. 너무 친절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무섭고 강압적이어도 안 되겠지요. 여유 있고 편안하되 힘이 있는 진행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숙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집중되는 분위기를 지속시키려면 질문이 좋아야 합니다. 질문이 좋으려면 참여자들이 지금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줘야 합니다. 준비해왔던 질문이 필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교실 분위기를 느끼며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 공간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게 뭔가? 이 아이들/어른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게 뭘까?' 이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고 내가 준비해온 것, 내 스타일을 고집하면 성공적인 서클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질문의 중요한 요건은 얼마만큼 구체화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얘들아, 우리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나씩 얘기해볼까?" 이거는 좀 상투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화한다면 좋아하는 과일, 더 구체화하면 좋아하는 여름 과일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맛있게 먹은 여름 과일에 대한 기억 등으로 점점 더 구체화해보는 것입니다. 참여자가 어렵지 않게 기억을 떠올려볼 수 있다면 안내가 잘 된 거지요. 그리고 처음에는 긍정적이고 가벼운 질문으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고, 힘들었거나 어려웠던 일에 대한 질문은 중반부에 배치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 편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렵겠지요. 진행 중에 모두의 마음을 모으는 질문이 나왔다면 그날은 그 질문을 더 심화하거나 반복해서 던져볼 수 있겠습니다. 

 

다수의 학생들에게서 접점이 생기는 이야기거리가 있다면 준비해온 다른 질문은 내려놓고 그 문제에 집중하는 게 좋습니다. 어려움을 유발하는 요소에 대해 공통점이 있다면, 왜 그것이 자기에게 어렵게 다가왔는지, 얼마나 어려웠고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마무리하고 실천 질문으로 간다면 그 문제를 다음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게 뭔지,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게 뭔지 시간을 맞춰서 이야기 나눕니다. 개인적 실천만 나눌지, 공동으로 실천하는 것도 나눌지 진행자가 판단하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감을 나누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 내가 배운 게 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꼭 주는 게 좋습니다.

 

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처음 했던 이야기의 반복인데요, 서클 진행자로서 학생들을 만날 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고 어떤 방향성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막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싶고 한 명 한 명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는데, 서클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열어놓고 기회를 주는 게 서클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서클을 진행할 때, 계속 마음에 담고 가야 하는 것은 참여자 개개인의 주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것에 대해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공감해주는 것이 관계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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