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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비극적 선택을 반복하는가? -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부쳐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8. 25. 11:48

우리는 왜 비극적 선택을 반복하는가?

-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부쳐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방류가 시작되었다. 2011년 쓰나미에 의해 발전소가 침수되고 전력이 끊겨 원전이 폭발한 지 12년만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수뇌부들을 공포에 떨게 한 말이 있다. "이제 일본은 끝났다." 최근 국내에도 서비스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데이즈>를 보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잘 재현되어 있다. 급한 성격의 간 나오토 총리는 사태 수습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지만 각료들 중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원자력 전문가라고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무책임할 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사태를 완전한 파국으로 가지 않게 막은 것은 현장 책임자와 노동자들이었다. 방사능에 피폭되는 순간에도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도쿄전력의 발전소들은 노심융해를 막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멜트다운이 진행 중이다. 체르노빌 당시에는 군인들을 동원해 원자로 밑의 땅을 파고 시멘트를 부어 막아냈다고 하던데(당시 동원된 군인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아직도 피폭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생존자가 있다), 자위대를 그렇게 운용할 수 없는 일본은 파국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방류가 시작된 지금은 "일본은 이미 끝났다, 이제 세계도 끝날 차례다"가 된 것이다.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12.3년, 스트론튬은 28.5년, 세슘은 30년이다.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방사능 물질들은 바다 생물들에 축적될 뿐 아니라 증발해 비로 내리면 금세 육지에 영향을 미쳐 지금의 공포가 곧 현실화될 것이다. 백혈병, 유방암, 대장암, 간암, 방광암, 식도암, 위암, 폐암, 난소암, 뇌종양 등 거의 대부분 종류의 암은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수산물 소비 저하는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지구에 필요한 산소의 80% 이상을 만드는 바다 생물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어떤 파국이 다가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서히 미래세대들에게 나타날 문제이다. 지금의 노인세대들에게는 실제로 큰 피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방류를 결정한 미국,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노인들이다. 미래세대의 생존이 달린 일을 노인세대가 결정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후안무치한 짓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인구절벽 문제는 더욱 더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이제 일본은 핵피해국에서 핵가해국으로 전환되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핵폭탄에 비교가 안 될 만큼의 가해를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십 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하겠다는 결정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이를 허용해 준 미국은 아마 일본의 군사력을 이용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유가 컸을 것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 공론화된 현실에서 미국은 다급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음에는 일본의 정상국가화, 즉 전쟁을 벌이고 외부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제2의 부흥을 노릴 것이다. 한반도 전쟁으로 특수를 누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일본의 결정에 찬성을 한 것일까?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서 핵오염수 방류를 서둘러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던 것이 드러났다. 언론인들은 그것을 내년에 벌어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
 
현재 한국 정부가 하는 꼴을 보면 다시 일제 식민지시기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핵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자국민들에게 반일 및 반정부 정치선동을 그만 두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이 하나라는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침묵하는 대통령 대신 국무총리가 언론을 상대로 정부를 믿고 과학을 믿어달라고 하는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 전역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강도 높게 핵오염수 방류를 중단하라고 일본에 항의하는 것 아닌가. 이미 후쿠시마의 어민들은 방류 반대 집회를 격렬하게 하고 있다. 중국이나 홍콩,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국가들이 전부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한국 정부만이 핵오염수 방류를 찬성하고 자국민의 흥분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치선동을 하고 있다. 이것이 주권국가의 모습이 아닌 것은 확실한 듯하다.
 
2011년 후쿠시마를 겪고도, 2014년 세월호를 겪고도 일본이나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도쿄전력은 건재하고 정치계와 경제계는 단단히 결탁되어 있다. 한국은 뭔가 변화가 생기는 듯했지만 기득권을 놓기 싫은 극우세력의 맹렬한 저항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기에 기득권의 한 축인 언론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회의 진보란 얼마나 큰 의지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기득권층과 그들에게 포섭된 계층의 맹렬한 의지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만한 의지를 갖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이태원에서 159명이 희생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행안부 장관은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의 탄핵이 기각되어 임기를 유지하고 있다. 오송역 지하차도에서는 14명이 숨졌지만 말단 경찰과 공무원들이 형사입건되었을 뿐이다. 해병대 병사가 구조작업 중 물에 빠져 죽었지만 사단장은 물에 들어간 게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게 나라인가?
 
사회의 진보란 혁명적으로 이뤄지는 법이 없다. 사회악에 해당하는 세력이 절대 국가권력을 잡지 못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다. 기득권세력이라고 해서 그 개인들이 모두 악마 같은 존재일리는 없다. 극우정치인 중에도 가족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가장이 있을 수 있고, 검사들 중에도 본분을 잊지 않고 정의롭게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집단화된 권력이다. 평일 낮에 성매매를 하다가 붙잡힌 판사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을 뿐이고, 수사대상인 자산운용업체의 회장으로부터 룸살롱에서 수백만원대의 술접대를 받은 검사들은 2심에서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금을 횡령하고 분식회계, 외화밀반출, 뇌물제공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던 재벌들은 사면복권되어 다시 경영 최일선에 나선다. 그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내전을 불사할 정도지만 이에 대항하는 다수 세력은 정치적 비극의 본질을 망각하곤 한다.
 
후쿠시마에서 핵오염수를 방류한 날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보훈부와 국방부의 지시로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려고 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며칠 전에는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과 백선엽의 동상이 세워진 바 있다. 이것이 우연일까? 전기료 부족을 이유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최근 국가슈퍼컴퓨터 일부를 멈춰 세웠다. 부족한 전기요금이 4억원이었는데, 핵오염수가 안전하다며 정부가 만든 홍보영상 제작비가 10억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점잖게 중립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야당 또한 기득권 거대정당이라며 양비론을 펼칠 것인가. 극우정당을 위해 투표한 사람들뿐 아니라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왜 이런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는지, 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 파국은 우리의 선택이 불러온 비극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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