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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반복된 실수와 지연된 구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1. 22. 23:18

이태원 참사: 반복된 실수와 지연된 구조

 

By Michelle Ye Hee Lee, Meg Kelly, Atthar Mirza, Grace Moon, Min Joo Kim and Stefanie Le
November 18, 2022 at 4:31 a.m. EST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네 시간 전, 세계음식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가 폭 5m 골목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빗발쳤다. 이 좁고 경사진 골목에서 158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발생 26분이 지나서야 실질적인 구조 활동이 시작됐다. 응급대원의 손길을 한 시간 넘게 기다린 이들도 있다. 지연된 구조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워싱턴포스트는 단독 입수한 영상과 사진을 포함해 350개 이상의 자료를 분석하고 대조했다. 또한 전문가 자문을 의뢰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주요인을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참사 당일 신고 전화 녹취록과 수십 명의 목격자 인터뷰를 통해 사고 현장이 오후 6시 28분경에 이미 위험한 수준의 과밀 상태에 이르렀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부터 몇 분 지나지 않아 첫 신고가 접수됐으며, 열댓 건의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신고자들은 과밀 인파로 인한 부상을 토로했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오후 10시 8분에 군중 압착 사고가 일어났다.

몇몇 경찰관과 사람들이 골목 끝에서 인파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오후 10시 8분부터 22분 사이 최소 16건의 긴급 신고 전화가 걸려 왔고, 5명의 경찰관은 밀려드는 인파에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밤 10시 39분이 되어서야 응급요원이 골목의 양쪽 끝을 폐쇄했다. 30여 분이나 늦게 골목 출입 통제가 이뤄지면서 그사이에 보행자가 계속 유입됐고 구조 활동에 방해를 받았다. 사고 당시 자료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이런 제약들이 피해 상황 전반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경찰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광범위하게 대응을 시작하기까지 11분이 추가로 소요됐다.

최근 휴스턴 야외 콘서트와 인도네시아 축구경기장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 사상자 수에 비해 훨씬 많은 사상자가 이태원 참사에서 발생했다. 한국 시각 목요일 (17일) 현재, 여전히 입원 상태인 7명을 포함해 부상자 수가 200명에 달한다.

세종대학교 건축공학부 김영욱 교수는 “이번 사고는 군중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 가장 쉬운 경우”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문가가 현장을 돌아보고 사고 예방 회의를 했다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참사의 시작


매년 핼러윈 주말이면 수만 젊은이들이 술집과 클럽이 즐비한 이태원으로 향한다. 세계음식거리와 이태원 중심가를 잇는 골목에서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가 형성된다.

지역 상인들 사이에서는 올해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더 많은 사람이 모일 거라는 기대가 높았다. 한 라운지 바는 “코로나 이후 첫 핼러윈인 만큼 역대급 핼러윈 파티가 될 예정”이라며 “해 뜰 때까지 함께 놀아봐요”라는 광고를 내걸기도 했다.

오후 10시 무렵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며 핼러윈 분장을 한 수많은 남녀가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이 골목에 위치한 108 힙합 라운지에서는 DJ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이 확인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10시 8분경 힙합 라운지 주변에 모여든 인파에 파도가 일었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대규모 집회 안전 대책 전문 업체인 세이프 이벤트의 디렉터 마크 브린에게 입수 영상 검토를 요청했다. 그는 오후 10시 8분경 “이미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치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10여 분에 걸쳐 군중 압착의 조짐을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군중 압착 상황에서는 밀집도가 임계점 초과 수준으로 높아졌을 경우 인파의 흐름이 액체와 같이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영상을 검토한 세종대 김영욱 교수 또한, 심하게 눌린 일부 사람들이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는 등 군중 압착의 전조가 밤 10시 8분 시점에서 보인다고 짚었다.

현장 생존자인 영어 교사 자라 릴리와 해양 엔지니어 윤진형씨는 당시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쳤다”면서 “마치 파도처럼 쓸려 내리는 인파에 사람들이 앞뒤로 넘어졌다”고 공동 인스타그램 계정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10시 17분 경에 군중 압착 사고가 진행 중이었다고 분석했다. 골목 양 끝에서 더해지는 압력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한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인파가 골목 북측 세계음식거리로부터 끊임없이 유입됐다. 영상을 보면 한 남성이 해밀톤호텔 뒤편 간판에 매달려 현장을 탈출하려는 모습도 나타난다. 골목 남측에서는 이태원 중심가의 행인들과 이태원역에서 막 하차한 사람들까지 유입되고 있었다.

 


힙합 라운지 입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지점에서 심하게 눌린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 영상에서 확인됐다. 많은 이들이 호흡 곤란으로 숨을 몰아쉬는 모습도 확인됐다. 군중 과학 전문가인 G.키스 스틸 영국 서퍽대 객원 교수는 이러한 패닉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선 채로 사망할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다른 목격자 두 명은 밀고 밀리는 가운데 군중 속 일부가 넘어진 이들에 깔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전했으며, 이러한 인간 도미노와 같은 현상을 전문가들은 군중 붕괴라고 칭한다.

동아일보는 이태원 지역 상인들이 핼러윈 주말 이태원역 하차 인원 유입에 대한 우려로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를 당국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 상인 측으로부터 이와 같은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일이 없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이태원역 출구를 폐쇄했다면 29일 사고로 이어진 과밀 상황을 일부 완화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부실했던 긴급 대응

 

전문가들에 따르면, 군중 압착이나 군중 붕괴 상황을 완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가장자리부터 끌어내어 극심한 압력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이태원의 경우, 골목 양 끝의 사람들을 즉시 대피시킬 필요가 있었다.

워싱턴포스트가 분석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압사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26~31분이 지나서야 구조대원들이 인파를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10시 22분 시점에는 골목 위 가장 과밀 된 지점에서 사람들이 서로 겹쳐있었다. 영상을 보면 현장에 있던 경찰 5명이 군중의 무게로 인해 개개인을 끌어내 구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당시 고공 촬영 사진을 보면 세계음식거리 인파가 계속해서 도보로 유입되며 병목 현상이 악화한 정황이 나타난다.


서울 용산 경찰서 이태원 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는 참사 사고가 발생하기 전 후배 경찰 2명과 단순 시비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 있던 도중 사고 발생지인 해밀톤호텔 골목길 주변에서 비명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무전으로 지원 요청한 후 같이 있던 다른 경찰과 해밀톤호텔 뒤 골목길로 달려갔다.

김 경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해밀톤 호텔 뒷골목 쪽에서 사람들이 계속 아래로 밀려오다 보니까 (중간 지점) 사고 현장에 계속 압력이 가해져서 사람을 빼내는 데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있던 다른 경찰과 해밀톤 호텔 뒤쪽 골목길로 달려갔다”라고 전했다.

김 경사는 확성기를 가지러 이태원 파출소를 들렀다 다시 현장으로 나오기엔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고 판단했다. 김 경사가 시민들에게 “뒤로 이동해 달라”고 다급히 요청하는 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김 경사는 “다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이라고 외쳤다.

소규모로 파견된 구조대가 우선 골목 남측을 통제했다. 당시 무전 녹취록을 보면, 추가 지원 인력과 구급차가 출동했지만, 이태원로 중심가 일대 교통 혼잡 때문에 현장 진입에 난항을 겪었던 정황이 나타났다.

10시 29분에는 지휘 팀장이 “현재 차량 진입이 곤란한 상황 대원들 도보로 이동 중”이라는 무전을 송출했다.

영상을 보면 10시 34분 시점에도 구조대가 사고 현장 북쪽에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30 여분이 지난 10시 39분에서야 해당 지점에서 소방관 5명과 경찰관 4명을 현장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영상은 구조가 얼마나 느리게 진행됐는지 보여준다.


용산 이태원 펌프차는 “전 대원들은 후면으로 오세요, 후면에 심폐소생술 환자가 급증합니다”라는 내용의 무전을 10시 56분에 송출했다.

5분이 지난 후에도 구조 대원들이 여전히 붐비는 세계음식거리로 부상자를 대피시키는 모습이 영상에서 확인됐다.

무전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발생 한 시간이 지난 11시 22분이 돼서야 구조대원들이 모든 부상자를 골목에서 끌어냈고 이태원로 등지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경찰은 구조 이전의 대처와 사고 당시의 대응이 모두 부적절했음을 인정했다. 수사의 일환으로 경찰청장, 서울교통공사, 용산경찰서 등 수십 개 관계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


전문가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1년 핼러윈 주말에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적극적으로 거리를 통제했다.

3년 만에 야외 마스크 규제가 풀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가운데, 예년과 같은 통제 등 예방책은 부재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이태원에 사복 경찰과 정복 경찰 총 137명을 투입했다. 이마저도 마약과 성범죄 단속에 초점을 맞춘 인력이었다. 신고 접수 및 현장 출동을 담당한 지역 경찰은 32명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수만 명 규모의 큰 시위가 자주 열리고 군부 독재 역사가 있는 한국이 인파 관리 및 모니터링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경찰의 수직적 조직 문화 때문에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경찰 교육 전문가들은 법적 근거나 매뉴얼에 기반한 예방 의무가 불확실한 사건의 경우 일선 경찰이 나설 동기가 적다고 말했다. 또한 매뉴얼에 없는 내용을 예방 목적으로 제시하기 힘든 경직된 구조라고 꼬집었다.

군중 전문가인 마틴 아모스 영국 노섬브리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군중 압착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는, 사망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적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정부는 이런 일이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합니다.”


 

[출처 : https://www.washingtonpost.com/investigations/2022/11/16/seoul-crowd-crush-itaewon-victim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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