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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에서 바라본 갈등이론 : 갈등과 잠재적 본성의 힘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인지학에서 바라본 갈등이론 : 갈등과 잠재적 본성의 힘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8. 18. 20:52

갈등과 잠재적 본성의 힘
  

프리드리히 글라즐
  번역 :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저는 집안에서 넷째 아이로서, 2차세계대전 중 빈(Wien)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경험했습니다. 전쟁의 몇몇 장면은 “인간은 어떻게 비인간화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1955년 연합군에 의해 다시 해방되어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에서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저는 열네 살이었고, 궁전 바깥에 운집하여 박수를 보내던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였습니다. 사람들은 오스트리아가 스위스처럼 중립국을 선언하는 일에 환호했습니다. 더 이상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1959년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었으며, 기독교 비폭력 행동에 기반한 평화운동 단체인 ‘국제 화해 친교회(International Fellowship of Reconciliation)’에 가입했습니다. 저의 양심은, 그러나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전쟁의 공포에 대해 단순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정치학, 특히 전쟁과 평화에 대한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훗날 저는 인지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갈등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연구소의 고문으로 일하며 연구에 인지학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갈등을 통해 서로의 삶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들은 서로를 고통으로 이끌면서 가장 심오한 질문과 씨름하도록 합니다. 중재자로서 저는 종종 실존적 질문에 직면합니다. “얽히고설킨 그들의 삶에서 갈등이란 무슨 의미이고, 어떤 조언이 필요한가?” “그것의 더 깊은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들 사이의 다툼에서 드러나는 힘은 무엇인가?” “그러한 다툼을 통해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란 무엇인가?”
  
보통 중재자는, 대립하는 양측이 이미 그들의 입장을 확고히 하고 심연을 향한 격렬한 급류에서 더 깊이 빠져들 것이 임박했을 때 호출됩니다. 개별적으로 그들은 오직 곤경에 저항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갈등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제가 품었던 질문이 다시 등장합니다.
  
우리는 작은 긴장과 마찰이 어떻게 커다란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경험합니다. 처음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통제 아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화가 더욱 도드라지면 그것들은 점점 더 억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당사자들은 갈등의 힘에 의해 점차 허물어지고, 그들의 사고력과 판단력은 계속해서 약화됩니다. 흑과 백으로 양극화되는 것입니다. 감정은 극단화되며, 의지는 명백한 장애물들에 의해 막히거나 난관에 봉착합니다. 우리는 폭력적 행위에 자극을 받아 훗날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을 합니다. 갈등은 늘 우리의 더 어두운 면을 끄집어냅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정체불명의 비인간적 힘이 깨어나면, 갈등은 더욱 고조됩니다.
  
왜 갈등 상황 속에서는 그렇게 많은 비인간적이고 인간 이하의 충동이 풀려나는 것일까요? 실제로 그러한 일에는 어떤 힘들이 작동하는 것일까요?
  

갈등 고조의 9단계
  
갈등에 대한 제 연구 작업 속에서 저는 갈등이 특정한 법칙에 따라 고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등은 단계적으로 더욱 격렬해집니다. 각 단계의 문지방을 넘어설 때, 갈등당사자 중 한쪽이라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면 갈등 행위를 멈추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갈등 고조의 각 단계마다 일관된 패턴에 따른 몇 가지 ‘징표’가 있습니다. 이러한 징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의 세 단계는 협력과 경쟁에 관한 것입니다.
  
1단계 : 긴장과 결정화(結晶化)
  
논의를 하면서 엇갈려 버린 서로 다른 관점은 경직되고 ‘결정화됩니다(crystallize)’. 대립하는 양측은 스스로를 닫아걸고 입장을 고정시킵니다. 그들은 협력과 경쟁의 태도를 오가다가, 점점 당황스럽고 긴장감이 커지는 상황이 됩니다. 논의는 중단됩니다. 그 뒤에도 양측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2단계 : 언쟁
  
서로 다른 관점은 본래 활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양측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부침(浮沈)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상황이 바뀌고 갈등이 생깁니다. 이제 양측은 극단화되고 고착됩니다. 사고와 감정, 의지의 움직임이 극단적이며, 상호 배타적으로 변합니다. 당사자들은 각자의 언어로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편견 없이는 듣지 못합니다. 말다툼은 ‘유사 논리’라는 전술과 전략에 의해 좌우됩니다. 언쟁은 상대방의 감정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어, 상대방을 어처구니없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의견 충돌은 더 이상 독창적이지 않고 기계적일 뿐입니다. 하나를 주장하면 하나의 반론이 따라오고, 반론에 반론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양측은 자신의 지적 우위를 입증하기 위해 치고받는 두뇌 게임을 끝내지 않습니다.
  
3단계 : 기정사실화된 대립
  
이제 양측은 더 이상 다가설 수 없고, 서로를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양측은 단순히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을 진행하며, 적대적인 관계를 완전한 사실로 인정합니다. 서로가 한 일을 지켜본 뒤 그것을 확대해석하기도 합니다. 폐쇄된 집단으로서 당사자들은 상대편을 상호 배제합니다. 공감은 완전히 상실됩니다. 상대편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각자 ‘우리 그리고 그들’이라는 암묵적 개념으로 적합성이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합니다. 이어지는 4-6단계에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가 중요해집니다. 양측은 더 이상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4단계 : 이미지와 패거리 형성
  
갈등당사자들은 자기편에 특히 긍정적 그림을 형성하고, 그에 걸맞는 부정적 그림을 상대편에게 덧씌웁니다. 무식하고, 무능하고, 매력이 없고 등등의 이미지는 단단히 고착화되며, 상대편을 만난다 해도 추가적인 정보를 통해 시정되는 일은 없습니다. 원래의 편견이 확인될 뿐입니다. 그러한 편견은 주로 심리적 투사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상대편이 우리를 무척 짜증나게 하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내는 데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 속의 들보를 놓아두고 이웃의 눈 속에서 티끌을 봅니다.* 양측은 또한 갈등을 주변으로 확산하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조 세력을 끌어들입니다. 양측의 이러한 움직임은 서로를 극단적 역할에 빠져들게 하며, 오직 이런 방법으로만 싸우게 됩니다.

* 마태복음 7장 3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5단계 : 전면전과 체면 손상
  
이제는 상대방의 도덕적 고결성이 공격받습니다. 양측은 서로의 이중성(부정적 인격의 총합으로서)을 까발리기 위해 가면을 벗기려 듭니다. 더 이상 높은 자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열렬한 배제의 의식이 행해집니다. 각자는 상대방을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기들의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배제된 측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피해의식에 빠집니다. 더는 명예 회복조차 원치 않는데, 자존감이 깊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6단계 : 위협의 확산
  
갈등당사자들은 이제 서로에게 항복하기를 압박하고, 또 도발합니다. 만약 뜻에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를 끼칠 과격 행위를 할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이것은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의도된 것입니다. 심각하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협이 부분적으로라도 반드시 실행에 옮겨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나 공개적으로 양측은 자신들의 위협이 압박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나중에 전체 과정이 무의미해지고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시간의 압박이 커지면서 양측은 최후통첩을 보내게 됩니다.
  
더 많은 동조자가 패거리의 갈등에 적극 참여하고, 위협의 영향력이 갈수록 광범위해지며,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집니다. 갈등 고조의 마지막 세 단계에 가서는 손상과 좌절의 문제만 남습니다. 양측은 상대방이 그러한 행동을 즉각 멈춰야 하고, 오직 그럴 때 갈등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단계 : 제한적 파괴 행위
  
‘위협’은 상대방의 위협이 현실화되지 못하게 막는 ‘행동’으로 바뀝니다. 우선 위협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수단을 파괴합니다. 양측은 적에게도 인간적 존엄이 있다는 믿음을 버립니다. 상대는 단지 물건과 같은 대상물일 뿐, 더는 얻을 게 없습니다. 만약 적이 자기편보다 더 큰 손실을 입는다면, 이것은 승리의 체험이 됩니다. 상대편의 손실이 곧 기쁨이자 즐거움이 됩니다(놀부 심보*). 상대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전쟁 상태에서 거짓말은 미덕이 되고, 도덕적 가치는 뒤집힙니다.

* 본래는 ‘schadenfreude’라는 독일어 용어로, ‘짓궂고 고약한 즐거움’ 또는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심보’를 뜻합니다.
  
8단계 : 적을 파괴하라
  
만약 집단이나 조직 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서로의 주요한 기능은 공격을 받고 무력화됩니다. 뒷배경이 되어 주었던 핵심 상대들과의 관계는 단절됩니다. 내부 응집력이 약화되고 중대한 기능들이 불구가 된 상대편은 두들겨 맞아 붕괴되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시점이 지나가게 됩니다.
  
9단계 : 파멸과 자멸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최종적인 대결은 적의 완전한 파멸을 목표로 합니다. 양측은 비록 이것이 자멸을 불러올지라도 궁극적으로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심연으로 던져진 적의 몰락 속에서 승리감에 도취됩니다.
  

어떤 힘이 갈등의 고조에 작용하는가?
  
갈등이 고조될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잠재의식의 어떤 비인간적 힘들에게 접근을 허락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사회생활 속에서 활동이 시작되면 그것들은 우리를 분열하도록 위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항상 자동적으로 마지막 단계까지 고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각 단계 사이의 경계점에서 깨어날 수 있고, 그 이상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의식의 알람 소리를 무시한다면, 또는 표출되는 충동과 흥분에 굴복한다면 파멸의 규모는 즉각 커질 것입니다.
  
저는 오랜 기간의 작업과 연구를 통해 갈등 고조의 9단계에 대해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비로소 동료 한 명이 루돌프 슈타이너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슈타이너는 지구 내부의 아홉 층위와 악과의 관련성을 묘사했습니다. 그는 지구의 정신적 내부가 아리만의 영향에 따라 아홉 개의 층위로 구분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인류의 과오는 이처럼 대립되는 정신적 힘들이 우리를 통해 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벌인 짓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우리를 눈멀게 하고 족쇄를 채우며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의식을 혼미하게 합니다.
  
갈등을 통해 우리는 단테가 말한 9층 지옥과 같은 지하 세계로 내려가고, 거기에서 우리의 싸움 속으로 돌진하는 강력한 괴물들을 깨우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때 우리는 거대하고 부정적인 잠재력에 붙들립니다. 그것이 우리를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지구 내부의 9개 층위
  
9개의 층위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특성화할 수 있습니다.
  
1층 : “광물 지구(Mineral Earth)”
  
지구의 광물층이 딱딱해지는 것처럼, 살아 움직이던 것들이 경직됩니다. 이것은 갈등의 첫 단계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2층 : “액체 지구(Liquid Earth)”
  
이 층위에 있는 존재들의 활동에 의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유기적이었던 움직임이 기계적인 것으로 됩니다. 양측은 극성을 띠기 시작합니다. 전기와 마찬가지로, 양측이 접촉하게 되면 서로를 소멸시키거나 파괴합니다.
  
3층 : “기체 지구(Air-Earth)”
  
“증기 지구(Steam-Earth)”라고도 합니다. 이 존재들은 죽어가는 느낌을 불러옵니다. 냉정과 무감각이 지배적입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만의 사고와 감정, 의지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4층 : “물의 지구(Water-Earth)”
  
“형태 지구(Form-Earth)”라고도 합니다. 내적 세계에서 살던 것들이 바깥세계로 옮겨 갑니다. 갈등 상황에서 이것은 패거리를 형성하고 심리적 투사가 일어나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 줍니다. 형태는 상대편의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편의 정형화된 모습이 우리의 고유한 자아를 대체합니다.
  
5층 : “불의 지구(Fire-Earth)”
  
지구에서 이 층위의 존재들은 우리의 격정 속에 스며들어 부정적인 힘을 키웁니다. 강한 감정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우리의 의지를 굴복시키며, 더욱 더 어두워집니다.
  
6층 : “열매 지구(Fruit-Earth)”
  
여기에서의 힘들은 인간의 몸에서 맹목적이고 악성으로 자라는 암 세포처럼, 모든 것을 자멸과 끝 간 데 없는 발달로 이끕니다. 이러한 발달은 의미도 없고 지혜로운 안내도 없습니다. 5층과 6층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 영역의 영향력 안에 가둬두려는 자력이 작용합니다.
  
7층 : “지구 반사체(Earth-Reflector)”
  
“지구 거울(Earth-Mirror)”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악의 힘은 자질과 미덕을 그 반대로 왜곡합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은 기쁨이 되고, 몰락은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7단계의 갈등에서 특징적인 것입니다.
  
8층 : “해체자(The Fragmenter)”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한 파편들로 나뉘어져 분해되고 붕괴됩니다. 이 힘은 방사능의 붕괴에도 작용합니다.
  
9층 : “지구의 핵(The Core of the Earth)”
  
이곳은 전형적인 악의 자리이자, 흑마술의 원천으로서, 반-진화 그 자체입니다. 전형적인 악은 현재까지 인류가 쌓아온 발전의 결실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잠재적 본성을 자극하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러한 힘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만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임종 직전까지 그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그 힘들의 영향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카엘 편지의 말미에도 그는 우리 모두에게 이 잠재적 본성의 힘과 대결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 일인지에 대해 당부합니다.
  
이 존재들은 현대적 기술을 통해 우리 문화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이 힘들이 우리의 영혼을 거쳐 사회적 삶에 다가오도록 허용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악의 영향력은 인류의 진화에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진보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를 몰락시키려는 힘들과의 투쟁 속에서 의식적이고 진보적인 발전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보는 악의 세력이 갖고 있는 교묘한 술책의 힘들로부터 빼앗아 와야 합니다. 우리의 고유한 도덕성을 통해 우리는 우리 영혼에 자리 잡은 그들의 영향력에 저항하여 우리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진보는 가능합니다.
  
사회적 갈등 속에서 우리는 또한 악의 존재들이 갖는 영향력에 직면합니다.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저 아래로 잡아당기길 원하는 악의 세력만큼이나 정신적 존재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저 높이 오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홉 개의 층위로 된 지하 세계 속 악의 존재들은 정신적 위계에 대한 반대 세력입니다. “광물 지구”는 천사들(Angels)의 살아 있는 힘을 뼈처럼 딱딱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집단, 민족, 언어의 영인 대천사들(Archangels)은 “액체 지구”의 사멸화하는 힘과 대조를 이룹니다. 고유성의 영인 권천사(Archai)가 펼치는 자유로운 행위는 “기체 지구”의 영역을 물구나무 세운 것입니다. 형태의 영인 능천사(Exusiai)는 “형태 지구”가 반대로 변화된 것입니다. 움직임의 영인 역천사(Dynamis)의 희화화된 모습은 “불의 지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억제되지 않은 욕망이 풀려나는 곳입니다. 마치 암처럼 맹렬하게 성장하는 “열매 지구”는 지혜의 영인 주천사(Kyriotetes)의 영향력이 뒤집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7층에 있는 “지구 반사체”는 미덕과 희생을 상반되는 특성으로 왜곡시켜서 의지의 영인 좌천사(Thrones)의 희생적 행위가 실패할 거라고 위협합니다. 조화의 영인 지천사(Cherubim)에 대한 반대되는 상은 “해체자”로서 총체적 불화와 혼돈을 창조하고자 노력합니다. 치천사(Seraphim)가 펼치는 사랑의 행위는 “지구의 핵”이 가진 힘으로 육성된 반-진화에 대립합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강력한 존재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한 쪽, 또는 다른 쪽에 다가설 수 있고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안의 악을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자비로운 존재가 우리에게 대속의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깨어 있고 또 우리 자신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입장을 취한다면 이러한 일은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질병이 우리에게 영혼과 정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처럼, 사회적 갈등도 우리의 의식혼 속에서 필요한 발달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도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과학기술, 에너지 문제, 경제적 갈등과 사회적 갈등, 전쟁 등의 문제가 증가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악의 세력과 직접 싸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고 계발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은 이러한 과제를 위한 인식에 가장 중요한 보조 도구를 제공해 줍니다.



* 인지학에서 말하는 천사들의 위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계 계급 이름(그 밖의 이름)
첫 번째 위계 1 치천사(熾天使, Seraphim) : 사랑의 영
2 지천사(智天使, Cherubim) : 조화의 영
3 좌천사(座天使, Thrones) : 의지의 영, 오파님Ophanim
두 번째 위계 4 주천사(主天使, Kyriotetes) : 지혜의 영, 주품천사
5 역천사(力天使, Dynamis) : 움직임의 영, 역품천사
6 능천사(能天使, Exusiai) : 형태의 영, 엘로힘Elohim, 능품천사
세 번째 위계 7 권천사(權天使, Archai) : 고유성의 영, 권품천사, 시대의 영 또는 세기의 영
8 대천사(大天使, Archangels) : 불의 영, 민족령 또는 부족령
9 천사(天使, Angels) : 수호천사, 정신세계의 신성한 사자



* 프리드리히 글라즐은 194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출판사와 지방 정부기관에서 일했고, 국제 자원 봉사단의 오스트리아 책임자이기도 했습니다. 1967년부터 그는 네덜란드의 NPI(Netherlands Pedagogical Institute)에서 일해 왔고, 영국 포레스트 로우(Forest Row) 지역의 에머슨 대학에서 사회 개발 센터 주최로 갈등 관리에 관한 세미나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출처 : 김훈태,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 교육공동체 벗,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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