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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회복적 접근 - 이재영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회복적 접근 - 이재영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8. 24. 17:55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회복적 접근

 

이재영(한국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

 

 

피해는 피해를 낳고, 불의는 불의를 낳는다

 

학생들이 잘못하거나 다툼이 생길 때 과거에는 사랑의 매란 이름의 직접적 체벌로 대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제는 절차와 매뉴얼에 따라 심의기구를 열어 잘못을 한 학생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결정하는 제도로 풀어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시스템의 발전으로 볼 수 있지만, 학생들을 갈등 해결의 주체로 보지 않고 그저 대상화한다는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번 일은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 하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분명 자식을 위하는 대책 같지만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 결과적으로 더 큰 갈등으로 확전될 확률이 높아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어른들의 헌신과 열심이 오히려 자녀들과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방향성을 배우도록 만드는 결과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 물론 자식에게 생기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법적 해결책을 찾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적 공방은 승패 구도를 갖는 대결의 장이다. 한번 시작한 법적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하고, 비기거나 지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따라서 더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해서라도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하는 전투와도 같다. 그러다 보니 학교폭력으로 발생한 학생 사안들이 부모들의 자금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하지만 이렇게 편법적으로 처벌을 면하고 만다면 과연 우리가 벌을 통해 주려고 한 목적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욱이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이후 소위 출세해서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가 될까? 지금보다 더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불의한 세상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비교육적인 일이 학교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진짜 피해자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사과와 반성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고비용을 들여 자신들의 처벌을 무효화하기 위해 애쓰는 그 불합리한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이들의 심정을 상상해보라. 피해를 본 것도 억울한데 그 결과마저 자신들을 배신하는 현실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피해자의 고통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은 세상에 대해 절망을 안고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을지 알 수 없다. 결국 이런 경험을 하게 된세대가 나중에 학부모가 되었을 때 지금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불의한 사회는 악은 구조화시키고, 피해자의 고통에는 눈감아 그들을 피해자 사이클에 가두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부인하고 싶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 구조적 악이 아직 자기 가치관을 형성해야 할 청소년 시기에 벌어지고 경험된다는 것이 더욱더 절망적이다.

 

국민들에게 '학교폭력은 범죄다'라는 도식화를 각인해온 정부, 그리고 그 결과로 학교폭력은 처벌의 대상이라는 경각심을 부각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엄벌주의 정책이 가져오는 한계인 벌을 피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책임의 고의적 회피, 학교의 자기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보신주의, 절차만 지켜지면 된다는 형식주의,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인 피해자 소외현상이 강화되고 말았다. 결국 학교라는 교육기관에 맞지 않는 엄벌정책과 낙인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의 방향은 결과적으로 학교의 사법화만 부추긴 채 계속 헛돌고만 있다.

 

 

학교폭력 미투가 던진 화두들

 

최근 10년 또는 20년 이상 지난 과거의 피해사실을 공개하며 대중들에게 알려진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과거를 폭로하는 이른바 학교 폭력 미투현상이 심상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학교 폭력 미투 현상을 보면서 학창 시절 풀지 못한 피해가 한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 사회적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져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분명한 것은 과거 피해자들에게 학교폭력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는 현재의 문제라는 점이다.

 

학교 폭력 미투의 피해자는 과거 자신에게 부당하게 생겨난 폭력이나 억압에 대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그래서 제대로 정의(올바른 해결)를 경험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이제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상대의 치부를 폭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공인이 된 가해자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를 숨기고 위선적 이미지 속에 대중적 인기를 얻어온 스타들의 이중성을 비난하고, 그들이 어떻게 처벌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기 쉽다. 하지만 학교 폭력 미투 현상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이거나 몇몇 공인들의 개인적 이슈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런 현상을 통해 어떤 유명인의 과거를 들추어내는 자극적 소재로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시사하는 지점들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이 문제를 더욱 과거가 아닌 지금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우선 수많은 피해자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자는 쉽게 휘발되는 불쏘시개로 전락해버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아프고 부끄럽기까지 한 과거의 피해를 폭로하는 피해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은 매우 짧고 즉흥적일 경우가 많다. 대신 대중의 관심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가해자들과 그들이 받게 될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정의를 위한 절규는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고 말 확률이 높다. 결국 모호한 대중이나 언론을 상대로 한 가해자의 적극적 반성으로 쉽게 정리되거나, 강한 부인과 변명으로 지루한 진실 공방으로 넘어가며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일쑤이다. 왜 피해자들이 몇십 년도 더 지난 일을 공론화시키고자 하는지 그 본질적 요구에 지속적 관심을 쏟지 못한다. 인정과 사과,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책임 있는 자세를 통해 이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문제해결의 키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함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은 늘 피상적이고 한정적이다. 그 결과가 응징을 통한 복수이든 용서를 통한 자기회복 또는 관계회복이든 그들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대중의 인기를 얻던 한 분야의 전문인도 사라지고, 피해자도 사라져 버려 우리 사회는 무엇도 잘 얻지 못하는 구조가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 시사점은 학교 폭력 미투는 사실 구조적 문제가 만들어 놓은 현상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원스포츠는 과거나 지금이나 학교의 명예를 높이고 이름을 알리는 통로로 인식되어 왔다. 마치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적으로 국가스포츠 육성하고 관리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소위 어떤 스포츠 종목의 명문학교들이 존재하고 이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경쟁을 벌인다. 또한 운동을 통해 대학진학을 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인생의 진로가 달려있는 중요한 선택이고 과정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나 학교라는 기관측면에서도 성적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자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과거 성적을 올리기 위해 코치들에 의해 자행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지도방식이나 선배들의 후배를 상대로 한 군기잡기식 훈련문화가 만연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운동을 잘하는 학생이 일으킨 문제는 적당하게 무마되거나 조직적으로 은폐되어온 측면도 있었다. 대중의 질타 속에 변명하지 못하고 사려져야 하는 학교 폭력 미투 가해자들 중에는 분명 자신도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개인적인성의 문제로 보고 그들을 처단하는 것만이 공정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또한 학교 폭력 미투를 고발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에도 문제제기를 했으나 학교에서 형식적 징계로 끝나고 자신들은 오히려 보복위협과 불이익을 겪어야 했던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즉 학교폭력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학교의 대응과정 속에 나타난 불의함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결국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적으로 들여다보면 학교 폭력 미투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미래의 학교 폭력 미투를 막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학교 폭력 미투 이후 흔히 나오는 대책인 학원스포츠 폭력에 대한 일벌백계와 무관용 원칙만으로 경쟁적 환경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학생들의 행동을 억제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미래의 스포츠 인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인지 배울 수 있도록 좀 더 교육적 갈등해결 절차와 내용을 준비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학원스포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사고와 인식의 대전환이란 사회적 노력이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 폭력 미투 현상은 왜 학교폭력의 당사자 모두에게 매듭의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에서 완전한 예방이 불가능하듯 완전한 해결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최소한 해야 할 기본적 의무는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생긴 피해가 평생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문제해결의 과정에 주인공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피해를 겪었던 사람들 중에 문제해결의 과정, 즉 자신의 문제에 대한 매듭과정에 관중이 아닌 주인공으로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학교와 사법의 모든 절차는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결정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따라서 피해학생의 역할은 그 결과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칠 확률이 높다. 역설적으로 피해학생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결코 당면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적 절차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마무리 되지 못한 마무리가 묵고 묵혀 분출되는 것이 학교 폭력 미투 같은 현상이다. 비록 자신은 원치 않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 처리과정에서만이라도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문제는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분출하는 현재의 문제이고, 또 다시 미래의 문제로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 폭력 미투 현상도 위에 이야기한 작금의 학교폭력에 대한 일반적 접근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절차와 제도에 가려진 당사자들의 필요, 문제해결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당사자들의 소외현상, 오랜 시간 동안 방치돼온 이들의 감정과 다친 마음들, 철저하게 막혀버린 피해회복과 관계회복의 기회,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마무리되어 버린 미완의 해결책 등.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방식의 갈등해결 절차와 문화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대안을 만들지 않고서는 사법공방 속에서 엄청난 비용을 드리며 불의를 대물림 해주는 지금 학교현장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이제는 좀 더 근본적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새술도 빚어야 하고, 새 부대도 만들어야 하는 이중고 속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회복적 정의 관점

 

회복적 정의는 잘못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결정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응보적 정의와 다른 정의 관점을 이야기 한다. 잘못은 처벌을 낳는다는 일반적 고정관점을 넘어, 잘못은 피해를 만들고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정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의 패러다임이다. 따라서 가해자 처리 중심의 현 사법체제나 학교폭력처리 방식보다 더 피해자 중심적이고 당사자와 공동체의 역할을 중요시 여긴다. 이런 회복적 정의 개념은 사법을 넘어 학교현장과 지역사회 갈등문제, 조직과 직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UN에서도 2000년 이후부터 회원 국가들에게 회복적 정의(사법) 실천을 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회복(restoration)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범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최대한 원상으로 복구하고 변상한다는 뜻에서 변상(reparation)이란 의미와 손해배상(restitution)의 의미가 있다. 이는 피해를 인정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회복적 정의에서 일차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다. 흔히 처벌을 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가해자의 책임은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과 그 피해의 영향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간혹 자신의 잘못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신의 잘못된 행위나 피해자의 피해보다는 자신의 억울함과 상대에 대한 보복으로 그 관심이 쏠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원래 처벌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반성이나 개선의 기회가 왜곡되는 현상으로 초래한다.

 

두 번째로 회복이란 의미에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관계적(relational)이란 뜻이 있다. 범죄의 정의를 법을 깨뜨린 것이라기보다는 관계를 깨뜨린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분쟁을 해결하는 궁극적 지향점을 관계의 회복으로 본다. 어떤 문제를 표면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분쟁봉합이라고 본다면 제삼자인 법적 대리인들을 통해 대신 할 수 있겠지만, 진정으로 당사자 간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화해와 치유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관계회복을 향한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으로 그 의미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손상된 인간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쪽으로 분쟁해결 제도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적 통합이나 공동체의 평화는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처벌은 분리와 격리를 의미하지만 직접 대면은 화해와 회복이라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좀 더 성숙한 공동체 구성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세 번째로 회복의 의미에는 인류의 오랜 전통 속에 남아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산업화 이후 점점 심해지고 있는 도시화는 계속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게 하고 있고, 그 결과 주변과의 관계성이 결여되는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현대 사회의 범죄문제는 이 개인화 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회복적 정의에서 지역사회의 참여와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는 범죄를 극히 개인적 선택의 문제나 성향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범죄행위 이면에 깔려 있는 근본적 문제까지 다뤄 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전통적 공동체에는 그 나름대로 범죄문제를 다루는 메커니즘이 발전해 있었고, 그 모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가장 적합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현대 사회가 과거 공동체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그러한 전통으로부터 현대 사법이 배워야 할 주요한 요소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는 회복은 이처럼 매우 다양한 차원의 변화를 요구한다. 사법체계가 발전해오면서 처벌이 목적이 되었기 때문에 처벌위주의 형사사법이 형성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처벌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또한 진정한 반성과 옳게 고치는 것이라면, 응보적 접근보다는 좀 더 회복적 접근을 통해 자발적 개선의 여지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처벌을 강조하면 제삼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기 쉽지만, 회복을 강조하면 당사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이제는 처벌 자체보다는 처벌을 통해 얻고자 하는 그 목표를 다시 되짚어 볼 시기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란

 

위에서 살펴본 봐야 같이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사법의 범위를 넘어 교육현장에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용어가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따라서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정의가 강조하는 가치들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소위 회복적 정의의 3원칙2)이라고 할 수 있는 존중, 책임, 회복을 생활지도 영역과 교실 교육환경을 이루는 기초가 되도록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 내에 문제가 발생하여 문제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라는 기능적 접근을 넘어 일상의 학교생활에 기초가 되는 생활문화를 형성에 더 근본적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회복적 생활교육이란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기초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를 접근하고, 학급운영과 학교폭력 사안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학생생활지도 과정을 회복적 정의 가치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생활지도의 방법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넘어 학생들과의 관계설정과 학교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접근하는 관점과 방식을 의미한다.3) 즉 회복적 사법이 범죄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회복적 관점에서 대응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 공동체가 어떻게 회복적 교육환경 속에서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30여 년간 미국에서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가로 살아온 로레인 교수는 교사가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함에 있어 회복적 정의 가치에 기초해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실천 원칙으로 다음 7가지4)를 제시하고 있다.

 

1. 관계가 공동체 형성의 중심이라는 점을 인식할 것

2. 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잘못된 행동과 피해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할 것

3. 단순히 규칙을 어긴 부분이 아니라 피해가 발생한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

4. 피해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할 것

5. 공동으로 참여하는 문제해결 방식을 활용할 것

6. 변화와 성장이 가능하도록 힘을 실어줄 것

7. 자신이 일으킨 피해를 이해하고 스스로 만드는 책임감을 키울 것

 

결국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갈등을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인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학교 현장에서 가장 큰 부담이고 숙제인 개인 간 또는 집단 간 문제 상황을 통제와 처벌의 순간이 아니라 교육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교육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실천에 있어 학급의 일상에서 무수히 흘려보내고 있는 갈등과 충돌의 시간들이 삶의 생활교육의 기회라고 인식하는 교사들의 관점 전환이 중요한 이유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회복적 생활교육 접근

 

점차 복잡해지고 사법화 되고 있는 학교폭력의 문제를 좀 더 교육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위에서는 일차적으로 위에서 살펴본 회복적 생활교육 접근이 하루속히 일반화 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과 그 이후에 과정에서 기존의 응보적 절차나 접근을 대치할 수 있는 회복적 접근방식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은 다양한 방식의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1) 회복적 학교

 

경상남도 김해에 한 초등학교가 3년 동안 회복적 학교 만들기프로젝트를 추진했었다. 도교육청과 지자체의 지원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 - 교사, 학생, 학부모 -를 위한 맞춤형 연수가 진행되었고 그결과 교사동아리운영, 또래조정반, 학부모 지원단 운영 등을 통해 학교문화가 서서히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접근으로 학교자체해결제를 활용한 (학교공동체)회복위원회 구성 등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으며, 학년별 생활교육 운영체계를 만들어 실행하였다. 더욱이 몇몇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에서 본인이 이해한 회복적 정의와 생활교육의 내용을 접목하고 있고 학급운영에 서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2)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활용

 

현재 모든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교폭력예방교육의 실효성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법률지식전달이나, 사고 치면 사법처리 된다는 협박성 교육내용으로는 실질적인 예방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보다는 회복적 생활교육 관련 교육과 갈등해결교육, 비폭력훈련, 평화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교사와 학부모들의 일상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두 시간의 짧은 교육으로 회복적 정의의 가치와 회복적 생활교육의 방식을 이해하고 체득하는데 한계가 있겠지만, 학급이나 가정에서 아이들의 행동의 문제를 다룰 때 있어 필요한 관점의 전환이나 회복적 학급운영 방법을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유용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3) 회복적 학생생활교육부

 

인천의 한 중학교는 학생인권부의 이름을 (회복적)생활교육부로 바꾸고 그 기능도 처벌위주의 생활지도에서 피해회복, 자발적 책임, 공동체 참여라는 회복적 정의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쪽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해 왔다. 물론 이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교직원의 이해와 전문성, 학부모 동의, 학생 인권평화의식 향상이라는 쉽지 않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방향의 전환이라는 것이 갖는 가능성과 상징성을 높이 사야 한다.

 

(4) 교육청 조정지원단 구성 및 활용

 

지역교육청에서는 조정전문인력을 확보하여 각종 학교에서 올라오는 사안들을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당사자 간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조정위원들을 지역사회에서 발굴하거나 전문조정교육을 실시하여 처벌이전에 당사자 간 대화를 갖게 하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교원이 아닌 지역사회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도 변호사가 아닌 대화 프로세스 전문가로써 조정훈련을 받는 민간자원들이 늘어가고 있다. 심지어 일부법원에서는 조정전치주의로 방향을 잡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교육청도 인지하여 조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

 

(5) 관리자 및 교사 연수를 통한 연구회 활성화

 

현재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교사 연수와 관리자 연수에서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은 매우 높은 만족도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의 엄벌주의를 지향해온 생활지도 패러다임의 한계를 가장 적절히 보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몇몇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발적 교사 동아리 성격의 연구모임 등이 이뤄지고 있다. 자발적 참여에 의해 형성된 연구회를 통해 교사들은 자신이 실천한 회복적 생활교육의 사례를 나누고 지지를 받는 단위가 필요하다. 또한 관리자의 지원과 지지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는 매우 필요한 요소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단지 생활지도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인식하지 않고 학교의 문화를 바꾸는 장기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교사와 관리자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6) 학부모 이해와 동의 필요성

 

그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학교의 혁신과 변화가 지속적이고 깊이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이해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학교에서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폭력이나 갈등의 문제에서 궁극적으로 당사자가 될 학부모들이 학교와 협력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시스템과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와 학부모사이에 학내의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대화로 풀 것인가에 대해 동의하는 신사협정이 필요하다. 대부분 학교의 문제가 외부로 확대되고 복잡해지는 이유는 어떤 과정과 내용으로 문제해결이 진행될지에 대한 상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부모와 학교사의 분쟁해결방식과 원칙에 대한 이해와 동의는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미리 이뤄지는 것이 그나마 더 큰 갈등의 증폭을 막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7) 회복적 마을/도시 만들기

 

영국의 헐시티(Hull City)와 같이 도시의 행정, 사법, 교육의 전반적 운영방향이 회복적 정의의 가치에 기초해서 이뤄지는 도시를 말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학교와 교육청이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경상남도교육청이 시도하고 있는 혁신지구 사업 내의 회복적 도시 프로젝트 - 8개 도시 회복적 생활교육 마을강사 양성이나 남양주시가 2020년부터 추진하려고 계획 중인 회복적 도시 프로젝트(회복적 마을, 회복적 학교, 회복적 사법) 등에 관심을 갖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만의 노력으로 아동과 청소년의 안전과 평화라고 하는 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마을주민들의 자원과 회복적 사법을 추구하는 사법기관들과의 연계 및 협력을 통해 회복적 도시라는 큰 틀 안에서 학교도 지속가능성을 강화해 나갈 수 있다.

 

 

2019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교육부는 2019129일 한참동안 예고해왔던 학교폭력 대응절차에 대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골자를 보면 다음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1) 학교자체해결 권한부여 2) 학교폭력 처분결과 생활기록부 기재요건 완화 3)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교육청 이관 등이다. 사실 이 세 가지는 2012년 학교폭력근절을 위한 정부종합대책 발표이후 학교현장을 어렵게 만든 핵심 정책들이기에 지속적으로 수정요구가 많았던 부분들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에 이 부분이 다뤄진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에 있어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인 학교자체해결 권한부여는 그 방향성에서 큰 박수를 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학교는 학교폭력 발생 시 자체적 접근이나 해결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권이 박탈당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문제를 직접 다루고 개입하려는 노력보다는 전담기구로 넘기는 것을 더 안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육활동 중에 수업만이 교육은 아니다. 생활지도를 통해 이뤄지는 생활교육도 다음세대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에게는 중요한 교육영역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내에서 징계를 결정하는 준사법기관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로 그 역할이 넘어가고 집중되면서 교사의 권한은 오히려 축소되어 버렸다. 또한 자치위의 일방적 처분결정을 분쟁당사자들이 수용하지 않게 되면서 학교는 재심과 행정소송 등에 시달리는 폐단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결국 교사들의 에너지를 비교육적인 분야에 쏟아야 하는 낭비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교육현장의 사법화라는 가장 안타까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따라서 학교공동체의 힘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풀어가는 권한을 다시 부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고 학교를 교육기관을 회복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관건은 학교자체해결을 위한 교육적 해결제도 도입이라는 방안이 과연 어떤 형태여야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세부 프로그램이 성격문제이다.

 

두 번째 개선안인 학교폭력 처분결과 생활기록부 기재요건 완화조치이다. 사실 학교폭력 처분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미래에 해당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자체가 반 헌법적 요소가 다분했다. 이 정책은 일반적 법상식인 한 가지 죄로 두 번의 벌을 받을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년간 교육영역에서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교육부와 지역교육청 사이에 수많은 논란과 갈등을 빚게 만들었다. 결국 탄생하지 말아야 할 정책이 만들어지면서 학교 현장은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대결하는 구도가 확산되는 슬픈 현실을 만들어 냈다. 따라서 이번 완화조치는 당연히 환영받아야 한다. 다만, 교내 선도형 조치인 1-3호 처분결과에 한하여 생활기록부 기재를 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의 요소를 갖게 될 수도 있어 우려가 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4, 5호 처분 결정을 받은 학생과 학부모의 경우 기존보다 더 강력하게 처분결과에 불만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고 처분결과를 낮추거나 번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 뻔하다. 이번 개정을 시작으로 향후 불합리한 정책을 완화를 넘어 서서히 폐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학교현장의 혼란을 막고 교사들을 민원과 소송대응 업무로부터 구해줘야 한다. 이제는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때이다.

 

세 번째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교육청 이관부분이다. 개별학교에게 자치위 교육청 이관 이슈는 숙원사업과 같은 것이었다. 자치위 개최 기준의 모호성, 처분결과에 대한 책임소지 문제, 학교문제의 소송화, 학부모 민원 증가, 결과에 불만인 학생들의 생활지도 어려움, 자치위원들의 비전문성과 이해관계 충돌 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비전문가인 학부모가 자치위 구성의 50%를 넘는 현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해주기 위한 자치위 교육청 이관은 표면적으로 는 합리적인 대책이라 평가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일선교사들의 업무가 얼마나 줄어들 수 있을지는 시간을 갖고 지켜보면서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또한 교육청에 설치될 자치위 기구의 성격은 더 많은 사법 전문가들이 포함되는 사법기구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 우려가 된다. 학생들의 일차적 관계성이나 맥락을 알기 더 어려운 지역교육청의 기구는 법원처럼 서류를 통한 결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한 지역의 교육 최고 책임자인 교육장이 사법기관의 수장처럼 인식되지 않도록 처벌보다는 피해 회복과 공동체와 관계 회복의 방향으로 문제해결이 이뤄지는 교육적 접근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학교장자체해결제의 적용: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

 

이처럼 이번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대응절차 개선방안은 여전히 한계가 있지만 새로운 교육적 조치의 여지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개선안 발표에 담겨 있는 몇 가지 정책을 잘 가다담음으로써 2020년 실행이전에 새로운 개선안이 더욱 효과적으로 자리 잡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이번 개선안의 핵심은 결국 학교 스스로 학교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교육적이고 자치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학교 내의 갈등이 외부로 증폭되는 것을 막고 교사들의 권위회복과 학생들의 관계회복을 근본적으로 돕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의 핵심을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이라는 학교 내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분쟁해결기구의 신설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교육부 발표에도 교육적 해결여부는 학교장 단독으로 판단하지 않고, 학칙으로 정하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만약 이 위원회의 성격을 또다시 선도와 징계를 목적으로 하는 위원회로 규정한다면 이번 개선안은 발표할 이유조차 없다. 교육부 발표안대로 학교의 교육력 회복 지원이라는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위원회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이하 회복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 기구이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잘못을 한 사람의 처벌을 통해 정의를 이루는 것을 넘어, 피해자와 학교공동체의 회복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이 말은 처벌의 내용이 단순히 일으킨 피해에 상응하는 고통의 부과가 아닌, 피해의 회복을 위한 직접적이고 자발적인 책임의 기회를 통해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자발적 책임을 진 학생은 용서와 공동체로의 복귀가 안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의 궁극적인 과녁은 처분 결정이 아니라 피해와 관계회복을 통한 공동체 회복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처분은 결정이 되었지만 피해회복이 이뤄지지 않는 현행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건의 초기부터 당사자들이 직접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환경을 의무화 하는 것이다. 접촉금지가 핵심이 아니라 당사 학생들이 안전하게 자기들의 피해와 책임을 이야기 하고 들을 수 있는 보장된 환경을 제공하여 스스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가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고 사회로 하여금 생활지도를 교육영역으로 재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학교공동체회복위원회] 개최 시 회복적 대화모임을 이끌 수 있는 훈련된 진행자들의 확보이다. 회복위원회의 구성은 교원과 학부모,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이뤄지는 것은 지금의 자치위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혀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모르고 진행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회복위원회 위원들은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고 회복적대화모임이나 서클 등을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 교원과 회복적 정의 훈련을 받은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원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만약 이런 자원이 없을 경우 위촉된 회복위원회 위원들은 최소한의 교육훈련을 통해 회복적 접근의 의미를 이해하고 분쟁해결을 위한 진행능력을 습득하도록 도와야 한다. 만약 회복위원회 구성을 6-7명으로 할 경우 교원과 학부모, 지역자원 반반으로 위촉하고, 위원들은 15-30시간의 훈련을 통해 기본적 프로그램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교육청에서 관할 학교마다 2-4명의 조정훈련을 받은 진행자를 양성하여 회복위원회 진행을 담당하게 할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2020년 새로운 개선안이 시행 될 예정이기 때문에 2019년 한 해가 이런 준비를 지역교육청들이 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 할 수 있다.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를 통한 학교 내 분쟁해결 접근이 늘어날수록 피해 측에서 요청하는 피해회복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책임을 져야할 가해 측에서는 교육청에서 진행되는 징계기구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피해회복의 실질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처럼 개최와 동시에 처분결정으로 귀결되는 일방적인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자발성과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학생들과 교사는 더 이상 학교분쟁해결 과정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역할을 부여받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될 학생들을 민주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키우는 교육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즉 학교현장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회복적 생활교육의 취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지역교육청 산하 조정지원단 활용

 

학교장자체해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교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교육청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로 접수되는 사안들이 없을 수는 없다. 이런 경우 교육청 자치위에서 심의결과를 결정하기에 앞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 18조에 근거하여 조정에 회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조정단/조정지원단을 구성하고 관계회복기간을 갖도록 조정 및 조정결과를 반영하는 적극적 제도 활용의지가 나타나야 한다. 사실 분쟁조정 조항은 현행 학폭법에도 명시되어 있었으나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구조적으로 시도하는 교육청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조정에 대한 이해가 적은 점도 있지만, 제대로 훈련된 조정전문 인력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조정위원들은 법률가와 다른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법률가가 법률해석과 승패구조 속에서 공정한 판단과 판결에 훈련이 되었다면, 조정자는 결과가 아닌 과정과 절차에 대한 전문훈련을 받은 대화전문가로써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현재처럼 법률가들이 전문조정자로 인식되는 관행을 탈피하여 좀 더 비사법적이고 교육적 관점에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결국 조정지원단의 구성에 있어 새롭게 시도해야 할 부분은 조정위원과 자문위원을 구분하여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정의 진행은 전문조정교육을 받거나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조정위원이 담당하고, 자문위원은 법률, 의료, 선도, 상담 등의 피해학생 회복과 가해학생 선도와 관련된 전문조언과 자발적 책임의 선택지를 도와줄 지역자원들이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정위원의 선정은 지역에 있는 훈련된 조정자들을 발굴하여 위촉하거나 직접 조정위원을 양성하는 전문적 조정훈련을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 될 수 있다. 현실적 한계는 자문위원은 이미 사회에 많이 존재하나 조정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교육청에서는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이미 교원이 아닌 외부조정자 자원을 양성하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도록 준비를 해오고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 지원 시스템 구축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이 모든 학교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오히려 회복위원회가 다뤄야 할 사안은 전체 학교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1020%를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은 학급과 학년에서 어떤 형태의 위원회로도 사안이 올라오지 않도록 근본적인 예방과 초기대응을 회복적 접근으로 잘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교사와 학교가 회복적 생활교육을 프로그램(program)이 아닌 교육 패러다임(paradigm)으로 깊이 이해해야 하며, 단순한 몇 가지 프로그램 진행을 넘어 생활지도 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학년별 생활지도 운영체제와 사안 처리 전담이 아닌 회복적 생활교육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통해 담임의 학급 공동체성 강화를 돕고 초기 갈등을 회복적 관점에서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결국 예방과 사후처리라는 생활지도 영역이 전반적으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 토대 위에 이뤄지는 회복적 학교 시스템구축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결국 회복적 생활교육 지원체계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 지원체계는 교육청 내에 회복적 생활교육 지원센터와 같은 기구를 설립하여 그 지원영역 안에 1)회복적 생활교육 교사연구회 2)회복적 학교 모델학교 3)분쟁조정지원단 4)회복적 생활교육 마을강사단 등의 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 및 지원하는 컨트롤타워를 말한다. 이는 정책의 연속성과 상호효율성을 높이고 생활지도가 문제 학생들 에게(to)’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학생들과 학교공동체 전체를 향해(toward)’ 있도록 방향을 선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무리

 

회복적 정의의 가치를 교육 현장에 적용한 것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그리고 이는 학생들과 교사,학부모 등 학교공동체의 구성들 사이에 생기는 수많은 크고 작은 갈등을 좀 더 교육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학교폭력은 학교 현장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암적 현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학교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일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을 통한 사법적 접근만으로는 학교라는 교육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좀 더 미래시제의 정의 패러다임인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학교폭력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접근할 시점이 되었다. 이는 비단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상의 문제를 법과 제도를 넘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사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민주시민성을 생활교육의 내용으로 어떻게 체험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정책적이고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갈등이 위기가 아니라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우리 모두의 관점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뿐만 아니라, 청소년 전문기관, 마을공동체, 도시와 지자체가 아동과 청소년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자라는 도시인 회복적 도시를 함께 꿈꾸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부산형 학교폭력 ZERO만들기 정책포럼 자료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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