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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1) (2020. 11. 25)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국어교육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1) (2020. 11. 25)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0. 9. 20:28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개인적으로 저는 발도르프 교육만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발도르프'라는 수식어가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이므로, 발도르프 교육은 말 그대로 진정한 교육을 추구하는 하나의 교육 사조일 것입니다. 발도르프 교육기관이 아닌 일반 가정이나 다른 교육기관에서 추구하는 교육 역시 나름의 교육철학에 기반하는 것이고,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교육은 오로지 인간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적 작업이므로, 어떤 교육이 되었든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모든 교육은 인간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발도르프 교육의 특수성은 중요합니다. 이 교육철학이 갖고 있는 독특한 관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발도르프'라는 말을 자유롭게 갖다 붙이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봅니다. 발도르프 교육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늘 인지학, 다시 말해 루돌프 슈타이너의 가르침으로 되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을 내세우면서도 '현지화'라는 명분으로 자의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현장에서 발도르프 교육의 다양한 방법론을 필요한 만큼 응용하는 것이야 문제될 게 없고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겠지만 제멋대로 방법론을 펼치면서, 또는 이것저것 무분별하게 혼합을 하면서 '이것이 발도르프 교육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몹시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아예 자기만의 독창적인 이름을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한글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주제는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께서도 많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문자교육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 교과서가 과연 올바른 접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이 문자교육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가 의외로 덜 소개되어 있어서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제 경험도 반영될 것이지만, 주로 슈타이너의 이야기를 옮기는 작업을 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유아기관 또는 유아가 있는 가정에서 굳이 문자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발달상 문자교육은 이갈이 이후 학교에 가서 시작하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1학년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걸 타박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것은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사의 문제입니다. 분명히 국가교육과정에서도 1학년부터 한글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현실이 잘못되었으니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어린아이에게 한글뿐 아니라 영어와 수학 같은 과목을 조기교육시키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점을 정확히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외국어를 일찍부터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중심을 잡아야 할 모국어 능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필요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부담을 지우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건 사랑과는 먼 일입니다. 또 일각에서 발도르프 교육을 표방하는 특정 교재를 가지고 유아에게 한글교육을 시도하는 흐름이 생겨났는데, 몹시 우려스럽습니다. 놀이처럼 배운다고 해서 학습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정체성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슈타이너는 유아교육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발도르프 교육예술>, 31-32)

"보통 유아교육기관에서 아이와 함께 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모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유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에서는 대부분 아주 현명하게 구성된 내용을 가르칩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유치원에서 가르치도록 고안된 것들을 들여다보면 정말 놀랍도록 현명합니다. 아이들은 유아 현장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심지어 책도 거의 읽을 정도가 됩니다. 낱말의 철자를 따로따로 구분해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대단히 지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죠.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아이의 영혼이 망가집니다. 몸속 깊은 곳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망가집니다. 유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학습 때문에 아이가 몸과 영혼 모두 허약한 사람으로 커갑니다."

부모님이 들려주는 그림책을 통해서 또는 길거리의 간판을 보면서 혼자 글자를 깨우치는 아이도 물론 있습니다. 슈타이너도 그림책을 보며서 저절로 읽기를 배웠다고 하지요.

"나는 장난감을 아주 조심조심 다루어 오랫동안 멀쩡하게 유지하는 아이였다. 그중에 유달리 나를 사로잡은 놀잇감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놀잇감을 특별히 좋게 여긴다. 그것은 바로 책 아래 쪽에 달린 실을 당겨 책의 그림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책이었다. 사람들은 실을 당겨 자신의 일상을 그 그림에 부여하면서 짧은 이야기를 따라갔다. 나는 그런 그림책 앞에 여동생과 한참 동안 앉아 있곤 했다. 그리고 그 그림책을 보면서 저절로 기초적인 읽기를 배웠다."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19)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이들에게 일찍 문자교육을 시작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독서에 빠지지 않도록 몸으로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인형놀이나 이야기 들려주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요근래 독서육아라는 것도 있는 모양인데, 아이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너무 많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오히려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저학년의 경우에도 지나친 독서를 경계합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어느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있었던 질의응답의 답변을 소개합니다.(<0세에서 7세까지의 슈타이너 교육>, 255-256)

"최근 글씨를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한데 아직 기저귀를 차고 유치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이 눈에 띄게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성장력을 문자 학습에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문자라든가 계산은 신체가 발달하고 나서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3세 전에는 신체가 아직 자신의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달리는 것도, 걷는 것도 충분하지 않으며 소화 기관과 순환 기관과 같은 것도 본래의 역할을 막 시작한 시기입니다.

3세 이후 어린이는 조금씩 자신의 것이 된 신체를 사용해서 의지력과 행동력, 상상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린이의 생애에 영향을 계속적으로 미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글씨나 숫자를 종이에 쓰거나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앉을 수 있게 된 어린이가 기어 다니려고 몸과 손을 앞으로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앉아 있는 어린이가 열심히 신체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곧바로 기어 다니게 합니까? 아무리 부모가 초조해 하며 기어 다니기를 시키려고 하여도 모든 기능이 갖춰지고 나서 어린이 자신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한 기어 다니기는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가 글씨나 숫자를 쓰거나 입으로 말하는 것은 그것들을 배울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지 자기 확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보면 글씨나 숫자를 가르치는 것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 자라는 의지력이나 행동력이나 상상력은 건설적인 사고력으로 발달해 가므로, 이른바 조기교육이 인간 전체를 잘못되게 해버리는 것이 됩니다.

모국어 이외의 언어를 배우는 시기에 대해서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어린이가 모국어로 자기의 생각이나 사고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가 좋습니다. 이보다 빨리 다른 언어를 배우는 어린이는 자기가 사고한 것을 어느 언어로 만들어서 밖으로 말할지 알 수 없게 되어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라고.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어린이가 모국어로 자기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부터가 좋지 않겠습니까?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외국어를 배웁니다만 그 경우에도 노래나 연극으로 배웁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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