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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 문자교육 - 윤선영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국어교육

발도르프 문자교육 - 윤선영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5. 8. 16:23

발도르프 문자교육

윤선영(건양대학교 교수)
한독교육학연구 2003. Vol.8, No.1

<발도르프 교육을 창시한 슈타이너는 7세 이전의 유아에게 일찍부터 인지적 학습을 강요하게 되면 신체발달을 저해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유아기 때 문자교육을 하지 않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서서히 쓰기를 가르치고 읽기 학습은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1. 말하기․쓰기․읽기 능력에 대한 관점


발도르프 교육에서 보는 말하기.쓰기.읽기는 외부 세계와 인간과의 상호 관계에서의 호흡과정으로 표현된다. 말하기란 인간이 자신의 사고,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는 즉, 날숨과 같은 것이다. 쓰기를 할 때 인간은 직접적으로 외부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들숨). 말 속의 생생한 사고는 문자에서 더 이상 살아 있지 못하고 기호(Zeichen)로만 남게 된다. 읽기를 하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언어, 생각, 사고능력에 의해 외부의 문자 속에 죽어 있던 말과 사고, 생각을 일깨우는 들숨과 날숨의 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읽기는 문자를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항상 맨 나중에 배우도록 하고 있다. 이는 말하기․쓰기․읽기가 아동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슈타이너는 그의 <일반인간학>에서 어린이가 7세쯤 되면 영구치가 나오면서 머리 부분의 형태가 완성(Form)되고, 동시에 가슴과 사지의 형성이 마쳐진다고 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어린이와 주변 세계와의 상호작용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꿈을 꾸는 듯한 의식으로 자신을 온전히 열고 주변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며 외부의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신체에 각인이 되듯이 영향을 받다가 서서히 깨어나 세계를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다. 외부로부터의 영향은 성대를 형성하고 말하기를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온전히 외부로 향했던 자신은 서서히 자신만의 고유한 내면을 발견하면서 외부 세계를 인식하게 한다. 따라서 어린이가 말하기․쓰기․읽기를 배운다는 것은 이러한 발달과정에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Duehnfort와 Kranich는 어린이가 문자를 제대로 읽고 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Duehnfort․Kranich, 1971; 18-19).

● 말을 사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 단어의 음성구조로부터 소리 개개의 특성을 분석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 보이지 않는 소리의 요소와 명백한 철자 형태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쓰여진 문자를 이해하기 위해 생각(표상, Vorstellen)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되어야 한다.

이는 쓰기와 읽기가 그리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브루너와 피아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루너의 활동적 표상, 형상적 표상, 상징적 표상 능력이 순서대로 발달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쓰기.읽기가 가능하며, 또한 피아제의 형식적 조작기에 나타나는 고등 정신과정이 필요하다는 것과 일치한다. 즉 내적, 정신적 현상은 외적, 물리적 대상, 사건, 행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초인지적 능력이 어린이에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인지적 읽기 능력이란 정신적 행위를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고, 또한 집중하여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추리하고 있는지, 암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등 현재의 인지적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Baker & Brown, 1980; 이차숙․노명환, 2000; 92에서 재인용).

초인지적 읽기 능력은 어린이가 어릴 때부터 주변 세계를 접하면서 그 주변 세계에서 쓰여지는 말의 특성(영혼적․정신적 뉘앙스)을 아주 다양하게 체험함으로써 주변 세계와 연결되어 자신의 의식이 세분화됨으로써 발달된다. 처음에는 피아제가 언급한 것처럼 어린이는 6-7세까지 이름이 사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리하지 못하고, 이름이 사물에 놓여있다고 여긴다. 영아기의 어린이는 아직 자기의 고유한 체험의 힘으로 말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어린이의 언어 발달은 크게 2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 1단계: 무의식적으로 말하며, 그때 그때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말한다. 7세 이전까지는 언어와의 관계가 자기 의식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자유자재로 기억하여 떠올리는 능력은 없다. 단지 어떤 특정한 감각적 인상을 받았거나 계기가 있 을 때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의식적이지 못하다.

● 2단계: 자신의 말과 언어를 좀 더 의식적으로 체험하기 시작한다. 어린이의 의식이 구체적인 사물에서부터 분리되어 형태를 자기가 본 사물과 연결하지 않고 아주 특별한 기호에 의미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읽기와 쓰기를 할 기초가 형성된다.

이러한 능력은 위에서 언급한 형상적 표상능력과 상징적 표상능력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어린이가 예전의 일을 생각(Vorstellen)으로 떠올릴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으로서 이때부터는 어린이와 세계와의 관계가 전혀 달라진다. 어린이는 자신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세계로부터 기억의 그림(Bild)으로 생각하는 세계, 즉 영혼에 존재하는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를 자신의 상대로 느끼게 된다. 그러면 어린이는 형태를 인식하되 동시에 감각적 인식과 무관한 자유로운 표상능력에 의해 비로소 문자의 기호에 의미를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형상적 표상능력과 상징적 표상능력을 의미한다.

어린이의 신체 발달도 쓰기 능력에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7세 경 어린이의 신체 발달 중 특히 소근육 운동의 발달은 어린이가 글씨를 쓰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신체적으로 충분히 발달할 수 있도록 너무 일찍 글씨를 쓰게 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표상능력, 신체적 발달 조건 외에도 문자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언어를 접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과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기관에서 교사가 써준 자기 이름을 보고, 동화책의 글자를 접하면서 유아는 자연스럽게 또는 의도적으로 글자의 기능을 인식하게 된다. 성인의 의식적인 의사소통은 유아가 제목, 문장, 절 등에 관한 지식과 규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철자 형태, 음질의 구조와 구성요소, 띄어쓰기 등의 형태를 인식하게 한다. 성인이 일상적인 대화나 책을 읽어줄 때, 사건 묘사, 질문, 답, 토의의 구성에 대하여 다룸으로써, 유아가 사고와 행위를 분리시켜 구체적인 경험과 상황의 도움 없이 문자를 구사하는, 이른바 탈상황적 언어사용 능력을 촉진하도록 하고 있다(이차숙․노명환, 2000). 발도르프 교육에서도 어린이들이 말하는 대로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유아가 명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성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중요시하고 있다. Kempe(2001)의 연구에 의하면 주변에서 정확한 발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자신도 발음이 제대로 안 되는 학생들은 그 발음이 나는 문자도 틀리게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유아기 때 문식성 지도를 의도적으로 하기 위해 철자를 직접적으로 접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차숙․노명환은 인지 심리학에서 연구된 예언하기, 잘못된 부분과 불일치 찾아내기, 내용 요약과 중심 생각 찾아내기 전략을 수업에 활용하여 초인지적 읽기의 기능을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쓰기와 읽기를 가르친다면 유아는 일찍 문자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유아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가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고, 유아가 진정으로 문자를 체험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발도르프 학교의 문자교육은 궁극적으로 아동의 문자언어에 대한 정신적인 이해와 체험을 도와 영혼적․정신적 발달을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교사가 언어의 본질적인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문자에는 크게 상형문자(Bilderschriften)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철자문자(Buchstabenschriften)가 있다. 상형문자는 사물 또는 행위가 문자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사고로 연결되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말하기와 읽기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에 반해 철자문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의 음성조형에 대한 의식이 필요하다. 이 경우 인간은 언어와 개별적인 관계를 특별히 형성해야만 한다. 그런데 읽기를 그저 기호와 음성의 조합으로서 가르친다면 어린이들은 내적인 연결을 하지 못하여 정신적인 과정과 영혼적인 과정이 분리되고 만다. 그래서 발도르프 학교에서의 읽기-쓰기 수업은 영혼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이 학습과정에서 의식적인 연결이 이루어지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슈타이너를 중심으로 한 발도르프 학자들과 한국에서 알려진 다른 학자들을 비교해 볼 때, 쓰기․읽기에 전제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으나, 아동이 문자를 경험하는 내적인 과정을 돕는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 쓰기와 읽기에 필요한 연습


영혼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이 연결되는 읽기와 쓰기를 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전제되는 조건이 있다. 그것을 Duehnfort와 Kranich(1971)는 영혼의 움직임, 방향감각의 발달, 풍부한 색과 형태의 체험 및 언어의 소리 체험 연습을 들어 설명한 바 있다.

가. 영혼의 움직임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아동의 읽기 능력 중 영혼의 체험을 중요시하고 있다. 읽기를 하는 동안 일어나는 영혼의 움직임은 바로 의지의 결과라고 한다. 우리(성인)는 종종 큰 소리로 또박또박 책을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를 전혀 모르는 즉, 진정으로 책을 읽지 않은 경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 다시 책을 들여다보면서 한 줄 한 줄 정독을 하곤 한다. 이때 내면에서는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영혼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내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모으고 자신이 깨어있고자 하는 행위가 내면에서부터 일어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인식하는 정도가 확실한 정도부터 꿈을 꾸는 듯한 상태까지를 경험하게 된다. 즉, 읽기에 몰두하여 자신이 글에 몰두하였다가 인지한 것을 대상으로 놓고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한 후 다시 글에 몰두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 상태에 영혼에서는 양극을 오가는 과정이 일어난다. 꿈을 꾸는 듯한 의식의 극과 깨어나는(이해하는) 의식의 극이 그것이다. 너무 꿈속에 잠기지 않고 또한 너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운동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의지의 힘이다. 학교에 갓 들어간 아동은 아직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소근육 운동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일 뿐 아니라, 균형 있는 영혼의 운동도 충분히 발달되지 않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정도는 기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담즙질인 어린이는 한 쪽 극으로 치우치기 쉽고, 점액질 어린이는 영혼의 움직임이 느릴 수도 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이러한 영혼의 움직임을 평소 주기집중수업(Epochenunterricht) 중 그림 그리기 시간을 통해 연습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자기가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색깔들을 가지고 아주 긴밀하게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습식수채화 그리기를 하면서 어떤 색은 나에게 가까이 빛나고, 어떤 색은 멀어져 가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성인에 비해 색과 훨씬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색깔의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을 긴장하거나, 다시 이완하는 등 읽기에 필요한 연습을 하게 된다. 색깔체험은 생각을 유연하게 해 주고, 느낌을 유연하게 해 주며, 의지행위를 유연하게 해 준다. 다시 말해, 영혼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해 준다.

영혼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것으로 나선형 모양과 같이 두 가지 방향이 담긴 형태체험도 활용된다. 안으로 또는 밖으로의 두 가지 방향에 따라 움직이거나 손으로 그려보는 일은 ‘점점 느리게’와 ‘점점 빠르게’를 경험하게 해 준다 이때 교사가 ‘새가 둥지로 날아갑니다. 그곳은 안전하고 따뜻합니다. 새는 다시 밖으로 날아갑니다’라는 시를 읊어주면 더욱 즐거워진다. 우리나라에는 ‘달팽이’ 노래가 있다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어여쁘게 지읍시다. 점점 작게, 점점 작게 ... 달팽이집을 풉시다. 어여쁘게 풉시다. ... 점점 크게, 점점 크게 ...’ 이렇게 리듬이 담긴 노래를 부르며 유아들이 동작을 해 보거나 굵은 크레용으로 그려보는 일은 읽기를 위해 좋은 영혼의 운동 연습이 된다.

이처럼 읽기란 높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정신적인 작업으로서 영혼의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읽기는 가장 늦게 배우게 된다. 발도르프 유아교육기관과 학교의 저학년에서 의지의 힘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읽기에 참여하는 영혼의 측면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방향감각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쓰기를 먼저 하되 그것도 충분한 방향감각 연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주기집중수업 시간에 리듬과 음악적인 활동을 하면서 리듬적인 시구와 함께 오른쪽과 왼쪽을 교대로 움직이는 놀이를 하고 있다. 이런 놀이를 충분히 하고 나면 좀 더 확장된 놀이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왼손을 오른쪽 어깨에, 오른손을 오른쪽 귀에 ...’와 같은 놀이이다. 이때 교사가 마주보면서 거울처럼 해 주어야 하는 일도 중요하다. 취학 이전의 유아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놀이이다. 그러나 학령기 아동에게는 ‘오른쪽 검지를 왼쪽 약지에’ 등의 좀 더 복잡한 놀이를 하면서 운동성, 집중력, 주의력, 민첩성, 상황판단력, 명확한 신체의 움직임 등을 익힐 수있다. 이러한 놀이는 쓰기와 읽기에 모두 필요한 연습으로서 어린이들에게 첫째, 공간방향을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어 형태, 모습, 기호 감각을 깨워주고, 둘째,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깨어나 팔, 다리, 손, 손가락 놀림까지 발달시켜줌으로써 쓰기 능력의 전제조건이 갖추어지도록 한다.

다. 형태그리기와 그림 그리기

모든 문자의 기호와 철자 안에는 선이라는 형태, 즉 움직임의 흔적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한글은 수직선, 수평선, 곡선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다시 각을 이루고 원을 이루고 사다리꼴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형태 체험을 쓰기와 읽기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연습으로 여기고 있다. 그것은 선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주는 다양한 느낌 때문이다. 직선도 단순한 직선, 지그재그 선이 주는 느낌이 다르듯이, 곡선도 파도와 같은 곡선과 둥근 원의 형태가 주는 느낌이 서로 다르다. 아동이 선의 형태를 직접 걸어 보거나 그리게 되면 그때의 선에 대한 느낌은 더욱 긴밀해진다. 형태에 대한 체험과 함께 긴장감, 움직임, 균형, 안정감, 용기, 고요함 등의 다양한 느낌을 체험하게 된다. 유아들은 수직과 수평이라는 것을 몰라도 의자와 책상들을 가지고 집짓기 놀이를 하면서 또는 엄마 아빠의 양손에 매달려 ‘비행기 타기’ 놀이를 하면서 끊임없이 왼쪽과 오른쪽, 수평과 수직 등을 경험하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놀이를 충분히 하는 것은 나중에 글씨를 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주기집중수업 때 하는 형태그리기(Formenzeichnen)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단순한 이해 차원이 아닌 본질적인 것과의 상호작용을 돕는다. 즉, 형태의 외적 특성과 질(Qualitaet)을 감각적 힘을 가지고 인식하게 함으로써 어린이들의 느낌과 감정을 열어줄 뿐 아니라, 세분화해 주고, 미(美)적 감각도 발달하게 해 준다. 형태그리기와 그림 그리기는 색, 형태, 방향이라는 요소가 공통으로 들어 있기 때문에 쓰기 학습에 도움을 준다. 형태그리기와 그림 그리기는 기호와 철자의 세계에 대하여 매우 다양하고 세분화된 접촉을 가능하게 해 준다.

형태그리기에도 역시 사전 연습이 필요하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먼저 굵은 크레용과 종이를 준비해 놓고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놓은 다양한 형태에 따라 어린이들은 교실 바닥을 형태에 따라 걷기, 팔과 손,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려보기를 해 본다. 그리고 칠판에 선생님이 그려놓은 것을 따라 비교해 보며 그려보기를 한 후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종이에 어떻게 그릴지 손가락으로 먼저 해 보고 나서 크레용을 잡고 그리게 된다. 이때 가능하면 눈과 종이의 거리 사이를 충분히 두고 주의 깊게 위와 아래 옆 등을 살펴가며 그린다. 그리고 형태를 그저 하나의 형태가 독립된 것으로 그리지 않고,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도록 그린다. 그래서 그리는 동안 시나 노래를 읊으며 그리고 있다.

라. 언어의 소리와 리듬 체험

소리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영혼의 표현이 담기게 된다. 그리고 몸짓이 바로 언어학습의 기원이 된다고 하여 슈타이너는 언어가 움직임에서 생겨났다고 했다(Steiner, 1992). 생명이란 움직임이며, 움직임은 말하는 움직임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즉, 말하기는 공간에서 방향 잡기(서기와 걷기)의 결과다. 유아기 때 어린이는 움직임을 통해 신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성대의 형성도 역시 마찬가지이다(Aepelli,1996).

모음에는 인간의 내적 느낌과 감정이 표현되어 있으며, 자음에는 어떤 모습이나 제스처, 움직임과 같이 인간이 인식한 외적 세계가 담겨 있다. 모음의 특성은 감탄사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다. 만일 다양하게 ‘오’를 해 본다면 놀라움의 정도도 다양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안타까움과 실망, 동정까지도 표현된다. 이렇듯 ‘오’(O)에는 감정의 뉘앙스가 가득 담겨있다. 바다나 저녁노을, 계곡 등을 보면서 우리는 ‘아’ 하며 감탄을 한다 그러나 만일 ‘아, 그랬군요’ 한다면 그때에는 자신을 여는 제스처가 담겨 있다. 같은 말이라도 ‘오, 태양이여, 아침의 빛이여’에서 ‘오’ 대신 ‘우’나 ‘이’를 넣어보면 그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이처럼 모음에는 인간적인 느낌과 감정이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음은 인간이 외적으로 인식한 세계를 소리로 그려본 것이라 한다. 그래서 자음은 그 사물의 특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오이리트미 수업을 통해, 모음은 영혼의 제스처이고 자음은 모습을 따라 그린 소리임을 전신의 움직임으로 체험하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리듬적인 시구가 동반된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오이리트미 수업을 1,2,3학년에서 일주일에 2시간씩 하고 있다. 그리고 주기집중수업을 할 때, 매일 의도적으로 언어의 울림 특성과 리듬과 멜로디 특성을 어린이들이 연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때 전래노래나 동시들이 도입되는데, 손동작, 리듬적인 동작놀이, 원형놀이 등과 함께 한다. 선생님이 천천히 읊는 시․노래와 함께 따라하는 동작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심리적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교사는 시를 가지고 단어, 구절, 소리가 언어의 울림으로 멜로디까지 연구를 충분히 하며, 아직 모방의 능력을 가진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명확한 발음과 상(그림)을 경험하게 한다. 어떤 시는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장단이 주가 되는 것이 있고, 어떤 시는 활발함이 주가 되고, 어떤 시는 소리의 합성과 같은 것이, 어떤 시는 언어의 멜로디와 리듬이 주가 되는 것이 있다. 시에 담긴 소리의 특성을 통해 어린이들은 소리를 접하며 느끼고, 행하고, 듣고 하면서 소리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교사에게는 단어에서 소리를 분리하여 자신과 연결하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3. 발도르프 학교에서의 문자교육


가. 1, 2학년에서의 문자교육

입학한 후 1학년의 첫 주기집중수업은 형태그리기로부터 시작한다. 첫 주에는 직선, 원, 타원형, 나선형 등의 기본적인 형태를 체험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아직 쓰기나 셈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율이 담긴 시의 리듬적인 부분을 다루고 단순한 노래도 부르며, 처음으로 시를 낭송하게 된다(Eller, 1998; 39). 발도르프 교육에 대하여 잘 모르는 부모들이 ‘배운 게 고작 이것입니까’ 하고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형태그리기에 대한 것을 공유하는 것도 함께 이루어진다.

형태그리기 주기집중수업이 끝나고 나면 쓰기 주기집중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드디어 글자를 배우게 된다는 것에 환호를 하고, 교사는 교사대로 첫 철자에 적절히 자신이 만든 그림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긴장감을 가지고 기대하게 된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교사의 판타지에 의해 칠판에 그린 그림 속에 (대문자로만 된) 단어의 첫 문자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창조적인(schoepferisch) 일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단어의 철자에서 형태그리기 시간에 연습했던 형태를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쓰기 주기집중수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지금까지 배웠던 철자(대문자)를 칠판과 공책에 다시 한번 써 보고 나서 다음 쓰기 주기집중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쉬는(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방학이 지나고 2학년이 시작되면 담임교사로부터 향후 1년 간의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기대감을 가지고 새 학년을 맞이하게 된다. 새 학년은 다시 형태그리기 주기집중수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선 지난 시간에 배웠던 직선, 사선 등을 다시 그려보면서 회상의 시간을 가진 후, 이제는 대칭형태(Symmetrieformen)를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점차 복잡해져 가는 대칭형태를 그리면서 새로운 발견으로 형태에 대한 놀라움과 그리기에 대한 새로운 동기를 가지게 된다. 형태그리기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내면에서는 형태를 움직임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외면에서는 조용히 집중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동화에서 점차 드라마틱한 우화(Fabeln)나 성인이야기(Legenden)로 바뀐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인물의 특성과 개념에 대하여 더욱 풍요로운 그림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사와 아이들은 하나가 된다. 쓰기 수업은 1학년 때 배웠던 대문자를 그림으로부터 다시 한번 떠올리는 시간을 가진 후 이제 소문자를 배우게 된다. 소문자는 이미 배웠던 대문자(부모)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를 함께 짝을 지어 그려보기를 한다. 이제는 대문자와 소문자가 함께 들어 있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우선 반 전체 아이들의 이름부터 써 본다. 그리고 계절, 주, 달, 하루일과 등을 쓰고, 교사가 고른 시나 글도 써 본다. 이때부터 그 동안 사용했던 굵은 크레용을 굵은 색연필로 바꾼다. 필기 도구를 바꾸는 과도기에는 먼저 굵은 크레용으로 선을 그려보고 그 위에 색연필로 다시 그리는 등 교사가 구성하기에 달려 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읽기에 들어간다. 물론 지금까지도 읽기는 자연스럽게 있어 왔지만, 읽기는 교사로부터 ‘읽기책’(Lesebuch)을 받은 후에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읽기책’에는 교사가 고른 여러 가지 이야기, 속담, 시 등이 담겨 있으며, 사용방법은 개별적으로 또는 전체가 소리를 맞추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읽기 능력은 어린이들마다 다르다는 것을 부모와 함께 인정하고 공유하도록 한다. Eller(1988)는 자신의 읽기 수업방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이야기 하나를 골라 어린이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언어로 들려주고 나서, 문장 한 개씩을 억양과 강약을 고려하여 천천히 읽어 준다. 어린이들은 한 문장씩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따라 읽는다. 처음에는 이러한 연습을 하고 나서, 그 다음 교사가 단어를 불러주면 어린이들은 그 단어를 찾아봄으로써, 읽은 내용을 의식하도록 한다. 이러한 연습을 충분히 하고 나면 어떤 어린이는 글을 외우듯이 읽는 경우가 있는데, 그 아이가 정말 글을 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럴 경우 문장을 거꾸로 읽어보게 하였을 때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항상 지켜야 할 것은 전체 문장에서 개별적인 단어의 순서로 다루는 것이다. 그것이 영혼을 깨워주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읽기책’은 어린이들이 바르게 쓰기 연습을 할 때에도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다음에는 필기체 쓰기 연습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어(독일어) 수업, 즉 어학(Sprachlehre)을 다루게된다.

나. 구체적인 수업방법

문자교육의 직접적인 수업방법으로는 형태와 그림의식(Bildbewusstsein)의 촉진과 움직임(dynamisch-motorische Kraefte)에 의한 것이 주가 되는데,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교사의 판타지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단어의 첫 철자를 익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어의 그림을 첫 음절의 음성으로 표현하는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자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두 가지를 고려하는 연구작업이 전제된다. 하나는 철자음성에 적절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단어를 찾는 일과 또 하나는 철자의 형태와 관련된 그림을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어, 전자의 경우 T의 경우 Tor(문)를, B의 경우 Baeren(곰)을 찾고, 후자의 경우 돛(Segel)의 움직임에서 S를 찾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Fisch(물고기)의 F를 물고기의 모양(f) 세로 선과 양 옆 지느러미 모양의 가로지르는 선을 가지고 설명했다(Carlgren, 1996; 127, Steiner, GA 294, 88). 물고기의 첫 음절 F 음성을 가져와 그림으로서 전체를 익히게 한다. 즉, 소리-그림-형태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어린이들은 그림을 모방하면서 문자란 추상적인 것이 아닌 사물→그림→기호로 생겨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의지와 느낌을 활성화하여 음소와 진실한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데 바람직하다. 어린이는 배우는 단어의 내용을 그림으로 체험하면서 철자의 형태를 익히게 된다.

둘째, 움직임으로부터 철자의 형태를 배운다. 이 방법에는 교사의 판타지에 의한 그림이 들어가지 않는다. 형태그리기나 오이리트미를 많이 해 본 어린이들은 형태에 따라 걷기에 익숙해 있다. 먼저 익숙한 형태, 예를 들어 원의 형태에 따라 차례로 걸어보고 나서 원의 형태 중 일부를 열어 또 걸어 본 후, 마지막으로 철자 G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G의 철자 형태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어린이들과 함께 모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형태와 음성이 어린이들의 느낌과 연결될 수 있다. 슈타이너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어떤 행위모양을 모방해 보고 그것으로부터 전형적인 제스처를 알아내고 다시 그것으로부터 철자모양을 기호적으로 익히는 방법도 예로 든 바가 있다. 예를 들어, 물결의 파도로부터 W, 바람이 부는 모양으로부터 S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영혼의 분위기에서 모음을 익힌다.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면서 O와 A를, 두려움의 느낌에서 U를, 방어하거나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으로부터 E를 익힌다. 이러한 방법은 주로 오이리트미를 하면서 이루어진다.

넷째, 판타지에 의한 철자학습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거인과 같은 ‘녀석’(Kerl)에 대하여 판타지를 먼저 형성한 후 다시 시구절을 통하여 K의 음성이 두드러지게 경험하면서 K의 철자를 배우는 방법이다. 이때에는 음성보다는 오히려 (녀석에 대한) 판타지가 철자를 익히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어린이들에 있어서 K는 바로 이야기 속의 그 ‘녀석’이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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