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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3)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국어교육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2. 31. 22:35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3)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항상 전체 인간을 요구하는 것이 방법론에서 우리의 과제가 됩니다.” (A : 25)

“항상 전인(全人)을 초점으로 하는 것이 우리의 방법론상의 과제입니다.” (B : 19)


발도르프 교육의 수업방법론은 전인교육을 원칙으로 합니다.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수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행해져 왔습니다. 루소, 페스탈로치, 프뢰벨, 몬테소리 등 다양한 교육학자들에게 진정한 교육이란 인간 전체 또는 전체 인간을 발달시키는 교육이었습니다. 우리의 전통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나 성리학 같은 학문 역시 전체 인간을 초점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파악했고, 독자적으로 교육학 및 수업방법론을 심화해 나갔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을 온전히 실천하려 한다면, 슈타이너와 다른 사상가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히 좋은 말들을 뒤섞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한국에서 다른 사상들, 특히 동양사상과 통합하는 작업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우려되는 것은 그로 인해 놓치게 될 중요한 차이들 때문입니다. 비슷한 부분이 있고 연결되는 지점도 있겠지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으며, 아직 그 특이성이 충분히 소개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특정인의 주관적 해석에 매달릴 게 아니라 슈타이너의 원전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작업이 여전히 중요해 보입니다. 

슈타이너가 생각한 전인교육의 세 가지 자극은 1) 물질적인 것, 2) 초물질적인 것, 그리고 3) 반(半)초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성(사고)과 의지의 양극적 특성,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감성 또는 감정과 맥락이 통하는 접근입니다. 슈타이너에게 물질적 자극이란 읽기와 쓰기처럼 인간들이 협약을 통해 만들어 낸 문자교육입니다. 문자라는 것은 인간이 지성을 이용해 만든 협약이며, 따라서 대단히 물질적인 인식의 산물입니다. 

“이건 기역(ㄱ)이고, 저건 니은(ㄴ)이란다. 기역(ㄱ)은 ‘그’ 소리가 나지? 기역(ㄱ)이 들어간 낱말에는 고구마, 가지, 기러기 같은 것들이 있단다.” 또는 “니은(ㄴ)은 불의 기운을 갖고 있는 자음이란다. 그래서 니은(ㄴ)은 뜨겁고 타오르는 성질이 있는 여름 소리지.” 이런 방식의 접근은 발도르프 교육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질적인 문자는 초물질적인 예술을 통해 접근해야 합니다. 발도르프학교 1학년에서 형태그리기로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문자의 근원인 그림, 즉 소묘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 전체를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물질적인 것 = 읽기와 쓰기(문자)
2) 초물질적인 것 = 예술적인 수업(미술, 음악 등)
3) 반(半)초물질적인 것 = 셈하기(산수, 연산)


“예술적인 것이 양육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업 전체가 역시 예술적인 것으로 물들어야 합니다. 교육과 수업이 진정한 예술이 되어야만 합니다.” (A : 25)

“단지 예술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업 전체가 예술적인 것으로부터 이끌어 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법론은 모두 예술적인 요소 속에 흠뻑 적셔져야 합니다.” (B : 19-20)


예술적인 수업은 의지를 키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자교육은 읽기보다 쓰기가 먼저이고, 형태그리기를 하면서 쓰기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의지, 감정, 사고가 항상 함께 작용하도록 하는 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1학년 아이는 형태그리기 시간에 곧은 선과 굽은 선, 뾰족한 각과 원, 나선형 등을 다양한 모양으로 그려 보는데, 이때의 소묘적 형태는 자연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성된 형태로서 자연의 모방이 아닙니다. 나중에 자연과 유사성을 찾을 수는 있겠지요.

 

 

형태그리기가 초물질적인 자극이라면 문자는 물질적인 자극입니다. 물질적(협약적) 자극은 초물질적(예술적) 자극을 통해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칠판에 ㄱ(기역)처럼 그려진 고구마 그림을 보면서 선생님과 함께 “고-고-고-고” 또는 “구-구-구-구”, “그-그-그-그” 발음을 연습합니다. “너희가 말하는 ‘고구마’가 이 그림 속에 들어 있단다. 너희가 ‘고’, ‘구’, 즉 ‘그’라고 말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주 간단히 만들어서 ‘ㄱ’이라고 표시했단다. 이걸 ‘기역’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이렇게 그림에서 온 거야.” 아이들은 공책에 고구마 그림과 함께 선생님이 판서한 글자 ‘고구마’를 씁니다. 

슈타이너는 아이들이 손으로 따라 쓰기를 하면서만 읽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절대로 눈으로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그 글자를 표현해 보고 손으로 직접 쓴 뒤에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구마’라는 통문자를 익힌 뒤에 그 다음으로 비로소 ‘ㄱ, ㅗ, ㄱ, ㅜ, ㅁ, ㅏ’라는 개별적인 자모음을 얻어 내는 방식으로 문자를 배웁니다. 전체에서 부분, 즉 전체에서 개체로 가는 것입니다. 

글자를 이미 익히고 온 아이들도 아예 모른다고 여기고 처음부터 새롭게 가르칩니다. 이런 이야기와 활동은 모두 담임교사의 권위를 바탕으로 합니다. 세상의 비밀을 처음으로 전해 주는 것처럼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은 교사의 권위를 느끼며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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