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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아이들에게 연극이 필요한 이유 - 발도르프 연극수업 <무대 위의 상상력>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국어교육

아이들에게 연극이 필요한 이유 - 발도르프 연극수업 <무대 위의 상상력>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9. 19. 11:46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손발을 이용해 마음껏 놀고, 옛이야기를 듣고, 판타지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기회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확장해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이 마주하는 세상은 화면입니다. 가정에서뿐 아니라 유치원에서도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화면을 통해 세상을 만납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TV, 컴퓨터에서 무수히 나오는 영상과 소리는 아이들의 생동감을 빼앗아 갑니다. 이런 아이들을 생생하게 깨워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통해 아이들은 상상력과 함께 부족한 사회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연극활동을 많이 하셨으면 합니다. 발도르프교육의 연극수업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무대 위의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가 이번에 새롭게 <청소년을 위한 발도르프학교의 연극수업>으로 출간된 데이비드 슬론 선생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해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 예시가 나와 있으므로 생동감 있는 수업을 만들고자 하는 분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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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영혼은 공격받고 있다

 

오늘날의 청소년에게는 연극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가상 체험할 수 있는 이 시대 청소년들은 몸으로 직접 경험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영혼의 황무지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텔레비전, 영화 스크린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그것들은 계속해서 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청소년들은 점점 더 내적 재능을 잃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늘 휘황찬란하고 실제 삶보다 부풀려진 외부 이미지를 접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개성이 없는 것들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에게 포카 혼타스나 모세, 혹은 다른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그려 보라고 하면 그림에는 영락없이 그 이미지들의 영향이 드러난다. 이런 것들에 일단 노출이 되면 영상의 압도적인 이미지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이렇게 외부 상像에 의존하게 되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시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관계 맺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거나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혼자만의 유흥과 오락 세계가 펼쳐진다. 친구들과 놀 때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다툼을 해결하려고 이러저리 노력하고 협상하는 것보다는 기계와 소통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실망이 덜하다. 이제껏 컴퓨터만큼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것은 없었지만, 또한 컴퓨터만큼 잠재적으로 큰 위험성을 가진 것도 없었다. 

 

청소년들은 어떤 것이 진짜이고, 진실한 것인지를 구별하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즉 어린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시뮬레이션 게임과 영화와 쇼를 접하면서 성장한다면, 환상과 실제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는 실제가 아니지만 경찰이 나오는 액션 장면을 보면 마치 실제인 것처럼 보인다. 또 뉴스에서는 악몽 같은 폭력 사태가 나오고,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장면이 나오며, 건물이 산산조각 나서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뉴스는 실제인가, 아닌가. 또는 존 F. 케네디, 잔 다르크,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는 실제인가, 아니면 그 인물을 미화시키거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꾸며진' 것인가. 이렇게 청소년들은 불확실하고도 탁한 물에서 헤엄치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자라난 청소년들은 도덕성이 결여되거나 '자기에게만 진실'인 상대적인 세계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해독제가 되는 연극

 

연극 작업도 일종의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연극의 환상 세계가 영혼이 무너지고 있는 이 시대에 강력한 해독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 중 하나이다.

 

우선 연극은 인간의 상상력을 활성화시킨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많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아직 자신의 내면 깊숙이 상상력을 간직하고 있다. 상상력이 가득하고 창의적인 놀이가 생활이었던 어린 시절이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뒤뜰의 바위가 해적선으로, 나무막대기는 마법사의 지팡이로, 오를 수 있는 나무는 요새에 둘러싸인 탑으로 재빨리 변신했다. 물론 그때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기쁨과 민첩했던 상상력을 지금 똑같이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각을 잃고 잠자고 있던 충동을 연극을 통해서 아주 쉽게 깨울 수 있다.

 

그리고 연극은 모든 예술 영역 중 가장 사회적이다. 연극에서는 근본적으로 협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연극 제작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독창성과 예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 완결성을 위해서는 무대 위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 완변히 한뜻으로 모여야 하기 때문에 배우와 연출자, 배우와 배우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우리가 했던 공연에서는 대부분의 기술적인 작업도 배우들이 맡았기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이 혼자 해보려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손톤 와일더의 작품 <벼랑 끝 삶>을 준비할 때였다. 무대 제작을 맡았던 두 학생이 자기들끼리 무대 바닥을 만들려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둘은 전체적인 연극의 계획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을 만들었고, 너무 크게 만들어서 극장 문으로 세트를 들여올 수도 없었다! 물론 그 후에 더 명확하게 소통하고 협력한 결과, 우리는 더 작고 새로운 세트를 완성해 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연극을 만들면, 청소년들은 예술 활동에 매진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사회성도 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방지고 뻐기기 좋아하며, 모든 장면을 자기가 연출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 이 학생은 '스타'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반대로 소심하고 연극에서 비중이 적은 학생에게는 전체 연극에 필수적인 부분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평소에 사이가 안 좋고 라이벌 관계인 두 학생이 있다면 이 둘은 무대 위에서는 서로에 대한 앙심을 제쳐두고 마치 평생 절친했던 친구인 것처럼 연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둘은 연극이 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자기의 약점과 맞서야만 한다. 또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이나 허영심을 가라앉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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