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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자연적 필연성의 질서> 옮긴이의 말 (4) -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본문

책소개 및 서평

<자연적 필연성의 질서> 옮긴이의 말 (4) -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3. 29. 16:24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이른 아침, 마당에 물이 고여 있다면 지난 밤에 비가 왔음을 우리는 역행추론할 수 있다. 비가 오는 것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현상적 결과를 통해 비가 온 것을 우리는 확인했고, 나아가 비가 오는 일의 기제를 탐구할 수 있다. 만약 실재적 영역까지 탐구하여 그 인과적 힘을 찾아냈다면, 우리는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낼 필요가 없다. 과학적으로 비가 오게 하는 방법을 찾아서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과학은 이렇게 세계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 대상은 단지 자연세계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세계까지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사회체제라든지, 갈등을 해결하는 대화법, 또는 가짜뉴스나 유사과학을 분별하는 분석기법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은 이제 지성을 통해 일상생활까지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변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자가 로이 바스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학원에서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이다. 김진업 교수님의 안내를 통해 비판적 실재론에 입문하게 되었고, 이기홍 교수님의 번역본을 중심으로 강독을 해 왔다. 이로 인해 역자는 그동안 공부하며 쌓아 온 과학에 대한 관점이 기초부터 흔들리는 체험을 했다. 사회학은 과학의 한 분과이지만, 자연과학처럼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런데 기존의 과학철학에 온전한 실재론이 없었기 때문에 인식론적 오류가 발생해 왔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관습적으로 가져 온 관점을 근본부터 철저하게 다시 질문하고 새롭게 정립하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신선하고 명쾌해지는 과정이었다. 더욱이 학문이 아카데미에 머물지 않고 삶의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가슴이 뛰었다. 아무리 과학적인 탐구라 해도 지식의 축적이 존재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존재의 문제(삶의 변화, 세계의 변화)를 인식의 문제(지식의 축적)로 환원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근본 오류임을, 역자는 바스카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직 국내에는 바스카의 후기 사상, 즉 메타실재의 철학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서민규 교수님이나 고창택 교수님의 논문이 있지만 단행본으로서는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바스카의 사상 전반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된 이 책이 비판적 실재론에 관심을 가진 많은 독자에게 유익한 선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둔한 역자를 로이 바스카의 사상으로 이끌어 주신 김진업 교수님과 이 책을 번역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두 번째테제 출판사의 장원 대표님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2012월 첫날

김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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