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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서평] 처음 읽는 반전평화 안내서 – 《평화는 처음이라》를 읽고 본문

책소개 및 서평

[서평] 처음 읽는 반전평화 안내서 – 《평화는 처음이라》를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6. 21. 16:55

[서평] 처음 읽는 반전평화 안내서

– 《평화는 처음이라》를 읽고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평화롭게 풀어가는 과정이다. 우리의 노력과 저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했던가. 앞표지의 커다란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이 문구는 평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그야말로 압축해 놓은 선언과 같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이걸 보니 그 의미가 절반 이상으로 다가온다. ‘그래, 평화는 인생처럼 되어가는 과정이지. 결코 완성된 상태가 아니야.’

 

저자인 용석 씨를 알게 된 건 병역거부 운동을 함께 하면서였다. 2000년대 초반, 오태양을 비롯해 나동혁, 유호근 같은 이들이 처음으로 병역거부 선언을 하면서 어떤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9.11 테러가 있었고 이어서 이라크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월드컵과 함께 미군에 의해 여중생 둘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뭔가 강렬한 에너지가 공기를 채우는 듯했다. 당시 초등교사였던 나는 평화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총을 들고 살상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생길이 뻔했지만 병역거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로운 그 길에서 만난 동지 중 한 명이 용석 씨였다.

 

용석 씨는 달변가였다. 어떤 주제든 지치지 않고 밤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타고난 이야기꾼, 그게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이었다. 평화운동가이기 이전에 그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감옥을 다녀오고 종종 편지를 나눴지만 출소 후에는 각자 바쁜 삶을 살았다. 나는 대안학교 교사를 거쳐 대학원 공부를 더 했고, 용석 씨는 출판사 일을 하다가 다시 전쟁없는세상 사무국으로 돌아와 평화운동에 전념하며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에겐 뭔가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가 평화에 관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반갑게 들었다. 책을 구해 읽어보니 역시나, 이야기꾼답게 그는 어려운 평화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내었다.

 

이 책은 평화의 다양한 분야 중 특히 ‘반전평화’에 집중한다. 서두에서부터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쟁 열 개’를 써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의 역사를 배운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전쟁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는 우리에게 오히려 낯선 것은 평화를 위한 노력들이다. 평화 대신 전쟁을 원한다는 사람은 아마 제정신인 사람 중에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군대보다) 평화운동이 필요하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역사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 우리의 상식이었으니까. 그러나 정말 그럴까? 계속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면 과연 평화가 올 수 있을까? 너도 나도 군비확장을 하고, 무기산업이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된 오늘날 평화의 적은 과연 누구일까?

 

보통 이런 책은 ‘평화’의 개념을 정의 내리는 것이 큰일이다.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작업인데, 저자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신선한 접근을 시도한다. “평화가 무엇이냐?”에서 “평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목적은 평화의 사전적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평화로운 곳으로,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의도에 완전히 동의한다. 평화는 실천적인 삶의 문제이므로, 평화가 부재한 현장에서 평화를 찾는 행위가 곧 평화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평화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매번 창조적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평화를 무력화시키는 건 상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1부에서 저자는 네 가지 질문을 통해 그 상투성을 드러낸다.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나요?” “모두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요?” “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도 있지 않나요?” 자,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뭐라 답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며 상투적인 생각들의 껍데기를 깨고 진실의 얼굴을 밝히고자 한다. 인용되는 영화와 저작, 통계자료 들이 풍부하고 적절해 쉽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단정 짓는 게 아니라 열린 결말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부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세 기둥’이었다. 날마다 세상의 온갖 갈등과 연예인의 가십 등을 전해주는 미디어에서 필사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려는 분야가 바로 군수산업체와 관련된 내용이다. 록히드 마틴 같은 무기 회사의 매출액이 삼성이나 애플에 버금간다는 사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만 되면 누구에게든 무기를 팔아치우는 무기판매상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듣기 힘들다. 그들은 안보를 이유로 정보를 감추며 정치인들은 이를 비호하며 돈을 챙긴다. 물론 그들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이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군수산업체와 안보팔이 정치인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분쟁이 격화되었다는 소식은 종종 듣지만 거기에 우리나라 군수산업체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일은 전부 미국이나 유럽 몇몇 나라의 사정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는 3부에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대 무기수출 국가이고, 세계 무기 거래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최루탄과 수류탄, 미사일, 총기류가 실제로 바레인, 예멘, 터키, 시리아,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의 분쟁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역시 폭력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정부는 미얀마 사태에서 군부를 규탄했고, 유엔의 무기 금수조치를 지지하고 있다.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행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폭력과 전쟁의 실상을 깨닫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만큼 정부를 긴장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군수산업체를 감시하고 불의한 파병을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 나아가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일 등, 이 책은 친절하게 평화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청소년뿐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어른들에게도 간곡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처 : http://www.withoutwar.org/?p=1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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