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반지성 주의보>를 읽고 본문

책소개 및 서평

<반지성 주의보>를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3. 31. 10:51

<반지성 주의보>를 읽고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꽤 오랫동안 현대 의학에 반감을 갖고 살았다. 그 계기는 암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간호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담당의사는 무얼 물어보든 불친절했다. 사무적인 태도를 넘어 고압적이고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의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상처가 컸던 것 같다. 아버지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약을 병행하며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의문은 '과연 병원은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가?'였다. 아버지는 병원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형식적인 치료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컨베이어 벨트 옆에 앉아 일하는 노동자처럼)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정말로 환자의 회복에 관심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세상물정 모르는 이십대 초반에게 그분들의 진심은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치료 과정뿐 아니라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의 삭막함은 현대 의학이 상당히 비인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완치할 수 없으니 퇴원하라는 병원의 요구에 가족은 대체의학을 찾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신뢰할 만한 대체의학을 찾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장두석 선생의 '민족생활의학'을 찾아서 온가족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의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기도 했다. 그뒤로 백신에 대한 반감까지 생겨 아이를 낳고서는 세 돌 때까지 어떤 접종도 맞추지 않았다. 내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 박사과정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철학과 과학, 역사학 등 다른 기초학문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는 입장에서 탐구했다. 대학원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였다. 그동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온갖 분야에 아는 척을 했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진리처럼 인용하며, '주관적 느낌'과 '객관적 사실'을 혼용하는 사고방식이야말로 반지성주의의 토양일 것이다. 정확히 근거를 가지고 사고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개똥철학에 빠지기 쉽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관하여>에서 개소리(bullshit)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어떤 면에서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한데,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37) 때문이다.

격월간 대안교육잡지 '민들레'의 발행인인 현병호 선생의 <반지성 주의보>를 흥미롭게 읽었다. 연구자로서 '반지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와중에, 즐겨 읽는 '민들레'의 발행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그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때 자신이 자연'주의자'였으며, 자연치유와 민간요법에 과도하게 의존했고, 그 과정에서 표준화와 획일화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그는 돌아본다. 이러한 반성이 반가웠던 이유는 나 역시 그런 경향성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예찬하면서 보편성을 간과하기도 하고, 국가주도 교육을 비판하면서 국가수준의 교육에 대한 고민을 방기하기도 했다"(25)는 그의 성찰은 대안교육 및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두 되새겨야 할 지점일 것이다.

이 책에는 반지성주의와 관련해 종교, 교육, 음식, 수련, 음모론 등 다양한 주제를 짚어보는데, 여기에서는 백신에 관한 이야기만(특히 홍역과 코로나) 좀더 하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 발도르프 교육계에서는 백신과 관련하여 상충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백신뿐 아니라 마스크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슈타이너가 백신을 맞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은 허위이며 발도르프학교 역시 방역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로 발도르프학교의 학부모 중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는 미국 베버리힐스의 웨스트사이드 발도르프학교의 사례가 나오는데, 이곳 학교 학생들의 MMR 접종률은 2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48)

홍역, 볼거리, 풍진을 예방하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은 거짓으로 판명난지 오래이다. 1998년 영국의 내과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세계적 의학 학술지 <랜싯>에 관련 논문을 실으면서 백신 괴담이 확산되었는데, 이 논문은 환자들의 발병 시기와 접종 시기를 조작했다는 게 밝혀져 논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혼합백신부작용 집단소송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논문으로, 홍역 단독 진단키트를 개발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려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웨이크필드는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고, <랜싯>은 해당 논문을 전면 취소했다.(56) 그 뒤로 대대적인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접종과 자폐증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접종한 아이들에게서 자폐증 비율이 더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괴담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조직적인 백신반대 운동단체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조나단 버만의 <백신 거부자들>을 참고하는 게 좋다.)

 


홍역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는 12~18 사이이고, 치명률은 0.1~0.2%이다. 이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의 전파력 및 치명률과 유사한 수준이다. 홍역은 현재 MMR 백신 2회 접종으로 효과적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다만 아직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염시 안정과 수분 및 영양 공급 등 대증요법을 사용하며 일상적인 의료체계 안에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비교적 중증화율이 낮지만 높은 전파력으로 단기간 내 대규모 발생 시 방역·의료대응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고, ‘개인 중증도’는 낮지만 ‘사회적 피해 규모’는 큰 질병으로 볼 수 있다. 이 말은 건강한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며칠 정도 앓고 회복될 수 있지만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취약한 아이, 신생아는 사망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합병증으로 폐렴과 뇌손상, 청력 상실이 따를 수도 있다.(62) 집단면역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아이들부터 위험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인지학의학을 전공한 토마스 코완(2020년 12월에 그는 의료면허를 포기했다)의 책 <백신과 자가 면역>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연구에 따르면 정상적인 나이(4~7세)에 홍역을 성공적으로 겪은 아이는 한 번도 안 걸린 아이보다 심장병, 관절염, 알레르기, 자가 면역 질환이 적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더 좋습니다. 아이들은 신체를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홍역은 그 과제를 만나는 한 가지 수단입니다."(126) 이 책에서 코완은 어린 시절 홍역을 경험한 아이들이 이후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홍역을 앓았던 어머니의 항체가 모유를 통해 신생아에게 전달되면 취약한 영아기를 보호해준다는 것, 홍역 감염은 자가 면역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설명한다. 이러한 접근을 반박할 생각은 없다. 슈타이너는 아이의 에테르체 발달에 홍역과 같은 급성 염증성 질환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그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백신은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가볍게 앓고 지나갈 수 있는 감염병이어도 어떤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 실존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는 백신조차 맞을 수 없을 만큼 취약한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에 다수의 구성원이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 공동체를 위해서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고, 모두를 위해 자신의 자유(백신을 맞지 않을)를 양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우리 곁에는 의학적 이유로 백신조차 맞을 수 없는 취약한 그룹이 존재한다. 백신과 면역을 우리 자신, 내 가정, 내 아이의 문제로 환원할수록 자칫 우리는 반지성주의에 빠질 수 있다.

편협한 사고방식이나 음모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은 본래 감정적인 존재이고 어떤 믿음에 휘둘리기 쉽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주관적)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 과학이 아닐까싶다. 여기에서의 과학은 사이비 과학 따위가 아니라 올바른 의미에서의 과학, 그리고 과학적 사고방식이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맞춤한 책이 나왔다. "이 책자에 실린 글들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 흐름 가운데서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사고 속에 잠복해 있는 반지성주의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문명의 맹점을 꿰뚫어보는 이반 일리치 같은 지성인의 통찰이 아이러니하게도 반지성주의를 부추기기도 한다. 이른바 아나키스트 성향의 진보주의자들 중에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그의 주장에 동조하여 현대의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1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