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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 자기 자신의 운명에 따른 치유 - 7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정신의학, 자기 자신의 운명에 따른 치유 - 7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4. 13. 21:24

정신의학, 자기 자신의 운명에 따른 치유 - 7

 

2012년 2월 12일 일요일

미하엘라 글뢱클러

 

 

아름다운 질문으로 시작해볼까요? 사고, 감정, 의지에 관한 것입니다. 인생의 첫 시기에 우리는 ‘육체의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신체 영역의 ‘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7년 주기를 움직임의 시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움직임은 두뇌와 연결을 더 좋아지게 합니다. 우리는 평생 움직입니다. 때로 사람은 말을 하면서도 움직입니다.

두 번째 7년 주기에는 감정적인 발달을 하게 되는데, 사춘기에 이르러 정점에 달합니다. 영혼적인 삶에서 움직임이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게도 합니다. 물론 이 시기에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울기도, 웃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나친 육체의 움직임이 있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사고만 하게 만든다면 자신들의 사고가 발달했다는 것을 굉장히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움직임 없이 말만) 우리가 전문인으로서 자격을 얻기 위해서 의대에 가면 수년간 공부만 합니다. 움직이지는 않고, 그리고 사회에서 지불하는 비용이 많습니다. 뭔가 제대로 되지 않은(불균형한) 발달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영혼의 활동인 사고, 감정, 의지의 부분을 살펴보면 이 모든 것들은 탄생이후에 발달되는 것인데, 이 발달은 지속적이고 계속적인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사고, 감정, 의지를 분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때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기능들을 다르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해서 우리는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동물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항상 함께 합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더 이상 현명해 질 수도 없고 동물들은 재육화가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동물은 이미 본능 속에 완벽함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이처럼 완벽하다면 더 이상 재육화가 필요 없고 이야기가 끝난 것이죠. 이것은 멋진 오해이지요. 우리의 육화는 점점 위로 진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질문 중에 어떻게 인간이 사악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은 사자나 개로 태어나지는 않지만 동물같이 행동할 수는 있습니다. 당신이 사자나 개처럼 산다면 영혼 속에서 나타날 거예요. 그러면 인간의 운명은 당신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게 됩니다. 감옥에 가거나 아프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운이 좋다면 발도르프학교에 다니게 되어 인간화되고 바로 위로 진화할 수 있게 되겠죠. (웃음)

우리는 또한 식물과 같은 타입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극단적으로 점액질적일 수 있습니다. 식물이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레 태양을 향하는 게 본능적이듯,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그런 사람의 구성(constitution)이 그런 식물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식물은 아니에요.

인지학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인간 개개인의 에테르 속에 문서처럼 담겨있는 그림들과 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인지학은 정신세계와 감각세계를 구분하고 그 상호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름답게 의지, 사고, 감각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사고는 몸에서 자유로워진 에테르고, 느낌은 아스트랄에서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몸은 자연에 의해 영향을 받고 영혼과 정신은 정신에 의해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정신과 신체는 비록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 협력할 수 있습니다.

육화가 언제 끝날까요? 인류가 자신의 목표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감각 세상에 있습니다. 그 감각 세상에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아름다운 관계가 있습니다. 왜 그 신성한 세계는 물질 속에 그 모습을 보이며 여정을 떠날까요? 정신은 광물, 식물, 동물 등 물질을 통해 물질세계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인간은 자신 속에 변형된 모습을 포함하고서, 생명은 식물세계와 함께 공유하고, 움직임과 감정은 동물들과 함께 공유하고, 그리고 사고는 우리가 정신세계(천사들과 나누는 사고)와 공유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광물(물질)적인 몸의 구성 속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스스로 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개인의 고유성은 자아에 의해 주도됩니다. 정신세계는 새로운 특성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특성을 얻기 위한 길을 발달시켰습니다. 이 새로운 특성을 정신세계가 갈망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유와 사랑이 함께 합쳐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입니다.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언제 이 여정이 끝날까요? 우리가 이 목표를 달성할 때 끝이 날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때 이러한 능력들을 가지고 정신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는 좀 더 개별적인 방향(individual-oriented)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류적인 방향(mankind-oriented)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가 개별적인 방향으로 나간다면 최대한 빨리 인간의 자유를 찾기 위해 개별의 정신성만을 바라볼 것이고, 그러고는 정신세계로 향할 것이며, 다시는 인간 세계로 내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결정입니다. 그 목표에 다다르고 나면 여러분 동료들도 정신체로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사람들처럼요. 하지만 다시 육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 존재하겠지요. 그렇지만 당신이 두 번째 인류적인 방향으로 향한다면, 인류의 방향을 향하여 여러분은 다시 육화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인간 존재가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역할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것이 처음 사랑과 자유가 합쳐진 결실이고, 그 결실은 여러분 스스로가 자유롭게 결정(free decision)을 하는 것입니다. 머무를지 돌아올지. 엄청난 여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제 인류의 발달에 대해 바라보면 왜 이리 여정이 긴지, 왜 목표가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인류의 운명은 거대한 단계들(huge steps)을 거쳐 갑니다. 슈타이너는 이 단계들, 발달단계 순환을 문화적인 시기(culture epoch)로 나누었어요.

한 문화단계는 평균 2,160년 정도 됩니다. 왜 그런지 아름다운 설명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설명할 수 없어요. 첫 문화기가 인도기인데요, 마야에 대한 생각(concept)을 가지고 있고 이 시기는 인간이 처음으로 감각세계와 정신세계를 구분하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고대 페르시아 시기로서 빛과 어둠, 아우라마즈다와 아리만과 같은 이분법적인 개념이 들어오는 시기입니다. 슈타이너가 말하기를 첫 번째 시기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구분하는 시기이고, 두 번째는 삶을 규정하는 순수한 사고와 순수한 개념을 나타내는 숫자의 비밀이 나타나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빛을 찾아가면서 개별적 사고를 처음으로 배웁니다.

제 3시기가 이집트 시기입니다. 히브리 창세기의 바빌로니아 시기는 이 개별화의 세계이고 감정이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처음으로 죄에 대한 감정이 생겼고 의학의 시작시기입니다. 이야기, 법, 치료, 약, 병리 의학에 대한 개념이 처음으로 드러나고 나타난 시기입니다. 그래서 슈타이너가 이름 붙이기를 이 시기의 비밀은 연금술이라고 했습니다. 치유를 위한 치료(remedy for healing)의 시기라고 얘기했습니다.

네 번째는 (그리스도 이전 시기) ‘죽음의 비밀’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의지가 개별화되어간 시기라고 말했어요. 인간이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개념이 드러나기 시작했고요, ‘나는 계속 살고 싶은데 왜 죽어야 하지? 내 의지를 어떻게 변형시켜야 해? 이렇게 다 해 놓았는데 왜 죽음이 오는 거야?’라는 의문이 오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영혼 속에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생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유럽인들이 전 인류의 발달단계에 도움을 준(기여한) 바입니다.

다섯 번째(게르마니아)인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이 있는 정신적인 세계, 개별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의 사고, 감정, 의지가 아주 개별화되었습니다. 그럼 다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개성(personality)입니다. 개별은 자기 스스로의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비록 가족에, 민족에, 전통에, 종교에 소속되어 있고 어딘가 직업에 소속되어 있는 존재이긴 하지만 거기서 나와서 스스로 한 발을 디딜 수 있어요. 집단혼(Group soul)이 아닌 내 스스로 책임을 지닌 개별적인 독립적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룹의 책임까지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적 시기는 아주 어려운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분리되어 있고 자기 혼자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사회적 규칙이나 규율이 그 힘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범죄자가 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안정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한다면 모두 사회적 기여에서 달아날 수 있습니다. 지구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개인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개별화가 된다면 그때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잠재되어 있는 힘들 ; 모든 실수, 파괴, 악한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인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 안에서 의식적으로 선을 향해 갈 수 있는 입문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시기의 비밀은 바로 악과의 대면을 우리가 조정하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의 비밀입니다.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슈타이너는 그것이 악을 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선의 존재를 우리 안에서 일깨워주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바로 선을 배우고 행할 수 있는 치유의 과정으로 보여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여섯 번째 시기(러시아기)에 해당하는 세상의 비밀은 아마 신성함을 즐기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어마어마한 사회적 이해력을 가지는 그러한 시기에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자신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엄청난 힘과 갈망이 있을 거예요.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가지고 새로운 길을 향할 것이고 굉장히 진실한 세계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잘못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힘든 일이 됩니다. 이미 아주 훌륭한 미래가 될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과제입니다.

당신이 이러한 인류발달의 배경을 알고 정신지향성을 갖게 된다면 인류 삶 전체를 되돌아보면서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죄스러움 때문에 죄스러워하는 사람, 스스로 생각할 수 없어서 고통 받는 사람, 비만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 각각의 개별적 존재들이 인류가 향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道)는 바로 운명, 카르마의 도구라고 할 수 있고 어떻게 이 개별존재들이 발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아는 이 정신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운명을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반응하고 우리의 영혼이 작용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에테르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자극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질 육체는 에테르의 운명 때문에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 육체로 현화되어진 것은 밖으로 드러나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다시 자아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자아에서 우리 감각세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화된 육체가 네 번의 육화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 물질적 육체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결과물인데요, 왜냐면 우리의 일상에서의 경험에 대해 아스트랄체가 균형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아가 나의 느낌을 잘 조절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에테르체는 그런 형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나의 아스트랄체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가 이 모든 것의 결과물을 현재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어요. 평생을 통해서 어떤 것이 전기(biography) 그래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존재하게 될 때, 만나거나 풀 수 없을 때, 자아지향적인 삶을 살 수 없을 때, 누군가를 용서 할 수 없을 때 등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다음 육화에서 당신의 아스트랄체에 짐을 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지닌 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지요. 그 아이들은 이 지점에서부터 온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다면 이 아이를 치유해 주기 위하여 어떻게 균형을 잡고 사고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수년이 걸립니다. 훌륭한 교사와 학부모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면 영혼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나쁜 교육까지 더해진다면 더 악화되겠죠. 남은 인생동안 그것이 지속될 것이고 다음 생에서는 기능적인 문제, 에테르체의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기능적인 문제를 가진 아이들(알러지 등) 에게는 건강한 신체적 삶, 건강한 생활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치료해줘야 하고 육체적 질병으로 나타나지 않게 도와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유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이지 않게 된다면 그런 기능적 문제들은 이 생에 하나의 질병으로 드러나거나 실제 육체의 결함을 가지고 탄생하게 됩니다. 물질적으로 현화되어 나타날 때는 불가피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리고 도움을 줘야 합니다. 발도르프교육은 예방과 보호를 위한 교육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가 스스로를 발달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하나의 운명적 존재가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존재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고통을 당한다면 이 고통 자체로서 자기 치유의 과정에 있게 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고통을 받잖아요? 우리가 실제 자유의지로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결국 물질적 육체로 현화되었을 때 질병을 겪으면서 고통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에서 말하는 ‘병’이라는 것의 특성은 우리가 우리의 운명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치료를 하기 위해 균형을 잡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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