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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 자기 자신의 운명에 따른 치유 - 5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정신의학, 자기 자신의 운명에 따른 치유 - 5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4. 13. 21:23

정신의학, 자기 자신의 운명에 따른 치유 - 5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미하엘라 글뢱클러

 

 

안녕하세요?

현대의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자폐지수가 증가하고 있구요. 알레르기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적응능력장애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집중하지 못하는 ADHD도 많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중독증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컴퓨터 중독, 마약 중독, 알콜 중독, 대인중독(사람에 대한 중독. 늘 다른 사람이 필요한 중독.) 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나눈 발달의 개념을 떠올려 보면요, (반원 위에 사람이 거꾸로 선 모습의 그림이 양쪽에 하나씩) 세 부분의 중요한 기관이 있었지요. 이제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주된 문제들은 어떤 단계들과 연결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오는 걸까요? 우리의 물질육체에서 가장 우세한 부분은 감각기관입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정신체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빛이 밖에서 옵니다. 눈에 빛을 감지할 수 있는 기관이 있지요. 감각기관에 의해 내면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이걸 가져와서 사고 속에 그림을 그리게 해줍니다.

하지만 또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외부의 빛이 있듯 우리 내면에도 빛이 있습니다. 사고의 빛입니다. 내면에도 소리, 색깔, 움직임들이 다 있습니다. 일년 동안 아이들은 자기 감각기관을 출구로 해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 감각을 이용해 바깥의 것을 가져오는데 그것을 자기 내면의 것과 만나게 합니다. 밖의 색깔, 소리, 움직임을 안의 것들과 연결시키게 합니다. 바깥의 것을 감각을 통해 가져오는 것은 내면의 것을 일깨워줍니다.

현대에 올수록 우리는 감각을 점점 더 소홀히 다룹니다. 정보기술을 통해서 감각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감각세계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삶의 의미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은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기보다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일입니다. 미국에서 아주 흥미로운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메카인 실리콘벨리 지역의 아이들에게서 자폐증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을 다룬 책입니다. 인도에서도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인도도 IT산업으로 유명하지요.

자폐증은 육체의 감옥에 있는 것이며, 그 사람들은 자기 발달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를 발달시킬 수 있는 세계와 만나는 문이 닫혀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현상을 교육으로 막고 싶다면 첫 3,4년 동안 아주 감각을 키워주는 교육을 펼쳐야 합니다. 자폐증은 물질육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알레르기도 늘어난다고 했는데요. 놀랍게도 시골학교와 도시학교, 발도르프학교의 아이들을 비교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발도르프학교의 부모들이 다른 학교의 부모들보다 더 높은 알레르기 비율이었습니다. 그건 그들이 더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무얼 시켜야 할지 더 예민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아마 발도르프학교 아이들이 유전적으로 알레르기 비율이 더 높을 거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설명하기 힘든 일이 조사됐습니다. 발도르프학교의 아이들이 다른 학교 아이들보다 더 낮은 알레르기 비율을 보여줬습니다. 시골아이들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컨퍼런스 주제인 ‘운명’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은 그 다음 세대의 운명이 됩니다. 오늘날 이해하기를 유전은 열린 체계이므로 학습될 수 있고, 아버지 세대의 것이 영혼적인 것으로 아들 세대에 기능적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기능적인 경향이 에테르 속에 녹아있게 됩니다. 에테르는 반(半) 육체적입니다. 아직은 질병이 아닙니다. 아직은 삶의 과정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세대에서도 이것이 변화되지 않고 계속 되어진다면 세 번째 세대에서는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을 더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리듬적으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크크크크, 클리어.’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런 애가 있으면, 우선은 아이의 주 양육자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아버지라면 아버지는 말이 매우 빨라서 호흡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빠를 것입니다. 아이는 아마 조그만 물구멍으로 물이 힘겹게 빠져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말을 할 때 기능적인 어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앞 세대로 가보면 아이의 할아버지는 사고에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한 것을 단어로 찾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여 가끔은 공격정인 성향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세대의 사고의 어려움, 아버지 세대의 빠른 호흡과 말이 아이 세대에 말더듬이로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 세대가 알레르기가 있다 해도 아이가 건강한 교육을 받고 더 많은 관심을 쏟아주면 좋아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 세대의 운명과 생활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아이가 컴퓨터나 기계에 대한 기능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 부모는 스스로는 그런 경향이 없는데 아이가 왜 그럴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닌 부모의 영향인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몸을 위해 리듬적이고 종교를 갖는다거나 발도르프교육을 통해 좋은 교육을 받는다면 기능적으로 좋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장애는 기능적인 문제인 것이고, 어떤 환경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할 때 생기는 장애인 것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엄마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 아이가 눈을 뜨지 않고 눈을 마주쳐도 웃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마는 불안해 질것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웃지 않다가 간호사가 왔는데 눈을 뜨고 웃고, 아빠가 오니까 또 더 크게 웃는다면 엄마는 거부당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에 문제가 있었다면 아주 주의해야 합니다. 엄마는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하고 선입견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관계에서 이러한 생각이 덧입혀집니다.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엄마가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아이를 낳은 게 너무 행복했다면, 힘들게 낳았지만 이렇게 평화롭게 자고 있구나, 하고 여긴다면 아이가 눈감고 있는 모습에도 너무 행복할 것이고, 눈을 뜨고 아이가 바라보면 엄마를 볼 텐데 그것이 운명적인 순간입니다. 그 순간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운명이 됩니다. 그것은 악순환도 만들 수 있고, 선순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불안하면 아이에게는 분노가 생기고 그것을 본 엄마는 잔소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공격성까지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행동장애가 드러나는 예입니다. 이 아이는 엄마가 불안하니까 엄마한테도 불안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불안하게 되고 계속 더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죠. 5학년에 어떤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마르코이고, 공격적인 행동장애를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수업을 보러 갔을 때, 그 애의 이름이 서른 번쯤 이상 불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침 시 할 때부터, “같이 해야지, 마르코!” 이런 식으로 계속 되었습니다. “마르코!” “마.르.코!” 내가 이 아이였다 하더라도 이 모든 과정에서 이름이 그런 식으로 계속 불리면 공격적이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의 부정적인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도 마찬가지겠지요. 행동장애는 보통 습관이나 관습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고, 어떻게 새로운 습관을 정립해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교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는 존중감을 갖고 부르세요. 나쁜 마음으로 부르지 말구요. 그 애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아무도 들을 수 없게 속삭이듯이 말해보세요. 이제 수업에 들어와 주었으면 좋겠어. 선생님의 습관을 바꾸어보세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배우고자 하고 행동을 잘 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은 행동을 제대로 해야 하고 어른은 못할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조금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허락되어야 합니다. 어제 패널 토론에서 치유교육은 정말 작은 결과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수년간 긴 연구과정을 통해 새로운 발달의 한발을 내딛습니다. 우리는 보통 경제적으로 돈과 에너지, 시간을 조금 들이고 큰 성과를 얻으려고 하지요. 이것은 어른들의 행동장애입니다. 오늘날 팽배해있는 경제적 개념의 사고로 삶을 발달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에테르의 차원에서 기능적인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생활방식의 전체적인 모습을 봐야 하고 새로운 습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년 뒤에 에테르체가 올바른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스트랄의 차원에서 움직임은 지나치게 많아지고 집중력은 부족해지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의지교육의 방법과 연관이 되는데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집중력 장애의 증상 너머에는 아주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질병일 수도 있고, 그리고 이미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적게 움직이고 자기 주도성(방향성)이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10년 이상 학교의사로 일했는데, ADHD 아이들은 특별한 치료 없이 아침에 30분씩 걷는 것만으로도 낫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ADHD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현저히 적습니다. 걷기보다 차를 타고 오면 아이들의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 와서 아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아이들을 30분 정도 꼭 걷게 하면 아이들은 건강한 신체를 가지게 되고 교실에 들어와 앉아있고 싶어 합니다. 앉아서 들을 준비가 된 겁니다.

뿐만 아이라 이런 아이들은 내적 움직임의 능력이 있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어른을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에, 현재 문화의 그늘진 영역 때문에 어려움을 가졌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것을 보상해주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현대 문명은 너무나 많은 사람을 중독현상에 빠지게 하는데, 대체 어떤 것을 보상해 주어야 할까요?

자폐, 행동장애, ADHD, 중독 등의 아이들은 어떠한 운명을 갖고 왔는지,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폐증을 갖는 아이들의 경우 이 아이들은 스스로 고립되어 자기 속에만 있는 것인데, 우리가 자기 자신을 열어서 소통해야 함을 알게 해줍니다. 행동장애의 경우 건강한 생활방식을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곧 건강한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해줍니다. ADHD의 경우 우리는 우리 밖으로(내면에서 외부로) 나가 늘 바쁘게 사는 우리에게 제대로 듣고 좀더 평화롭고 건강한 삶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배움을 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질병을 통해 배웁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큰 자원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경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될 것이고 그것은 감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중독된 아이들에게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이러한 증상들의 경우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조절하여 생활에서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이득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폐의 경우 시험을 준비할 때 혼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행동장애 아이들의 경우 언제나 바삐 움직이는데 뭔가를 빨리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독된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목표점은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독립성을 길러야 합니다. 물론 긴 여정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예방할 수 있는 시기는 발달단계에서 에테르체가 자유로워져 사고의 힘과 자아의 힘을 키우는 그 시기입니다. 아름다움과 관계된 아스트랄의 힘, 그리고 자아의 힘은 육체와 작업을 하여서 내 의지의 영역을 가득 채워줍니다. 이러한 발달과정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키워진 의지는 나중에 마약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의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아가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줍니다. 육체의 힘을 주고, 자아의 힘도 줍니다. 어른들이 행동을 통해서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신뢰할 수 있고 모방하지만, 그냥 말로만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의지로 할 수 없습니다. 의지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발달단계에서 바라보면 에테르는 사고, 아스트랄은 느낌, 에고는 의지와 연결되어집니다.

두 번째 단계(7~14세)의 아이들의 의지는 단순히 좋은 이미지만을 보여주고 이끌어 줄 수 없습니다. 5학년 정도가 되면 진정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그 시기 아이의 의지는 자신의 헌신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감정의 작용이 있다면 아이는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발달의 마지막 단계에서 아이들은 감정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됩니다. 이 시기에는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러니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배우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시기는 감각을 통해서, 두 번째는 감정을 통해서, 그리고 사춘기에 이르러서는 사고에 의합니다. 그때부터는 생각으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아주 큰 과정이고, 이것이 교육과정에 제대로 들어와야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중독으로부터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의지는 항상 첫 단계에서는 감각,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감정, 사춘기 단계에서는 사고에 의존하기 때문에 의지가 의존하는 각 시기의 영역을 잘 교육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아이들의 사고 속에 자기 책임감과 자기 의존성이 살아있게 됩니다.

*

 

현대사회의 어려움에 대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질문들을 잘 들었습니다. 강의 초반에 말했던 시로 마무리하겠습니다.

 

Once in times of old,

There lived in the soul of the initiates powerfully the thought.

That by nature every person is ill.

And education was seen as the healing process which brought to the child as it matured.

Health for lives fulfilled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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