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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에서 부모의 역할 2> - 발렌틴 벰버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부모교육

<발도르프학교에서 부모의 역할 2> - 발렌틴 벰버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5. 16. 23:34

2015. 7. 24 금요일 
장소: 청계학교 강당
주제: "발도르프학교에서 부모의 역할"
강사: 발렌틴 벰버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어제 주신 질문으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질문
한국은 독일과 달리. 국가 교육과정이 강력한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습니다. 근본적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실제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쳐야, 실제 교육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조직적인 교육시스템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독일에는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발도르프 사회의 활동의 역사가 있는지, 
그것을 한국에 적용하기 위한 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아주 핵심적 질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현재로써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은 공교육 시스템이 잘 정립된 상태고, 변화의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한국의 공교육 정책에 영향을 주기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운동은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독일에서도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독일에서는 전체 학생수의 1%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선 3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소위 ‘변화 관리 이론’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겠습니다. 코터라는 미국 교수가 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는 변화 관리 이론의 세계적인 수장입니다. 

첫 번째 조건은 여러분이 엄청난 양의 부담이나 고통을 받는 경우입니다. 압력이 충분히 크면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적 압박이 충분히 클 때만 사람들은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또 다른 방법 또는 정반대의 조건은 아주 큰 정신적 구심점이 있는 경우입니다. 
몇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부처가 정신적 구심점을 이루었을 때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삶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들의 영향 하에서 많은 이가 자기 삶을 변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루돌프 슈타이너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삶도 변화했습니다. 슈타이너는 정신세계 입문자일 뿐 아니라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발도르프 학교 12명의 교사 중 한 명이었던 허버트 한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비극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죽음 이후에 조금씩 다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으며 한두 명만 더 언급하자면 마틴 루터 킹이나 넬슨 만델라가 있습니다. 이들은 정신적 구심점을 형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 하에 있을 때 사람들은 달라졌고, 남아프리카의 대학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독일에서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전혀 압력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한국의 학생 자살률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그 비율이 계속 올라가면 어쩌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큰 압력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조건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준비를 하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제가 보는 관점과 제가 아는 변화 관리의 원리에서는 현재로서는 시스템이 바뀔 현실적인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제는 변화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정치가를 안다면 소소한 변화는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쓴 여러 책 중 한 권을 독일의 유명한 정치인이 보았습니다. 뭐, 큰 감명을 받았다고는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웃음)

질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한국에서는 부모의 책임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도 부모의 비중이 큰지. 선생님이 입시를 위해 어떤 것을 해 주시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에서 입시는 부모의 책임이 아닙니다. 제 견해로 볼 때 입시 준비는 교사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에서 대학입시 준비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부모의 과제가 아닙니다. 자기 아이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주된 책임은 교사들에게 있습니다. 

질문
선한 아이들이 도덕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치중하는 사회에서 악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온실 속의 화초로 남는 건 아닐까 

네 가능합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선한 아이들도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셋 있습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에요. 우리는 아이들을 아동기 초기와 두 번째 7년 주기, 즉 사춘기 전 14세까지 나쁜 영향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순수한 천국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지닌 가진 최선의 힘, 자아의 힘을 강화시키고, 건강하고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고, 아이들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니면 함께 침대에 누워 나이에 맞는 동화를 날마다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좀 큰 다음에는 나이에 적절한 문학작품을 매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한 번도 예외 없이.  
사춘기 이후에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두 아들들은 파티란 파티에 다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어를 그대로 옮기면 ‘파티 말 party horse’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제가 ‘거기서 대체 뭐 하고 노니?’ 하고 물으면 ‘아버지, 모르시는 게 좋아요’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웃음)
저는 생각했습니다. ‘좋아’, 저는 아이들에게 만들어준 바탕, 근본을 신뢰했습니다. 
독일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네가 만약 새를 소유했다면, 자유롭게 날려 보내라. 돌아온다면 그 새는 너에게 속한 것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결코 네 소유가 아니다.’ 
또 아이들은 사춘기 때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부모의 눈에 그건 더러운 강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파란만장한 사춘기를 보낸 아들들은 결국 더러운 강을 빠져 나왔고, 대학을 갔고, 졸업했고, 마침내 손꼽히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된 아이들은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크게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어린 시절을 보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아이들은 자기들이 엄청난 힘을, 특히 시험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치거나 탈진하지 않고 기운차게 일할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작은 아들과 발코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뉴욕에서 콜롬비아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이인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 학생과 콜롬비아 대학에서 만난 다른 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그 아이들은 끝없이 지식을 흡수하는 건 잘하지만 본질적인 것이 뭔지 느끼지는 못해요.” 그러면서 아이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발도르프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것을 전해주려고 노력하셨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기관, 장기가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가능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학교의 수업의 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질문 
사춘기에 접어드는 7학년 학부모입니다, 미디어 동영상, 게임,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분야로 유도하고 싶으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일반학교와 비교할 때 시간은 많습니다.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어려운 과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비롯한 현대 미디어를 좋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새로운 기기를 아주 좋아하며,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사서 시도해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미디어는 우리 영혼에 대한 거대한 폭력입니다. 원래 미디어와 새로운 기기는 모두 인간에게 봉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주객이 전도됩니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인간 머리위에서 군림하고, 인간이 미디어와 기계의 종이 되었습니다. 
질문하신 아이는 7학년입니다. 여기서 걱정스러운 것은 인터넷 중독이나 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리고 특히 한국의 발도르프 학교 아이들은 공교육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미디어 앞에서 시간을 허송할 기회와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질문을 제가 일하는 독일 튀빙엔의 학교에서 받았을 때 저의 답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머리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학교에서 다양한 놀이와 고급 수준의 오이리트미를 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참가가 의무는 아닙니다. 참여할지 말지는 부모들이 선택합니다. 아이가 집에 있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됩니다. 공산주의 체제처럼 가정을 파괴할 생각은 없습니다. (웃음) 
예를 들어 7학년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암벽타기용 벽을 만들고, 암벽타기 전문가를 초빙했습니다. 농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PC 앞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위해선 돈이 필요합니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뭔가를 얻기 위해선 투자를 해야합니다. 
저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이 문제는 일종의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쉽게 항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제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제게 이런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진행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맞벌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돈을 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우리 영혼을 구해주세요!’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그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7, 8, 9학년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에 고마워하며 열심히 참여합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도입하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질문 
발도르프 학교와 공교육체계는 많이 다른데, 학교에서 입시 준비를 해준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교육과정과 수업에 변형이 이루어져야하는지, 기존 시간표 외에 더 시간이 필요한지... 

제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입시가 독일의 입시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잘 모르지만 그렇게 추측합니다. 독일에서는 저를 비롯한 수많은 동료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충분히 대학입시를 준비해줄 수 있습니다. 교사가 전문가라면 공립학교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의 우리 학교에서 우리는 언제나 독일 평균점수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분명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기서도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독일에서 사람들은 저를 발도르프 교육에 있어 근본주의자라고 여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보면 나쁜 형태의 근본주의도 많지만 올바른 근본주의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식 역시 고려합니다. 상식, 또는 합리적 사고는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가 학생을 위해 있는 것이지 학생이 학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상급학생들을 위해 입시준비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면 저는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제 의무라고 여길 것입니다. 
만약 제가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발도르프 학교가 아이들에게 대학준비를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타협을 해야겠다. 아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아이들이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발도르프 교육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겠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학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타협을 해야 한다.’ 교사 여러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일 년이 걸린다면, 졸업 후 일 년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할 것입니다. 부모로서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2년을 더 준비해야 한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3년?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발도르프 학교 고유한 수업내용을 바꾸거나 포기하거나 줄여야 합니다. 제 입장에선 그건 고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발도르프 학교의 수업이 상급학교 학생들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잘 들으세요, 발도르프 근본주의자가 하는 말입니다. 
슬픈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1919년 첫 번째 발도르프 학교가 설립되었을 때부터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 교육의 정체성은 공교육 체계, 사회가 바뀔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발도르프 교육의 정체성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조건 하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는 포기해야 합니다. 
저는 발도르프 근본주의자지만 학생들에게 독일의 아비투어라는 입학시험을 준비시켜주는 것이 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한 1000번쯤 했습니다. 발도르프 근본주의자인 저에게 그것은 일종의 희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것을 했습니다. 제 학생들을 돕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근본주의는 발도르프 깃발 옆에 서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발도르프만 가능하다. 나는 여기서 대학입학 시험을 위한 수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순수하고 온전한 발도르프 프로그램만이 우리의 신성한 학교에 들어올 수 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은 나쁜 근본주의입니다. 

질문 
상급학교 교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책을 읽거나 연수를 통해 진정한 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라도 그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럴 때 진도가 속도가 느리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안을 하겠습니다. 지금 들어온 이 질문을 포함해서 다른 질문들은 내일 답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질문이 정말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지만 오늘은 발도르프 교육의 본질적 사안에 대해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발도르프 교육이 본래 개념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좋습니다. 
교육에서 정말로 혁명적인 또 다른 지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단히 뛰어난, 높은 단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가 발도르프 학교를 세웠을 때, 아니, 학교나 시스템이라는 단어보다는 나나 괴벨이 표현한대로 ‘발도르프 교육예술’을 시작했을 때, 그는 세상에서 정신활동, 사고활동이 우리 장기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정신활동이 신체에 미치는 장기적 결과에 주목한 이유는 학생들은 신체가 계속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장기적 결과를 고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여러분이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때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10시간씩, 12시간씩 공부하고, 외우고, 공부하고, 공부합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두뇌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우리 혈액체계 속 온기를 두뇌로 빨아들입니다. 그 결과 우리 손가락, 손, 발은 차가워집니다. 
어른인 우리는 몇 달 정도 이런 상태를 견딜 수 있습니다.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어른으로서 일정 기간은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생각할 때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공교육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똑똑한 엔지니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능한 한 어린 나이부터 공부를 시킨다.’ 그들은 당연히 이렇게 말하겠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여러분도 아이를 아주 어린 나이부터 훈련시키면 탁월한 결과를 얻도록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대가, 엄청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순전히 지적인 방식으로 학습하도록 강요된다면 에너지, 특히 혈액 속 온기가 두뇌로 다 몰리면서 혈액체계가 해를 입습니다. 온기 부족으로 인해 손상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아이는 성장하는 중입니다. 슈타이너가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어린 시절에 받은 손상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40, 45, 55세가 되었을 때 그 결과가 드러납니다. 그 때 갑자기 혈액체계가 약해지고, 심장에 문제가 생깁니다. 수백만, 수억의 사람들이 탈진했다고 느낍니다. 50세, 심지어 45세에. 그들의 기력이 소진된 것은 잘못된 교육체계의 결과입니다. 그 때 치러야하는 대가는 엄청납니다.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 역시 엄청납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탈진한 사람들을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의 주요 목표는 이런 악순환을 피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잘못된 형태의 학습, 한쪽으로 치우친 형태의 학습으로 인해 어린 시기에 혈액체계에 손상이 가는 것을 피하고, 어린 시기에 호흡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수백 가지 성인병의 뿌리는 어린 시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사들은 아이들 신체에서 온기를 빨아들이는 대신 아이들의 영혼에 양분이 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함으로써 아이들 신체에 오히려 온기를 불어넣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저는 학생들과 악수를 하면서 그들의 손이 따뜻한지를 확인합니다. 내가 그 목표를 달성했나? 아이들의 혈액체계가 건강한 상태인가? 그것은 내가 어떤 식으로 수업을 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튀빙엔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업방식과 여러 과목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대학과 협력해서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저는 이 사안이 대단히 혁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교육 체계의 중심, 그 사회의 한 가운데에는 성인의 지식을 아이들의 두뇌에 옮겨놓는 과제가 태양처럼 존재합니다. 혈액체계에 대한 지식은 조금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보조도구, 들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교육 체계에서는 세상의 중심에 성인의 지식을 아이들의 두뇌에 옮기는 과제가 있고 인간에 대한 앎, 인간학은 그 태양 주위를 맴돕니다. 
슈타이너 교육의 관점으로 볼 때 이 관계는 정반대여야 합니다. 즉, 중심에 인간학이 있고 교육체계, 또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그 앎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발도르프 교육의 주요 질문은 공교육과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묻습니다. ‘아이들의 신체, 아이들의 영혼이 정말 필요로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따라 교육내용, 교육시스템을 구성합니다. 
이것이 바로 발도르프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이는 정반대의 체계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구현하기가 대단히, 대단히 어렵습니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잘못된 삶 속에서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못된 교육체계 속에 진정한 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큰 변화 또는 근본적 변화를 위한 조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인 압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수준이 전혀 아닙니다. 사실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주 강력한 정신적 구심점도 분명히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시스템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 번째 조건이 있습니다. 준비하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라.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얻는 눈에 보이는 성과와 상관없이. 그래서 우리는 개척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바나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유럽의 슈퍼마켓에서 바나나는 가장 잘 팔리는 과일입니다. 독일 사람이나 유럽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온갖 형태로 바나나를 먹습니다. 차갑게 해서, 따뜻하게 해서, 얼려서, 식사로,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이유식으로. 하지만 바나나 생산은 끔찍할 정도로 유독합니다. 바나나를 재배하기 위해선 엄청난 살충제와 농약을 쳐야 합니다. 이것은 재앙입니다. 바나나를 키우려면 독을 퍼부어야 되기 때문에 토양이 오염되고 나무가 오염됩니다. 사람들이 바나나를 지나치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바나나 재배가 환경에 아주 큰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웨덴에선 2013부터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모든 슈퍼마켓에서 유기농 바나나만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가끔씩 슈퍼에 유기농 바나나가 부족한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슈퍼마켓이 소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과문을 내거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유기농 바나나가 다 떨어졌습니다. 보통 바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스톡홀름 기차역 근처의 아주 작은 바나나 가게에서 정곡을 찌르는 발언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큰 종이에 이렇게 써서 가게 문에 붙인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 죄송하지만 유기농 바나나가 없습니다. 오늘은 일반 바나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기자가 그 사진을 찍어 신문을 통해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 가게는 스웨덴의 유기농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30년 전이었다면 유기농 열품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가능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유기농 운동과 같습니다. 역사가 진행되는 방식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극소수의 사람만 그 운동에 참여합니다. 레이첼 카슨을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만 그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다가 10년, 20년이 지나면 전 인구에서 1%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1%에서 10%까지 가는 것은 오래 걸리고 힘든 일입니다. 10에서 20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래프 곡선이 기하급수 곡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20에서 40, 40에서 100까지의 단계는 항상 엄청나게 빨리 진행됩니다. 역사는 항상 이런 식으로 변화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우리는 소수입니다. 더 나은 교육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지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극소수에서 1%까지 가는 건 아주 멀고 긴 과정입니다. 1에서 10으로 가는 것도, 거기서 20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고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고민하거나 회의할 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운명이 우리를 그래프의 뒤쪽이 아닌 앞쪽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일이 완성된 뒤에 소비자가 되는 것보다 출발선에 선 개척자인 편이 더 좋습니다. 더 나은 미래의 교육을 준비하는 첫걸음에서 우리가 공동체로 모일 수 있기를, 같이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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