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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아이들을 온전하게 사랑한다는 것 - 발도르프교육의 인간 이해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부모교육

아이들을 온전하게 사랑한다는 것 - 발도르프교육의 인간 이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3. 29. 07:21

아이들을 온전하게 사랑한다는 것

- 발도르프교육의 인간 이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안녕하세요? 따뜻한 봄날 이렇게 뵙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 한 가지 주제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의 삶도 있지만 어느 날 아이들이 우리에게 찾아왔고 우리는 아이들의 삶 역시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잘 키우고자 하는 마음과 그에 따른 부담을 안고 살아갑니다. 아이가 생긴 뒤로 삶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행위는 무엇이어야 할까요많은 신규교사들이 스스로 놀라는 경험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이들을 사랑해서 다양한 활동도 하고 이야기도 해주고 공부도 열심히 가르치는데, 아이들 반응이 실망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퉁명스러운 태도나 비판적인 말에 큰 상처를 받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학교생활 내내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리고 과제를 내고 반찬과 밥을 조금도 남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억누르려 했지요. 하지만 이게 사랑일까요? 여기에는 뭐가 빠졌을까요? , 바로 당사자인 아이들입니다. 상대는 고려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착각에 빠졌던 겁니다. 스스로 객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벌이는 잘못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남녀관계에서 대부분 남자들이 잘못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건 반대의 경우도 있겠고, 또 다른 형태의 연애관계가 있을 테지만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정말 수많은 남자가 남녀의 차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통을 주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요. 심각한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요, 일상에서 흔한 일 중 하나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대부분 여자분들은 이야기를 할 때 공감 받길 원하지, 해결책을 전수받거나 비판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이미 스스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남자들은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거나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만약 여자 마음을 잘 안다면 그렇게 할까요? 최소한 조심하려고는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은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MRI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장비가 위압적이어서 어린이 환자들이 종종 겁을 먹고 울면서 거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정제를 놓는 경우가 많은데, 한 병원의 의료진은 MRI기기를 범선처럼 꾸미고 해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배 밑바닥에 가만히 웅크려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상황을 아이들에게 제시해줬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그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료진은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어려움을 해결한 것입니다.

 

저는 발도르프교육을 통해 인간학을 공부했고, 그것을 전공으로 생각하지만 오늘은 가능한 어렵지 않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린 아이란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 게 필요합니다. 발도르프교육학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입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잊고 살아가는 관점입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을 몸과 마음의 존재라고 합니다. 몸이 워낙 중요한 시대라 마음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폄하되고 있지요. 어찌되었든 몸과 마음은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입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굉장히 이질적인 요소들입니다. 마음이 몸에 깃들 때 다른 요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을 연결해 줍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운입니다. 몸이 아무리 잘 생기고 번듯해도, 기운이 없으면 매력이 없습니다. 기운이 없으면 몸은 점점 무너져갑니다. 기운은 몸의 형태를 이루게 하고 신체기관을 작동시키며 마음과 몸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줍니다. 이 몸과 마음, 그리고 기운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작용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 순차적으로 하위 요소를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기운을 통제하고, 기운은 몸을 통제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약해지면 기운도 약해지고, 기운이 약해지면 몸도 약해집니다. 아무리 좋은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도 아이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면, 배우자가 못마땅한 말을 늘어놓으며,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되죠? 기운이 빠집니다. 기운이 빠지면 몸은 어떤가요? 축 늘어지고, 지속되면 여기저기가 아파옵니다. 이 순서를 기억해 주세요. 1)마음, 2)기운, 3).

 

그렇다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화가 나고 슬프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잘 충족이 되면 행복감을 느낍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기도 하고, 하기 싫기도 한 게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은 누가 다스릴 수 있을까요? 돈일까요? 배우자일까요? 아니면 하느님이나 부처님일까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온전한 주체가 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술 담배에 의존하거나 약물에 빠져 지낸다면 삶은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어른으로서 를 잘 지켜내고 강하게 단련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 즉 자아가 독립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다른 어른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마음과 기운과 몸을 적절히 다스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인 성장도 가능합니다. 나를 초월한, 우리의 숨겨진 요소를 얼이라고 하겠습니다.

 

몸과 기운, 마음과 나는 단계적으로 성장하고 탄생합니다. 발도르프교육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에 따르면 인간의 발달은 기본적으로 7년을 주기로 합니다. 우리의 구성요소 중 가장 먼저 탄생하는 것은 몸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10달을 보내며 세상에 나가길 기다립니다. 저는 아기라는 존재가 엄마와 아빠의 우연한 만남과 생물학적 결합만으로 생긴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기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어떤 정신적 존재가 고유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기가 보여주는 수많은 특징, 어떤 능력이 특출나거나 장애가 있거나 아니면 기질적인 특성 역시 아기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고 봅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동안 아기의 세계는 오로지 엄마입니다. 슈타이너는 태교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아기는 세상과 차단되어 있고 엄마의 뱃속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굳이 태교를 한다면 엄마가 아기를 가진 동안 즐겁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는 엄마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아빠의 배려와 사회적 지원이 더 중대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아기가 태어납니다. 아기의 몸은 엄마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숨을 쉬고 젖을 찾아서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아기는 완전히 감각적인 존재입니다. 감각이 세상에 완전히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운전면허가 있으신 분들은 처음 도로주행 나온 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차가 뒤엉킨 시내 한 복판에서 초보운전자는 거의 무방비로 수많은 정보에 노출됩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작은 일도 충격으로 다가오지요. 아기는 그보다 수십만 배, 수백만 배 더 얼떨떨한 상태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각적 자극, 청각적 자극, 후각적 자극, 촉각적 자극 등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갓난아기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수많은 자극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스마트폰이나 TV 등 전자기기는 가급적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감각경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한 감각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특히 0세에서 7세까지의 영유아기에 이러한 감각적 배려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7년 주기발달의 첫 단계인 0~7년은 엄마의 뱃속에서 아이의 몸이 독립하고 탄생하는 시기인 동시에 신체기관이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우리의 몸은 만 7세까지 형성된 신체기관을 기본으로 하여 이후 삶을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주변 세상을 모방하고 그대로 자신의 신체기관을 형성해갑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올바른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은 부모님입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감각적 존재이자 의지의 존재이며, 손과 발을 이용해 쉬지 않고 노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기운은 몸을 완성하는 데에 오롯이 쓰이게 됩니다. 가장 약하고 연한 부분부터 가장 단단한 부분까지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머리에서 발끝을 향하는 방향입니다. 두뇌에서부터 감각신경체계, 그리고 폐와 심장 같은 호흡순환체계가 형성되고 이어서 신진대사체계와 생식기, 사지의 뼈가 발달합니다.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은 뼈가 아니라 치아입니다. 젖니갈이가 시작되면 이제 새로운 구성요소의 탄생이 찾아왔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운은 몸을 완성하는 데에 쓰이다가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생기면서 그 과업을 완수합니다. 이제 이 기운은 새롭게 독립합니다. 기운은 신체기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사고작용을 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여러분이 온종일 머리 쓰는 일에 매달리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집에 와서 맥이 풀린 상태인데 아이가 와서 수학숙제를 도와달라고 하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새롭게 탄생한 생명력, 즉 기운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사고작용을 합니다. 이 말은 이제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대부분 만 7세에 학령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은 인류의 지혜와도 같습니다. 영재라고 하여 그 이전에, 5세 정도에 입학하는 경우 많은 아이들이 학습을 따라가기 힘들어 합니다. 아직 아이들의 기운이 몸을 완성하는 데에 쓰여야 하기 때문에 과도한 학습은 아이들의 몸을 약하게 만듭니다. 대부분 조기입학 아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같은 이유로 조기교육은 아이들의 성장에 해가 됩니다. 태교가 필요 없는 것처럼 학령기 이전에는 굳이 학습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우리 시대의 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들볶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논리적인 사고보다 상상적인 사고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합니다.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을 통해 세상을 접하게 됩니다. 이때의 아이들은 호감의 힘이 아주 강하여 무조건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교사는 실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1학년에서는 이야기가 수업의 핵심이 됩니다. 아이들은 아직 동화와 같은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은 분리되지 않은 전체로서 판타지와 아름다움이 수업과 교실 곳곳에 녹아들어갑니다. 2학년이 되면 여전히 세계는 하나로서 전체지만 한 현상의 이쪽과 저쪽을 인식합니다. 거울처럼 반영된 상을 파악하고, 세상이 높은 것과 낮은 것, 바깥과 안, 왼쪽과 오른쪽 등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제 우화이야기와 성인이야기를 들려줍니다. 3학년이 되면 점점 자의식이 커지게 되어 아이들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3학년 후반에서 4학년 초반 사이에 아이들은 세상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시련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엄마가 모른다는 게 놀랍고, 엄마가 정말 우리 엄마가 맞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시기에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낙원 같은 세상에서 쫓겨난 듯한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4학년이 되면 안정감과 함께 힘이 넘칩니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집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이때 분수를 도입합니다. 그리고 동네학이라고 하여 마을을 탐사하며 지도를 만들어 갑니다. 5학년이 되면 신체적 능력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4학년 아이들과 달리 5학년 아이들은 어떤 활동에 대해 노력을 통해 완결성을 기하려 하며, 개인적인 작업으로 가져갑니다. 아동기의 절정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사춘기가 빨리 오는 편이라 5학년 2학기쯤 되면 여자아이들을 중심으로 2차성징과 사춘기 증세가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6학년이 되면 아이들의 팔다리는 더욱 길어져 균형감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의 태도는 부자연스럽고 자기 팔다리를 잘 가누지 못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논리적인 사고능력이 부각되며 이때에 와서 주장하는 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커집니다.

 

우리가 흔히 중2병이라고 하는 만 14세의 아이들은 세 번째 7년 주기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이때 아이 고유의 마음이 독립합니다. 이제부터 아이의 마음은 아이의 것입니다. 더 이상 엄마나 아빠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강해진 반감은,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향해 날을 세웁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아주 힘든 시기입니다. 감정생활이 독립하기 때문에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아이의 사고는 미숙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첫 번째 주기가 손발과 의지가 중요한 시기라면, 두 번째 주기는 가슴과 감정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시기는 머리와 사고에 방점이 찍힙니다. 아이들은 밖에서 권위를 찾았던 이전 시기와 달리 자기 자신 안에서 권위를 찾아나가야 합니다. 지적 능력이 최고조에 이르지만 정체성을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척 혼란스럽고 힘들어 합니다. 자칫 입시위주의 교육만이 강요되고 자기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탐구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술이나 게임 등에 중독될 수도 있습니다. 강력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극우 커뮤니티에 유혹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의 교사상은 전문가입니다.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고활동에 빛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인 탐구와 의미 있는 실습기회를 통해 아이들은 사고의 힘을 키우고 세상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21세가 되면 자아가 탄생합니다. 이 시기를 일컬어 자기가 자기를 교육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전까지 부모나 교사의 도움과 보호 속에 살았다면 이제는 자기 힘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내려야 합니다. 초중등 교육의 핵심적인 목표는 이렇게 건강한 자아가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자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이 역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모로서의 소임은 이 시기까지입니다. 영유아기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고 단계마다 조금씩 아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7년마다 아이는 몸과 기운과 마음이 탄생하고 독립합니다. 자아가 탄생하는 21세부터 아이는 자기 생각과 행동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어른이 됩니다. 그 이전에는 자아가 독립한 것이 아니므로 부모와 교사가 자아의 역할을 대신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기에 아이들은 아직 마음도 독립한 상태가 아니므로 어른은 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나 교사의 마음과 자아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우리는 건강한 자아를 찾아야 하고, 지켜내야 하며, 이를 통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기운을 너무 소진시켜도 안 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어른의 기운을 빨아먹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저학년 교사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항상 느끼는 일입니다. 한두 시간만 어린 아이를 돌봐주고 나면 한 일도 없이 기운이 쫙 빠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기운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늘 탐구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아이를 사랑한다는 건 거짓말일 것입니다.

 

제 이야기의 결론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현재 당면해 있는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지 직면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있는지 등이 모두 자녀의 교육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말하는 대로 크지 않고, 어른이 보여주는 행동을 따라하며 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자기 자신과의, 또는 주변 사람과의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는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지가 사실 아주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형국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면 대체 어떻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았는지 원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인간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에게 건강한 교육을 시킬 수 있을 때 이 사회가 조금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공부하고 함께 실천해 나갔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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