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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 교육예술》을 읽고 본문

책소개 및 서평/발도르프교육 및 인지학

《발도르프 교육예술》을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14. 10:27

《발도르프 교육예술을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원제는 <Die Kunst des Erziehens aus dem Erfassen der Menschenwesenheit>이다. <발도르프 교육예술>은 부제에 이 원제의 의미를 살렸다. (겉표지의 부제는 '인간 본성이 중심인 교육'인데, 속표지의 부제는 '인간 본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육예술'이다. 후자가 더 정확한 번역.)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에서 교사로 일할 때였다. 학교 번역위에서 비공식적으로 초역한 책의 제목은 영문판을 따서 <어린이 왕국>이었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년, 그러니까 사망하기 전 해인 1924년 영국 토키(Torquay)에서 행한 7회의 강연과 1회의 질의응답을 모은 이 책은 <The Kingdom of Childhood>라는 이름으로 영미권에 널리 소개되었다. 학교 번역위는 영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아 옮긴 것이다. 1919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처음 발도르프학교가 세워진 뒤 수많은 경험 속에서 발도르프교육학은 검증을 받았고, 슈타이너는 자신이 창안한 교육학에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그로부터 5년 뒤 통역을 통해 행해진 이 강연은 첫 학교의 교사진을 위해 보름간 펼쳐진 강연 <일반인간학>과 <방법론적 고찰>, <세미나논의와 교과과정 강의>보다 이해하기 쉽다. 발도르프교육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간학>과 나머지 두 권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먼저 (여러 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출판사에서 중쇄를 준비하면서 검토를 요청한 까닭에 아주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 내용은 물론 말할 수 없이 훌륭하고, 번역의 질도 상당히 좋다. 다만 '일러두기'를 통해 몇 가지 용어에 대해서는 간략한 설명을 달아주어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Leben, Mensch, Wirklichkeit 등은 각각 '삶, 생명, 생활', '사람, 인간', '현실, 실제, 실재' 등으로 다르게 옮겨지는데, 문맥의 흐름에 따라 어색한 경우가 가끔 있다. 이것은 독자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praktisch 같은 경우 '실질적, 실제적, 실용적'이라는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에 일러두기가 없으면 의미 이해가 온전치 않아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든다. 번역이라는 일의 어려움은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슈타이너의 난해한 독일어 텍스트를 매끄러운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은 독자들이 알 수 없는 고충이 많다. 다행인 것은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발간위원회의 공동작업으로 번역에 더 큰 신뢰가 간다는 점이다. 단어 하나를 두고 길게는 몇 달씩 토론하며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작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늘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문장(큰따옴표)과 떠오른 단상(*)을 몇 개 옮겨본다. 

 

"그 가운데 최선의 의도에 의해 교육제도의 영역에서 가능한 모든 시도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빠져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15세기 이래로 사실상 모든 분야를 지배해 온 물질주의로 인해 인간 교육에 관한 사고는 사람에 관한 진정한 인식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9)

 

"지상 이전의 삶에서 지상의 삶으로 옮겨온 뒤에, 신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에 숨겨진 것이 그 사람에게서 발현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0)

 

"인지학에 바탕을 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인지학을 부정하지 말고 인지학을 통해서 사람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13)

 

"우리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지 않는 개념들을 아이에게 가르칩니다. 성장하지 않을 개념을 아동에게 주고, 성장하지 않을 개념으로 아이를 괴롭힙니다." (17)

 

"교사는 무한한 경외심을 가지고 아이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있는 아이가 지상으로 내려온 신적이며 정신적인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23)

 

* 정신이 신체에 깃들어가는 과정은 몹시 고통스럽다. 아이들이 난리를 치는 것은 그것의 표현이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의식할 정도로 깨어나지 않았다. 다행인 일이다.

 

* 아이들이 몸 전체가 감각기관이고 부모의 가르침이 아니라 행실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면, 중요한 것은 부모 스스로 치유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아이 앞에 서는가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유아 현장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심지어 책도 거의 읽을 정도가 됩니다. 낱말의 철자를 따로따로 구분해서 배우기도 합니다. ...... 유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학습 때문에 아이가 몸과 영혼 모두 허약한 사람으로 커갑니다." (32)

 

"이갈이와 사춘기 사이의 시기에는 판타지의 본질을 토대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37)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같은 것을 일률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느 교실에도 자유가 넘치고, 그러면서도 모든 교실에 발도르프학교의 정신이 아이들의 연령에 맞는 형태로 살아 있습니다." (46)

 

"교사는 아이를 정신과 영혼과 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체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영혼 안에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예술적으로 소질을 타고나야 합니다." (50)

 

"지성은 아이의 생명을 황폐화시키고 위축시키지만, 판타지는 아이에게 활기를 주며 자극합니다." (52)

 

"오늘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론에만 밝은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현실의 흔적조차 따라가지 못합니다." (60)

 

* 서양의학과 농법은 지성혼의 부정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육도 그렇다. 이것은 근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성혼과 과학 그 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일부 인문학자들은 근대적 과학을 '과학 그 자체'로 파악하고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폐기하려든다. 이것은 세숫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리려는 우매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동물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자연과학의 그 모든 헛소리는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 안에는 전체 동물의 부위 하나하나가 모두 종합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70)

 

"교사와 교육자는 이렇게 아이들의 삶 속으로 과감히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교육에 관한 질문이 결코 교사의 질문이 아니라 아이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81)

 

"교실에 들어설 때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 아이들의 영혼 안으로 깊게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분위기입니다." (87)

 

* 교사의 자신감은 올바른 관찰을 통한 아동 이해에서 나온다. 

 

"살아 있는 것은 하나의 전체(ein Ganzes)이며, 그것은 온전한 전체로 주어집니다. ...... 전체를 관찰한 뒤에 부분으로 나누도록 유도하면 아이는 생명이 있는 것을 지향하게 됩니다." (109)

 

"사고가 현실에서 분리되면, 우리는 아이가 주지주의와 추상화에 휘둘리도록 만들어 그 아이를 완전히 망치는 겁니다." (117)

 

"이갈이를 시작하지 않은 아이에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을 시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의미가 없습니다." (135)

 

"우리 학교는 각 아이의 학부모와 실질적인 연락을 유지해서 교사가 아이를 통해서 그 가정까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야 교사가 그 아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7)

 

"어떤 경우에도 미술 수업은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습식 수채화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건 아주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177)

 

"여러분은 첫 번째 시도가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첫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그 실패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고, 따라서 많은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187)

 

 

[출처 : 루돌프 슈타이너, 루돌프슈타이너전집출간위원회 옮김, <발도르프 교육예술>, 한국인지학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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