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교육으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교육 - 반 제임스 본문
교육으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교육
반 제임스 선생님의 학부모특강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안녕하세요? 알로하 카코! 오늘은 예술과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교육은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지만 치유는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학교교육이 일종의 과학처럼 접근되지만, 실제로 교육이나 치유는 예술입니다. 우리가 노래로 시작을 했지만 하나를 더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이 노래는 모든 미국의 대통령, 영어권 기업의 사장들이 알파벳을 배우기 전에 배우는 것입니다.
“에이 비 시 디 이 에프 지~”
우리는 모두 다 언어를 알고 있고 그것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알파벳을 배우기 전에 그것을 이미 다 노래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원투 버클 마이 슈즈~’라는 노래도 아주 유명한 것인데, 영어권의 사람들은 다 이 노래로 숫자를 배웠습니다. 전 세계 모든 유치원에 가서 물어볼 수 있습니다. “여기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 하면 모두 손을 들 겁니다. 그림, 춤, 색칠 등 무얼 물어봐도 다 손을 들 것입니다. 20세기의 유명한 예술가 피카소는 모든 아이들이 예술가라고 했습니다. 예술가는 어린 시절의 예술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300년 전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부모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하거나 가업을 잇거나, 가내수공업을 하는 것 등을 집에서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가내수공업은 사람의 손으로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집에서 하는 수공업은 유일하고 작고 개별적인 것들입니다. 17세기 말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 대량제조업의 문화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각자 소규모 공방에서 하나씩 만들어서 저마다 달랐던 물건이 이제는 기계 조립라인을 통해 대량으로 획일적 제품을 쏟아내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아이들이 집에서 배웠지만, 엄마, 아빠가 일을 하러 가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국가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사회의 생산적 일꾼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문제는 학급의 아이들이 굉장히 많은데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공장식의 대량 조립라인처럼 아이들이 오면 지식을 부어넣고 다 채워지면 내보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다행히 루소나 페스탈로치, 프뢰벨 같은 교육자들이 있었습니다. 프뢰벨은 최초로 유치원을 만든 사람으로 아이의 성장은 놀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20세기에는 몬테소리나 듀이, 슈타이너 같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을 빈 양동이처럼 뭘 부어넣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과 같이 스스로 피어나게 해야 한다고 슈타이너는 말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한 공간에서 자라야 하며 비기계적인 자연의 환경에서 놀면서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의 신경과학계의 연구에서도 아이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에서 자랄 때 두뇌의 발달도 잘 되고 올바르게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2,30년 전에 미국에서는 한 사람이 대학에서 배우는 것을 아기들에게도 가르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베이비-아인슈타인이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이 회사에서 사용한 방법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 그러니까 숫자, 단어, 과학용어 등을 녹음해서 들려주었는데 아이들이 잠을 잘 때도 들려줬습니다.
많은 미국의 부모들이 그 제품을 사줬습니다. 최첨단의 것은 뭐든지 흡수해버리는 부모들이었습니다. 그 회사를 만든 여자는 부자가 되었고, 이 회사는 디즈니사에서 인수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정부에서 이 프로그램을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2,30년을 하고난 뒤에 보니 그것이 아이의 뇌신경을 파괴하고 퇴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뇌는 저장창고가 아닙니다. 뇌를 발달시키는 것은 자연의 소리나 색, 감촉 같은 자연적인 자극입니다. 어린 나이에 과학기술은 오히려 뇌가 갖고 있는 기능을 퇴화시킵니다.
100년 전 슈타이너는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추상적인 정보를 주는 것은 아이들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을 얹어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슈타이너는 아이의 발달기를 세 주기로 나누었는데, 7세쯤 되면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납니다. 14세는 사춘기로 전환되는 시기입니다. 세 번째 시기로 상급학년은 18세에 졸업하지만, 21세가 되면 자기 교육이 가능해집니다. 자기가 자기를 교육할 수 있게 됩니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이 세 단계를 굉장히 강조하지요. 유치원, 담임과정, 상급과정으로 교육과정을 나눕니다.
슈타이너의 이야기는 100년 전의 것이지만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을 통해 그것이 맞다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학부모 강연 전에 선생님들과 건축사에 대해 세미나를 가졌는데요, 어린 아이들의 교육적 기초과정은 0~7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인 힐리나 하버드대의 하워드 가드너 같은 사람들은 이 시기의 지식을 아주 기초적인 지식, 구체적인 지식, 또는 직관적인 지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이 시기 아이들이 물을 배운다면 그건 물을 마시는 것, 씻는 것, 비 온 뒤의 웅덩이를 첨벙대며 뛰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또 다른 시기인데요, 상징적인 개념화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세상을 그림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지식은 아이들에게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지지대와 같은 역할이지요. 이 단계의 학습은 아까처럼 물장구를 치거나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물에 대한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기입니다. 왜냐면 상징적인 개념들로 전환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술은 상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과학도 예술적으로 가르칩니다. 아인슈타인은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단계가 되면 아이들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깁니다. 예리한 지성,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집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이 시기의 지식을 규격화된(formal)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물이란 산소와 수소로 구성된다는 걸 가르칩니다. 추상화된 개념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르쳐주면 안 되겠지요. 만약 집을 짓는데 지붕부터 얹는다면 문제가 생기겠지요. 기초단계에 우리가 공룡의 이름을 다 알아야 하는 걸까요? 미국에서는 부모들이 더 열심히 그 어려운 이름을 가르쳐주는데, 그 하나하나의 이름은 돌멩이와 같아서 아이들은 무거운 돌들을 짊어지고 다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기에 그렇게 하는 게 과연 필요할까요?
Foundation - Support - Load
건축에서는 지붕 부분을 아주 무거운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 무거운 지붕이 올라가려면 기초 기단과 기둥이 아주 튼튼해야 합니다. 특히 기초단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기초단계의 아이들에게는 신체적인 건강, 생명력 있게 자라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영구치가 나오는 시기부터 아이들의 생명체가 자유로워지면서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첫 단계는 아직 지성이 깨어나지 않았지요. 물론 두 번째 단계의 지성은 상징적이며 예술적이어야 합니다. 놀이로 배우는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에서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배우게 됩니다.
세 번째 시기는 지성이 발달하는 시기로 산업혁명이 생길 수 있는 이유입니다. 기초와 기둥이 탄탄한 상태 위로 추상적인 사고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지금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생각해오지 않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혁명입니다. 핵문제나 사회불평등, 지구온난화, 빈부격차 등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되고 지금까지 해오지 못했던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장식의 교육은 더 깊은 구덩이를 팔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졸업해서 사회로 나갔을 때, 이렇게 쌓아놓은 토대 위로 탑을 쌓는 일입니다. 성인은 자기 스스로 교육을 하면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전통적인 교육은 교사가 앞에서 막 떠드는 것이었지요? 지금까지 제가 많이 떠들었으니 이제 예술을 해보도록 합시다. 자, 화판을 꺼내보세요. 황금노랑과 빨강을 꺼내세요.
그림 그리기 전에 말로 활동을 해보겠습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예술가라는 것을 확인해봅시다. 제가 세 개의 단어를 말할 건데요, 가능하면 영어 자체로 들어주세요. 첫 번째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상이 있고, 두 번째 단어를 듣고 그것이 어떻게 바뀌는지, 세 번째 단어를 듣고는 또 어떻게 달라지는 보세요.
Long, Black, Hair
"그녀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라는 문장입니다. 처음 단어를 듣고 어떤 것이 떠오르셨나요? (긴 강, 긴 선, 길, ...) 저는 단어 하나를 말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모두 각자의 그림을 창조적으로 만들었어요. 거기에 검정이 덧붙여졌을 때 어떻게 되었나요? (변했습니다. 강물이 검은 물감을 탄 듯이.) (선이 덩어리가 된 듯했어요) 머리카락을 듣고 나서는 어떻게 변했나요? (젊고 예쁜 여자가 떠올랐습니다) (샴프 선전하는 빛나고 까만 머리카락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을 때마다 사고의 상은 변형되고, 하나의 상에서 다른 상으로 건너뛰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 다 시각예술가입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 그렇게 합니다. 이제 시각예술가인 우리는 작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판을 가로로 놔주세요. 우리가 모두 상을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아셨으니 그 상을 화판에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저학년에서는 상이 자라도록 합니다. 처음부터 죽은 개념으로 ‘이것’ 이렇게 하지 않고 씨앗이 자라듯 이야기 속에서 그림이 자라도록 합니다. 화판의 중앙에 노란색 한 점을 그려주세요. 이걸 색깔의 씨앗이라고 합시다. 이게 앞으로 자랄 거예요. 씨앗을 조금 확장시켜보세요.
맨 처음에는 작은 알, 점점 큰 알로 커지게 해주세요. 여러분이 그리는 형태가 가로로 놓인 타원형이 되도록 해주세요. 처음보다 색이 옅어지신 분이 계신데, 가장자리까지 색이 같도록 해주세요. 단단한 바깥 선을 갖도록 해주세요. 타조알이나 거위알 정도의 크기로 화폭에 놓여지도록 그려주세요.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손끝으로 느낀다’ 또는 ‘직관적으로 느낀다(내장으로 느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사가 말을 멈추고 고요하게 아이들이 그림에 열중할 때 가장 많은 배움이 벌어집니다. 예술활동을 통해 배운 것을 리듬 있게 소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왼쪽에 또 다른 씨앗을 하나 그려주세요. 이것도 역시 작은 색깔 씨앗입니다. 땅콩 크기로 자라도록 해주세요. 그걸 더 크게 해서 아까 그린 알과 만나게 해주세요. 또 다른 알입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아래에 또 다른 색깔 씨앗을 그리고 점점 커지게 해주세요. 1,2학년 아이들과는 미술수업을 이렇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알을 더 키워주세요. 따뜻한 노란색의 큰 알이 있고 양쪽은 작은 알이 두 개가 있게 됩니다. 가운데 알은 가로로 그려주시고, 작은 알들은 위 아래로 길쭉하게 그려주세요. 두 번째 알 위에 또 점을 그려주세요. 제일 작은 알로 점점 커져서 만나게 해주세요. 알들을 이렇게 놓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이제 우리에게는 알 같이 생긴 네 개의 원이 있습니다. 이제 빨강을 꺼내주세요. 빨강으로 제일 위의 머리 위에 색을 얹고 왕관 형태로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왕관의 뾰족한 부분을 둥그렇게 해서 어릿광대의 모자처럼 해주세요. 턱수염도 달아주세요. 1학년들은 이쯤 되면 서로서로 속닥속닥 속삭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턱수염도 둥글게 해주세요. 이제 큰 알의 위에 분수처럼 색이 나오도록 그려주세요. 그 다음에 뾰족한 부리와 막대기 같은 다리를 그려주시면 됩니다. 명암으로 같은 색이지 짙게 표현할 수 있지요.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세부적인 묘사들을 덧붙여 주세요.
어린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자, 여러분 우리 닭을 그려봅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닭이라고 말을 하는 순간 아이들은 닭의 상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색칠하기 책은 완성된 그림에 색을 칠하게 하지요. 어른의 사고로 닭이라는 이미지를 급속냉동시켜 아이에게 색칠만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림은 이미 고정되고 완성되어서 무얼 그리는지 호기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라는 그림은 과정 속에서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고 내가 무얼 그릴까, 생각을 하면서 참여하게 합니다. 선으로 그린 그림이 닭의 실제와 비슷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떤 닭도 윤곽선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2차원으로 눌러버리면 모를까요?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그린 그림은 전체에서 확장되어 그린 그림이므로 실제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상급에서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 윤곽선이 있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학년에서는 살아서 자라는 그림이 필요합니다.
산도 이렇게 윤곽으로 뾰족하게 그리지도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산을 그릴 때는 초원부터 시작하여 언덕을 그리고 점점 올라갑니다. 실제 산이 형성되는 과정에 따라 그리며, 아이들은 살아 있는 사고를 통해 그림을 그립니다. 윤곽선으로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은 ‘저건 진짜 산이 아니야. 우리가 보고 따라 그릴 필요가 없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이 산을 싹 밀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때는 식물, 동물과 연관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서 자라나는 것임을 느끼게 되고,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제 1,2학년 아이들과 하는 그림을 하나 더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속에 있는 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볼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이야기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제가 사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이야기인데요, 쿠푸아라는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쿠푸아는 형태를 순간마다 사람, 물고기, 나무 등으로 자기를 알아볼 수 없게 계속 바꿉니다. 우리 1학년들은 모두 훌륭한 쿠푸아 잡는 사냥꾼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아주 이상한 모습이지요. 이 쿠푸아에게는 마법의 거울이 있는데, 그걸 통해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반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쿠푸아는 속이고 싶기 때문에 똑같은 반영이 되길 원치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쿠푸아를 잡기 위해 똑같이 그려야 합니다. 또 변했습니다. 얘가 거울에 반영되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자, 나와서 그려보십시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1학년 아이들에게 나와서 그려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엉뚱하게 그렸다고 해도 “너 뭐니? 배가 너무 나왔잖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다시 그리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와, 쿠푸아가 우리를 속이려고 배가 이렇게 나왔어”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자, 화판을 세로로 꺼내주세요. 그 전에 크레용을 세 손가락으로 잡아주시고요, 허공에 직선을 기다립니다. 기다려주세요. “Go!" 아주 빨리 해주세요. 아니, 한국인들 왜 이렇게 느려요. ”자, 준비~“, "Go". 자, 이번에는 천천히 해주세요. 이제는 자기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보세요. 그렇게 세 번을 그려주세요.
종이에 그리는데, 두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직선을 그리는데, 가능하면 종이 한 가운데에 그려주시고요, 또 하나는 가능한 한 직선으로 그려주세요. 눈으로 가늠해서 그려주세요. 이제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얼마나 가운데에 있는지, 직선인지 봅시다. “와우, 정말 훌륭합니다. 아주 좋아요.” 어떤 아이가 비스듬하게 그렸다고 해보죠. 접어봤더니 어긋났어요. “와, 너 한가운데를 잘 맞췄구나” 이렇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1~3학년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그 그림에서 좋은 점을 찾아서 말해줍니다. 이미 아이는 자기가 한 게 삐뚤어져 있는 걸 알고 있고 잘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3학년까지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9세 경에 아이들은 루비콘의 강을 건넌다고 하지요. 의식의 변화가 오는데요, 이때부터 아이들 중 노래도 하지 않고 그림도 안 그리려는 아이가 나옵니다. 부정적인 지적을 많이 받아서 그렇습니다. 아이가 처음에 글을 잘 못 읽어도, “괜찮아,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림 같은 예술에서도 격려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성인까지 그림을 자신 있게 그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한 걸 따라하기보다 여러분들이 직접 간단한 형태 하나를 만들어주세요. 오른손잡이는 왼쪽에, 왼손잡이는 오른쪽에 그려주세요. 직선, 곡선, 둥그렇게 말린 선 등을요. 이제 그걸 옆 사람에게 주세요.
종이 돌려주시기 전에 다른 색깔을 꺼내서요, 아까 그 형태 위에 다른 형태를 그려주세요. 두 개의 형태가 겹치게 될 때 뭉개지지 않고 선명하게 그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자, 질문입니다. 반대에 그림을 그릴 때 대체 어떤 능력이 필요했습니까? (조화로운 균형감) (눈과 손의 협응) (흐름을 파악하는 것) (거꾸로 뒤집을 수 있는 힘) 아시겠죠? 이 형태를 그릴 때는 눈으로 거리를 재지요.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수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예술적인 방식으로 느낌을 사용해서 비율과 거리, 측량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조율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게 너무 많은지, 적은지 느낌으로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이란 너무 많은 것과 너무 적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뭐가 너무 많은지, 또는 너무 적은지 보고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은 도덕적인 능력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높은 가치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거울상 대칭연습을 통해 우리는 많고 적음을 감각할 수 있는 기관을 성장시킵니다. 우리가 악기의 소리를 들을 때, 반음이 높고 낮은지를 머리로가 아니라 느낌, 가슴으로 하는 인지를 통해 맞추게 됩니다.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그 능력이 점점 사라집니다. 예술을 통해 그 능력을 키워줄 수 있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하버드대의 교육학자인데, 인간의 지능에 7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1. Math-Num. 수학-수리적 지능. 수학적으로 크고 적음을 파악하고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 2. Linguistic-Verbal. 언어적 지능. 3. Musical-Rhy. 음악적 지능. 리듬, 박자, 음률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4. Visual-Pic. 시각적 지능. 지금 우리가 연습을 했지요. 5. Inter Personal. 상호관계적 지능. 사회적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관계에서 뭐가 필요한지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한국 사람은 이 능력이 아주 뛰어난 것 같습니다. 제가 뭘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걸 해주시는 걸 많이 겪었습니다. 교실에서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미리 알아서 챙겨주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그냥 혼자 가만히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지능면에서도 아이들은 다릅니다. 6. Intra Person. 자기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자기 생각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자기 내면을 잘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7. Spatial-Kinesthetic. 공간-움직임 능력. 자기 몸이 공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으로 운동선수들은 그 능력이 뛰어납니다. 올림픽에서 뛰어난 선수들은 이 능력과 함께 시각적 지능도 뛰어납니다. 자기가 움직여야 할 것들을 시각적으로 떠올려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파악합니다.
서구 산업사회에서 가장 요구하는 능력은 수학적 지능과 언어적 지능입니다. 움직임을 많이 강조하는 학교도 있지만 다른 능력들은 도외시되곤 합니다. 예산면에서도 가장 먼저 제외되곤 합니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다중적인 지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이 나온 것은 25년밖에 안 됐습니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이미 100년 전에 이러한 것들을 모두 고려하여 교육을 하였습니다. 슈타이너는 예술이 영혼을 위한 삶의 피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예술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우리의 삶을 생기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쇼핑을 하거나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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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의 그림을 봐주세요. (1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작품 그림이 붙어 있음) 여기는 1학년입니다. 그림을 통해서 숫자와 글자를 배워가는 시기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교과서를 만들지요.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출력한 것입니다. 여기는 상급학년의 화학, 문학 같은 과목들입니다. 이때의 아이들에게도 사실로만 주는 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전달해줍니다. 대학에서 과학을 배울 때는 교재를 주지요. 거기에는 실험의 결과가 적혀있는데, 그것은 옛날의 것이라 지금에 와서는 틀린 것도 있지요. 발도르프학교의 상급 아이들에게는 죽은 개념을 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현상들을 통해 개념으로 다가가게 합니다. 대학에서는 화학과임에도 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 옛날에 한 결과들을 책으로 공부합니다.
공자 왈,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행한 것은 이해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거꾸로입니다. 먼저 행하게 하고 보여주고 마지막에 이야기해줍니다. 공자는 최초의 발도르프교사였습니다. 여기는 12학년의 작품인데요, 표현주의적인 것과 추상화와 자유그림입니다. 여기는 2학년, 3학년입니다. 이 공책은 9학년의 예술사에 관한 것입니다. 12학년 건축사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나중에 관련한 것에 대해 궁금하면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하는 많은 얘기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 뭘 잘 모르겠으면 꺼내서 본다고 합니다. 4학년, 5학년이고요. 6학년 지질학, 광물학에 관련된 풍경들입니다. 7학년의 프레스코화입니다. 르네상스의 대가들의 화풍을 그린 것이고, 원근법을 그린 것입니다. 5학년, 6학년의 기하학입니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요, 제가 있는 호놀룰루 학교에서는 외국어로 스페인어와 일본어를 하고 상급에 가서는 하나를 선택해서 합니다. 이것은 빛과 어둠에 관한 것이고 해골 그림과 프랑스 혁명에 관한 그림입니다.
슈타이너는 6~8학년에 공간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원근법, 흑백 목탄화 등으로 공간에 관한 그림을 그리며 의지를 통해, 느낌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을 갖게 되고 이런 예술작업을 함으로써 자기만의 지성을 깨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사춘기에 들어서기 전 단계에 하는 것입니다. 8~9학년에는 그림의 다양한 기법을 배웁니다. 가로선, 세로선, 사선, 점묘화 등의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봅니다. 예술사 수업을 하면서 이런 그림을 그립니다.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모사해보고, 그 방식으로 자기 초상화를 그려봅니다. 이것은 큰 화판에 수채화로 그린 것입니다. 이것은 11학년 작품이고, 이건 투사기하학입니다. 수학시간에 하는 이런 작업은 실제 건축기술의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 상급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아이들에게 예술수업은 어떤 도움이 될까요?
상급아이들에게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만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급과정에서는 예술적이면서 실용적이면서 개념적인 작업이 함께 갑니다. 가끔 하와이 발도르프학교에 공립학교를 다니다가 전학 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충분한 예술적인 작업을 하지 못해 경계성 장애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예술작업을 하면서 좋아집니다. 상급에서도 이런 예술작업이 아주 중요합니다.
제 동료 중에 발도르프식 소년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거기에 갔더니 정말 기적적인 걸 보게 되었습니다. 갱단의 아이들이 리코더를 배운 뒤 싸우는 대신 리코더를 갖고 겨루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도르프학교는 예술학교가 아닙니다. 정규학교이지만 많은 예술을 통해서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전문적인 예술가를 키우려는 게 아니라 전인적인 인간을 키우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말을 들려드릴 테니, 잘 들어주세요.
“우리는 과학과 기술로 지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예술을 더 많이 강조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모든 학문의 분야마다 과학이 잠식해 들어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이 더 이상 과거의 유물로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하려면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을 더 많이 감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예술적인 토대가 갖춰지면 아이는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과학과 기술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해 예술은 아이가 더 영리해지면서 동시에 더 지혜로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누가 얘기했을까요? 슈타이너요? 아닙니다. AT&T라는 미국의 유명 통신회사 사장님이 한 말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통신회사의 사장님이 이런 걸 알고 있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 1학년 아이인데 왼손잡이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오른손을 써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이마다 다릅니다. 만약 그 아이가 모든 방향성이 왼쪽이라면요. 우리의 눈, 손, 발은 모두 한쪽의 선호도가 있습니다. 공을 놓고 차는 걸 보면 어느 발을 쓰는지 볼 수 있고요, 달을 보자고 망원경을 눈에 갖다 댈 때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관찰을 해야 합니다. 모두 다 왼쪽만 쓰는데 오른손을 쓰라고 하면 균형이 맞지 않을 것입니다.
- 집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예술활동은 뭐가 있을까요?
어린 아이들은 모방으로 배웁니다. 언어는 사실 배우기 굉장히 어려운데 어린 아이들은 모방을 통해 금세 배웁니다. 부모가 계속 해서 차를 마시면서 “차를 마시면 안 돼” 하면 아이는 뭘 보고 배울까요? 차를 마시겠지요. 구체적인 배움의 시기(영유아기)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모든 것을 보고 따라합니다. 만약 부모가 음악을 일상적으로 하고 그림을 일상적으로 그린다면 아이들은 그걸 따라서 하겠지요. 그래서 담임과정은 교사가 모든 걸 합니다. 뭘 못한다고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악기도 하면서, 아 사람은 잘하든 못하든 다 하는구나,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잘 못해도 용서해줍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모델로 담임교사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만일 부모도 그런 모델로 존재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런 환경은 아이가 부모와 교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사춘기는 굉장히 많은 게 변화합니다. 털도 나고 호르몬도 왕성히 분비합니다. 사춘기는 끊임없이 고통의 비가 가랑비처럼 내려오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 긴 시기 동안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춘기를 돌아봐도 그렇지요. 끊임없이 변화하면 아픕니다. 자기 내면이 탄생하고 영혼이 자라는 시기입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난 누구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유머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어떤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담임과정의 담임교사는 모든 걸 조금씩 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는 아주 전문적인 교사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으로 말하면 상급과정의 교사는 미술교사라면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좋고, 인문학교사라면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좋습니다. 실제로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상급교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은 예술의 형태를 띠어야 합니다. 인간이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예술은 우리를 교육시키고, 예술을 우리의 의식을 일깨웁니다. 감사합니다.
앗, 끝나기 전에 질문이 하나 더 도착했네요.
-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은 자기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지금까지 강연을 통해 일부분 답을 드린 것 같고요. 이 학교에서 성인들을 위한 강좌를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슈타이너의 말로 다시 돌아간다면 예술은 영혼을 위한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합니다. 자, 이제 집에 돌아가셔서 예술적으로 저녁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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