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왜 발도르프교육인가? 본문
왜 발도르프교육인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구름산학교가 이렇게 넓은 터전을 마련해 안양발도르프학교로 이전해 온 것을 축하드립니다.
1.
어제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듣고 지금도 얼떨떨합니다.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더 드리자면, 우선 어제의 결정은 세대간 격차가 컸다고 합니다. 40대 이하는 잔류, 60대 이상은 탈퇴가 많았는데 인구 비율에서 밀렸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이민자 문제, 런던과 지방의 경제적 격차 문제 등 여러 문제가 혼재되어 있지만 거칠게 정리하자면, 노년층은 이대로라면 연금복지재원을 이민자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있었고, 청년층은 탈퇴하면 자유무역 위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 파운드화와 유로화는 급락했습니다. 동시에 안전자산이라고 여겨지는 달러화와 엔화는 폭등했고 주식시장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유럽의 우파정권들은 이 기회에 유럽연합을 탈퇴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4년간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보다 유럽에 전쟁 위기가 커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유럽연합의 탄생과 유로화의 출범이 유럽의 번영보다는 장기적인 평화체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경제 문제와 연관이 크니 주시해야 할 영역이긴 합니다. 당장에 이웃나라 일본은 갑작스런 엔고 현상에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엔저 덕분에 관광산업이 활황이었고 산업전반에서도 활기를 얻어왔으니까요.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있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로 시작했냐면 발도르프학교가 탄생한 배경 덕분입니다. 독일의 첫 발도르프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19년이었습니다. 이때는 1914년부터 18년까지 이어오던 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입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은 패전국이었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기간시설이 상당수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전쟁배상금도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는 사회운동을 펼칩니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만 그러한 참상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로움이란 사실 사회의 본성을 온전하게 회복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회란 본래, 인간이 머리와 가슴, 손발의 영역으로 나뉘듯 문화 영역과 정치 영역, 경제 영역으로 나뉘고 각자 추구해야 할 가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화에서는 자유, 정치에서는 평등, 경제에서는 박애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발도르프학교는 이런 슈타이너의 사회사상을 토대로 세워졌습니다. 슈타이너는 기업에서 사주와 노동자가 협력하여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그에 동조하던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공장의 사장인 에밀 몰트가 슈타이너에게 학교를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노동자교육을 시도했으나 이후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발도르프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슈타이너는 이 학교에서 자신의 사회사상뿐만 아니라 인지학적 인간학이라는 독특한 인간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교육학을 구현합니다. 여러분이 마주하고 계시는 발도르프교육은 그래서 슈타이너의 인지학, 그 중에서도 인간학과 사회사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슈타이너의 사회사상에 대해 길게 논의하기보다 발도르프교육을 통해 슈타이너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슈타이너는 국가를 경제조직으로 전환시키고, 그 경제조직 내에서 쓸모 있는 노동기계나 될 사람들을 양성하도록 학교를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교육해야 할지는 오로지 성장하는 인간과 개인의 소질에 대한 인식에서만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위해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위한 교육, 그러니까 아이들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소질과 능력에 주목할 때 그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에 새로운 힘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이 주장에 대해 굉장히 동감을 하는데, 왜냐면 미래의 세계는 미래 세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성세대, 특히 노년세대의 정치적 판단은 미래 세대를 파국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국의 현재 결정도 그렇지만 한국은 이미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그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올해 미국의 대선에 주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2.
며칠 전 제 아내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발도르프교육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뭐라고 할 거야?” 이 복잡한 걸 어떻게 한 마디로 줄이냐고 했지만 계속 채근을 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인간교육’ 또는 ‘창의성교육’이란 말을 했는데, 아내의 반응은 식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한 마디로 말을 하면 뭐든 식상하겠지요. ‘전인교육’이라고 하면 더 식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발달중심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발도르프교육의 특징에 대해 ‘자유를 향한 교육’, ‘교육예술’, ‘치유교육’ 등의 다양한 표현이 나올 수 있지만 저는 핵심에 발달론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발달단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 발도르프교육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반학교와 발도르프학교의 가장 큰 차이도 이 발달론에 있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립학교 교육철학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물론 교사용지도서에는 ‘홍익인간’이니 ‘21세기 정보화 사회’니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학문 세계에서도 우리나라는 교육학 영역 중 교육철학 분야가 굉장히 약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발도르프교육이 특히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교육철학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학이 아주 뛰어나지요. 사실 교사들에게는 인간 이해가 교육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식입니다. 지금 만나는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따른 특성과 기질적 차이, 감각적 특성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수업이 아이들과 상관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반학교의 교과서를 보면 아직도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경험주의 과학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죠. 발도르프교육에서 예술적 작업을 많이 하는 것은 인간이 본래 예술적인 존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인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합니다. 약간 복잡할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요. 그런데 몸과 마음은 서로 굉장히 이질적인 요소입니다. 몸이 마음을 붙잡는다고도 할 수 있고, 마음이 몸을 붙잡는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이에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바로 기운입니다. 우리는 이 기운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요. 기운이 없는 날과 팔팔한 날은 차이가 큽니다. 인지학에서는 이 기운을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활기나 활력, 생기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몸은 물질체, 마음은 혼체 또는 아스트랄체라고 하는데 오늘은 우리말로 진행하겠습니다.
몸은 기운의 통제를 받습니다. 기운이 없으면 몸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계속 기운이 없거나 나쁘면 몸에 병이 찾아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운은 마음의 통제를 받습니다. 마음이 좋을 때, 안 좋을 때 기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기분이 얹잖다가도 집에 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면 덩달아 마음이 밝아지고 기운도 샘솟습니다. 반대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기운도 빠져버립니다. 그러면 몸도 쳐지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누구의 통제를 받을까요? 다름 아닌 나 자신입니다. 나는 내 마음의 주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하면 마음은 널을 뜁니다. 화가 나고 슬퍼지고 불안하고 두려워집니다. 충동적인 욕구에 시달리기도 하고, 심해지면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중독이란 무엇인가요? 내가 더 이상 마음을 다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온전하게 자신을 세우지 못하면 욕구의 노예, 습관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이 나, 즉 자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실 몸과 기운, 마음은 모두 자아의 도구들입니다. 아주 좋은 도구들이지요.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끼고 소중이 다뤄야 합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자아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화가 나서 화에 사로잡히면 화가 바로 나인 줄 압니다. 정신을 차리면 부끄럽지만 감정에 사로잡힐 때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술에 취해도 그렇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동물에 비유합니다. 특정 동물 같은 사람, 이렇게 표현합니다. 실제로 동물은 자아는 없고 마음과 기운, 몸이 있습니다. 동물 역시 감정과 욕구가 있고, 사람이 이처럼 동물과 같이 굴면 사실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겠지요. 또, 식물인간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의식을 찾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분을 가리켜 그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욕구나 감정 같은 마음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몸과 기운뿐입니다. 식물도 몸과 기운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끝으로 쇠진하여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산 송장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몸만 남은 것 같은 존재. 좀비는 아닙니다. 좀비는 오히려 맹목적인 짐승에 가까워 보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기운마저 떠나버리는 것으로 이제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광물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연의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아를 지닙니다.
슈타이너는 이 네 가지 요소, 제가 용어를 순화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고요, 몸과 기운, 마음, 그리고 나(자아)를 인간의 4구성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 또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영역으로 우리는 흔히 얼 빠진 사람, 얼 나간 사람을 온전한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인지학은 이 얼에 대해, 다시 말해 영성 또는 정신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고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종교나 신비주의에 가깝다고 보시는 분도 계시지만 슈타이너는 자연과학과 다를 바 없는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지학을 다른 말로 정신과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길게 설명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몸 (물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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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에테르체/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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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스트랄체/영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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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아체)
다시 4구성체로 돌아와서, 이 4구성체는 발달단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만 0세에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옵니다. 이 순간을 일컬어 ‘몸의 탄생’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10달 가까이 머물면서 아기는 세상에 나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몸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갓난아기는 호흡도 거칠고 심장박동도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아직 안정된 몸의 리듬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잠도 재워줘야 하고 젖도 먹여야 하고 똥오줌도 치워줘야 합니다. 정말 처음에는 불규칙한 리듬입니다. 차츰 안정된 리듬을 찾아가는데 이때 부모는 주변 환경,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적 요소까지 안정된 리듬을 고려해야 합니다. 아기는 이제 일어나 걷고 말하고 생각을 합니다. 만 3세쯤 되면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이전에는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자기 생각을 할 줄 알게 되는데,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자기를 일컬어 ‘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3인칭으로 자기 이름을 부르지요. 이 ‘나’가 나오기 전에는 ‘아니야’의 시기가 있고, ‘나’ 이후에는 ‘너’가 나옵니다. 이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친구와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판타지를 통해 놉니다. 만 4세쯤에는 구체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 필요가 줄어들어 만 6세쯤 되면 상황을 꾸며내어 말로만 소곤소곤 놀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만 7세 즈음이 되면 질적인 변화가 찾아오는데 신체적으로는 이갈이를 시작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성장의 방향이 머리에서 가슴, 배, 그리고 손발 끝을 향합니다. 아주 부드럽고 약한 부분, 즉 두뇌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뼈, 그리고 뼈보다 단단한 치아에 이릅니다. 이갈이를 하게 되면 이제 학교에 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만 7세에 이갈이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기운이 탄생했다, 또는 독립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 몸속에서 신체장기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던 기운이 이제 일정 부분 자유로워져 사고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기억력이 상당히 강해집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학습할 수 있고 암기할 수 있지만 유아기에 기운은 온전히 몸을 만들고 의지를 키우는 데에 쓰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너무 심하게 조기교육을 시키면 아이의 몸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 7세에 학교에 입학했다고 해서 교육이 사고 위주여서는 안 됩니다. 아직 아이들은 유치원 때처럼 모방의 힘이 강하고 판타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는 호감이 강하기 때문인데, 강한 호감 속에서 판타지가 생깁니다. 반대로 반감 속에서 사고 활동이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은 3,4학년 때까지 반감보다 호감이 강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무조건 사랑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이 시기에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려고 하는 것은 반감을 키우는 것이고 성급하게 세상을 판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내가 하나라고 여기던 아이가 3학년이 되면 차츰 내적 세계와 외부 세계가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자기만의 내면이 형성되기 때문인데 이때 심한 불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략 3학년 말에서 4학년 1학기 정도에 이런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때는 신체적으로도 많은 발달이 오는데 얼굴과 머리는 동글동글하고 아이의 모습이지만 몸은 길쭉하게 자랍니다. 성장통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나 쉽게 피곤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내적으로 불안감이 찾아오는데 마치 낙원으로부터 쫓겨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아이의 자아가 깨어나는 과정입니다. 이때 ‘우리 엄마가 정말 내 엄마 맞나?’, ‘선생님은 나한테 관심이나 있으실까?’, ‘죽는다는 건 무얼까?’ 하는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3학년 시기에 모두 협력해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사를 짓고, 집을 짓는 활동을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해줍니다.
6학년이 되면 비로소 추상적인 사고의 힘이 생겨납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의 팔다리는 길어지고 내적으로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 탐구하고자 합니다. 세상을 논리적으로 따지고 싶고 사회 문제에 관심도 많이 생겨납니다. 주장하는 글쓰기는 이 시기에 와서 가능해집니다. 자기 논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이제 자와 컴퍼스를 이용해 정확한 기하를 작도하고, 상업수학에 대해 배우며, 우리말의 문법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광물학이 도입되고 본격적으로 스포츠를 배우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차츰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최근에는 속도가 빨라져 5학년 2학기가 되면 여자아이들 중 빠른 아이들은 반감이 아주 강해지기도 합니다.
사춘기는 만 14세에 정점을 이룹니다. 흔히 중2병이라고 하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신체적으로도 급격한 변화가 찾아와 아이들 대부분 2차성징을 겪습니다. 이제 생식기가 완성이 되어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나이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시기부터 청소년교육이라고 하여 중요한 교육적 시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사춘기라는 것은 다른 말로 마음의 탄생 또는 마음의 독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은 나의 것’입니다. 더 이상 엄마 것도 아니고 아빠 것도 아닙니다. 다른 말로 ‘감정생활의 독립’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가 부모님들에게는 시련의 시기일 수도 있는데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힘든 시기입니다. 마음이 독립하긴 했어도 판단력, 사고력이 온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제 사고하는 힘, 탐구하는 힘을 기르는 것에 방점이 찍힙니다.
이 세 번째 시기의 특징은 지적 발달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것과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모순적인데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지만 아는 건 무척 많아지므로 내적으로 몹시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만약 이때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중독 현상에 빠지거나 극우 커뮤니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일베와 같은 극우 커뮤니티의 특징은 강력한 정체성을 부여해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좌절된 마음은 강렬한 자극을 갈구하고 중독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입시교육에 따른 엄청난 학습량과 극심한 경쟁이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특히 16, 17세 사이에 아이에게는 만 3세와 9세 때처럼 자아의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예술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사회 실습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전가지 외부에 권위가 있었다면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은 자기 안에서 권위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 21세가 되면 드디어 자아체가 탄생합니다. 이제는 자아가 독립하는 것이므로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여 실천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집에서 붙잡고 있는 게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제 부모님의 역할은 다 한 것이므로 아이는 독립하여 사는 게 맞습니다. 만약 사회적 여건 때문에 부득이하게 집에 있어야 한다면 집안일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최근들어서 점점 사춘기는 빨라지고 자아의 탄생은 늦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른, 마흔이 넘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점점 어른들의 자아가 약화되는 것도 시대적 추세입니다. 저는 이것이 현대 교육의 결정적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거지요.
길게 이야기했지만 교육의 핵심은 자아의 탄생 또는 독립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은 발달단계마다 그 과제가 다릅니다. 유아기에는 마음껏 뛰어놀고 온몸으로 세상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아동기에는 세상을 가슴으로 느끼고 상상력과 예술이 강조된 수업을 통해,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과학적인 탐구와 토론, 사회적인 참여 활동 등을 통해 길러지게 됩니다. 각 단계마다 자아의 위기가 찾아오지만 그것은 도약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발달단계마다 교육의 형태는 달라져야 하지만 본질적인 가치는 일관됩니다. 모든 수업에는 예술적인 작업이 깃들어야 하며 아이들의 개별적 특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을 잃지 않을 것이며, 자기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12학년을 졸업할 때쯤에는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더 공부를 할 수 있고 여행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곧바로 일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는 분명해져야 합니다.
3.
저는 발도르프교육이 교육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교육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굳이 ‘발도르프’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현재 우리의 일반적인 교육은 인간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교육의 핵심에 인간이 없고 오로지 좋은 상품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여기에는 비관적인 세계 인식이 숨어 있죠.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시험에 매달리고 온갖 스펙을 쌓아야 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좋은 조건에 자신을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돌아볼 여력이 없습니다. 아마 부모님 세대에서는 조금만 열심히 해도 취업이 그리 힘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기였고 번영이 계속될 거라 믿었지요. 그렇지만 현재는 내리막 세상입니다. 많은 경제학자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습니다. 당장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있고, 성장 동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소수의 재벌이 부조리한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는 동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한계에 내몰렸습니다. 정치권력이 교체되지 않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어떤 학자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기를, 한국 사회의 부패가 엘리트 카르텔 유형이라고 합니다. (부패의 4가지 유형 : 독재형 - 중국, 인도네시아 등. 족벌형 – 러시아, 필리핀 등. 시장로비형 :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엘리트 카르텔형 – 한국, 이탈리아 등) 우리 사회에서는 관료, 정치인, 청와대, 군, 기업 등에서 같은 지역 출신, 같은 학교 출신 엘리트들이 함께 뭉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부패를 통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 학자는 한국이 열심히 공부해 출세해서 부정부패하는 게 목표인 나라 같다고 평가합니다.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요? 우리에게 시급한 건 정치 참여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아이들을 건강한 의식의 어른으로 키워내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자유로운 어른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교육이 왜 사회운동의 일환인지를 이 지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을 갖추고, 풍부한 창의성과 예술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6. 6. 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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