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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시작은 음모론, 끝은 개소리 본문
시작은 음모론, 끝은 개소리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12·3 계엄 선포의 배경은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음모론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를 설명하는 쉬운 답이자 매력적인 설명이다. 음모론이 판칠수록 과학적 사고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2025. 01.25
히틀러는 소위 ‘배신자 음모론’ 신봉자였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것은 독일군의 전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의 배신 때문이라는 음모론이다. 당시 독일 국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실망과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이때 패전의 책임이 유대인 때문이라는 히틀러의 주장은 그의 광기에 찬 연설과 함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 음모론은 독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유대인이라는 질병유전자를 제거하여 게르만족의 결핵균을 퇴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음모론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근거 없는 음모론을 믿을까?
전상진의 책 〈음모론의 시대〉에 따르면 음모론은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불교에 ‘생즉고(生卽苦)’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고통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때로 고통을 일으킨 장본인을 찾아내 분풀이하기도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죄 없는 어린아이가 왜 사고로 죽어야 하는지, 열심히 일했는데 왜 사업에 실패하는지, 선한 사람이 왜 끔찍한 고통을 겪는지, 말하자면 끝이 없다.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아이가 어처구니없는 확률(우연)의 결과로 죽었다는 사실이 초래하는 숨 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 쉬게 할 수 있다면?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신정론(神正論)은 신이 존재함에도 악(惡)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대개의 종교는 나름의 신정론을 가지고 있다.
근대는 신의 죽음, 즉 교회의 몰락과 함께 시작되었다. 교회가 몰락한 것은 근대과학이 사람들을 계몽시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막스 베버는 신정론이 더 이상 고통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유, 평등, 인권을 중시하는 근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고통을 설명할 이론이 필요했다. 근대의 탄생과 함께 음모론이 판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학이 종교가 되어가는 시대, 신정론을 대신하여 고통을 설명할 과학적인(듯 보이는) 이론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졌을 때, 실망을 넘어 큰 충격을 받는 사람도 있다. 선거가 과열되어 상대를 악마화하는 지경까지 이른 요즘의 선거에서 패배한 쪽은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전근대 시대의 권력은 신이 부여했다. 신성한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권력의 향방은 그냥 신의 뜻이다. 하지만 시민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민주공화국에서 선거 결과가 고통을 줄 때 그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합리적인 답은 아마도 우리 편이 지지를 적게 받았다는 것이리라. 문제는 이런 답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다. 이때 부정선거 음모론이 답이 되어 사람들을 위로한다.
개표소에서 밤 지새웠던 기억
1987년 치러진 첫 번째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 선거는 전두환 독재에 저항한 6월 항쟁의 산물이라,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당선되자 많은 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당시 진보 진영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일부 투표함을 탈취하여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5년 후 1992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다시 있을지 모를)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대학생 공정선거 감시단’이 조직되기도 했다. 필자도 감시단의 일원으로 기말고사 기간 중인데도 개표소에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개표소에서 이렇다 할 부정선거 행위를 보지는 못했다.
2002년 노무현이 근소한 차이로 이회창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또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당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지 못하고 패소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탁현민 전 청와대 자문위원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문재인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술회했다. 방송인 김어준은 그 대선에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더 플랜〉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일명 K값이 1이 나와야 하는데, 1.5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문재인이 당선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K값이 1.6 정도가 나오는 것으로 확인되자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
이처럼 1987년 이후 근소하게 승부가 갈린 선거에서 여러 차례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사실로 밝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2024년 총선에 대한 부정선거 의혹은 윤석열의 12·3 계엄 선포의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자기 진영이 선거에 지면 누구나 고통스럽다. 패인을 분석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패배를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받아들이기 힘든 선거 패배를 설명하는 쉬운 답이자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마저 주는 매력적인 설명이다.
음모론은 분명 위안을 준다. 하지만 위안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음모론을 믿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종종 인지적 편향에 빠진다.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는 받아들이고 부정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확증편향’이 한 예다. 과학 논문이 출판되기 위해서는 동료평가를 받아야 한다. 제삼자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꼼꼼히 검토하고 질문한다는 뜻이다.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논문은 출판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로 교육받는 동안 끝없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의심하고 재검토하는 훈련을 받는다.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음모론에 깊이 빠지면, 그것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오히려 집착하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인지부조화 이론’이 말하는 인지적 편향의 예다. 종말론을 믿던 사람들은 실제 종말이 오지 않아도 종말이 연기되었다고 둘러대며 오히려 자신의 믿음을 강화한다. 가설을 부정하는 증거가 나오면 가설을 기각하는 것이 과학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 이론에서 반증 가능성, 즉 틀릴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계산 결과, 수성의 근일점(태양의 둘레를 도는 행성이나 혜성의 궤도 위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운 점)이 이동하리라 예측했다. 그것이 맞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옳은 것이고, 틀리면 그 이론은 기각된다. 이처럼 일반상대성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므로 좋은 과학 이론의 후보이다. 물론, 수성의 근일점 이동의 관측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 반대 증거가 나왔을 때 이론을 기각하지 않는 것은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마이클 셔머의 〈음모론이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음모론은 종종 더 큰 세계관의 일부이다. ‘정부는 언제나 국민을 기만한다’라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9·11 테러가 미국 정부의 조작극이라거나 아폴로 11호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음모론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 사람에게 음모론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증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 음모론이 자신이 지지하는 세계관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음모론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다. 음모론에 대한 지지는 이런 세계관을 가진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사회적 지표가 되기도 한다.
거짓과 ‘개소리’의 차이점
인터넷과 SNS가 등장하며 음모론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원래 음모론은 나름의 이론 체계를 가진다. 음모론을 알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보화시대의 사람은 공부하지 않는다. 지금은 새로운 이론을 이해하려 할 때 깊이 생각하기보다 유튜브 요약본을 찾아 본다. 사람들은 정보를 검증하고 진위를 판단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모론에 구멍이 있다면 그곳을 채울 정보를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참·거짓과 무관하게) 당신이 믿고 싶은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수많은 음모론을 퍼트리며 단지 “사람들이 그러는데”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빈약한 음모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비결은 ‘반복’이다. SNS 시대에 중요한 것은 합리성이 아니라 좋아요, 리트윗, 공유하기의 횟수다. 사람들은 (때로 댓글부대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정보의 홍수 속에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팩트를 체크하거나 내용의 정합성을 따지기보다 SNS에 자주 보이는 정보나 구독하는 유튜브 영상을 그냥 믿는다.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가짜뉴스가 메워준다.
최근에는 가짜뉴스보다 ‘개소리(bullshit)’가 더 큰 문제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에 따르면, 거짓은 진실을 의식하며 만들어지지만, 개소리는 진실에 관심이 아예 없다. 헬기로 투입된 군병력이 창문을 깨고 국회에 난입했으나 국회 기능을 마비시킬 의도는 없었다는 대통령의 담화가 그 예다. 개소리는 그냥 둘러대며 내뱉는 말이라 틀리지조차 않는다. 따라서 개소리는 가짜뉴스보다 대응하기 힘들고, 대응하는 사람이 만드는 사람보다 수십 배 더 노력해야 한다. 명백한 거짓보다 어이없는 개소리에 사람들이 좀 더 관대하다는 것이 문제를 악화시킨다. 아직 우리는 개소리에 제대로 대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때로 진실이기 때문이다. 1998년 ‘총풍사건’은 정치권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북한과 거래한다는, 당시까지 음모론으로 돌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정원이 댓글을 달고, 법관이 재판 결과를 두고 정치권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 신뢰가 낮은 사회는 음모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정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는 한 단계 낮아질 것이고, 음모론의 토양은 한층 비옥해질 것이다. 음모론이 판칠수록 과학적 사고방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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