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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취학 연령의 유아들을 위한 발도르프 교육 - 볼프강 자스만스하우젠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유아교육

미취학 연령의 유아들을 위한 발도르프 교육 - 볼프강 자스만스하우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6. 21. 21:08

미취학 연령의 유아들을 위한 발도르프 교육

- 보편적인 인간 능력을 키우며 장래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인성 함양을 목표로 한 교육

 


볼프강 자스만스하우젠 박사
Dr. Wolfgang Saßmannshausen
김경숙 譯 주한 독일 문화원
1996.9.16. 독일문화원에서 발표

 


시인 장 파울(Jean Paul, 1763-1825)은 그의 책 <레바나 또는 교육론(Levana oder die Erziehlehre)>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았다. 인간은 유아기 때 즉, 생후 첫 3년간이 전 생애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만 3세 아동의 예를 들면 아버지가 "웃옷을 입어라, 지금 밖에 나갈 거니까"라고 말하면 아이는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아버지가 "그래? 좋아, 그럼 걸어 두고 그냥 가자"라고 하면 아이는 또 "아니에요"라고 한다.

아이는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성인들의 이성적인 대응은 대부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어린이의 이러한 의사 표현은 주변 정황과는 관계없이 그냥 그 자체를 말하는 데 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이는 자기 자신과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체험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 인간 발달의 중요한 시기를 우리는 '저항기'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기(3세 무렵)부터 아동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기억하게 되며 관념의 세계를 알게 되고 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자신의 외부에 놓여 있는 세계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관계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자기 자신과 외부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는 자신을 "나"라고 칭하는 능력에서 가장 은밀하게 표현되고 있다. "나"라는 말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언어 능력의 발달은 매우 특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아동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주변 세계와 구별되는 자신에게만 속하는 하나의 세계로 체험하게 된다. 인간은 관념을 통해서 세계를 그리게 되고 조형(造形)적으로(gestaltend) 세계를 파악하게 된다.

이 시기를 앞두고 있는 아동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자.

생후 일 년된 시기의 아동이 하는 모든 행동은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자주성(Souveränität, 주체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중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공간 속에서 서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동작(직립보행)이다. 어린아이가 혼자서 첫 걸음마를 떼는 것을 본 사람은 그 순간 아이가 마치 삶의 커다란 성취를 체험한 것과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생후 2년 된 시기에는 영혼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자주성에 대한 성취를 보여주게 된다. 이 같은 자주성은 특히 언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린이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선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부터 나타난다. 즉, 의사 전달 수단으로서의 역할이다. 어린이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로 자신이 처한 상황, 자신의 기분 상태 또는 자신의 요구를 표현한다. 생후 3년이 되면 비로소 사고를 통한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이때부터 언어는 개념적인 이해의 표현이 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한 아이가 생각에 빠져 의자 위에 앉아 있다가 두 할머니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들고 눈을 빛내며 말을 한다. "둘은 할머니들이야" 그러나 이 순간 할머니라는 개념은 아직 습득된 하나의 단어로 존재할 뿐이다. 장 파울이 말한 바대로 가장 지혜로운 시기인 세 번째 중요한 발달 단계는 정신적인 개념적 세계에 맞서는 자주성의 습득이다.

이제부터 아동이 세 번째 발달 단계를 성취하기까지 어떤 단계를 밟게 되는지 살펴보자.

주목할 만한 점은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행위들(Geste), 걷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등이 어린이 자신의 관념, 즉 의도를 통해서 발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이는 이 발달 단계에 대해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또는 스스로의 사고를 통한 관념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발단 단계는 습득되는 것인가?


언어 습득의 예를 통해서 이 과정을 살펴 보자.


생후 2년의 초기에 어린이는 모국어를 들으면서 모국어 소리의 특성에 따라 소리를 내게 된다. 또 그 언어만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발음의 경우는 그대로 몸에 배게 된다(in den Leib eingeschrieben). 우리가 모두 경험하는 바로는 나중에 외국어를 습득하는 경우 그 언어만이 갖고 있는 특정한 발음은 익히기가 매우 어렵고 제대로 배우는 데 오래 걸린다. 또 배워도 모국어로 배운 사람과 외국어로 배운 사람은 역시 이 특정한 발음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아들은 완전히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생산해낼 수 없는 언어를 단순히 들음으로써 자신의 몸으로 언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현상으로는, 조금 더 발전된 단계에서 어린이는 한 언어가 갖고 있는 불규칙이나 예외를 규칙적인 것으로 말하는 착오를 범한다. (예를 들면, 영어나 독일어의 경우 불규칙 동사를 규칙동사로 하는 경우인데 예를 들어 singen(노래하다)라는 동사의 과거형은 불규칙으로 sang이라고 해야 하는데 sangte라고 한다든지, 영어의 경우는 sang라고 해야 하는 것을 singed라고 하는 경우이다.) 물론 아동은 이 같은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적 표현이 내면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며, 녹음기와도 같이 기존에 미리 저장되어 있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린이는 언어의 정신(Geist der Sprache), 즉 언어의 본질 내지는 언어의 형성 원칙에 대한 본능적인 일체감을 갖고 있고, 이 같은 일체감(Verbundenheit)을 통해서 자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 중 특별히 눈에 띄는 현상은 어린이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아름답고 천재적인 새로운 단어의 창조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면을 관찰할 수 있다. 우선 어린이는 외부 세계에 대해서 자신을 완전히 열고 내어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 발달에까지도 그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 번째, 어린이의 자아는 자아 표현의 본질(Ausdrucksform), 말하자면 내재하는 표현 형태의 정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직접적인 연결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껍질(현상, Erscheinung)과 핵심(본질, Wesen)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서 유아는 그의 존재가 온전한 하나의 감각 기관(ganz Sinnesorgan)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감정의 이미지 속에 그 본질 자체가 같이 체험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한 어린이가 갖는 인상과 그 어린이 사이에는 관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나와 나의 현실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어린이는 자신의 행위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디서나 항상 본질적이다.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는 삶의 과제가 모든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상적인 인간을 현실에서 재발견하고 실제적인 삶 속에서 이 같은 관계를 이룰 때 모든 어린이가 갖고 있는 동질적인 삶의 질에 다가가게 된다는 것을 얘기했다. 모든 어린이들은 시민적, 기성 사회의 구속이 없는 동질적인 삶(자기 스스로의 정체성, Identitat seiner selbst)의 최고의 형태를 우리에게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생후 3년은 한 인간의 생애에서 일생을 걸쳐 지속되는 안정을 부여 받을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며, 또 반대로 이 시기에 인성 발달의 장애가 일어나는 경우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장래의 삶에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온다.

이와 같은 상황이 유아 교육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교육 목표 또는 발달 목표를 가지고 외부로부터 어린이에게 주어지는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어린이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쌓아가면서 동시에 아동이 자신의 정체성(Identitat)을 갖기 위해 "나"를 각인하는(Sich Einschreiben) 자아 형성의 여지를 마련해 주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이 파트너는 자신의 삶의 실현 속에서, 즉 몸을 움직이고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속에서 바로 진정한 자기 자신임으로써 아동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줄 수가 있다. 즉, 교육자 자신이 바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일 때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아동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추구를 위한 방향을 스스로 찾아 나갈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동일한 것은 동일한 것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격언이 해당되는 시기이다. 반항기는 정체성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안정이 건전하게 마무리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최초의 자아 발견에 대한 극단적인 실험 기간이며 자신이 습득한 삶의 안정을 바탕으로 조형적으로 세상을 파악하려는 자아(Personlichkeit)와의 극단적인 놀이 기간이다. 3세가 된 아동의 경우 이 과정은 만드는 놀이(im gestaltenden Spiel)에서 특히 잘 관찰할 수 있다.

3, 4세 된 아동에게서 실례를 찾아보자.


한 어린이가 손에 어떤 대상물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큰 나뭇잎 하나를 들고 있다. 나뭇잎이 손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이내 배의 돛으로 변한다. 그러나 잠시 후 머리에 쓰는 왕관으로 변했다가 또다시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 놀이는 어린이가 사물의 세계에 매순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데서 매우 이상적인 놀이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놀이의 우수성은, 아동은 이 놀이에서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정의되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감각적인 현상의 세계(나뭇잎은 나뭇잎이다)나 규정이나 금지 사항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정신의 세계도 이 놀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매순간 순간적인 상상과 함께 체험하는 세계와 그 순간에만 유효한 놀이 규칙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형태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는 어린이 자신에게서 나오며 외부로부터의 충동은 없다. 이 같은 능력을 특징 지우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자유라는 개념일 것이다.

어린이가 내재하고 있는 이 같은 능력을 키우고 숙련하며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적인 환경이 요구된다. 이 같은 교육의 몇 가지 내용들은 이미 구체화되어 있고 여기서 우리는 발도르프 유아 교육의 몇몇 기본 원칙을 살펴볼 수 있다.

어린이는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안정을 필요로 한다. 공간적 환경의 질서(Ordnung)가 요구되며 사물들은 제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어린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심사숙고가 없이도 환경에 익숙한 자신의 습관에 따라 행동할 수가 있다. 어린이는 항상 주변환경 속에서 충분한 질서를 필요로 한다.

공간적 환경의 또 다른 측면은 사물들은 지나치게 강요하는 성격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완벽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자동차나 완벽한 형태의 인형은 어린이로 하여금 이 장난감이 갖고 있는 기능들을 놀이에 활용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그 결과 어린이의 내면 속에 있는 造形 환타지는 크게 제한을 받거나 전혀 사용되지 못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자유의 의미에서 어린이 스스로가 장난감에 기능성들을 부여할 경우 놀이는 전혀 다르게 발전하게 된다.


놀이 대상물들의 기능이 적으면 적을수록 자유로운 놀이는 더욱 가능하다. 자연 속의 사물들 예를 들면 조개, 밤, 돌, 나뭇가지, 솔방울, 간단한 헝겊, 널판지 등은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놀이 재료가 되기도 하는데 이 같은 재료들은 기능화로부터 자유롭다.

어린이의 안정성에 보다 내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시간적 질서이다. 각각의 삶에 따른 일정한 시간 흐름, 즉 리듬은 어린이를 감싸서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아침에 유치원에 오면 언제나 자유로운 놀이를 하도록 되어 있다면 어린이는 항상 새로이 바뀌는 프로그램이 주어지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놀이에 임하게 된다.

시간 속의 질서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괘종시계이다. 즉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과 같다. 세상 속으로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식의 행동 뒤에는 자신을 다시 안으로 끌어 모으는 행위인 리드미컬한 동작과 음악이 있는 윤무나 역할놀이 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서는 자아로 돌아오게 하는 것, 예를 들면 이 나이의 어린이에게 매우 효과가 큰 리듬과 반복을 통한 동화나 이야기 듣기에서 벗어나 다시 새로운 자유로운 놀이, 예를 들면 정원에 들어가서 논다든지 하는 놀이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리드미컬한 들이쉼과 내쉼 안에서 어린이는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를 자신에게 각인시켜 육화하게 된다.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적 요소는 교육을 맡은 성인의 행동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교육의 기본 원리 동일한 것은 동일한 것을 통해서 얻어진다라는 의미에서 성인의 자유로운 행동은 어린이에게는 가장 좋은 교육적 환경을 제공한다. 이 말은 교육자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주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하여 필요를 인식하고, 자유로운 의지의 충동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항상 새삼 발견하게 되는 다음과 같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은 바로 이 같은 원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교육자가 유치원에서 그룹 지도를 하는 경우 두세 명의 어린이들이 교사 옆에서 교사를 돕고 나머지 20명의 어린이들은 소그룹으로 조용히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는 광경 같은 것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성인과 어린이 사이의 이 관계를 본보기의 모방(Vorbild und Nachahmung)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관계는 그러나 모방되어야만 하는 시범적인 것 내지는 규범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유대(innere Band)를 말한다. 어린이의 모방 능력은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자유의 표현이며 이는 어린이가 자신의 주변 인물들 속에서 비교될 수 있는 것을 인지한 경우에만 개발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비교될 수 있는 것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본질이 일체를 이루는 인간을 의미한다.

5세가 되면 어린이는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변화는 6세, 7세가 되면서 더욱 뚜렷한 양상을 띄게 된다.

놀이는 순간적인, 현시적인 것에서 지속적인 것으로 변하게 된다. 동시에 놀이의 형태는 더욱 사실적(sachlich)이 되며 더욱 체계적이 된다. 즉흥성의 힘은 점차로 사라지는데 이 같은 현상은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잘 파악된다. 4세 된 어린이가 한 순간에 예술적인 분위기가 나는, 현대 미술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미로의 그림과 비교될 수 있는 그림을 보여 준다면 5세의 어린이는 이제 한 가지 색상의 본뜨기 그림 같은 것이나 주변 환경의 사물들을 그대로 베끼는 식의 그림을 그리는데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정확한 그림, 예를 들면 배나 비행기의 정확한 형태를 그리기 위해서 교육자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게 된다. 상상력도 크지만 사물에 대한 정확성에 관한 관심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 외에도 나타나는 현상은 어린이는 사물의 상호 연관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삶에 참여하고자 한다. 유치원에서의 단체생활에서 작은 일을 맡으려고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화분에 물 주는 일, 식탁을 차리는 일, 설거지를 하는 일, 경우에 따라서는 정기적인 소규모의 장보기나 이웃으로의 심부름 등이다. 어린이는 전체 사회에서의 자신의 특별한 위치를 의식하게 되고 예를 들면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를 보살피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 같은 견해에 모순되어 보이는 점은 상급반 유치원생들은 성인 교육자들로부터 의지의 진지함이나 내면적인 결단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즉 유치원에서의 단체생활의 습관으로 되어 있는 사항들, 규정이나 관습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이를 거역한다는 점이다. 이를 보다 정확하게 관찰해 보면 이들의 의도는 놀이 규칙으로 되어 있는 것이 성인 교육자가 정말로 바라는 바이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매우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다.

어린이 스스로가 실천하고 있는 바, 즉 자신의 생각을 의지를 가지고 미래로 옮겨 단계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것을 모범(본)이 되는 성인을 통해서 체험하고자 한다. 어린이는 성인이 갖고 있는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의지를 통해 실천될 때 이를 매우 참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들에서조차도 이 같은 의지의 실천을 추구한다. 생각과 의지의 관계(성인의 언행의 상관관계) 속에서 어린이는 성인을 실험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요구를 갖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어린이 스스로가 생각과 의지라는 양극 사이에서의 일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삶의 질은 사고와 행동의 일치라는 의미의 일체성(Verbindlichkeit)과 관련이 있다. 일체성은 오늘날의 인간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성을 감안할 때 인성 교육의 중요한 현안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모든 현대의 문화 발달은 다음과 같은 유사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즉 전통이나 종교, 관습 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지배적 가치관이 약화되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 영혼이 삶 속에서 외적으로 유지해온 틀(규범적 가치)은 점점 더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다음과 같은 경향을 통해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직업적으로 길들여진 사고를 강요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통한 개인적인 확신과는 무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믿음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행동의 의지의 표현 역시 그러하다. 한 인간이 하는 행동과 그 인간이 중요시 여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고하는 것과 느끼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은 하나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일체성에 대한 안정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를 옛 말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인성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일체성와 도덕심(Moral)이다.

그러나 5세와 7세 사이의 어린이는 이 같은 일체성과 도덕이 자신의 기본 행동 지침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나이의 어린이는 자아의 실현을 위해서 현실의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해 이 같은 삶의 질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성인을 본보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유아기는 한 인간의 온전한 인간성(die Qualitat der vollen Menschlichkeit), 즉 나중의 삶의 성취나 발전의 기본 동기 내지는 첫 음절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이다. 모든 어린이가 갖고 있는 바람은 이 같은 삶의 질이 개인화 되고 영혼화 된 한 성인을 만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는 무한으로 자신을 내어 맡기며 그럼으로써 자신을 상처 받을 수 있게 한다.

이와 동시에 두 번째 동기가 나타나는데 성인은 어린이에게서 말 그대로 자신의 가장 좋은 면만을 기대하는 한 존재를 보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가장 좋은 면이란 성인에게 있는 아직 완전히 발전되지 못한, 강제나 도덕적인 요구를 통해서는 개발될 수 없는 인성의 부분을 의미한다.

이 같은 관계에서 볼 때 아동 교육은 상관적인 것이며 아동 교육은 좁은 의미에서 교육자 역시 어린이를 통하여 동시에 동일한 정도로 자신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아기의 아동 교육은 상호적인 만남(partnerschaftliche Begegnung)이다. 즉 각자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남에 참여하고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새로운 면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만남은 운명적 만남이다. 각 개개인의 자아 성취와 인생관의 근원이 서로에게 다가가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를 통해서 하늘은 한 조각의 문을 열어준다라는 오래된 지혜의 말은 이렇게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s://m.blog.daum.net/cleanmountain/10135162?category=8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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