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한글교육, 언제부터가 좋을까? - 유아교육기관의 문자교육에 대하여 (2019. 7. 19.)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유아교육

한글교육, 언제부터가 좋을까? - 유아교육기관의 문자교육에 대하여 (2019. 7. 19.)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3. 4. 00:23

한글교육, 언제부터가 좋을까?

- 유아교육기관의 문자교육에 대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유아교육기관에서 선생님,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아이들의 한글교육입니다. 언제쯤 한글을 가르치는 게 좋은지에 대해 많은 분이 고민하십니다. 초등학교 입학이 코앞인데 발도르프어린이집에서는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걱정하시는 분도 많고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이 한글을 다 알고 오는 걸로 여기는 경향이 아직도 있고, 자음 모음 수업을 하더라도 너무 빨리 진행되어 아예 모르는 아이들은 따라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가 학습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늦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게 아닌지, 하는 걱정을 토로하시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학습, 다시 말해 조기교육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는 추세 같습니다. 어느 마트에 가 보아도 책 코너 한쪽에는 영유아를 위한 학습지들이 따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2세 한글쓰기, 1세 수학첫걸음, 심지어 0세부터 배울 수 있는 교구세트도 있습니다. 검색을 해 보면 유아 학습시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생각놀이, 느낌놀이, 두뇌연습 등입니다. 수십 만원짜리 그림책 전집도 흔합니다. 한 달에 200만원, 300만원 하는 유치원 중에는 한글뿐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미술, 한자, 음악, 심지어 중국어까지 가르쳐 주는 곳도 있습니다. 홍보 글을 보면, 영유아기에 두뇌발달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니 가급적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게 좋다는 식입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을 해 주어야 한다는 부추김도 있고요.

작년 출산율이 0.95명이라고 합니다. 많은 가정에서 아이를 한 명도 채 낳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부분 한 명(많아봤자 두 명 또는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지금 시대에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을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한 명 출산이 정책이었던 중국에서는 ‘소황제’라고 해서 애지중지 아이를 키우는 게 일종의 문화였습니다. 그 와중에 최고의 교육 중 하나가 발도르프교육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발도르프 교육기관이 폭발적으로 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교육이 좋다는 소문은 돌고 있지요. 하지만 이 발도르프 교육기관에서 영유아에게 학습을 전혀 시키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혼란스러워하는 분도 계시는 듯합니다. 좋은 교육이라고 하는데 왜 학습을 안 시키는 건지, 의문스러우실 수도 있겠습니다. 사회에서는 일찍부터 학습을 시켜야 (앞서 가지는 못해도)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일종의 상식처럼 통용되지요.

물론 요즘 젊은 부모님들은 영유아 시기에 과도한 학습을 시키면 아이에게 안 좋다는 정보도 갖고 계십니다. 새로운 트렌드로 ‘적기교육’이 부상했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타협을 하고자 합니다. 숲에서 많이 놀게 하되 그래도 다섯 살, 여섯 살에는 한글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늦어도 일곱 살에는 한글을 떼어야 초등학교에 갔을 때 자신감 있게 학습을 따라 가지 않을까? 우리 아이는 두 살이지만 벌써 한글에 관심이 많으니 가르쳐도 되지 않을까? 책을 많이 읽히게 하려면 한글을 빨리 떼야 하는 거 아닌가? 놀이식으로(발도르프 한글놀이?) 하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러한 불안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남부럽지 않게 최고로 키우고 싶은 열망도 이해합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가 나중에 커서 “왜 나를 잘 못 키워 줬냐”고 원망이라도 하면 안 될 테니까요. 하지만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어른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서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심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요. 우리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랑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껴안고 입을 맞출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도? 그건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행위입니다.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했다면(좋은 관계에서)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니라면 폭력입니다. 이것은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스킨쉽을 원합니다. 만약 부모의 신체 접촉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원인을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키우는 아이만 할 때 우리가 가장 원했던 건 무엇일까요? 아이가 너무 어려 그 시절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기억이 나는 어린 시절이어도 좋습니다. 어린아이였을 때 가장 바랐던 것,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마음껏 놀고 싶었을 수도 있고, 엄마나 아빠가 집에 일찍 들어오길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동생이 얄미워 갖다 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영유아 시기에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많이 사랑받고 싶고 놀고 싶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을 수는 있어도요. 배움의 욕구는 이갈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상의 대부분 아이들이 이갈이 시기에 학교에 갑니다. 이갈이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이마다 이갈이 시기는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만 7세를 전후해서 유치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태어난 해는 만 0세입니다. 이때 아이는 엄마로부터 몸이 독립되지요. 아이의 몸은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하나였습니다. 아이의 몸은 모두 엄마가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이제 독립적인 개인의 삶이 시작됩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비율상 머리가 무척 큽니다. 이것은 아이의 발달에서 머리가 가장 먼저 중요하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0-3세 사이에 아이의 두뇌 발달이 7,80% 가량 이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심장과 폐와 같은 순환 기관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이어서 소화기관과 신진대사기관이 중점적으로 발달하며 영유아기의 끝에 다다릅니다. 팔다리도 쑥쑥 자라서 키가 많이 큽니다. 이제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면 엄마로부터 받았던 몸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체의 성장은 기존의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변한다는 걸 뜻합니다. 우리 몸은 7년마다 거의 새롭게 바뀐다고 하지요.

7년마다 이가 빠지고 새 이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이가 아무리 썩어도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갈이는 일생에 딱 한 번, 만 7세 전후에 일어납니다. 엄마로부터 받은 몸에서 이제 자기가 만든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부모로부터 독립해 갑니다. 어린아이들이 우리 어른과 다른 점 중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와 달리 늘 기운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1시간만 놀아 줘도 기진맥진해지는 우리와 달리 아이들은 밤 늦게까지도 활력이 넘친다는 걸요. 아이들은 밤이 오는 걸 슬퍼하지요. 더 놀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일 또 놀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잠이 듭니다. 기운이 넘치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요. 아이들에게 놀이란 기쁨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선호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0-7세 사이에 아이들이 넘치는 생명력으로 신나게 놀기도 하지만 왕성하게 자기 몸을 형성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갈이 이후에도 아이들은 쑥쑥 큽니다. 그러나 이갈이까지의 발달은 신체장기의 기본적 기능과 형태를 만들어 내는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실제로 이갈이 때까지 건강하게 잘 큰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만 7세에 아이들은 중대한 과업 하나를 매듭 짓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에 생명력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요? 인간의 삶에서 영유아기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 안의 생명력이 온전히 놀이와 함께 신체기관을 형성하는 데 쓰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도르프교육은 이 힘을 형성력이라고도 부릅니다. 이갈이를 하면서 비로소 생명력 또는 형성력의 일부 자유롭게 풀려나 내적 작업을 하는 데 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아이들은 기억력이 강해집니다.

이갈이와 기억력의 강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날마다 같은 놀이를 해도 지겨워하지 않습니다. 마치 강아지가 매일 공을 물고와 놀아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이들은 반복 속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찾습니다.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들려 준 이야기를 내일 또 들려 준다 해도 아이들은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하고 반깁니다. 다음 날 또 들려 줘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어제 들려 준 이야기를 오늘 또 들려 준다면 심한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어제 들려 주셨는데요. 까먹으셨어요? 아이, 지루해. 시시해. 다른 거 들려 주세요. 이런 원성이 자자할 것입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예, 바로 기억력에서 옵니다. 그렇다고 이갈이 전에 기억력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에 이갈이 이후에 아이들은 학습이 가능합니다.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실제로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입학 면접을 할 때 이갈이할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집에 돌려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갈이는 학습에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그전에는 하루종일 놀기만 해도 아이들에게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놀기만 하면 아이들은 뭔가 불안하고 욕구 불만의 표시를 할 것입니다. “공부 안 가르쳐 주세요?”라고 손을 들고 말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아이들에게 배움의 욕구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논리적인 사고 활동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초등 저학년까지 아이들의 사고는 판타지적입니다. 그래서 풍부한 움직임과 함께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이들은 인간적인 문화와 지식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러한 욕구가 충만할 때를 기다려 학습이 이루어지는 게 최상의 모습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배고픈 경험이 별로 없다고 하지요. 식사 때가 아니어도 끊임없이 간식을 먹기 때문인데, 그 간식도 달콤한 것 위주입니다. 사실 설탕이 안 들어간 음식을 찾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렇게 단 음식을 자주 먹는 아이들이 밥을 맛있게 먹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밥은 배가 고플 때 먹는 게 가장 맛있지요. 아이가 배가 고플 때를 기다렸다가 밥을 먹이려면 규칙적인 식생활 리듬이 깨질 수 있으니 간식을 줄이거나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이 인공적 당분이 없는 것을 가볍게 간식으로 주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히 배가 고플 때 먹이면 잘 먹을 것입니다. 학습도 그렇습니다. 아직 발달 상 배움의 욕구가 덜 차올랐을 때 학습을 시작하는 것은 아이에게 공부란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정말로 공부가 하고 싶을 때, 다시 말해 이갈이 시기에 학습을 시작한 아이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입니다.

조급증의 시대에 건강한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

다소 일찍 배움을 열망하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밥이 다 되었다고 해도 바로 뚜껑을 열고 밥을 푸지 않습니다. 예, 반드시 뜸을 들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압축 성장을 한 까닭인지 모든 분야에서 조급한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서둘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기다리는 것도 아이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때가 되어서 시작을 하는 게 가장 좋지요. 무엇보다 아이가 의지를 갖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앞으로의 학창 시절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또 중요한 일입니다. 시켜서 하기보다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 주고 스스로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1학년 때 아이가 한글을 못 떼었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직 아이가 배울 준비가 안 돼 있거나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먹으면 한글 정도는 2학년이 되어서 금방 뗄 수 있습니다.

아이의 발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만 7세 이전에 학습을 시작하는 게 아이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기교육의 폐해는 단지 학습에 흥미를 잃고 의지력을 약화시키는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의 몸과 마음, 기운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실제로 1학년 아이들 중에는 40분 수업에서 20분 정도만 되어도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아이들도 이 생명력 또는 형성력이 잘 길러지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을 너무 일찍 학습하는 데에 가져다 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의 영향도 크지만 오늘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저학년 시기에 책을 많이 읽게 하는 풍조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얌전히 책을 보는 것보다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세상을 탐색하는 일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를 너무 일찍 문자 시기로 이끌어 주는 것은 비문자 시기의 풍부한 내적 삶을 제한하는 것이기도 해서 경계합니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독서 중독이라고 할 만큼 책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보다는 구체물을 갖고 상상놀이를 하거나 친구들과 몸을 이용해 신나게 노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아이 스스로의 신체 발달을 위해서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판단은 부모님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스스로 원칙과 신념이 형성되지 않으면 어떤 방향으로 아이를 키울지 선택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그야말로 신념이 없으면 아이를 올바로 키우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저는 심하게 말해 “미쳤다”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아이의 발달에는 너무나 유해한 환경입니다. 분명한 원칙이 있을 때 이따금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너무나 유연하기만 하다면 원칙이 없는 것입니다. 원칙이 분명할 때 아이는 질서 있는 삶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의 원칙은 다른 무엇도 아닌 아이의 발달에 대한 정확한 이해 위에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 함께 유아교육기관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019. 7. 1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