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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보편인지학? 일반인간학?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7. 23. 20:46

올해 초 정식출판된 <인지학 용어 해설집>에 대한 비판은 이 책이 나오기 전 자료집의 형태로 출간되었을 때 이미 한 적이 있습니다.

 

https://steinerinstitute.tistory.com/entry/%E3%80%8A%EC%9D%B8%EC%A7%80%ED%95%99-%EC%9A%A9%EC%96%B4%ED%95%B4%EC%84%A4%EC%A7%91%E3%80%8B%EC%9D%84-%EC%9D%BD%EA%B3%A0?category=703478 

《인지학 용어해설집》을 읽고

《인지학 용어해설집》을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양평자유발도르프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는 박규현 선생님의 <인지학 용어해설집>을 꼼꼼하게 읽었다. 이 자료집은 정식으

steinerinstitute.tistory.com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거의 개선이 없는 상태로 출판되어 안타까운 마음인데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더 비판하기보다는, 인지학의 기초용어에 대한 해설서를 새롭게 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 작업 중에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상반기 중에 자료집 형태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근래 '보편인지학'이라는 용어가 눈에 자주 띄어 그 부분만 다시 지적하고자 합니다.
출판된 책의 몇 구절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슈타이너는 <보편인지학>(국내에는 <일반인간학> 혹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으로 번역되었으나 이는 오류입니다.)에서 교육의 궁극 목표를 '올바른 호흡'과 '의식의 연결'이라고 주장합니다." (27쪽)
 
"원전의 독일어 제목은 <Allgemeine Menschenkunde als Grundlage der Pädagogik>입니다. Allgemeine Menschenkunde는 General Anthroposophy가 됩니다. Anthroposophy는 인지학으로 번역됩니다. 이를 인간학이라 해도 내용상 큰 오류는 없습니다. 인지학의 내용 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통일된 번역어를 공유한다는 면에서는 정확히 '인지학'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봅니다." (37쪽)
 
첫 번째 의문점은 '왜 <일반인간학> 혹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이라는 번역을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입니다.
<Allgemeine Menschenkunde als Grundlage der Pädagogik>은 <교육학의 기초가 되는 일반인간학>으로 옮기는 게 타당해보입니다.
영어로 옮긴다고 해도 <General human studies as the basis of pedagogy> 정도가 되겠지요.
보통 영어권에서는 <Study of Man : General Education Course>라는 이름으로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의문점은, 같은 맥락이긴 한데 '어떻게 Allgemeine Menschenkunde가 General Anthroposophy가 될 수 있는가?'입니다.
여기서 Menschenkunde는 Anthropologie, 즉 인류학 또는 인간학을 뜻합니다.
anthroposophy가 아니라 anthropology인 것입니다.
anthroposophy, 즉 Anthroposophie(인지학)는 루돌프 슈타이너가 스스로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이라고 불렀던 자신의 사상입니다.
따라서 Menschenkunde는 anthroposophy가 될 수 없고, anthroposophy(인지학)를 인간학(anthropology)이라고 하는 것은 내용상 커다란 오류입니다.
인지학과 인간학은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학(Theologie)과 신지학(Theosophie)을 같은 개념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요.

anthroposophy(人智學)는 그리스어로 '인간'을 뜻하는 anthropos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가 합쳐진 말이고,
theosophy는 '신'을 뜻하는 theos와 sophia가 합쳐진 말입니다.
인지학의 내용 자체는 인간의 본성만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정신/영혼세계 및 물질세계에 대한 정신과학적 탐구), 인간학이라고 하고 싶다면 차라리 '인지학적 인간학'이라고 하는 게 타당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할 점은 그것이 '세계적으로 통일된 번역어'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이 책에는 참고문헌이 없습니다.
 
다만 Allgemeine에 대해 '일반'으로 할지, '보편'으로 할지는 번역자의 관점에 따라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타카하시 이와오를 비롯해 일본의 인지학자들은 <一般人間学>으로 번역했지만, 중국인지학전집위원회에서는 <人的普遍知識>으로 출판했으니까요
allgemein이라는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처럼 다양합니다.

 

a. 일반적인, 전반적인, 모든 것들에 공통된
die allgemeine politische{wirtschaftliche} Lage 
전반적인 정치{경제} 상황

b. 모두에게 공통적인{해당하는}
um 11 Uhr war allgemeiner Aufbruch 
11시에 다 함께 출발했다

c. 어디에서나, 모두에게서
das hört man allgemein 
이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2. 총괄적인, 총체적인
allgemeiner Studentenausschuss 
(대학의) 총학생회(약어 : Asta)

3. 총론적인, 공통적인, 기본적인
allgemeine Literaturwissenschaft 
일반 문예학{문학}

4. 공공의, 보편적인, 강제적인
Allgemeine Ortskrankenkasse(약어 : AOK) 
지역 의료 보험

5. 상세하지 않은, 대략의
Die Auskunft ist nur allgemein 
그 정보는 막연할 뿐이다

 

물론 학술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보통 '일반언어학, 일반생물학, 일반상대성이론'과 같이 '일반'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보편언어학, 보편생물학, 보편상대성이론'이라고는 잘 하지 않지요.
여기에서의 '일반'이라는 말은 '보편'의 뜻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일반적인 용례를 따라 <Allgemeine Menschenkunde>는 <일반인간학>으로 번역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인간학>이라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보편인지학>이라고 하면 완전한 오류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상징적인 것이고, 책 전반에 인지학에 대한 자의적인 오개념이 너무 많아 이 책을 읽고 공부하거나 이 분의 유튜브 강연을 보신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어떻게 이런 분이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학교를 차려 (발도르프학교에는 있지도 않은) '교장'을 하고 있는지 황당하기만 합니다.

 
끝으로 이 책의 '들어가는 글'의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개념의 명확한 이해는 단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발도르프 교육의 이념과 목표, 현장의 구체적 적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첫 발걸음이 개념 이해의 정확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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