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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키워드로 살펴보는 WALDORF 교육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0. 6. 12:03

키워드로 살펴보는 WALDORF 교육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W
wonder : 발도르프 교육을 한 낱말로 정의하라고 하면 '경이로움'을 들고 싶다. 교육이 추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경이감을 이끌어내 세상을 궁금하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고 상투적인 현상일지라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호기심을 느끼며, 더 알아보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워주는 작업을 교육자는 해야 한다. 세상은 신비롭고 신기한 것투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변치 않는 법칙들이 숨어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정신적 섭리를 이야기의 형태로 제공해주는 것이 좋지만, 십대 아이들과는 과학적인 관찰과 실험, 탐구를 통해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교육이다. 그렇게 발도르프 교육기관의 아이들은 놀라움을 품은 채 아름답고 선하며 진실한 세상을 배워간다.

A
anthroposophy : 인지학(人智學)이란 단어를 올바르게 풀이하면 인간에 대한 지혜가 아니라 인간임을 의식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밝히고자 하는 이 질문의 출구에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자아(나)에 대한 이해가 놓여 있다.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물질적 몸이 있는 동시에 생명력 또는 형성력으로서의 에테르체, 고통과 흥미, 욕망과 열정, 충동, 감정 등 마음으로서의 아스트랄체, 그리고 우주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자아'로 이루어진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물질세계의 시민일 뿐 아니라 영혼세계와 정신세계의 시민이기도 한 것이다. 인지학은 정신과학으로서 세 가지 세계가 존재함을 전제한다. 정신과학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L
life & death : 삶과 죽음은 대극적 개념이 아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형태로 거듭나 자기만의 카르마에 따라 삶을 이어간다. 지상에서의 죽음이란 천상에서의 탄생에 다름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야는 지나치게 좁다. 마치 현생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또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 순간들에 집착하며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내리기 일쑤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인간의 운명은 윤회를 거듭하며 자기 소명을 찾아간다. 거듭된 윤회는 정신적 진화를 이끌어낸다. 우리는 고통과 기쁨 속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과제를 직면해야 한다. 교육은 아이들의 현재 삶이 일회적인 게 아님을 깨닫고, 탄생 이전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을 연결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D
development : 모든 인간은 되어가는 존재이다. 비록 신체적 발달이 21세 전후에 끝난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혼과 정신은 계속해서 발달해 간다. 감각혼에서 지성혼으로, 지성혼에서 의식혼으로 발달해 가는 과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인간 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영혼의 발달은 어린 시절의 신체 발달 과정에 그 토대가 놓여진다. 교육은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어린 시절 아이들의 내적 욕구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예술적 활동이 풍부한 것은 단지 그것이 보기에 좋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에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O
occult science : 인지학은 신비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신비주의자들에게 빼앗긴 우주에 관한 정신적 담론을 과학적으로 정상화시키는 것이 인지학의 과제다. 인지학은 종교가 아니며 도그마를 거부한다. 다만 종교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고자 한다. 이 세상이 감각적 현상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면 초감각적 현상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업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초감각적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정신적 수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지학이라는 정신과학은 정확하고 온전하게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 중 하나다.

R
Rudolf Steiner :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는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물리학과 화학, 수학, 철학 등을 공부했고, 졸업한 뒤에 한 가정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뇌수종에 걸린 아이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시킨 바 있다. 그 아이는 건강을 되찾았고 훗날 의사가 되기도 했다. 슈타이너는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괴테 전집출간 작업 중 괴테의 자연과학 분야의 책임 편집자가 되었다. '진리와 과학'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사회주의자들이 세운 노동자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신지학회 독일지부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소년을 재림메시아로 세워 교단을 창시하려는 신지학회의 흐름에 반대하여 인지학회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그는 문필가이자 강연가, 문학잡지의 편집자, 극작가, 철학자, 예술가, 교육자, 사회운동가라는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F
foundation : 발도르프 교육의 토대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슈타이너는 예언가 또는 신비주의자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한국인을 성배의 민족이라고 예언했다거나, 백신을 맞으면 영혼과 정신이 파괴된다고 했다며 음모론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인지학 및 발도르프 교육 기관들을 도외시한 채 '현지화'를 해야 한다며 자의적인 단체를 세우기도 한다. 발달단계에 맞지 않게 영유아에게 문자교육을 시도하거나 무리하게 동양사상과 융합을 꿈꾸기도 한다. 또, 고가의 교구 중심으로 발도르프교육을 소개하는 상업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인지학은 학문이 아니라 통합적인 영적 사상이라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는데, 슈타이너의 자서전을 읽는다면 많은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믿는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발도르프 교육의 방법론을 자유롭게 응용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지만, 학문적 발전을 위해 인지학 및 발도르프 교육의 고유성은 엄밀하게 탐구될 필요가 있다. 기초를 탄탄히 하지 않고는 발도르프 교육 역시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되어 사라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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