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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뇌] "이유 없는 반항"엔 이유가 있다 - 구자욱 본문
"이유 없는 반항"엔 이유가 있다
구자욱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2017-03-01
사춘기의 뇌
‘사춘기’라는 말을 듣고 풋풋한 설렘이나, 구르는 낙엽을 보며 까르르 웃던 감성을 떠올리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이유 없는 반항’이나 ‘중2병’ 등 다소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리며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말이라면 곧잘 듣던 우리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충동적이고, 반항적이며, 감정조절도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청소년 사망의 주요 원인인 자살, 우울증, 거식증, 폭식증, 약물 중독 등은 감정이나 행동조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청소년기의 사망률이, 유아기나 성인기의 2~3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자나깨나 모바일 게임에 빠져 있는가 하면, 또래끼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어울리면서도 부모와는 말조차 섞지 않은 지 오래다. 말이라도 한번 붙여 볼라치면 짜증부터 낸다. 야단치고 꾸짖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궁극적인 해답은 우리 아이들의 뇌를 이해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 여전히 미성숙한 뇌의 관제탑, 전두엽
사람의 뇌는 한 살 정도까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뇌의 폭풍성장은 한 살 이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15~20살 이후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다. 신경세포의 연결망 또한 지속적으로 재정비된다. 대표적인 부위가 ‘뇌의 관제탑’인 대뇌피질이다. 미국연방정신건강연구소(NIMH)의 기드 박사가 자기공명장치(fMRI)를 이용해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전두엽을 포함하는 대뇌피질은 12~16살까지 꾸준히 부피가 늘어난다. 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전두엽이 가장 천천히 성숙해진다는 뜻이다.
전두엽은 자기를 인식하고, 행동을 계획하고, 각종 정보를 통합하며, 감정·충동·욕구 등을 조절한다. 매 순간 들어오는 정보와 과거에 저장한 정보를 결합하고 재편집하여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감정과 욕구를 잘 조절하지 못해 충동을 억제하기 어렵게 된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주요 원인으로 이 전두엽의 기능 이상이 꼽히고 있다. 청소년기에 왜 질풍노도와 같은 행동이 나오는지 이제 이해가 가지 않는가. 우리 아이의 뇌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아이의 전두엽은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아직은 미숙한 것이다.
■ 감정을 다스리는 변연계는 이미 완공돼
여전히 공사 중인 전두엽과는 달리, 뇌에서 감정적 반응 및 정서, 그리고 동기를 담당하는 부위인 변연계는 청소년기에 완공 단계에 이르러 있다. 변연계 중에서도 편도체라는 곳은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정보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각적이고 강렬한 감정, 예를 들면 분노, 공포, 공격성, 흥분 등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바로 편도체이다. 일반적으로 쥐는 고양이의 냄새만으로도 공포에 질리게 되는데, 편도체가 파괴된 쥐는 고양이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편도체를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킨 쥐는 포식성 공격행동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보고도 최근 있었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변연계는 전두엽의 통제를 받게 되지만, 전두엽이 성숙하기 전까지는 의사결정과 행동이 변연계의 지배를 더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은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본능에 더 민감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미국 맥린병원의 유겔룬-토드 연구팀은 청소년과 어른 그룹을 대상으로 겁에 질린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의 감정을 맞추게 하였다. 그 결과 어른과 청소년이 사용한 뇌 영역이 달랐다. 어른들은 전두엽을, 청소년들은 편도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청소년들은 겁에 질린 얼굴 사진을 보고는 감정으로서 즉각 받아들이는 반면, 어른들은 좀 더 신중하게 ‘무슨 일이야?’, ‘이걸 어쩌지?’ 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해결방법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청소년들이 폭력이나 분노조절 문제에 얽힌 사건을 접할 때가 있다. 편도체는 이런 사건의 원인이기도 한 분노 및 공격성을 담당하는 중추이기도 하다. 실제로 부모에게 더 반항적인 10대 청소년의 편도체가 더 크다는 사실이 2008년 호주 멜버른대학의 알렌 교수팀에 의해 발견된 바 있다. 이들은 10대 초반의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가 나눈 대화를 녹화한 뒤 논쟁이 일어날 만한 대화주제, 예를 들면 잠자는 시간, 숙제, 휴대폰 사용 등의 문제가 대두될 때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을 분석하고 이때의 뇌영상 이미지와 비교해 이 사실을 밝혀냈다. 또 남자 아이들의 경우 왼쪽 전두엽이 발달할수록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결국 청소년의 뇌에서 편도체와 전두엽 간의 불균형한 발달속도가 충동적인 행동 또는 공격적인 성향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 ‘상’ 받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뇌
뇌에서 중격의지핵을 포함하는 중변연계는 ‘보상회로’ 또는 ‘쾌락중추’라고도 불리는데, 청소년들이 보상에 민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 영역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신경회로는 일명 쾌락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작동하며, 청소년기에 이 도파민과 수용체에 의한 상호작용이 정점에 이른다. 중변연계는 도파민 신호 작용을 통해 음식, 약물, 성행동과 같은 일차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돈이나 칭찬과 같은 이차적인 보상에도 활성화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중독 증상도 중격의지핵의 활성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청소년들이 뭔가 보상을 받았을 때 이 영역이 어른들과 다른 양상으로 활성화된다. 2006년 미국 코넬대 케이시 교수팀은 아동, 청소년, 성인에게 도박을 하게 하면서 중격의지핵의 활성화 패턴을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큰 보상이 주어지면 청소년의 중격의지핵이 더 많이 활성화됐다. 작은 보상이 주어지면 중격의지핵의 활성화가 오히려 작게 나타났다. 즉, 청소년은 큰 보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는 더 큰 자극을 좇는 경향을 낳게 한다.
이러한 청소년기의 특징은 동물실험에서도 관찰된다. 성숙한 어른 쥐에 비해 태어난 지 5주 전후의 ‘사춘기’ 쥐는 기본적인 운동성이나 탐색행동이 높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호기심이 크고, 충동 행동 역시 자주 관찰된다. 역시 중변연계의 도파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사춘기 쥐는 알코올, 니코틴, 메스암페타민 등의 중독성 약물에 더 취약하고, 더욱 많이 탐닉하게 된다.
더욱 재밌는 사실은, ‘청소년’ 쥐들이 친구와 같이 있을 때 보상 행동 또는 위험한 행동을 더욱 많이 감행한다는 것이다. 미국 템플대의 스타인버그 교수팀은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청소년 쥐가 친구가 있을 때에 더욱 더 많은 알코올을 소모하는 반면 어른 쥐는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미 2011년 이전부터 인간을 대상으로 한 뇌영상 연구를 통해, 어른에 비해 청소년이 동년배의 친구가 곁에 있을 때 더욱 위험한 행동을 자주 감행하며, 이는 뇌보상회로의 활성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 ‘끼리끼리’ -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사춘기의 또 다른 특징은 ‘또래끼리’다. 청소년은 아동과는 달리 가족구성원보다 친구와의 관계를 선호하고, 의논 상대로 선생님이나 부모보다는 친구를 택한다. 끼리끼리 어울려 노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모는 서운하고 걱정도 많지만, 이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회성 및 인지 발달에도 매우 중요하다.
청소년기의 쥐를 고립시켜 키우면, 어른 쥐가 된 후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해도 사회성 행동에서 생긴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도 가정 및 학내 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들이 이후 정신병리학적 이상(예를 들어, 반사회성 인격장애 등)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실험동물이건 사람이건 사회성 행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은 이 글에서 계속 나온 ‘전두엽’과 ‘중격의지핵’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을 상대로 이 영역을 ‘불활성화’시키면 사회성 놀이 행동이 크게 줄어든다. 반대로 미국 마운트시나위 의대 네슬러 교수팀에 의하면, 두 뇌 영역을 연결하는 신경회로망을 광유전학적 방법으로 활성화시켰을 때는 사회성 행동이 증가한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또래끼리의 왕성한 사회성 행동은, 보상행동과 유사하게도, 주로 중격의지핵에서 도파민 신호에 의해 일어난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자폐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사회성 행동장애가 생길 수 있다.
■ 균형 잡힌 뇌가 되려면
사춘기의 뇌는 쉬이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일탈과 짜릿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래서 새로운 스타에 열광하고 술, 담배 등에 손을 대기도 하며, 이러한 행동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할 때 더욱 강화된다. 게다가 청소년의 뇌는, 전두엽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조절 기능이 약하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은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의 ‘뇌 관제탑’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머리를 많이 쓰는 일, 특히 전두엽을 많이 사용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뇌는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원리가 적용되는 기관이다. 뇌는 많이 쓰면 쓸수록 제 기능을 발휘한다. 우리의 전두엽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거나, 새로운 정보에 노출시켜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으며, 무엇보다도, 건강한 가족관계가 아이들의 균형 잡힌 뇌 발달에 중요하다.
▶구자욱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릴 적부터 곤충과 동물을 남달리 사랑해 <동물의 왕국>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으며, 지금도 자연 다큐멘터리를 굉장히 즐겨 본다. 서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던 중, 바구밋과 벌레가 도토리의 크기를 재는 행동을 관찰한 것을 계기로 동물행동에 관한 신경과학에 뛰어들었다. 미국 예일대에서 행동신경과학 전공 심리학 박사 과정 시절부터 주로 정서와 인지 행동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스트레스와 중독과 관련해 40편에 가까운 논문을 썼다.
[출처 : 경향비즈 http://m.biz.khan.co.kr/view.html?art_id=20170301205100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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