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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는 ... 본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는 ...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8. 6. 12:41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는 ...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광주 5.18이 일어나기 직전 해에 태어났던 나에게, 직접 경험한 현대사의 비극 중 가장 큰 사건은 세월호 참사다. 그해 첫 아이를 낳았고, 나는 완전히 기성세대가 되었다고 느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 특히 수많은 학생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권력구조를 알아야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야 변화를 시도할 수 있고, 어떻게든 이 사회가 변해야 자라나는 세대가 상식적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한국사회가 쌓아온 모순과 협잡의 결과였기에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했다.
 
10년이 지나고 가슴을 짓누르는 감정은 절망감이다. 기득권 구조는 힘이 세다. 천신만고 끝에 박근혜를 탄핵시켰는데, 김건희-윤석열 정권이 탄생하고 말았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참사 같은 사회적 참사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제, 안보, 외교, 문화, 의료, 교육, ... 사회 모든 영역이 단기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채상병 사건이나 세관 마약수사 외압을 보고 있으면 누가 대통령인지도 모르겠다. 대체 누가 이 자들을 뽑았고, 어떤 사고방식이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절망이 무용하지만은 않다. 무성한 여름 나무에 비해 앙상한 겨울 나무는 모든 잎을 떨구었기에 구조가 드러난다.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는 그 바닥까지 드러난 듯하다. 고고한 척 고상한 말을 하던 지식인이나 소위 상류층들의 민낯을, 몇 번의 선거를 통해 우리는 낱낱이 보았다. 그리고 기득권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얽히고 섥혔는지 지난 세월 동안 투명하게 보았다. 심지어 사고방식이 병든 사람들의 욕망이 어떠한지도 분명해졌다. 자기중심적인 탐욕이 시대정신처럼 보인다. 개인과 조직의 이권을 위해서는 그들에게 법이든 절차든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우리의 길이 될 수 없다. 윤석열이 그렇고 트럼프가 그렇듯이 저들은 대중에게 증오의 먹잇감을 던지는 방식으로 인기를 얻는다. 증오만큼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없다. 두렵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증오는 자기 책임을 벗어던지게 해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바로 그 방식으로, 부정 부패로 인해 쫓겨날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4만 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전쟁을 확대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진실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저들은 생명력을 유지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그렇고, 대만을 침공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시진핑이 그렇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평화다. 평화롭게 숨쉬고 평화롭게 일하고 평화롭게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일상을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평화는 낭만적이지 않다. 증오에 매달리는 저들보다 더욱 치열하고 더욱 절박해야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공적 권력에 오르지 못하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민주적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도 저들은 교묘하게 시스템을 파괴한다. 교묘한 거짓말이 저들의 무기다. 탐욕에 눈 멀어 진실을 망가뜨리는 자들의 말은 모조리 상투적이다. 자기중심적 욕망이 전부인 그들의 사고는 정상적이지 않다. 논리적 일관성이나 진정성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무속이든 사이비 종교든 자기 욕망에 도움이 될 만한 믿음만을 찾는다.
 
한국사회는 일제 부역 세력과 독재 세력이 청산되지 못하고, 그들이 기득권이 되어버린 기형적 구조를 갖는다. 우파가 민족주의 세력이 아니라 친일 반민족 세력이다.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가치나 사상이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고가 자기 이권을 향해 있기에 사고방식이 정상적이지 않다. 재벌을 위시한 기업가들의 대부분이 그렇고, 극우정당의 정치인들이 그러하며, 조중동과 경제지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이 그렇다(진보지라고 하는 곳 역시 주요 언론사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민주화 이후 정치적 힘을 상실한 군부에 이어 국가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검찰과 사법부의 수뇌부 역시 기득권화된 지 오래다. 지역에서 기관장을 하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토호들도 대부분 그렇다. 이들의 가치는 오로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일 뿐이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기득권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한국사회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얼굴이며 이름, 학력 등이 모조리 가짜인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주가조작을 일삼고, 검찰권력을 활용하여 동업자들을 배신하여 감옥에 집어넣는 일은 우습다. 무속인을 동원해 정신적 우월함까지 손에 넣고자 하는 그 탐욕이 어쩌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표상이 아닌가싶다. 수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나만, 오로지 우리만 부와 명예, 권력을 자손만대로 누리면 될 뿐이다. 끔찍한 것은 그것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결코 그래서는 안 될 교육에서도 똑같은 목표가 지배적이라는 데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가 완전히 가치 전도된 사회가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 정부에서는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뉴라이트 인사가 유력후보로 추천되고,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수억이나 쓰면서 정신대 문제가 논쟁적 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된다. 반노동 정책을 내세우던 극우 파시스트가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이 되고, 경찰은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자는 사이버불링을 당해도 된다는 식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소위 '폭식투쟁'이라는 것을 하던 일베가 한국사회의 주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한국은 출산율 꼴지, 자살율 최고의 국가가 되었다. 어린이를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노인을 혐오하고 외국인을 혐오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혐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으며 자기보다 약자라고 느껴지면 떼를 지어 괴롭히는 행동양식이 암세포처럼 퍼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회의적인 질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들 때마다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떠올린다. 우리의 자연은 에너지가 유입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은 정신적 통찰과 의지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파괴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기도를 하듯 생각한다. 나는 깨어 있는가? 나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들처럼 미치지 않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탐욕에 빠지지 않고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것, 나아가 지구 전체, 우주 전체를 마음에 품는 것, 그래서 건강한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며 설득하고 힘을 나누는 것, 그래서 정치적 힘을 키워가는 것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상상하는 일이다. 더 나은 사회구조 속에서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하며(사회 전체를 위해), 박애의 정신을 바탕으로 일하고 협력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는 김건희-윤석열 정부를 선택했다. 국민의힘이라는 극우정당에 표를 던졌고, 자기중심적 탐욕의 길을 외면하지 못했다. 이것을 혐오나 증오 없이 바라는 보는 것이 지금 나의 커다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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