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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내 앞의 아이들과 연결된 수업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6. 4. 15:11

내 앞의 아이들과 연결된 수업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그림출처 : 교육희망 '교사라서 행복한 순간' https://news.eduhope.net/25820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수업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전자기기 활용 수업이 더 깊이 우리 일상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수업이 도입될 예정이라고 하니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한동안 VR을 낀 아이들이 교실에서 허우적대는 사진을 보고 충격에 사로잡혔는데, 또 어떤 충격이 남아 있을까.

 

최근에 구입한 책들 중에는 AI로 표지그림을 그린 것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다리가 한쪽 없거나 얼굴이 뭉개져 있다.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한 그림은 이런 오류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완벽하게 그려진 AI의 그림을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가짜'라는 느낌이다. 

 

가짜들. 솔직히 AI로 생성된 이미지나 영상을 볼 때마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기분 나쁜 거부감이 든다. 서술형 평가를 채점하며 AI를 활용한 답안지가 분명해 보이는 글들을 보다가 현기증을 느낀 적도 있다. 어른으로서도 이런 가짜들에 의해 정신이 어지러워지는데, 이른 나이부터 노출되며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교실 수업에 들어오는 전자기기, 인공지능 등은 진정으로 학생들을 돕기 위한 게 아니다. 이러한 흐름은 오직 산업적 이익 때문이다. 아이들이 정말로 미디어를 통한 수업을 원할까? 그게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이 될까? 오늘날 사회가 이러하니 배워야 하지 않겠냐고 혹자는 말한다. 그렇지 않다. 학령기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오히려 해가 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성인이 되어 배워도 늦지 않다.

 

어린 시절일수록 아이들은 진짜를 만나야 한다. 신생아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댈 게 아니라 부모의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화질이 좋은 스크린으로 자연을 보여준다고 해서 실제 숲을 맨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낫지는 않다. 초고가의 하이엔드 스피커로 듣는 음악보다 실제로 들려주는 악기 연주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고 싶어한다.

 

교실 수업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로 TV에 틀어주는 동영상이나 노래가 아이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생각한다면 교사는 가급적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며 육성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대가 혼란스러워질수록 발도르프 교육이 진정으로 올바른 교육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학교교육은 철학도 없고 인간학도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도, 애정도 없는 국가교육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첫 번째는 가치이다. 교사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가? 교사로서 나는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왜? 이 질문 없이 수업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저 교육기술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교사는 자기만의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를 분명히 하고 발전시킬 책무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철학이다. 만약 교사가 존엄, 창조, 자유, 공감, 존중, 안전, 책임, 평화, 예술 등의 가치 중 몇 가지를 최우선 순위의 가치로 여긴다면, 그것들을 교육철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가 필요한가?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발달상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이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들과 가치가 섞여 들 때 고유한 교사 개인의 철학이 탄생한다.

 

세 번째는 수업방법이다. 교육적 가치와 철학을 확립했다면, 그것에 기반한 창조적 수업방법이 필요하다. 교사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수업 속에서 놀라움을 갖게 되고, 바른 태도로 집중하여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수업의 원칙은 무엇이고, 활동과 리듬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교육은 오로지 인간만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사는 성장해 가는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 건강한 권위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성을 극복해야 한다. 교사가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 있을 때 아이들은 교사와 연결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보다 '이 아이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소위 문제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교사와 연결되길 바라는 아이들이다. 다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이다. 교사가 수업을 형식적으로 진행한다면 그 아이들은 결코 수업에 들어올 수 없다. 무언가 다른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좀 더 깨어 있어야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돌발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수업과 생활지도는 둘이 아니다. 더 친절한 안내와 단호한 태도, 분명한 규칙과 유연한 유머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좋은 사람이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복잡하게 나쁜 모습들을 안고 살아간다. 주관적으로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객관적으로 나쁜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배워야 한다.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무엇이고 어떤 결점이 스스로에게 있는지. 살아가면서 그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수업은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하되 본질에 집중하여 충만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들과 직접 만나야 한다. 교과서도, 미디어도, 인공지능도 무의미하다. 직접 마음이 닿고 몸을 부딪히며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진실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교사는 저마다의 아이들과 보이지 않는 선으로 단단히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마음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다. 생생하고 진실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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