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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특별법 개정과 회복적 정의 (2020. 4.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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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특별법 개정과 회복적 정의 (2020. 4.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4. 2. 10:29

제주 4.3 특별법 개정과 회복적 정의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이때를 좋아한다. 매화와 진달래, 목련으로 시작해 산수유, 개나리가 경쾌한 노랑을 뽐내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이 시기의 자연은 마치 축제와 같다. 이어서 라일락이 짙은 향기를 뿜어낼 테고 장미가 축포처럼 붉게 봄의 절정을 알릴 것이다. 거리와 숲의 나무들도 연둣빛 새순을 틔우느라 설레긴 마찬가지다. 아이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할 때마다 진심으로 가슴이 벅차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가족과 만끽할 수 있다니.
 
그러나 나의 사회적 자아는 이내 숙연해진다. 찬란하게 아름다운 자연과 대조되는 비극적 역사가 4월과 5월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게 서정적이었던 마음이 납처럼 무거운 책임감으로 가라앉는다. 세월호 이전에 제주 4.3이 있다.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사건들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열강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자국의 정부가 죄없는 민간인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살해한 것이다. “폭도로 규정하고 살해”라는 말이 담아낼 수 없는 억울함과 처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아직도 4.3을 겪고 있다.
 
광복 직후 제주도에는 일본에서 돌아온 6만여 명의 귀환자들이 실직 상태였고, 생필품이 턱없이 부족했다. 흉년과 함께 콜레라도 기승을 부렸다. 결정적으로 미곡정책이 실패하면서 도민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미군정이 지배하면서 악랄했던 일제 경찰이 군정 경찰로 변신했던 것도 커다란 사회문제였다. 육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제주도민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이다.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마침내 군중은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때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다쳤고, 이에 항의를 하자 무장경찰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경찰의 발포로 6명이 희생되었다. 이 사건은 4.3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지면서 도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자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가 모두 외지인으로 교체되었고, 응원경찰과 서북청년회원 등이 대거 제주로 파견돼 파업 주모자에 대한 검거작전이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체포 및 구금되었으며, 구금자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극우단체인 서북청년회의 테러와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는 1948년 11월 계엄령이 선포된 뒤 제주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이 영화를 보고 밤새 펑펑 울면서 누군가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 4개월 동안 진행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방화되었고, 1954년 4.3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주에서는 3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4.3 특별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법 개정의 핵심 사항은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이다. 4.3 사건에 대한 문제해결의 1단계가 명예회복, 국가의 사과, 국가 차원의 추념이라고 한다면, 2단계는 국가가 개인의 피해 회복을 포함하는 배·보상 실행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행의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법률명에 드러나 있듯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아직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관련 내용은 없다. 회복적 정의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과 함께 가해자의 사과 및 재발 방지 그리고 피해자 회복의 구체적 방안으로써 배·보상 문제를 강조한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공동체의 관계 회복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때 진정한 정의가 확립되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보상과 공동체의 치유이다.
 
4.3 사건의 피해는 유형과 무형을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그 본질에 제주도민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마을에서 쫓겨나고 억울하게 수형생활을 하고 고문을 당하고 살해를 당했던 제주도민에게 실질적인 가해자는 국가라기보다 육지사람들이 아닐까? 육지사람의 일원으로서 나는 제주도민의 아픔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섣불리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말하기보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분들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나 같은 육지사람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지난 2월 4.3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정기성 할아버지(96세)의 아들 정경문씨의 이야기를 옮기며 글을 맺는다.
 
“자식된 도리로서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됐지만 여기에 계신 분들이 젊었을 때, 특히 저희 아버지는 스물일곱부터 마흔다섯 살까지 감옥에서 살았다. 그 젊은 세월을 감옥에서 사셨다. 돈으로 해결이 되겠나. 보상을 받아서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자식된 도리로서 어떻게 그 젊은 세월을... 국가의 잘못된 판결로 인해 한 인간의 인격을 몰살하고 아름답게 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인데 어떻게 보상이 되겠나... 다시는 이런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0년 4월 3일 새벽
 
 

*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2021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4.3을 왜곡하고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금지 대책이나 공동체 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시설 설치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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