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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발도르프 교육은 자본주의에 잡아먹힐 것인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1. 18. 17:40

발도르프 교육은 자본주의에 잡아먹힐 것인가?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미국 병원에서는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나눠주는 인형에도 비용이  매겨진다. 심지어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임에도 침대에 테디베어를 올려놓고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자에게 제공하는 따뜻한 이불에도, 진료를 받다가 울음을 터뜨린 환자에게 따뜻한 말 몇 마디를 건네는 것에도 비용이 붙는다. 모든 게 돈이고, 돈을 더 벌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다. 생명이 오가는 절박한 환자에게 말이다. 이렇게 부조리한 비용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거는 수밖에 없다. 비용을 다시 들여 국가사법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 미국의 민낯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 본인이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사회 서비스 산업부로 봐야”한다고 말하며, “복지는 돈 쓰는 문제가 아니고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야”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의료만이 아니다. 한국전력도, 코레일도 민영화 수순을 밟고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국가가 시장에 내다팔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탈리아는 전력회사를 민영화하면서 전기료가 매년 150유로(약 20만원)씩 증가해서, 2015년 초까지 메가와트시(MWh)당 40~50유로 안팎에 머무르던 전기료가 2022년 8월에는 630유로를 넘어섰다. 12배가 폭증한 것이다. 물론 민영화된 전력회사는 2022년에만 54억 유로(약 7조 7818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냈지만 서민들의 삶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사적 이익에 몰두하는 우익정부들은 사법과 언론을 장악한 채 정치를 변질시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는다. 1차세계대전(1914-1918)을 겪고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를 세울 때(1919) 루돌프 슈타이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패전국 독일에 희망은 있었을까? 수많은 장병이 목숨을 잃고,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슈타이너는 사회삼원론 운동을 주창했다. 발도르프학교는 사회삼원론 운동의 일환이었다.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 시장에 맡겨지거나 국가의 손아귀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 주장이었다. 사회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것이 자본주의이고, 공동체의 모든 문제에 국가가 관여하는 것이 국가주의이다. 슈타이너가 꿈꿨던 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회삼원론에 따르면, 경제는 이윤 창출이 주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라는 것은 노동을 통해 재화를 생산하고 생산물을 운반하며 그것을 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의 중심에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놓여야 한다. 내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한 게 아니라 남들을 돕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다. 제화공이 구두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편안한 구두를 신고 다닐 수 있게 하는 일이고, 농부가 벼농사를 짓는 것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슈타이너는 기본소득 개념을 내놓으면서, 사람은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설령 능력이 부족하거나 일을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도르프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는 누구든 동등한(동시에 각자 형편에 맞는) 생활임금을 받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해 수업할 수 있다. 그것이 발도르프 교육의 이상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논리로 노동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학부모가 학비를 낼 때 그것은 수업료라기보다 발도르프 교육 운동이 펼쳐질 수 있도록 후원하는 기부금에 가깝다. 그러니 형편에 따라 적게 낼 수도 있고 자유롭게 넉넉한 비용을 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 영역과 교육(정신-문화) 영역이 서로 종속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 활동의 모든 것에 비용이 매겨지기보다 창조적 활동이 펼쳐질 수 있도록 후원하고 그러한 물질적 기반에 감사하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교육을 펼쳐내는 것, 그것이 발도르프 교육이 꿈꾸는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가 발도르프 교육을 실천할 때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은 상업성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을 잘 받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는 입시교육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교육이 인간의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계급상승을 위한 도구가 된 상황에서 사교육뿐 아니라 공교육도 시장화되어버린 것이다. 근래에는 '발도르프'라는 말이 무언가 고급스럽고 친환경적인 느낌을 주는 것인지, 인지학의 정신과 무관한 교구 및 교육 상품에 양념처럼 수식어로 사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한동안 '발도르프 한글놀이' 또는 '발도르프 정음한글 교육' 같은 이상한 조어가 유행하더니 영어유치원에서도 '발도르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소중한 자녀를 위해 남들처럼 조기교육을 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 하는 부모들을 겨냥한 광고 문구가 너무 적나라하여, 그 일부를 옮겨본다.
 
'아직 영어교육을 시작해 본 적이 없어요...'
'이제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해서 
영어 노출은 해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부담되는 공부를 시키고 싶진 않아요'
'주변에서 하나씩 영어학원을 보내니까 불안해서
저희 애도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요'

곧 유치원에 입학하는 5살 우리 아이,
어린이집 다닐 때는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주변 분위기에
'나도 이제 알아봐야 하나?'
'우리 애도 이제 시작해야 하나?'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 부모님들 계신가요?

오늘은 아직 아이의 영어교육을 
시작해보지 않은 부모님들,
아이에게 영어 노출을 해주고 싶은데
영어를 공부로 시키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불안하신 부모님들,
그런 분들께 영어를 부담없이 노출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

그럼 연극을 교육 수단으로
사용하는 곳이 실제로도 있나요?

그럼요.
실제로 '북유럽' 선진 국가에서는
학기 마지막에,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종합하여
연극을 만들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독일에서 학생의 창의력, 자기주도 학습,
예술적 표현을 강조하는 발도르프 교육의
'오이리트미'도 마찬가지구요.

아이들의 발달단계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발도르프 교육의 외형만을 가져와 홍보에 사용하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히고 할 말을 잃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지난 5년 여간 유아 영어학원(소위 영어유치원)이 70%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발도르프 유아교육기관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경우도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상업화의 도도한 흐름에 발도르프 교육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애정 없이, 발달에 맞지도 않게 영유아에게 그림도 그리게 하고 놀이도 시키고 연극활동도 시키면서 한글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그러면서도 발도르프 교육을 한다고 말하는 이 현상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 정신에 잡아먹혀 마치 더 이상 짠 맛이 나지 않는 소금처럼 되어버린다면 그들은 발도르프 교육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찾아 또 다른 먹잇감으로 삼을 것이다.
 
100여 년 전,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희망이 보여서 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의롭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운동을 했던 것이고, 지배세력에 빌붙어 영혼을 팔아넘기지 않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갔던 것이다. 이미 망했으니 떠나야겠다는 마인드가 아니었다. 어쩌면 희망은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늘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해야 나의 영혼을,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발도르프 교육은 단비와 같다. 당장은 그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적더라도, 발도르프 교육의 정체성을 지켜가며 꿋꿋이 인지학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우리는 사회삼원론의 이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우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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