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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발도르프 교육과의 만남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0. 30. 22:09

발도르프 교육과의 만남

- 나는 어떻게 발도르프 교육을 만났고, 발도르프 교육은 나에게 무엇인가?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대표

 

 

안녕하세요? 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조발제를 맡겨주셔서 영광입니다.

 

......

 

교사로서 저에게는 늘 갈증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 내면의 영적 성장과 사회 변혁에 대해 함께 관심을 가졌는데 그 둘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사상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영적 성장과 관련된 곳은 사회 변혁에 관심이 없었고,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곳에서는 영적 성장을 폄하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당시 과천자유학교에서 교사를 뽑는다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해보니 발도르프학교는 개인의 영적 성장과 사회의 변혁을 포괄하는 사상을 기반으로 하더군요. 저는 발도르프 교육을 의식혼의 교육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슈타이너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의식혼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누구나 노력을 한다면 의식혼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식혼이란 무엇일까요?

 

의식혼의 교육학

 

인지학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영혼은 감각혼과 지성혼, 의식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1세에 자아가 탄생한다고 말을 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감각혼이 탄생 또는 독립하는 시기입니다. 슈타이너는 21세에서 28세 사이를 감각혼 시기, 28세에서 35세 사이를 지성혼 시기, 35세에서 42세 사이를 의식혼 시기라고 구분합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치열한 자기 교육 없이 의식혼이 탄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자아는 영혼 속에서 살아가며 감각혼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영혼은 자아의 노력에 의해 지성혼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리고 의식혼 단계에서 정신적 빛을 발합니다.

 

감각혼은 우리 영혼의 가장 기초적이고 넓은 차원입니다.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며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상태입니다. 좋고 싫음이 중요한 판단 근거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입니다. 20대 때 모습이 대부분 그렇지요. 연애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직업을 갖거나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입니다. 내가 누굴 만나고 어디를 가는지, 내가 무슨 일을 경험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할 때입니다. 잘 지내던 사이여도 감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쉽게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도 쉽게 만나는 때입니다. 활기가 넘치지만 아직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성혼은 자기중심적인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객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지요. 이때는 이기적인 성향을 합리적 사고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벌컥 화를 내고 때려치우기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계획을 세워 무언가를 이뤄내려 합니다. 또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는 때이기도 합니다. 감각혼 시기의 과제가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것이라면, 지성혼 시기는 합리성을 키우는 것이 과제입니다. 형식적 합리성이 아니라 심층 합리성을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전체로서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의식혼은 간단히 말해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합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성숙한 상태이고 영적 단계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미묘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합니다. 특히 경제적 이익이나 권력관계와 관련하여 이기성은 맹렬한 욕망이 되어 한 사람의 인격과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식혼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우리는 늘 시련을 겪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모두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인식틀을 갖는 것은 비유 그대로 죽고 거듭나는 일입니다. 저에게 발도르프 교육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렇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공교육에서 익혔던 철학과 방법론을 다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철학과 방법론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 모두 공감하실 거라 믿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지식을 쌓는 방식의 교육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슈타이너의 이야기처럼 포스트-아틀란티스 제4 문화기에 해당하는 방식입니다. 이제는 지식의 축적이 목표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늘 시험대 위에 올라서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해야 합니다. 감각혼 단계의 판단 기준이 좋고 싫음이라면 지성혼 단계는 옳고 그름이라고 했습니다. 의식혼 단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함과 거짓됨입니다. 우리가 키워야 할 감각은 진실에 대한 감각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저항감을 불러옵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속이는데도 저항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정신적으로 병든 상태입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나에게 좋다는 것도 아니고 옳다는 것도 아니어서, 당장 불쾌하고 틀린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진실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를 교사도 싫어할 수 있습니다. 예의바르고 성실한 아이가 예쁜 것처럼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교육적으로 정당한 일은 아닙니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도 감정에 영향을 줍니다. 싫거나 미운 마음, 즉 반감이 들 때는 반감이 드는구나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이의 행동이 잘못됐다, 틀렸다 하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다음에 할 일은 자세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외모, 표정, 말투, 문제행동의 전조증상, 부모와의 관계 등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반감이 들지만 이 자체가 진실한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는 나름의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판단이나 평가를 멈추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스킨쉽, 안정된 리듬생활, 충분한 놀이활동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일관된 권위가 필요하고, 존중과 함께 경계를 세워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교사로서 기질적 한계가 있다 해도 아이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기관의 운영방식

 

그렇다면 교사, 즉 교육자들은 발도르프 교육기관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요? 교사 개인의 과제가 있다면 교육기관 전체에는 공동체로서의 과제가 주어지는 법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인격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사회삼원론입니다. 저에게 발도르프 교육은 의식혼의 교육학인 동시에 의식혼의 사회학이기도 합니다.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은 의식혼의 사회학인 셈입니다. 사회는 세 가지 영역, 즉 경제 영역, 정치(, 국가) 영역, 문화(정신) 영역이 각자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게 사회삼원론의 핵심 신념입니다. 사회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경제가 다른 영역들을 지배해서도 안 되고, 법이나 국가가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삶에서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우애), 문화적인 삶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자유), 그리고 정치적인 삶에서 우리는 평등하며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평등)이 그 가치입니다.

 

그래서 정신-문화적인 교육기관 역시 사회삼원론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합니다. 각각의 교사는 완전히 자유롭게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이 필요합니다. 또 내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여야겠지요. 경제적으로 교사는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삶이 가능할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겠지요. 부모들은 발도르프 영유아교육이 실현될 수 있게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후원을 하는 것이지, 우리 아이가 다니니까 학비로 돈을 내는 형태가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돈 내서 아이를 보냈는데 이것밖에 안 해주냐, 라고 갑질을 하는 것은 애당초 발도르프 교육정신과 맞지 않는 것입니다. 교사 역시 이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버니까 억지로 참고 일하는 게 아니겠지요. 기본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급여를 받는 것은 교사의 능력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기본소득 개념을 거의 최초로 제시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근무시간이나 교육활동의 내용 등은 교사들이 협의를 하며 약속을 하는데, 그것이 정치적 또는 법적 영역이고 이 부분에서 우리는 커다란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발도르프 교육에서 추구하는 건강한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이 빈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탐욕적인 성향을 내려놓는 사회입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소득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더 많이 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내가 더 행복하겠다고 누군가를 불행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더 많이 가져가면 그만큼 누군가는 적게 가져가겠지요. 그리고 이미 지구가 그런 탐욕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지구는 임계점을 넘었고 우리가 더 풍요를 추구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하고 덜 이동해야 합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잘 분류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도록 소비를 줄여야 미래세대에게 약간의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경제적 두려움 없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나의 능력을 공동체 모두를 위해 발휘하되 그 몫은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고할 때 가능한 삶의 방식이겠지요. 우리는 그런 사회적 비전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 건강한 생각을 품고 살아갈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모방하고 선생님에게 권위를 부여할 것입니다.

 

병든 사회와 치유의 교육

 

갈수록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병든 아이들, 병든 부모들, 병든 동료들이 예전보다 심각할 정도로 늘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어느 정도 병들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부터 건강해져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지혜로워져서 주변의 사람들을 건강하게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사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발도르프 교육을 통해 가져야 할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박민규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모든 인간은 투병(鬪病)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라고 쓴 적이 있지요. 요즘들어 이 말이 많이 와닿곤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자기 자신도 속이지 않고 진실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이 문제가 저를 늘 고민하게 하고 깨어 있게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진실함이 필요합니다. 연구자로서 제가 늘 경계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엄밀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인지학 공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발도르프 교육은 진실한 교육이자 치유의 교육이며, 지금 우리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마음 안에 간직한 사명감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2023년 한국발도르프영유아교육연대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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