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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마음이 병든 사람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0. 12. 08:09

마음이 병든 사람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많은 정신과의사 또는 인지심리학자가 관계를 멀리해야 할 사람을 알려줍니다. “당장 손절하세요”, “절대 곁에 두지 마세요”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등에 대해 관계 단절을 조언합니다. 이것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일 수 있지만 교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어려움이 있는 아이나 부모를 만난다 해도 교직의 특성상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갖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낙인찍듯 편견을 갖는 성향도 있지만, 가급적 좋게 보려는 성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의로 한 행동이 당사자에게 실제로 해가 된다면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도박중독자를 돕는 방법은 중독자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도박중독자는 이미 뇌구조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하듯 친절하게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됩니다. 배가 고프니 음식을 사 먹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할 때 음식비를 건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돈으로 다시 도박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울 수 있다면 직접 밥을 사주는 게 좋습니다. 이처럼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돕는 일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 중에는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이들이 많아 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나르시시스트가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그 비율이 좀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흔히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알려져 있는데, 좀 더 폭넓은 개념입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그리스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딴 나르시시즘은 1899년 독일의 정신과의사 파울 내케(Paul Näcke)가 만든 용어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자아 이미지에 대한 이상화된 허영심이나 이기적인 감탄으로부터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입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위험한 행동을 즐겨 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과도한 자신감, 남에 대한 공감능력의 결여, 수치심 또는 죄의식의 부재 등의 특징이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은 심리학에서 사이코패스(공감능력의 부재, 자기 통제와 죄의식의 결핍, 반사회적 성향), 마키아벨리즘(타인을 조종하는 것을 즐기는 냉담하고 계산적인 성향, 소시오패스), 사디즘(타인을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성향)과 더불어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주변 사람들을 자기 밑으로 깔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지언정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습니다. 자기애와 자신감이 외부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보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적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으며, 기본적으로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남들을 깎아내리고,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과장하는 성향이 있는 나르시시스트의 경우에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자신의 중요성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나르시시스트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방어적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적대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이 학부모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상처를 받지 않고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에게 인정을 강요하며 남들보다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애쓰는, 전반적으로 우월감의 욕구가 큰 사람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존감은 높을지언정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존감의 과잉 상태인 동시에 내적으로 열등감에 시달릴 확률이 큽니다. 이들에게 자녀는 자아의 확장으로서 자녀 문제에서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그랬을 것이라며 오히려 “우리 아이의 마음은 읽어주셨나요?”라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녀가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세상에 벌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 반응할 것입니다. 과도한 인정욕구는 자녀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이들의 인정욕구를 채워주는 일은 결코 교사의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존엄하기 때문에 우월한 사람도 없고 열등한 사람도 없습니다. 달리기를 잘하거나 말을 잘하는 등 어떤 능력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있고 부족한 사람은 있겠지요. 하지만 타인들의 평가로 인해 한 사람의 자존감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마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학부모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굳이 변화시킬 필요도 없지요. 교사 스스로 건강한 자존감을 키운다면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일과 자신의 일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들 앞에서는 교사로서 중심을 잘 잡고 자기 권위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며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법입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이 제일 손쉬운 먹잇감으로 여기는 것은 공감능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공감능력이 풍부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공감이 과잉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공감은 감정을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라 확인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슬퍼하거나 화가 나 있을 때 진정한 공감은 그 슬픔과 화를 확인해주는 것이지, 같이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은 슬퍼하거나 화를 낼 자유가 있고, 나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자유가 있습니다. 교사가 평정심을 유지할 때 아이들과 부모들을 더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게 좋습니다. ‘저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대체 어떤 어려움이 있기에 남에게 상처 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까?’ 그 말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내가 받은 영향을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상대방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고, 나는 그런 말로부터 영향받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반감이 올라오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반감으로 인해 빌미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예의를 갖추어 상대방의 말에 대한 나의 감정과 욕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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