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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슈타이너가 바라본 괴테의 자연 인식 본문

루돌프 슈타이너

슈타이너가 바라본 괴테의 자연 인식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3. 9. 05:13

* 이 글은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 내 인생의 발자취>의 일부입니다. (Ⅵ. 1882~1886 빈, 아터제 : 124-129쪽) 슈타이너가 주목한 괴테의 인식 방법은 현재의 유물론적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이것은 인지학의 인식론과 연결되며, 슈타이너가 젊은 시절 고민했던 정신과학적 인식론의 바탕이 됩니다.




슈타이너가 바라본 괴테의 자연 인식



19세기 문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자연과학이 지배하던 사고방식은 괴테가 애써 높은 수준까지 도달한 자연 인식을 이해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괴테 안에서 한 인물을 보았다. 괴테는 사람과 세계 간에 정신에 부합하는 특별한 관계를 지어줌으로써 인간의 전분야에 걸친 업적 가운데로 자연 인식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정확하게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시대의 사고방식은 무생물계에 관한 관념을 구축하는 데나 적합해 보였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의 인식 능력으로는 생물계에 접근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문했다. 유기적인 것들을 인식하게 해주는 관념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무기적인 자연에 적용되는 지성적 개념들 자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은 내게는 죽은 것으로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또한 죽은 것을 파악하는 데만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괴테의 자연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괴테의 정신 속에서 원상들이 소생하고, 그 원상들이 이상화된 형상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괴테가 자연 인식의 이런저런 분야에 관해 하나하나 생각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은 내가 그의 공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중심적인 발견에 비하면 덜 중요해 보였다. 나는 괴테의 중심적인 발견이 유기적인 것을 이해하려 할 때 그것을 사고하는 방식을 알아낸 것이라고 보았다. 


나는 역학이 인식 욕구를 근본적으로 충족시켜 준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역학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합리적으로 개념을 형성한 다음, 그 개념이 무생물계에 대한 감각 경험 속에 실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물계와 연결되는 유기학(Organik)의 창시자였다. 근대 정신사 안에서 갈릴레이를 보면서, 나는 그가 무기체에 관한 개념을 형성함으로써 근대과학의 형태를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갈릴레이가 무기체에 대해 업적을 남긴 것을 괴테는 유기체를 상대로 해내고자 했다. 나에게 괴테는 유기학의 갈릴레이였다.


나는 괴테의 자연과학 분야 저작의 첫 권을 편집하기 위해 그의 변형론에 대한 착상을 살펴봐야 했다. 곤란했던 점은 유기체를 인식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살아 있는 관념의 원상의 형상화와 무기체를 파악하는 데 적합한 형상화되지 않은 원상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말로 나타내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 점을 정말로 분명히 밝힐 수 있느냐에 나의 과제 전체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무기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자연에서 작용하는 힘들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위해 개념 하나하나를 나란히 배열한다. 유기체의 경우에는 한 개념이 다른 개념으로부터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 안에서 형상화된 존재로 나타나는 것의 들이 생생하고 발전적인 개념 변화를 통해서 생겨날 수 있다. 괴테는 이런 상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식물 잎새의 어떤 원형상을 정신 안에 붙들어 두려 했다. 괴테가 추구한 원형상은 경직되고 생기 없는 개념이 아니라 극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개념이었다. 정신 안에서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부터 생기도록 두면, 우리는 식물 전체를 구성하게 된다. 자연이 실제로 식물을 형태화해 가는 과정을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관념적으로 따라만들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식물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무형의 개념으로 무기체를 파악하는 경우보다 정신을 담은 자연적인 것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사람들이 무기체에서 파악하는 것은 오로지 자연 속에 정신이 없이 존재하는 것의 정신적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식물의 생장 속에는 인간의 정신 안에 식물의 상으로서 생겨난 것과 조금은 닮은 무언가가 살아 있다. 사람들은 자연이 유기체를 생성함으로써 정신과 유사한 본질성이 스스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괴테의 식물학 저작들에 부치는 서문을 통해, 괴테의 변형론이 유기적인 자연의 작용은 정신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괴테의 사고방식에서는 동물의 성질과 사람 본질의 자연적인 바탕 안에서는 그런 작용들이 정신과 한층 더 유사하게 나타난다.


동물과 관련하여 사람의 특성에 대하여 괴테는 자신의 동시대인들이 보여준 오류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을 일일이 찾아냄으로써 인간의 유기체적인 토대를 자연 안의 특별한 위치에 두려 했다. 이들은 동물들의 윗쪽 앞니가 박혀 있는 악간골에서 그런 특징을 찾아냈다. 사람의 윗턱은 그런 특별한 사이뼈 없이 하나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괴테는 이런 견해를 오류라고 보았다. 그에게 사람의 형태는 동물의 형태에서 더 높은 단계로 변형된 것이었다. 동물의 구조 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사람의 구조 속에도 있는데, 다만 인간 유기체가 자의식을 지닌 정신의 운반자가 될 수 있도록 더 발달된 형태일 따름인 것이다.


괴테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하나하나 살피는 대신에 사람의 전체 형태는 높이 발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확인한다.


식물의 본질에서 시작하여 동물의 다양한 형태까지 고찰해 가다 보면, 단계가 올라갈수록 유기체적인 창조의 힘들이 정신에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유기체적인 형태 안에서는 정신적인 창조의 힘들이 활동하여 동물적 구조를 최상위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 창조력은 사람의 유기체가 생성 변화하는 데 존재한다. 그리고 이 창조력은 자연을 바탕으로 빚어진 그 그릇이 자연의 구속을 받지 않은 존재의 형태 안에 그 힘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창조력은 마침내 사람의 정신으로 살아 있다.


괴테는 인간 유기체를 이런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훗날 다윈주의를 기반으로 동물과 인간의 연계에 대해 제기되는 주장 가운데 타당성 있는 모든 주장을 예견하면서 동시에 타당성 없는 주장은 모두 배격한 것처럼 보였다. 다윈의 발견에 대한 물질주의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지상에 존재하는 최고 형태인 인간에게 나타나는 정신을 부정하는 견해가 나온 원인은 바로 동물과 인간의 진화론적 연계다. 괴테의 해석은 우리로 하여금 동물의 형상에서 정신의 창조를 보도록 하는데, 다만 이 정신의 창조물은 아직은 그 안에서 정신이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 내면에서는 정신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 동물의 형태 안에서는 정신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정신은 인간에서 이 동물적 형태를 변화시켜 창조자로서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험자로서도 나타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괴테의 자연 관찰은 자연의 생성 변화를 무기체에서 유기체까지 단계별로 추적함으로써 자연과학을 정신과학으로 서서히 바꾸었다. 괴테의 자연과학 분야 저작 가운데 첫 권을 마무리하면서 이 점을 제시하는 것이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물질주의에 물든 다윈주의가 편견을 만들어냈으며, 이런 편견을 바로잡으려면 괴테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나의 서문을 끝맺었다. 


나는 생명 현상들로 깊이 파고들기 위한 인식 방법을 괴테의 유기학 고찰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곧 이런 고찰에는 이를 밑받침할 기초가 필요함을 느꼈다. 당시 나의 동시대인이 설명하는 인식의 본질은 괴테의 직관에 접근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이런 인식론자들은 당대의 자연과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들이 인식의 본질에 관해 주장한 내용은 무생물계를 파악하는 데만 유효했다. 내가 괴테의 인식 방법에 관해 해야 했던 말과 당대의 보편적 인식론 사이에는 조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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