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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요제프 보이스가 스승으로 여긴 루돌프 슈타이너 본문

루돌프 슈타이너

요제프 보이스가 스승으로 여긴 루돌프 슈타이너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9. 16. 20:20

송혜영 지음, <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 사회평론, 2015

 



루돌프 슈타이너

 

보이스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슈타이너의 사상을 접했다. 그러나 그의 난해한 이론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미술대학 시절이었다. 철학자와 교육자, 기독교 신비주의자와 건축가로 다양하게 알려진 슈타이너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수학과 생물학, 물리학과 화학 외에 문학과 철학, 역사를 공부했으며, 이런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정신과 과학, 즉 자연과학에 대한 모든 지식을 예술, 문화, 인문학과 통합적으로 연계시켰다.

 

슈타이너는 1900년 신지학神智學의 영향을 받았지만, 1913년 신 중심의 신지학회에서 탈퇴하여 인간 중심의 인지학人智學회를 설립하였다. 1919년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라는 담배 공장의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발도르프학교를 세웠다. 슈타이너는 지식 전달과 기술 축적에 열중했던 당대의 교육을 비판하고 정신과 영혼, 육체가 조화를 이루는 전인교육을 추구하였다. 특히 미술과 음악, 무용이 접목된 다양한 예술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되는 자유인을 육성하고자 했다. 이런 발도르프교육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은 보이스에게도 영향을 미친 괴테의 사상에서 출발한다. 인간과 자연의 지속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한 괴테와 마찬가지로 슈타이너는 인간에게 내재된 우주 혹은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며, 생성번영개화쇠퇴소멸하는 전 우주의 모든 현상을 유기적인 통일체로 간주한다. 따라서 인류의 영적 발전은 전체적인 주변 세계와의 생동적이고 유기적인 교류를 통해 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슈타이너의 이런 생각은 인간은 항상 아래로는 동물과 식물과 자연, 위로는 천사와 영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보이스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슈타이너의 의하면 자연에는 세 단계의 광물, 식물, 동물이 존재하며 각각의 단계는 다음 단계를 향해 진화한다. 인간 역시 내면의 잠재된 능력을 통해 생물학적 존재에서 정신적 존재로 나아간다. 그리고 인간은 몸과 영혼, 정신의 삼중구조로 이루어지고, 감각적인 물질세계와 더불어 초감각적인 정신세계에 사는 존재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어떻게 정신이라는 실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슈타이너는 이 질문에 몰두했으며, 이를 위해 신비롭고 모호한 방법이 아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인식, 인지학이라는 정신과학적 체계를 이끌어냈다. 그는 인간의 인식을 두 가지 과정, 즉 개념적인 사고를 통한 정신적 세계와 지각하는 감각기관을 통한 물질적 세계로 분류하고, 기존의 오감각을 더욱 세분화된 열두 가지의 감각으로 구분하였다. 예컨대 네 가지의 육체감각인 촉가과 생존감각, 운동감각과 균형감각, 다섯 가지의 중간 감각인 후각과 미각, 시각과 온기 감각, 청각, 그리고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세 가지 감각인 언어감각과 사고감각, 자아감각이 해당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성과 감각의 서로 다른 인식과정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있으며, 이는 모든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통해 가능해진다.

 

슈타이너의 영향 아래 보이스 역시 이성과 감각의 복합적인 능력을 상호보완적으로 가동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 예로 <나는 주말을 모른다ich kenne kein Weekend>(1971-1972)라는 멀티플 작업을 보면 검은색의 여행용 가방 덮개 안에는 관념철학을 대표하는 칸트Immanuel Kant의 레클람Reclam 문고판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과 마기Maggi상표의 간장병이 동일한 높이로 나란히 놓여 있다. 여기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책과 간장은 궁극적으로 보이스를 비롯한 모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이성과 감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이스는 조형작업의 재료가 되는 지방과 펠트, 꿀과 금, 구리와 철, 유황과 납에서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 촉각적 요소를 발견했다. 보이스는 특히 듣는 조각을 강조하면서 조각은 보기 전에 듣는 것이다. 귀는 조각에 필요한 인지기관이다. 급수관의 물이나 정맥의 피에서 흐르는 역동적인 형태, 바로 유동적인 실체의 소용돌이인 나선형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하듯 그의 드로잉인 <들을 수 있는 단어들>에서는 귀의 달팽이 모양에 비유되는 나선형이 발견되며, 그의 행위에서도 청각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예컨대 <우리 안에 우리 사이에 그 아래in uns ... unter uns ... darunter>(1965.6.5)라는 제목의 행위에서 그는 다양한 몸동작을 취했는데, 상체를 숙이고 지방 덩어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보이스가 추구한 인지학적 관점의 조각은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작용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모든 감각을 적극 활용하여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는 대상이 된다.

 

(중략)

 

보이스가 강조한 유기적인 성향의 조형작업은 슈타이너가 주목한 꿀벌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슈타이너는 꿀벌의 생애에 관심을 갖고 그 작업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꿀벌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얻어낸 꽃가루로 밀랍을 생산하고, 밀랍은 육각형의 벌집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무형의 밀랍은 벌집의 명확한 결정체가 되고, 다시 벌집에 온기를 가하면 벌집의 결정체는 무형의 밀랍이 된다. 슈타이너는 이런 꿀벌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 무형과 유형, 유기체와 결정체의 양극적인 요소가 진행되는 과정을 발견하고, 이를 진화하는 조형의 과정으로 간주했다. 슈타이너의 이런 생각은 1923년 스위스 도르나흐Dornach의 강연회에서 벌들에 관하여Über das Wesen der Bienen’라는 주제로 소개되었고, 보이스는 훗날 책을 통해 그 내용을 접했다.

 

슈타이너와 마찬가지로 보이스 역시 양극 사이에서 움직이는 벌집의 형성과정에 주목했다. “나는 꿀벌보다 꿀벌들의 생존체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꿀벌들의) 유기체는 모두 따스한 온기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온기집단에서 바로 조형의 과정이 완성된다. 꿀벌은 따스한 요소, 강하게 흐르는 요소를 간직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결정체의 조각을 완성한다. 꿀벌은 규칙적이고 완전한 기하학적 벌집을 형성한다. 보이스가 추구한 새로운 조각은 이처럼 온기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온기이론Wärmetheorie’으로 요약된다. 물론 여기서 온기는 육체적인 온기뿐 아니라 정신적인 온기를 동시에 의미하며, 무엇보다 정신적인 온기를 통해 진화의 과정이 시작된다.

 

(중략)

 

마지막으로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이 성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은 역시 슈타이너이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주장에는 모든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믿는 슈타이너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슈타이너는 독일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했으며,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삼중구조사회Soziale Dreigliederung(->사회적 삼지성)’를 제안했다.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모범으로 삼은 삼중구조사회에서는 정신/문화’, ‘권리(->정치//국가)’, ‘경제가 분리되며, 이 세 가지 분야는 국가나 지도자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유지하며 상호 균형을 이룬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정신생활의 자유, ‘법치생활의 평등, ‘경제생활의 박애를 누리게 된다. 보이스는 슈타이너의 삼중구조사회를 본받아 미래지향적인 사회적 유기체, 즉 문화는 자유, 권리는 민주주의, 경제는 사회주의로 요약되는 자유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중략)

 

그리스도의 자극

 

보이스는 1924년 클레베의 시골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부모는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성장기에 형성된 광범위한 세계관을 토대로 그는 종파적인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형식적이고 편협한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계몽을 앞세운 개신교 역시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져 있으며, 교회는 독단적인 도그마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 속에서 그가 수용한 것은 슈타이너의 인지학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슈타이너의 세계관은 이성 중심의 그리스적 사고와 신앙 중심의 기독교적 사유, 자연과학을 통합한다. 그는 과학적인 진화론의 관점에서 기독교에 접근하고, 그리스도를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존재하는 추진력 있는 로고스의 실체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역사적인 교훈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건들이 오늘날의 인간을 위해 갖는 의미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슈타이너의 기독교관은 발전(->발달)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며, 이는 보이스의 진화론적인 기독교관에 영향을 미쳤다. 한 예로 <동물에서 인간으로>(1959)라는 제목의 초기 드로잉은 그의 진화론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 밖에도 보이스는 1971년 이탈리아에서 조그만 크기(10.5×6cm)의 묵상용 그림 다섯 개를 구입했는데, 이 가운데 두 점을 살펴볼 수 있다. 키치 같은 이 그림에는 반신상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데, 그리스도의 오른손은 축복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의 왼손은 가슴에 새겨진 심장을 가리키고 있다. 보이스는 다섯 개의 그림에 의미심장한 단어들을 적어 놓았다. ,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증기기관 발명가’, ‘전기 발명가’, ‘합성질소 발명가’, ‘열역학 제3법칙 발명가’, ‘만유인력 발명가라고 적었으며, 그리스도의 얼굴을 향해 화살표를 표기한 후 아래 부분에 서명을 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발전사(->발달사)에 기여한 과학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다섯 명의 과학자들 모두 그의 온기이론에서 핵심이 되는 에너지와 연관이 된다. 보이스는 이처럼 화합하기 쉽지 않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그리스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보이스에게 교회사를 통해 전해지는 천상의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현실에 존재하는 힘의 실체가 된다. 요컨대 인간의 모든 활동은 내면에 존재하는 고차원의 나, 즉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수행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보이스는 그리스도의 자극(->그리스도 충동)Christus-Impuls’을 언급하는데, 이 단어 역시 슈타이너가 인지학적 관점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자극은 골고다의 기적과 성령강림절에 그 의미가 생겨난다. 그리스도는 골고다 언덕에서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성림강림절에 불활한 그리스도의 존재를 영적으로 인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자극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영혼에 스며들어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며, 부활한 그리스도는 변화의 과정을 완수하는 힘의 실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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