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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과 자아 (1) - 루돌프 슈타이너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신경쇠약과 자아 (1) - 루돌프 슈타이너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0. 29. 06:51

신경쇠약과 자아

1912년 1월 11일 뮌헨 강연


루돌프 슈타이너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와의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유익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자는 종종 정신과학과 반대되는 이의 제기 외에도, 공개 강연 바깥의 사람들이 다른 발언을 하는 기회를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말하는 것은, 우리가 특히 늘 말하는 4구성체에 대하여 학식 있는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들 모두 그와 반대되는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과학의 의미에서 인간의 전체 본질 구성에 대하여 네 가지로 말합니다. , 물질체,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 아스트랄체와 자아입니다. 물론 회의론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숨겨진 영혼의 능력을 확실하게 발달시킨 사람들에게는, 이런 본질 구성과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받아들이기에는 근거가 희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강조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가 주목해 보면 다릅니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에 대한 인식을 말할 수 있는 확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에 대하여 정신적 인식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을 응용하면, 생명에 대한 어떤 적용이 무척 유익하게 증명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용은 –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차원 낮은 의미가 아니라 좀 더 높은 의미에서의 적용을 말합니다 - 그것이 영안의 관찰로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는 일종의 확신을 점점 얻을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많은 걱정을 담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신경쇠약(Nervosität)'이 포괄하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못마땅해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언사에 억눌려 있다고 느낄 때, 이런 증세를 보이는 것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에 사는 그 어떤 사람도 본래 무엇에 있어서든 신경과민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말에 대하여 어떻게든 진정한 이해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 신경쇠약에 우리가 이런 저런 이유를 덧붙일 수 있는 사회적 관계와 상태를 제외하더라도, 신경쇠약으로 표시될 수 있는 상태들은 평상시에도 흔히 있으며, 그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아주 쉽게는,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을 마음 불편해 하는 안달뱅이(Zappelfritzen)라고 부를 때, 그 사람은 신경쇠약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저는, "그는 어떤 사고를 질서정연하게 잡아두지 못하므로 생각을 실제로 철저하게 따라가지 못하여,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비약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생각을 붙잡으려고 시도하면 벌써 다른 생각으로 건너뜁니다. 내면생활의 어떤 서두름, 그것이 흔히 아주 가벼운 정도의 신경쇠약이 됩니다.


신경쇠약의 다른 종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또 이런 저런 사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어찌 시작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그러면 이런 상태들은 이미 예사롭지 않은 다른 상태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신경쇠약이 점점 더 많이 소진되어 서서히 다른 질병의 형태들로 나아갑니다. 내장 기관의 아무 원인 없이, 구별하기 어렵게 기관의 질병과 똑같은 것이 종종 만들어집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신경성이라는 말로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그 상태를 일축합니다. 그것은 질병의 현상들로 보입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물론 그 기관 부위에서 유발된 질병과 똑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상태를 제시해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이런 것 자체를 당해보지 않거나, 자기 주변에 이런 사람들과 비슷한 예시를 본 적이 없으면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좀 다른 부분으로 벗어난 예를 보겠습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그다지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공적 생활의 중요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정치적 알코올 중독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 공적 생활에서 보여준 신경성 충동의 특징이 화제에 오른 바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본래 개별적으로 평소 나타나는 행동의 특성이 마치 알코올 중독에 걸린 경우와 같아 보였습니다. 지난 몇 달간 유럽에서 정치적 사안들이 표류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외부의 공적 생활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어떤 것을 여러분들은 봅니다. 다시 말해 신경쇠약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떤 상태에서 곧 바로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경쇠약과 유사한 것은 어느 곳이나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좋아지기는커녕, 확언컨대 점점 더 나빠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금처럼 그렇게 머물러 있으면, 미래를 위한 좋은 전망들이 결코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삶에 아주 대단히 나쁜 영향을 미치는 여러 해로운 요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는 전염성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들 중에, 그들이 이런 종류의 병에 걸려 조금 아플 뿐 아니라, 또한 평소 약하지만, 건강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증세를 전염시킵니다.

 

공적인 생활에 두드러진 위치에 있으며 특정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현재와 같이 그렇게 연구 활동을 지속하면 그 자체가 독입니다. 전공 연구의 모든 분야들, 즉 대학교에서는 교수들이 강의에서 말한 것만을 꼼꼼히 생각하고 파고들어 탐구하는데, 그런 일만 일 년 내내 몰고 나갑니다. 또는 이따금 내용 안으로 빠져 들어가지만, 사람들이 시험을 보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만을 몇 주 안에 습득합니다. 가장 긴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배웁니다. 여기서 나쁜 것은, 그런 식으로 외워서 벼락치기로 습득하는 공부 방식입니다. 또한 이런 학습 방법은 수준 낮은 학교들에서 사용되는데, 거기에서 오는 피해들은 분명 위험합니다. 이런 벼락치기 공부에서 본질적인 것은, 아주 내적인 본질의 핵에서 우러나온 마음의 관심이 그런 공부와는 본래의 연결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이런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어휴, 배운 걸 이제 얼른 다시 잊어야지." 습득한 것을 강렬하게 지니고 싶어하는 것이 사라집니다. 받아들인 것에 대한 관심의 연결 끈은 인간 영혼의 핵과 아주 미세하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로 사람들은 전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의 배움이 공적 생활에 이제 충분한 작용을 미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들을 마구 벼락치기 방식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 직업의 과제들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머리로 하고 있는 것은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그런데 이제 인간의 총체적 본성을 생각해 보면, 머리로 해야만 하는 것이 내적으로 가슴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좀더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에게는 모순된 것일뿐더러, 사람의 에테르체 에너지와 강도에서, 바로 에테르체에 가장 높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간 영혼의 핵과 그 사람이 몰두하는 것이 서로 연결되지 않음으로 해서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는 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점점 약해지게 됩니다. 사람이 관심 없는 일을 억지로 많이 행할수록, 그 자신의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는 더욱 약화됩니다.

 

건강하게 인지학을 익힌 사람들은 인지학에서 말하는 내용, 즉 인간은 물질체, 에테르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배웁니다. 그뿐 아니라 인지학은 마땅히 작용하여, 건강한 방법으로 인간 본연의 개별 구성체들을 내부에서 강하고 힘차게 발달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주 단순한 시도를 하며 그것을 열심히 반복하면, 사소한 것이 바로 기적처럼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로 개별적 관찰들, 즉 소소한 것들을 말하려고 하는, 사소한 것임에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것이 그 사람의 생활에서 아주 의미 있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보여주는 가벼운 건망증이 지금 특징을 그려본 것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벼운 건망증은 생활 속에서 좀 즐겁지 않은 부분인데, 인지학은 우리에게 이런 건망증이 현저한 의미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약간 특별하게 들리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인간 본성이지만 깜빡 잊어버리길 좀 덜하면, 심각하게 아픈 경우의 경계선에 있는 그 사람의 특성에서 오는 돌발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해 봅시다. 건망증에 대하여 절대 자유롭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생활을 조망해 보면, 그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사소하지만 쉽게 겪는 경우를 예로 삼아봅시다. 어떤 이에게 건망증이 시작되어,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일상에서 겪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연필을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저녁에 잘 빼 놓은 커프스(셔츠나 블라우스의 소매 끝에 다는 장식) 단추를 찾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 기이하며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러나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바로 그런 것을 관찰하여, 이에 맞는 훌륭한 훈련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지학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지금 특징을 그려본 그런 건망증을 스스로가 점점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인은 저녁에 브로치를, 또 어떤 남자는 커프스 단추를 어디에 놓아두고, 다음 날 아침 그것들을 찾지 못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들을 한 장소에 놓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확실하고 좋을 것이라고. 모든 대상물을 그렇게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말하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훨씬 더 효과적인 특성으로 좋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건망증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것을 좋아지게 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다시 찾으려고 하는 브로치를 정말 다양한 곳에 놓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그곳에만 그것을 놓고, 그 장소 이외의 다른 곳에는 그 물건을 안 놓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특정한 장소에 놓고 형태, 색채 등 그 주변의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 인상을 마음속에 남기려고 시도할 것이다."


다른 것을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책상 모서리에 안전핀을 꽂아 둡니다. 생각으로 그것을 그곳에 놓으며, 직각을 하나의 상으로 각인시킵니다. 그 주변 모서리 두 측면이 만나는 직각을 핀이 싸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제 나는 그것에 대해 편안하게 떠나 있게 됩니다. 그 물건을 다시 찾는 경우, 내가 얼른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자주 이렇게 하여 규칙이 만들어지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내 물건을 그곳에 놓게 되므로 내 건망증은 조금씩 차츰 차츰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정해놓은 하나의 생각으로 파악될 수 있는 토대입니다. (나는 그 핀을 그곳에 놓는다는 그 생각입니다.) 또 그것을 통해 내 자아는 내가 실행하는 그 행위와 함께 연결이 이루어진 것이며, 거기에 하나의 상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서의 명료한 상, 내가 행하는 것을 상으로 생각하기, 그리고 그 외에 나는 내 행동을 나의 자아와 함께, 내 정신적-내적 본질의 핵과 연결하여, 우리 기억을 온전히 본질적으로 예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조금 덜 잊어버리게 되면, 이것이 이미 생활을 위해 유익함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도달하는 데 특별히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훨씬 많이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가정해 봅시다. 정해진 물건들을 놓는 데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사람들 중에 일종의 습관에 따라 이루어지면, 이런 습관을 통해 에테르체의 강화가 간단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에테르체는 그렇게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이 견고해지며, 점점 더 강해집니다. 우리가 인지학을 통해 배운 것은,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가 확실한 방법으로 기억의 운반자로 우리에게 관계한다는 점입니다. 기억력을 강화시키는 무엇인가를 우리가 행하면, 기억력의 그런 강화가 맨 먼저 우리의 에테르체에 유익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자로서 우리는 이것에 대하여 놀라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방법을 잘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줄 뿐 아니라, 신경쇠약의 상태를 보이는 사람에게 조언을 줍니다. 또 이런 가정을 해 보십시오.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는 신경질적인 사람에게 조언을 주어서, 그 사람이 바로 특징을 말했듯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건 놓는 연습을 행하면, 여러분은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 그가 진지한 연습을 통해 잊어버리는 것이 적어질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에테르체가 강화되어 차츰 신경질적인 상태를 극복하게 됩니다. 여기서 인지학이 에테르체에 대하여 말하는 그런 것이 올바르다는 증명을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얻습니다. 우리가 에테르체에 대하여 알맞은 방법으로 접근하면, 그것이 힘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성공의 도달에서 우리는 에테르체의 특징화와 취급의 타당성을 위해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계속)



* 이 글은 2014년 <행동하는 정신 제19호>에 실린 '신경증과 자아'(이정희 선생님의 번역)를 독일어 원본과 영역본을 참고하여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제는 'NERVOSITÄT UND ICHHEIT'이고, 영역본 제목은 'Overcoming Nervousness'입니다. 


Nervosit&auml;t und Ichheit.pdf

Overcoming Nervousnes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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