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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과 자아 (2) - 루돌프 슈타이너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신경쇠약과 자아 (2) - 루돌프 슈타이너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0. 29. 06:52

신경쇠약과 자아 (2)


다른 것으로 넘어가 봅시다. 이것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이지만,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질체와 에테르체라고 부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에테르체는 직접 물질체 내부에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깊숙하게 스며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과 관련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독특한 것을 적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구성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 건강하고 자비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에게서 이런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를 들어, 우체국 창구에 앉아서 일하는 공무원들이나 또는 필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철자를 쓰기 전에 특이한 움직임을 합니다. , 이들이 펜을 들고 필기를 시작하기 전에, 공중에 어떤 동작을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전혀 불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이 직업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이미 쓰기 활동에서 심각하게 나쁜 상태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여러분이 이런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글씨를 쓸 때, 필적에 어느 정도의 강한 움직임이 있고, 또 실제로 강하게 움찔대며 써내려 갑니다. 똑바르게 올라가고 내려가며 쓴 것이 아니라, 움찔대며 씁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써 놓은 글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를 정신과학의 인식에서 볼 때 우리는 다음처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건강한 사람에게서 (물질체와 에테르체와 관련하여), 다시 말해 아스트랄체에 의해 지휘를 받는 에테르체가 물질체에 연결되어야 하는 절대적 능력을 늘 가져야 하며, 그리고 물질체는 그 모든 움직임에서 에테르체의 도구, 즉 종이어야 합니다. 물질체는 자기 책임을 안고, 영혼이 본래 하고 싶은 것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원하는 것을 넘어선 움직임들을 행하면, 에테르체를 넘어서 물질체의 과도함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방금 묘사한 상태와 같은 경우를 우리는 에테르체의 허약함과 관련지어야 합니다. , 에테르체가 물질체를 더 이상 온전히 지휘할 수 없다는 취약함이 나타난 것입니다. 신비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체에 대한 에테르체의 이런 상태는 모든 경련 상태의 기초가 됩니다. 경련은 본질적으로 에테르체가 물질체를 지배하는 데에서, 에테르체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보다 더 가볍게 일어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체가 지배적이 되어서 독단으로 모든 움직임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본질 구성체와 관련하여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움직임을 에테르-아스트랄체의 의지 아래에 둡니다.


이 상태가 너무 진행된 것이 아니면, 도움이 되는 하나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신비학적 사실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의 에테르체가 강화되어야 하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에테르체의 실존과 에테르체의 강화 능력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합니다. 어떤 가련한 사람이 실제로 피폐해져서, 이런 저런 철자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손가락을 계속 떨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주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 휴가를 가져봐. 잠시 쓰는 것을 줄여 보게나. 그러면 그런 증상이 없어지겠지." 그렇지만 이런 조언은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에게 동시에 그 조언의 두 번째 부분인, 다른 것을 덧붙여 주어야 합니다. "너무 힘들이지는 말고 노력해 보게나. 매일 15분이나 30분 정도면 충분해. 자네 글씨체를 바꾸도록, 글씨를 다르게 쓰도록 노력해 봐. 자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인데,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글씨를 쓰지 말고, 자네가 철자를 어떻게 그리는지를 주의해 보게나. 자네가 보통 철자 F를 이렇게 뉘어서 쓰는데, 이제 더 수직으로 아주 다른 형태로 써보게나. 그러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철자들을 조심스럽게 그리도록, 익숙해지게 해보면 좋을 거야."


정신적 깨달음이 더 폭넓은 상사라면 이 안타까운 사람이 휴가에서 돌아와 다른 글씨체에 익숙해져 있으면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쳐버릴 노릇이군. 자네 글씨가 완전 달라졌구먼." 인지학을 추구하는 상사라면, 이것이 본질적 치유 수단임을 알아차립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글씨를 바꿀 때, 자신이 행하는 것에 부득이 면밀한 주의를 기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이 행하는 것에 주의를 쏟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내적 본질의 핵이 자신의 행동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이 마음 속 깊이 있는 본질의 핵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를 강화시킵니다


그래서 교육이 학교에서 이미 청소년기에 에테르체의 이런 강화에 체계적으로 작업하게 되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오늘날 인지학의 이런 제안들이 오랜 기간 실행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을 이끌어가는 표준화된 권위적 요인들이 인지학을 약간 미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상관하지 않습니다. 가정해 봅시다. 아이들에게 글씨 쓰기를 가르칠 때에는 얼마간 특정한 글씨체를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몇 년 동안 그렇게 글씨를 쓰다가, 별다른 기회 없이도 필체의 특성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면 글씨체의 그런 변화와 또 여기서 가치 있게 부여된 강화된 주의력이, 발달해 나가는 에테르체에 엄청나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훗날의 삶에서 신경쇠약 같은 상태를 별로 겪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의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를 강화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생활 속에서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의 약함이 현재 실제로 건강하지 못한 다수의 상태들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말하는 것이 너무 많이 이루어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증명되는 질병의 형태들이 바로 현대인들에게 보입니다. 현대인의 특징적인 증후군인데, 약화된 에테르체가 문제입니다. 약화되는 진행보다 에테르체가 더 강했더라면, 상태가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인하는 것, 현존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훈련들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에테르체에 적용하는 어떤 훈련들이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이런 훈련들이 어떤 작용을 지닌다는 것이 증명되면, 에테르체와 같은 것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이 주어야 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증명은 삶에서 드러냅니다.


우리의 기억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인가 다른 것을 행하면, 우리는 에테르체를 본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맥락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 여기서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 모든 질병의 형태에서처럼 신경성에서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제안들이 당연히 영향을 미칩니다. 에테르체 또는 생명체를 강화하는데, 굉장히 많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그것을 거꾸로 진행해 봅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시대적 사건들의 순서대로 어떤 사건들이나 지배자들에 대하여 해당 연도를 배우는데, 그것을 거꾸로 해봅니다. 이것을 배우게 하거나 또는 스스로 정상적인 순차대로 배우는 것뿐 아니라, 뒤에서부터 앞으로 이끌며 그것의 순서를 거꾸로 습득하는 것이 굉장히 좋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좀 더 포괄적인 양을 그렇게 하게 되면, 우리 에테르체가 아주 많이 다시 강화됩니다. 희곡 대사를 완전히 뒤에서부터 앞으로, 우리가 읽었던 이야기 같은 것을 끝에서부터 앞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에테르체를 최고로 굳건하게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까지 에테르체의 강화를 위해 특별히 좋고 효과적인 것으로 불린 그 모든 것을 오늘날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행하지 않거나, 또는 요구되는 규칙성을 따르면서 전혀 응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낮 동안 쉼 없이 현재 활동 속에서 이런 수련을 위해 내적 평온으로 가는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직업 활동을 하며 쫓기다 저녁이면 지쳐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을 잠시 내려놓거나 또는 어떤 숙고를 해보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신과학이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 속에 실제로 파고 들어간다면, 오늘날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끝없이 많은 것을 줄여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강도 높은 수련들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은 본래 근본적으로 각자의 시간 속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곧 알게 될 터인데, 교육의 영역에서 그런 것들을 면밀히 생각하며, 이에 대하여 엄청나게 유익한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작은 것을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이것은 훗날의 삶에서 그다지 쓸모 있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그것을 사춘기 전에 공들여 하지 않은 경우, 나중의 삶에서라도 행하면 좋습니다. 우리가 실행하는 확실한 것들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들이 흔적을 남기든 아니든 개의치 않고) 행해지는 일을 주의깊게 보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사람들이 글씨 쓰기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확신하건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쓴 것을 한 글자씩 하나하나 바라보는 시도를 하게 되면, 즉 자신이 쓴 글씨를 실제로 다시 한 번 눈으로 훑어보면 그는 악필 습관을 버리게 됩니다. 글씨 쓸 때, 자신이 행하는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또 연습 방법이 좀 다르지만 좋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오래 지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 스스로 바라보기를 시도합니다. , 어떻게 걷는지, 손과 머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특징적으로 어떻게 웃는지 등, 간략하게 말하면 자신의 몸동작을 어떤 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여러분은 충분한 삶의 관찰을 통해 확신할 수 있을 텐데) 자신이 어떻게 걷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들이 걷는 동안, 사람들이 시선을 거기에 두면,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한 어떤 표상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행위의 효과에 대하여 하나의 상을 가지려면, 그런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오래 지속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사람의 허영심에 너무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것을 생활에 적용하면, 우리에게서 많은 수정을 하지 않아도, 확실히 이런 수련은 아스트랄체를 통해 다시 에테르체나 생명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 무척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동작을 관찰할 때,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떤 생각을 스스로 하면서, 자신이 행하는 바를 바라보면, 에테르체 너머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지배하는 것이 점점 더 강해지므로 그런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은, 예컨대 확실한 행동이나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멈추고 또는 자신의 습관과 달리 행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억누를 수 있습니다


행하는 것들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가장 커다란 성과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좀 정당하지 않게 사용하고자 할 때, 필체의 특성을 다르게 하려고 배웁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온전히 정직하게 행동한다면, 에테르체의 강화를 위해 한 번씩 다른 특성을 지닌 필체로 바꾸어 보는 것도 잘 하면 좋습니다. 사람이 계획한 바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 즉 어떤 사안을 오로지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해야 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실행하는 능력을 지니는 것은 퍽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왼손과 오른손 사용에 대하여 철두철미하게 따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보통 오른손으로 할 수도 있는 어떤 행위를 왼손으로 계획하여 하는 것을 시도해 봅니다. 마치 양손잡이가 하듯 합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시도는 우리의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에 영향을 미치고 지배하는 데 유익한 영향을 발휘합니다. 이런 것은 정신과학적 통찰을 통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과학의 보급을 통해 우리의 문화에 강인함을 가져오게 할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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