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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정신의학에 대한 도입 강연 - 2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정신의학에 대한 도입 강연 -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4. 13. 21:19

정신의학에 대한 도입 강연 - 2

 

2012년 2월 8일 수요일

사이먼 베드내렉

 

 

두 번째 질문은, 질병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과제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지입니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상태가 바로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근원을 찾는 것, 그것이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1979년에 스트레스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유명한 연구가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이 질병도 덜 걸린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보다 건강의 근원에 대해 찾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똑같은 사회, 환경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아프고, 어떤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제 경험에도 똑같이 허리에 통증이 있어 온 환자의 경우 한 사람은 그냥 일하러 간다 하고, 다른 사람은 진통제와 다른 약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육체적인 증상이 있어도 MRI 등의 여러 가지 진단검사를 했을 때 똑같은 상황에도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질병에 대한 세 가지를 이야기를 그분이 했습니다.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신진대사 체계에 있습니다. 스스로 균형을 잡아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여러 가지 질병이 다가와도 스스로 극복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신진대사체계가 더 유연할 수 있지만, 또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특성도 있습니다. 비타민 D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주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관습적인 의사로서 이러한 예를 많이 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협응력(co-herence)이라는 힘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의 성장시기를 보면 자기 삶에 무엇이 일어나든 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의미 있는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런 협응력이 있습니다.

세 번째의 것은 저항력, 저항의 원천(면역력)이 있습니다. 닥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어려우도 극복하는 힘입니다. 직업을 잃었을 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자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근심이나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고, 그것을 크게 보지 않습니다. 요즘의 논리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면역체계가 약하다는 조사연구를 내놓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영향으로 나쁜 콜레스테롤의 상승을 말하는데 이는 운동부족에서 기인하지만 이보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인입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고유성에서 봤을 때 정신적인 힘의 문제입니다.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잠재성, 중간영역(영혼영역)에서 아주 건강한 사회적인 관계가 필요합니다.

내일은 아이 발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발달단계론에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지점을 같이 말하겠습니다. 모방, 습관, 경외심, 상상력이 그것입니다. 협응력과 관계해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어’, 이럴 때 질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잘 조절하고 대처할 수 있는 힘, 어떤 게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의미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이건 가족이건 아이들이건 수업이나 어디에서 이야기가 됐을 때 그걸 정말 이해하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매뉴얼처럼 만들어서 단지 처방전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서양이 이끄는 이 세계가 지금은 아주 혼란스럽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고 환자들은 더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방전만을 받았을 때 환자들이 의사에게, 당신은 제대로 된 의사가 아니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성에 대한 숙고 없이 그냥 처방전만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지학의 관점에서 본 건강은 무엇입니까? 건강은 두 극점에 대한 균형입니다. 아주 섬세한 균형, 질병은 긍정적 변화(균형)를 위한 기회가 된다는 게 인지의학의 관점입니다.

제가 훈련 받은 일반적인 의사교육에서는 질병과 건강이 별개의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배운 교육에서는 반 정도만 배운 것 같고, 인지학을 통해 건강이 두 극단의 균형임을 배웠습니다. ‘질병 / 건강 / 질병’. (그 위에 선을 긋고 피라미드처럼 단계적으로 올라감)

건강

   질병  질병

 

이게 사람들이 있는 상태입니다. 처음에 저는 슈타이너가 말하는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극점 사이에는 어떤 단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이 꼭대기에 있다면 아프기 전까지 양 극점을 연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담배를 많이 피거나 과식, 음주를 많이 해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위로 올라갈수록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질병이 많아집니다. 우리 삶에 균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운동, 면역, 육체적 건강)를 살펴봤는데 그럼에도 아플 수 있습니다. 협응력, 면역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의사로서는 내 몸 안에 있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현상이 이해가 되겠지요. 그럼에도 때때로 아프게 됩니다. 나는 건강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있습니다. 내가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존할 때 더 건강합니다. 과거나 미래에 얽매일 때 우리는 더 아플 수 있습니다. 현재에 사는 것, 이게 바로 건강입니다. 그것은 조화롭고 균형을 갖는 것입니다. 정신과 영혼, 육체적인 것과 에너지 등의 균형을 이루는 상태입니다.

21세기의 우리 삶을 보십시오. 미래에 일어날 일, 내가 어떤 집에 살게 될지, 어떤 상황에 처해질지 이런 걸 생각합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 과거 삶에 대한 불만족에 매여 있지는 않나요? 때때로 의사를 만났을 때 나를 제대로 보지 않고, 골프를 치러가고 싶다거나 다른 것에 신경이 팔려 있는 의사를 만나보셨습니까? 사회적인 삶에도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이룰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지 보십시오. 내가 속해 있는 여기에 있는지 질문해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 삶에 과제가 있습니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전체에 속해 있고, 그 삶의 과정을 함께 가고 있나요? 내 삶이 강물처럼 휩쓸려가지 않는지, 외부의 영향에 휩쓸리지 않는가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현재의 기쁨을 찾으십시오. 여기서 강연을 힘들게 듣지 말고 즐겁게 들으세요. 현재의 즐거움을 찾으세요. 우리가 즐겁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겁니다.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행위를 합니다. 과거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그 상태에 실재하면서 즐거웠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제게 아주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 환자를 통해 저는 배웠습니다. 미래를 준비할 때 그것이 즐거운 미래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열정과 진정한 즐거움이 있지 않은 미래라면요? 미래를 향해서 작업하십시오. 우리가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은 ‘오늘 하루 중 내가 가장 나 자신이었던 적이 언제였는가?’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순간순간 자신의 실재를 느끼면서 지내야 합니다. 순간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가장 나 자신일 때. 우리가 실재한다면 우리의 스트레스를 현저히 줄일 수 있고(제대로 다룰 수 있고) 우리의 건강 상태가 피라미드에서 조절의 가능성이 많은 아래쪽으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찾기 어려울 수 있는데, 스스로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타인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계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제대로 발견하는 것, 자신의 보물을 찾는 것,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된다면 내가 누구인지 진정으로 알 수 있고, 세상에 올바르게 설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갖는 것입니다.

그 다음 질문으로 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걸까요? 의사, 교사로서 고군분투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고 함께 작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진리(참)와 앎에 대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계발시켜야만 높은 차원의 자아(정신자아)를 계발할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교사라면 어린 아이들이 나비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것을 잃어버립니다. 어른들은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잃곤 합니다.

저는 남자로서 아이들이나 여성들만큼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을 유지하는 게 힘듭니다. 저로서는 늘 새롭게 다시 창조해내어야 합니다. 지금도 아름다운 꽃을 보고 “와~!” 하는 반응을 하기 보다는 “이런 것이 있군.” 하는 반응을 하게 됩니다. 제 안에서도 계속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의학에서 과거의 신비를 현재의 신비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슈타이너가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우리는 오래된 방식을 잊어야 하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서 배워야 합니다.” 인지의학, 발도르프교육학, 생명역동농법 등을 통해 그는 과거에서 새로운 방식을 이끌어 냈습니다. 앞서 말했던 분들도 슈타이너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것을 현대에 맞게 새롭게 적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계발시켜야 할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한 책에서 슈타이너는 말했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하여 행위로 이끌어질 수 있는 것들은 많은 것을 충만하게 하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된다고요. (모든 행위는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 의사의 길은 무엇일까요? 저는 스스로 질문합니다. ‘내가 어떻게 치유의 힘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 무엇을 계발시켜야 할까요? 진실성을 갖는 겁니다. 거기에 많은 해결점이 있습니다. 내가 요구받았을 때 그 진실성을 어떻게 적당한 시기와 장소에서 전달할 수 있을까요? 환자에게도 적당한 시기와 적당한 장소에서 질병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적당하지 않은 장소에서 적당하지 않은 시기에 말한다면 질병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면적으로 나에게 진실성이란 무엇일까요? 내 자신이 선하다고 느끼는 건 무엇일까요? 내 내면의 진정한 의지는 무엇일까요? 인간에게는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진실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게 진정성인지,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인지 봐야 합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진실인지? 적절한 시기에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기적이지 않은 진실(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닌지)을 주어야합니다. 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입니다.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의 가슴에 주어진 모든 질문에 대답하려 하지 말라. 그 질문을 사랑하려 하라.’ 젊은 시절 저는 환자에게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대답이 어려우면 질문하지 말라는 좌우명을 갖고 산 적도 있습니다. 질문에 따른 답을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환자에게 사랑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러면 환자는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세 번째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하는 게 자유인 건 아닙니다. 자유는 우리의 내적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자유의 공간을 주고 있습니까? 그 안에 자유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도록 길을 안내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환자가 수혈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과거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자신의 삶의 조정능력을 잃고 싶지 않고 과거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사를 찾아가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슈타이너가 말한 고차원적인 세계에서 자유라는 것은 외부 세계의 자유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외부에서 ‘너 이렇게 해라’ 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내면에서의 ‘너 이렇게 해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 사회에서 떨쳐 일어나 관계의 손상 없이 하고 싶은 바를 말하는 것은 더 많은 용기와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올바로 선다는 것. 가족이나 친구 앞에서 ‘나는 좀 다르게 해볼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정말 사랑을 갖고 봐줘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자꾸 연습해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자기 삶을 자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을 갖고 도와주고 있습니까? 지금 현재 저는 환자들이 제가 인지의학자임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편견 없이 저에게 찾아오며 만나고 있습니다. 자기 위엄이 있는 자유, 품위 있는 자유가 중요합니다. <명상의 길>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여러 가지의 자유에 대해 슈타이너가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자아라는 것은 우리가 놓여있는 다양한 사회 속에 놓여진 자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운명에 대한 에스파냐의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적 자아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이

이따금 내가 만나지만 대부분은 잊고 지내는 이

내가 말할 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이

그리고 내가 미워할 때 용서하는 이

가끔은 내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가는 이

또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에 서 있는 이

그가 바로 나이다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1세가 되면 보통 사람은 자아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다. 자아의 탄생입니다. 21세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변화가 생깁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됩니다. 사물들, 상황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 같은 모습이 싹 사라지고 어른의 모습을 갖춥니다.

21세부터 다음 7년 동안은 과거의 나를 잊고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을 가지게 됩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종종 그렇습니다. 21,22세 정도의 젊은이들과 얘기를 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아주 신선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아주 다른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아이였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질문들을 이제는 던질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운명과 관계된 것이고, 세 번째 질문은 아이의 발달을 어떻게 깊이 있게 알 수 있는지 인지학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오늘 조금만 도입해 보겠습니다. 세 가지 질문은 어릴 때 이미 태아의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작년 8월에 있었던 컨퍼런스에서 이 이야기가 진행된 바가 있습니다.

1) 정체성 ; ‘나는 누구인가?’ 9살쯤 되면 ‘나 입양됐나? 나 누구지? 우리 엄마 맞나? 나 엄마 딸 아닌 것 같아.’ 이럽니다. 12살 때 비슷한 경우를 겪게 됩니다. 환자들도 늘 나에게 이런 질문을 갖고 옵니다. 직접적이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늘 묻습니다. 일상의 나가 아니라 진정한 나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 누구지?’ 하면 보통 난 우리 애들의 엄마야, 아내야, 교사야, 이런 대답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저는 의사로서 당신의 열정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면 환자는 이제 진정한 자신과 연결하기 위한 작업을 하게 됩니다.

2) 운명. 운명에 대한 질문에서 다른 사람들(동료, 가족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떤 의미가 다가올 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컨퍼런스에서 며칠만 관계를 갖게 될까, 저녁을 먹으며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3) 의미. 세 번째 질문은 ‘의미’였습니다. 이 지상의 삶의 의미가 있는가? 왜 난 이 병에 걸렸을까? 대체 이 속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가지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예를 많이 들었는데요, 선생님들이 많이 오신다기에 시라든가, 다른 인용구들을 소개해보았습니다. 제가 드린 자료를 통역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어두운 성의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옛날 옛날 아주 사랑스럽고 예쁜 공주님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은 나무로 울창하여 온통 어둡고 모든 사람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성에 햇빛이 안 들어와서 공주는 나무를 잘라내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는데 아무도 못했습니다. 이 성의 나무들을 베어내는 사람은 공주와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의 왕자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길을 가는 도중에 도끼를 만났습니다. “필요하면 저를 가져다 쓰세요.” 그 다음에는 곡괭이를 만났습니다. “왕자님이 저를 발견하기를 기다렸어요.” 마지막으로는 호두 한 알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왕자는 길 위에서 만난 도끼와 곡괭이와 호두를 데리고 갔습니다. 성에 들어간 왕자는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곡괭이로 우물을 파고, 거기에 호두를 심었더니 호두나무가 크게 자라서 온 마을에 물이 흘러들었습니다. 왕자는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지금도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의미에 대해 내일 말하겠습니다. 21세에서 42세의 삶(감정혼, 오성혼, 의식혼)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혼 성장기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환자들을 만났을 때 제대로 된 권위와 사랑을 갖고 만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야기(스토리)가 갖고 있는 힘이 아주 크기 때문에 의사는 종종 이야기를 통해 환자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들려줘야 합니다.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는 에테르체에 담겨 있는 힘을 이끌어내어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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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테마 : 균형, 의미, 아이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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