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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정신의학에 대한 도입 강연 - 3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정신의학에 대한 도입 강연 -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4. 13. 21:19

정신의학에 대한 도입 강연 - 3

 

2012년 2월 9일 목요일

사이먼 베드내렉

 

 

좋은 아침입니다. 남자분들이 앞에 나와 노래 부르니 좋네요. 오늘 아침에는 목소리 관리하느라 같이 부르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꼭 같이 하겠습니다. 아침에 두 분(진행팀)께 오늘 무슨 얘기를 할지 말했더니 너무 많다고 하시더군요. 폰 선생님은 얼굴이 창백해지셨어요. (웃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우리의 토론을 더 깊이 가져가게 하는 걸로 봐주세요. 글뢱클러 선생님 오시기 전에 참고하는 이야기로 들어주세요. 저도 말하다가 길을 잃곤 하는데, 그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어제 이야기 기억하시지요. 그 이야기에 이미 여러 가지 답이 들어가 있고, 제 강연의 답들도 거기에 이미 있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이야기가 이해를 하는 데에 주된 열쇠가 되는데, 잘 들어주십시오. 성은 육체, 나무는 생명체, 공주가 감정체(영혼)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영혼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생명체가 너무 강하게 활동한다는 것이고, 나무가 성을 다 덮은 것과 같습니다.

어제 4가지 계발하는 것, 모방 습관 경외심 상상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의 짐(생명체)이 감정체를 너무 억눌러서 자기의 빛을 누르는 것입니다. 햇빛이 더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해가 그 역할을 하는데, 빛이 들어오면 우리를 깨워줍니다. 여기서는 고차원의 세계에서 도움이 필요하고, 가치를 잃어버려 정신세계와의 끈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왕자가 와야 합니다.

이야기에서 항상 어딘가를 지시하긴 하는데,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왕자에게도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말하지만, 헤쳐 나가는 건 왕자의 과제입니다. 어두움에 휩싸이고 생명체에 갇히는 것은 그 속의 고요함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인데, 흔히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기도 합니다. 공주는 영혼으로 영혼을 우리가 잘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다른 왕자들처럼 죽어버리게 됩니다. 공주가 상징하는 영혼을 우리가 풍부하게 이용하지 못해 죽게 되고, 그래서 나무가 더 크게 자라 빛을 가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왕자는 정신의 힘을 상징하며 정신의 힘이 나무를 잘라내는 것은 새로운 빛이 우리 삶에 들어와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왕자가 와서 필요한 일을 해주어야 몸을 뜻하는 성이 새롭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낮잠처럼 오후 세션(예술활동)이 우리에겐 약간 꿈꾸는 듯한 시간일 것입니다. 정신의 힘이 우리 영혼 안에 스며들 때 정신적 힘을 활동하게 하는 게 예술활동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정신적인 힘은 영혼과 연결되어 예술활동을 즐기게 합니다. 여러분이 저 같다면 여러분의 예술활동은 아마 유치할 것입니다. (웃음) ‘난 못하니까 안 할래’, 이런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술작업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면서 그것이 다시 우리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작업이란 밤에 우리가 자는 것과 같이 우리의 자아가 자유로워지고 빛으로 채워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순간이 바로 ‘나’를 경험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갤러리를 가거나 꽃을 보는 것이 그렇습니다. 성이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지는 것은 자신의 본능적인 충동, 욕구 등을 좀더 의식적인 의지의 행위로 변환시키는 것을 상징합니다. 도끼는 예부터 내려오는 구습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우고 해내는 것을 뜻합니다.

슈타이너가 이야기하기를, 감각혼(감정혼)이 발달하는 시기는 내면에서 감지하는 것을 키우기도 하지만 세상에 나아가 감각하는 힘을 키우는 시기라고도 하였습니다. 21-28세입니다. 저도 아이를 키워본 부모로서 아이가 갑자기 들어와 ‘저 이거 할 거예요’, 이럴 수 있는데 부모는 뭘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 시기는 스스로 내면 깊이 파고들어가는 시기입니다. 큰 도끼는 ‘필요하면 나 써도 되요’ 하지만 곡괭이는 ‘당신이 날 쓸 수 있길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건 우리 안에 쓰이길 갈망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자아가 사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30대 중반쯤 되면 굉장히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는 시기가 됩니다. 특히나 이 시기에는 우리 안의 깊숙이에서 ‘나는 정말 누구지?’ 이런 시기인데, 안의 상황과 현실이 전혀 다른 상황일 때 그런 질문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런 질문은 우리의 살아있는 사고를 더욱 발달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세 번째 단계는 사고의 힘이 발휘되는 단계로 숙고할 때 인간의 두뇌는 열리게 됩니다. 호두는 우리의 두뇌와 같이 열어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타인들에 대한 기대치가 더 컸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기대치입니다. 지금 현재에는 ‘나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더 무게가 쏠리는 시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묻지요. 1)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2) 기대치가 있는데, 보통 환자가 왔을 때 그 둘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게 의사의 역할입니다. 그런 환자들이 왔을 때는 인생을 돌아보고 무언가 놓친 것을 찾게 해주는 게 필요한데, 그것을 찾아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작업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어떤 존재인지, 영혼은 알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놀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에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직면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상 속의 자아는 내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열쇠를 발견하는 걸 원치 않고, 현재의 나를 마주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의사는 자기가 스스로 열 때까지 기다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왕자는 삶에서 필요한 적절한 도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40대에 필요한 도구들입니다. 40대의 위기에 대해 많이 들었을 텐데, 예전 방식으로 살 것인가, 새로운 방식을 개척할 것인가, 하는 과제입니다. 그건 과거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서 가져온 걸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적절하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제시한 이야기는 20대, 30대를 거쳐서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중년의 위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아이에게 교사로서, 의사로서, 어른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 때 그것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아이, 환자)에게 주는 이야기 자체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우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예를 들어 이야기해주는 게 꼭 과학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상을 주면 됩니다. 그것은 삶을 완성하는 계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굉장히 드리미한 아이였습니다. 항상 교실 밖을 떠돌아다녀서 선생님들이 만나기 아주 힘들어 하는 아이였습니다. 아주 게으르고 고집 세고 공부 잘 안 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학부모의 밤에 담임선생님이 저에 대해 ‘이 아이는 꼭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보통 아이들이 대학교 진학을 안 하는 학교였습니다. 그게 제 안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아, 내가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지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단추를 누르게 했다면요. 이처럼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긍정성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만날 때, 환자는 우리에게 들려줄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 우리가 상담할 때 아주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제대로 집중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그 순간을 놓치게 됩니다. 두 개의 자아가 제대로 만나지 않을 때 그 순간은 사라지게 됩니다. 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가 자기에게 무슨 이야기든 들려줄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존중할 수 있다면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왔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의사인 나를 열고, 환자는 의사가 경외감을 갖고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 하고 신뢰감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아주 아주 바쁜 의사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의사 중의 한 명인데, 하루는 그 사람이 제게 와서 뭔가를 말하고 싶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당신은 어떻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환자를 만나서 웃고 깊은 얘기까지 나눌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그 의사는 환자와의 만남을 어려워해서 종종 갈등도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환자와 의사의 두 자아가 만날 때, 환자가 의사에게 믿음만 생기면 그 다음은 아주 쉽게 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제 파워포인트를 준비해왔는데 안 됐습니다. 오늘은 화면에 몇 가지를 띄워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 제가 어떻게 글씨를 쓰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농담) 에스파냐 시인의 시는 이따 보여드리겠습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삶의 개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대로 하면 3시간쯤 걸립니다.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고요, 앞으로 전개될 강연의 기초가 되는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탄생 -> 죽음

 

위(우, 상)로 올라가는 시기는, 점점 성장하고 강해지는 시기가 있고 점점 약해지고 쇠퇴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관습적인 의학에서도 인간발달에 대해서는 잘 연구되었고 거의 똑같습니다. 두 번째 생각할 부분은 육체적인 탄생과 함께 무언가 정신적인 탄생을 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육화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 몸을 입는 것입니까? 이야기에서 궁전이 거대한 나무로 가려지는 그림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아주 깊이 육화하는 시기임을 뜻합니다. 정신적인 것이 내려와 육체의 성장 및 노화와 겹치는 부분은 다시 올라갈 것인지, 몸과 같이 쇠퇴해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기입니다. (두 반원이 위아래로 겹치는 부분 : 21-42세)

우리가 인생에서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21-42세의 시기는 우리 영혼의 발달이 수평적으로 되는 상태입니다. 환자들을 만날 때 환자들 속에서 보통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21-42세 사이에 육체가 죽어가는 것처럼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걱정, 삶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 삶이 재미없어지는 것처럼 뒤로 위축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50대 중반 밖에 안 되는데 70-80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발전하지도 않은 채 계속 영혼선을 꿋꿋하게 유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프기도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어떤 환자들은 80-90세인데 60세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아 우리를 놀라게도 합니다. 제가 어느 세미나에 갔는데, 90살 된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에 온 적이 없고, 너무나 젊어보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자기가 어느 지점에 왔는지 이야기하는 게 정말 흥미롭습니다. (42세까지의 7년 주기 겹치는 그림을 제시하며) 0-7세 사이는 우리가 모방하는 존재라고 부르는 시기입니다. 자신의 신체와 조직을 완성하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모든 게 동글동글한데 7세쯤 되면 쭉 길게 커나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7-14세는 리듬의 존재로서, 사회적인 관계에서의 리듬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경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사춘기가 되어 경계감이 없다면 술이나 마약을 하거나 경찰에 체포되는 일을 겪기도 합니다.

14-21세의 그 다음 7년은 역동적인 시기입니다. 아마 상급교사는 알 겁니다. 이 시기 아이들이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하지만 이 시기 아이들에게 자기 신체의 한계를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특히나 이 시기에는 남자아이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치거나 때릴 때 다른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건 아버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자기 힘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남성의 역할이기도 한데, 육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이 이 사회에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도 알게 해야 합니다. 여학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에 대한 한계를 깨닫게 해줘야 하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해줘야 합니다.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여자아이들은 자기 신체가 얼마나 파괴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알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시기들은 옛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서로 마주보는 7년끼리가 변형하는 시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장기의 발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전부터 21세에서 24세에서 영혼적, 정신적 병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이 보통 어린 시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역동적인 힘이 넘치는 시기(14-21세)에 아이들이 의지를 형성하는 힘을 배우지 못하면 그 다음 시기에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14세 사이에 리듬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28-35세 사이에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되게 됩니다. 30세쯤 되면 ‘나의 길만 있어. 다른 길은 없어.’ 이러한 외고집적인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자료는 여러분 메일로 드릴 테니 집중해서 봐주십시오. (웃음) 저 표는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른 배움의 요소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세상은 좋은 곳이야, 아름다운 곳이야, 진실된 곳이야, 이런 순서입니다. 세상에 대한 경외심, 신비로움을 가져야 하는 시기. 리듬, 따뜻함, 안정감, 신뢰를 알게 하는 시기가 첫 번째 7년입니다.

제가 발도르프학교 교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7-14세의 시기는 경외감을 위해 축제, 축일을 잘 해야 하고, 계절탁자도 잘 만들어야 하는데, 교사는 정말로 그림과 글씨에 아름다움을 담아야 합니다. 올바른 생활습관을 형성하고, 아름다움을 배우는 시기가 7-14세의 시기입니다. 저는 그렇게 못해서 교사를 할 수 없습니다. 18-20세 사이에는 ‘아빠, 내 친구들 올 때 그거 안 할 거지?’ 하고 말한 다음 친구들 가고 나면 ‘아빠, 왜 그거 안 했어?’ 이렇게 말하는 아이를 볼 수 있습니다. 제 아들입니다. 25세 즈음에 딸아이가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 고마워요. 제가 사춘기 때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던 걸 다 해주어서요.’ 그 아이가 사춘기 때는 집에 꽃 장식하고 하는 걸 싫어했는데, 어린 시기에 아름다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실 내적으로는 좋았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거부하는 몸짓을 하지만, 내적으로는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21세가 넘어서 자기 안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14-21세의 아이들은 자기들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자기가 받아들여지고 싶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에게 반항하거나 거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경외감, 아름다움을 잃기 쉬운데 그걸 다시 가질 수 있게 아이들 앞에 서있는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 시기에 ‘초감각적인 세계인식’ 같은 책을 아이들이 읽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이미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이들의 관심 대상은 교사와 부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0-21세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뭔가를 받기만 하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이기적인 게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아마 ‘아빠, 사랑해요’라든지 음식을 차려준다든지, 방 정리를 할 수도 있는데 그건 보너스입니다. 왜냐면 이 시기 아이들은 받기만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독립해야 하거나 부모가 정신적으로 어려서 아이가 어른 역할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21-42세 사이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주는 시기인데, 마음이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주는 게 맞나, 아직도 받고 싶은데, 주기도 하고 받고 싶기도 한 갈등의 시기입니다. 제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기에 정말 세상을 위해 내가 주고자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가 커서 자기 생각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시기에 우리는 편견 없이 들어줄 수 있는가 돌아보십시오. 42-64세까지는 또 다른 질문이 내면에서 솟아오릅니다.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나는 도대체 뭐지? 나는 정말 이 세상을 위해 올바르게 일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겨납니다. 이 시기에는 듣는 귀를 정말로 감각적으로 열어놔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걸 툭 던지는 게 아니라 정말 세상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운명에 따라 길을 가고 있는지 잘 보아야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완전할 수 있지만,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완벽하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살아있는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진실이 있다면, 진정한 나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저도 그 시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딱 잡히지 않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나의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 단어처럼 안 잡혔습니다.

사춘기에 신진대사계에 문제가 있다면 42-49세 사이에도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소화계, 신진대사계와 관련한 부분에 병이 옵니다. 49-56세 시기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변형되는 시기입니다. 심장, 폐와 같이 리듬체계와 관련된 때입니다. 56-63세는 선을 추구하는 시기로, 선하지 않거나 옳지 않은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어릴 때는 단순히 선함을 느꼈다면 이 나이에서는 선함을 실천, 행위해야 합니다.) 의사들이 하는 명상 시에는 내가 정말 잘하고 있나, 내 생각이 건강한가, 나 괜찮나, 내 감정은 괜찮나, 하는 것들이 좋은 상태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이때는 감각체계에 질병이 생기는 시기입니다. 0-7세가 반영되므로 신경-감각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도와주는 4개의 조력자인 모방, 습관, 경외감, 상상에 대해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주 본능적으로 모방을 합니다. 그리고 아주 빨리 습관화시킵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정말 놀랄만한 상상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예쁜 나비나 꽃을 소중히 다루며 바라보는 경외감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행위를 통해 아이들은 무얼 모방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의지를 교육시킵니다. 아이가 모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로부터 무얼 보고 따라하려면 인식력이 발달해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의미가 있는지에 따라 모방합니다. 하지만 무얼 모방해야 하는지 식별력은 없습니다.

아이가 집에서 하는 걸 다 모방해서 밖에서 하는 걸 보면 굉장히 당혹스럽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전염까지 모방합니다. 감기가 퍼져 있으면 그런 분위기도 바로 감지해서 자기도 감기에 걸려버립니다. 보통은 감기가 바이러스에 의해 퍼집니다. 30%는 감염이 되어서 걸리고 70%는 괜찮아야 하는데 아이들은 모방으로 감기에 걸립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감기 걸리기 전에 증상이 오면 자기가 감기에 걸릴 것을 압니다. 아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두 번째는 습관입니다. 습관이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습관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가 세상을 만듭니다. 습관은 지속적으로 세상을 모방하려는 힘을 중지시킵니다. 더 이상 따라하기 싫은 것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가족이나 문화가 나의 습관을 형성시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습관을 형성하게 할지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한번 습관이 형성되면 버리기 힘듭니다. 나쁜 습관을 묻을 수도, 숨길 수도 있지만 절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숨기려고 한 습관도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걸 보곤 합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수년 동안 함께 살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아침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과 제가 아침을 먹으며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태국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더니 그분은, 자기는 일본인이고 미국에서 살다가 이제 태국에 온 거라 잘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나는 일본인이고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일본에 관한 것이다. 일본인의 바탕 위에 올려진 태국적인 걸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습관이라는 것은 우리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생긴 것이고, 사회와도 연관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와도 연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게 되면, 주인이 항상 손님에게 ‘먼저 하세요’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생깁니다.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아니라 젓가락과 숟가락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시면 따라 할게요.’ 그럽니다. 그런데 동양의 정서는 그렇지 않지요. ‘그래도 손님이 먼저 하셔야죠.’ 그래서 두 개를 들고 조금 이따 보면 제가 엉뚱하게 하고 있지요.

다음으로 경외감은 우리 행위의 도덕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경외감을 아이들에게 발달시켜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삶의 순환에 대해 일깨워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이들 자신의 정신의 길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경외감은 그걸 연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경외감을 일깨울 때 우리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경외감은 도덕심, 정신세계와 연관이 됨. 육화와 관련이 됨.)

네 번째 조력자인 상상은 대체 무얼 하는 걸까요? 상상은 새로운 미래를 발달시킵니다. 아이의 상상력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게 하고 시도하게 해줍니다. 실재와는 다른 상상. 자기 안에서 만들어낸 상상이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과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과 자동차를 갖고 놀거나 인형을 갖고 놉니다. 놀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다가 인형을 밟으면 아이는 ‘아빠, 방금 우리 아기를 밟았어!’ 그럽니다. 나중에 식사시간이 되어 ‘너 아기 챙기는 거 아빠가 도와줄게’ 그럴 수 있습니다. ‘아빠, 웃기지 마요. 그거 가짜잖아요.’ 그럽니다. (웃음) 역시 아이들은 다루기 어렵습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자기 안의 자아를 교육시키는 것과 같은데, 나중에 클 때 자신과 자아를 연결시키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아이들의 의지를 키워줄 수 있는 네 가지 조력자라고 했는데, 이건 어른을 키우는 조력자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진정으로 모방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하는지, 경외감을 갖는지, 상상력을 유지하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그림도 보아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안정감을 원하고, 소속되고 싶으며,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안정감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어떻게 인정을 받을 것인지, 이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만약에 첫 7년 주기에 선함으로 둘러싸여 있지 못하다면(선을 경험하지 못하면) 나중에 커서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불안할 것입니다.

또 아름다움이 발달되어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하면,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많이 생깁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알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소속되어 있는 우리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여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사춘기 때 이상을 갖고 진리를 찾으려는 경험이 없다면 나중에 커서 나의 진실과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언제 내가 가장 나 자신다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바라건대 여러분에게 쉬운 도입이었길 바랍니다. 너무 복잡하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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