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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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발도르프 교육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나라를 퇴행시켰던 극우세력이 촛불의 힘으로 물러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람들은 다시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다. 전세계적으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더해 우리는 인구절벽과 경제파탄, 그리고 후쿠시마 핵폐수의 방류까지 두 눈 뜨고 손발이 묶인 채 지켜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소금 사재기에 이어 수산물 소비가 급감했음에도 정부 고위인사들은 핵폐수가 방류된 물을 마셔도 문제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도쿄전력이 핵폐수를 방류한 뒤에도 우리는 마음 놓고 어패류와 해조류를 사먹을 수 있을까? 바닷가에 놀러가 해수욕은 즐길 수 있을까? 어떤 음식이든 소금이 들어가는데 식당에는 마음 편히 갈 수 있을까? 우리는 대체 어떤 파국을 앞두고 있는 걸까? 백여 년 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할 때 변절한 수많은 권력자와 지식인이 궤변을 늘어놓으며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 뉴스를 틀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각료의 억지와 궤설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또 다시 반지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듯하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은 자연이 파괴되든, 도덕이 무너지든, 주권이 강탈되든 자신들의 이익만 불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안타깝게도 경제성장이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선량했던 일부 대중 역시 기득권층에 편입되고 싶다는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끔찍했던 IMF 체제 이후 한국은 그나마 미약하게 남아 있던 유교적 공동체주의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적 자기중심주의가 팽배해졌다. 민주주의는 새로운 위기에 휩싸였다. 코로나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음에도 수많은 사람이 투기세력화되었고, 변질된 언론이나 미디어로부터 비판적 거리두기에 실패하면서 극우정권을 선택하고 말았다. 한국은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병든 사회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개인들만 병든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오염되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의 모든 문제는 정신문제로 귀결된다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발언은 정확한 진단이었다.
오늘날 아이들 삶의 현실
요근래 아동인구 감소로 수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닫고 있지만 성장하는 시설이 두 군데 있다. 아동치료기관과 영어유치원이다. 아동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점점 더 많은 아이가 발달장애와 정서장애, 주의력결핍, 자폐스펙트럼 등의 문제로 치료기관을 찾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이것은 단지 아동이나 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이며, 어린아이들이 처해 있는 양육환경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고 개선해야 할 상황임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물론 유전적 원인도 있겠으나 태어나면서부터 접하는 스마트폰과 미디어의 홍수, 안정되고 따뜻한 애착관계의 부재, 아동발달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어린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육성과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극적인 기계음만 듣고 자란 아이의 청각 발달은 어떻게 될까? 온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아이의 움직임 부족 현상이 야기할 인지기능, 정서기능, 대인관계기능의 약화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건강한 감각발달, 그리고 손상된 감각기능의 치유와 회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아이를 치료기관에 다니게 하기 위해 몇 달, 몇 년을 대기하는 가정이 늘어났음에도 영어유치원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5년 사이 사설 영유아 영어학원은 70% 이상 성장했다. 서울 강남 같은 경우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영어유치원에 안 가는 아이가 드물 정도가 되었다. 일찍부터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를 배우는 수많은 아이가 의대 진학을 목표로 또 다시 특별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러한 열풍이 아이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돌봄을 제대로 못 받은 아이에게 고강도의 사교육을 유아 및 초등 저학년 시절부터 받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발달에 맞지 않는 어려운 공부를 강제로 해야 하는 아이에게 찾아오는 것은 조기 번아웃과 중도 학습포기, ADHD, 분노조절장애, 소아우울증 등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힘든 아이들의 문제행동으로 인해 현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교실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고 근본부터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이 필요한 이유
지금 여기, 이 아이들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불안하고 조급한 어른들이 평정심을 찾는 일이다. 아이들의 부모와 교사, 양육자 들이 불안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나아질 수 없다. 과잉경쟁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하나 하나 차분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대단한 성공이나 일확천금 따위는 물론 아닐 것이고, 좀 더 안정되고 인간적인 삶을 아이들이 살아가길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해고를 당하거나 제때 취업을 못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일이기도 하다. 현재의 영어유치원 열풍이나 의대진학 열풍의 근원에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즉 비참한 삶으로의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탐욕은 반지성을 낳는다.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시야는 좁아지고 인성은 파괴되기 쉽다. 기득권이 클수록 객관적인 반성이나 예측이 안 되니 무당을 찾아가고 도사의 말을 듣는 것이다. 기상이변을 낳고 있는 기후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의 무자비한 자연 착취에 있다. 덕분에 인류의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인류세의 종말을 앞두게 되었다. 문제는 지구가 아니다. 인류가 멸종한다 해도 지구는 어떻게든 회복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다. 기후위기에 가려져 충분히 조명받고 있지 않지만 지하수와 모래의 고갈, 식량위기 역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험한 상황에 와 있다. 이제는 정말로 깨어나지 않으면 앉아서 인류의 멸절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발도르프 교육은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실재적으로 파악하기를 요청한다. 꿈을 꾸는 듯한 낭만적 태도가 아니라 분명히 깨어서 냉정하게 바라보되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한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적 고통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정치적으로 국가주의를 극복해야만 인류는 멸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회복해야 한다. 신비주의적인 망상이나 기계론적 경직성, 자기중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전체성을 고려하는 새로운 합리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정치체에만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변화의 시작은 개인들의 내면에서부터이며, 그 핵심에 '교육'이 있다. 교육은 내 앞에 있는 아이들 또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근대적 교육이 실패로 귀결된 것은 인간 이해보다 체제(불평등한) 유지와 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백여 년간 성장해왔다. 한 사람의 성공과 출세,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교육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복지를 고려하지 않는 교육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 발도르프 교육은 근대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회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인간 회복에 모든 역량을 기울인다. 그러니 당장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늘어나야 할 것은 영어유치원이 아니라 발도르프 교육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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