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지식의 두 차원 - 타동적, 자동적 본문
지식의 두 차원 - 타동적, 자동적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살아가면서 우리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세계 자체와 세계에 관한 지식을 구별하지 않고, 구별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바스카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구별을 강조하며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세계에 관한 정확한 과학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식은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과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기술자와 장인, 표준과 숙련을 가지고 있고 다른 생산물이 그렇듯 변화를 겪습니다. 과학 지식은 이전의 사회적 생산물에 의존하는 사회적 과정의 차원입니다. 반일원론자들은 이 부분을 중시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무로부터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인지적 재료들을 사용해 생산합니다. 이것을 과학 지식의 타동적 차원(transitive dimens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타동적 대상들은 과학의 원료로서 과학이 지식의 항목들을 기초로 형성한 인공의 개체들입니다. 이것들은 이전에 확립된 사실과 이론, 패러다임과 모델, 탐구의 방법과 기법 등으로 과학의 특정 학파나 작업자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예를 들어,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은 자연변이의 사실들, 인공선택이론 및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이론 등을 요소로 사용했습니다.
과학 지식의 다른 한 측면은 특정의 객체에 대한 지식입니다. 과학 지식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 형태 속에서 구성되는 사회적 생산물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견하고 탐구하는 객체들은 그 이전부터 인간의 발견과 무관하게 존재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물들은 고유의 방식으로 알아서 계속 작용하고 상호작용할 것입니다. 지식의 대상들은 현상(경험론)이나 현상에 부과된 인간의 구성물(관념론)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들과 독립해 존재하고 운동하는 실재들입니다. 세계의 실재들은 말하자면 존재적 자동성(existential intransitivity)을 갖고 있으며, 과학은 그 부수 현상입니다. 다윈이 진화이론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자연 선택 기제와 과정은 지속할 것이며, 뉴턴이 중력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도 물체는 그 이전과 똑같이 지상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대상의 독립성을 과학 지식의 자동적 차원(intransitive dimension)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의 자동적 객체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이라는 측면에서 자동적입니다. 타동사(transitive verb)는 주어와 목적어 사이의 관계를 함축하지만, 자동사(intransitive verb)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자동적 차원은 독립적입니다. 과학은 자동적 객체의 속성과 작동 방식에 대해 연구하여 과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인 사회적 활동입니다. 자동적 대상들에 대해 과학은 이미 존재하는 이론과 확립된 사실들을 포함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지적이고 기술적인 도구들을 총망라하여 새로운 이론과 사실들을 생산합니다. 다시 말해, 과학은 주어진 재료들을 동원하고 상상력과 훈련된 노동을 사용해 지식을 생산합니다. 이때 상상력의 도구 자체는 지식에 의해 제공됩니다. 따라서 지식은 지식에 의해 생산됩니다. 지식을 발생시키는 원천과 수단은 그 자체가 사회적 산물이며, 생산된 지식도 그렇습니다.
과학의 자동적 차원은 타동적 차원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선합니다. 과학은 지속적으로 객체들에 대한 더 발전된 지식으로 변형되고자 하면서 이론들을 생산합니다. 이론들은 과학의 타동적 대상으로서 과학과 자동적 대상들을 간접적으로 연결합니다. 과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 생산의 타동적 과정이라는 과학의 사회적 성격과 자동적 대상들의 독립성 모두를 고려해야 합니다.
초월적 논증
자연과학의 대표적 방법은 실험입니다. 과학이 철학과 다른 점 역시 실험 활동에 있습니다. 철학은 우리의 사유 능력을 통해 세계를 파악해 가는 것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도록 합니다. 과학자들이 자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갖는 반면, 철학자들은 그 전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회의를 합니다. 그런데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문밖에 나가보니 땅이 젖어 있다면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지난밤에 비가 내렸거나 누군가 물을 뿌렸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마당이 젖어 있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때 지난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경험을 넘어서는 특징을 갖습니다. 이런 추론은 경험에서 출발하면서 경험을 넘어섰기 때문에 초월적 논증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정정 가능한 논증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추론을 합니다. 그러나 흄과 같은 경험론자들은 이런 논증을 부정합니다.
초월적 논증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이해의 범주들의 객관성을 확인하는 데 사용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이 논증의 특징은 필연성입니다. 초월적 논증은 정의에 의해 참인,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또는 경험 이전에 알 수 있는 분석적 지식과 경험 이후에 확인할 수 있는 종합적 지식의 구분을 넘어 종합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지식을 만들어 냅니다.
실험의 분석
‘실험이 가능하려면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가?’ 실험에서 과학자는 자연에 질문을 제기합니다. 실험에서 과학자는 자연에 질문을 제기합니다. 자연이 이해하는 언어로, 자연이 답할 수 있는 형태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때 실험이 가능하려면 과학자 자신이 탐구 대상에 관한 일정한 지식과 조작 능력, 즉 선행하는 숙련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실험 수행이 지식의 타동적 차원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물론 실험 수행은 세계의 질서나 구조가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실험은 실험을 통해 접근하는 대상들이 과학자와 독립해 존재한다는 것, 즉 대상들의 자동성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과학자가 실험을 수행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가 어떠한가에 대한 견해를 실질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과학자 자신은 이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이 견해가 곧 존재론입니다. 그런데 세계가 어떠한가에 관해 실험이 전제하는 일반적 견해로서 존재론과 세계에 관해 과학적 이론이 특정의 실체들과 과정들에 관해 실질적으로 진술하는 견해로서 존재론은 다릅니다. 앞의 것을 철학적 존재론이라 하고, 뒤의 것을 과학적 존재론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질문은 ‘과학이란 무엇인가?’이므로 철학적 존재론에 집중하기로 합시다. 철학적 존재론은 과학적 존재론에 의존합니다. 과학이 산출하는 발견과 설명은 철학적 존재론을 형성하며, 초월적 논증을 통해 과학 활동의 일반적인 전제 가정을 밝힙니다. 실험 수행은 세계가 스스로 운동하는 여러 객체들로 이루어진다는 철학적 존재론을 전제하지만, 그 객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하는지는 과학적 탐구를 통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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