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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및 사회과학

과학에서 인식론과 존재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7. 1. 15:36

과학에서 인식론과 존재론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과학이 등장하면서 철학은 학문의 왕좌를 물려주게 됩니다. 실제로 과학은 그동안 철학이 차지했던 영역을 대체하면서 신뢰받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완전히 무의미해진 것은 아닙니다. 과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은 철학을 통해 가능합니다.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일, 그리고 과학의 존립 기반에 어떤 관념이 있는지를 철학은 탐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 지식의 대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묻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한 물음은 오히려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세계에 무엇이 있는가의 질문은 존재론에 속합니다. 그 무엇, 즉 존재를 인간이 경험하여 아는 것은 인식의 영역입니다. 인식론과 존재론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전통적인 과학철학에서 강조하는 경험 세계라는 개념은 세계의 실재들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인간의 경험은 세계의 본질적 속성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감각 경험이 포착한 것만을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중심주의적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근대와 현대의 철학은 대부분 인간중심성, 즉 휴머니즘을 특징으로 합니다. 인간이 없으면 세계도 없는 걸까요? 그렇지 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세계는 인간 없이도 거기에 존재할 것입니다.

 

인간이 없어도, 다시 말해 인간의 경험이 없어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실증주의 과학의 오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데카르트 이래 인식론적 전통은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이 세계에 대해 확고하고 참된 지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인간중심적으로고민해 온 셈입니다. 경험론자들은 경험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만을 지식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지각에 대한 현상주의적 분석을 통해 지각에 알려진 것은 확실하다고 논증합니다. 지각만이 사물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므로 지식은 지각에 주어진 것만이어야 한다는 게 경험론의 관점입니다.

 

경험론적 인식론의 관점에서는 세계란 지각의 대상과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사실들로 구성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객관적 실재에 관한 진술을 그 실재에 관한 감각 자료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에 관한 진술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에 관한 진술을 인간의 특성이나 행위에 관한 진술로 바꿔치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세계의 전부는 아닙니다. 세계에 무엇이 있느냐의 문제를 단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경험이라는 인식론적 범주에 존재론적 특권을 부여하는 형이상학적 독단입니다.

 

이러한 인식적 오류는 오늘날 탈근대주의 담론에서 제기되는 극단적 상대주의를 낳습니다. 파이어아벤트 같은 탈근대주의 학자들은 과학 지식의 확실한 기초를 확보하려는 기초주의적 기획이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지식에 대한 모든 주장은 오로지 맥락이나 패러다임 안에서만 납득 가능하며, 자연스럽게 더 이상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아니면 신화든 모든 지식은 동등한 인적 지위를 갖는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무슨 주장이든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 맞는 것이고, 서로 누가 더 진실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입장은 해체주의와 허무주의로 나아갑니다.

 

철학은 과학의 형이상학적 근거, 즉 존재론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식적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실증주의에서 말하듯 내가 경험하여 알게 된 것만이 세계의 전부라는 생각은 인식의 문제를 엄밀하게 분석하려다가 잘못된 생각에 빠진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경험한 세계만이 진정한 세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훨씬 더 크고 그렇기 때문에 인식의 가능성이 풍부한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나요? 존재론의 문제로 돌아온다면 세계는 인간의 경험이나 인식과 상관없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탈근대주의는 세계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경향으로 나아가면서 존재적 오류에 빠졌습니다. 세계는 실재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다만 인간의 경험은 세계 존재의 극히 일부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과학관의 전제입니다. 인간이 있든 없든 세계는 존재할 것입니다.

 

서 이야기한 반일원론과 반연역주의 역시 암묵적인 경험적 실재론의 존재론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인식적 오류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두 흐름의 합리적 통찰을 살려 내려면 이 둘을 지배하고 있는 낡은 존재론을 대체할 새로운 존재론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존재론은 인간중심성에서 벗어난 반인간중심적 전환(anti-anthropocentric shift)’이라는 또 다른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포함합니다. 여기에서의 혁명은 철학 안에서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의 전환', 존재론 안에서 경험과 사건이라는 인간중심적 범주에서 그것을 발생시키는 '구조와 기제라는 반인간중심적 범주로의 전환'이라는 이중의 함의를 갖습니다.

 

흄과 그의 후예들이 대표하는 경험론은 지식을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객체들의 기계적 결과이자, 오로지 감각 경험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로써 존재론적 차원을 외면하는데, 이는 존재론을 추방하는 게 아니라 경험론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존재론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실증주의 과학관을 비판하는 반일원론과 반연역주의도 마찬가지로 존재에 관해서는 경험론적 실재론의 설명을 공유합니다.

 

경험주의적 존재론의 핵심에는 흄의 인과성 이론이 자리합니다. 상식적 의미에서 인과관계 개념은 시간적 선행성, 인접성 그리고 필연적 연관성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포함한다고 흄은 지적합니다. 그런데 시간적 선행성과 인접성은 경험에 직접 근거하지만 필연적 연관성은 경험에서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이때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사건이 연결돼 발생하는 사례들의 반복, 즉 사건들의 일정한 결합이 전부입니다.

 

두 가지 사건의 규칙적 연쇄나 일정한 결합을 관찰하면 우리는 이 규칙성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반복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흄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연관의 관념이 감각과 습관의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 필연성 관념은 사건들의 연쇄에 인간의 정신이 습관에 기초해 덧붙이는 심리적 현상일 뿐 실재하는 세계에서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흄의 후예들은 감각 경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필연적 법칙이라든지, 발생 기제 같은 것은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논리실증주의자인 루돌프 카르납에 따르면 법칙이란 단지 관찰된 규칙성의 서술일 뿐입니다. 법칙은 경험적 규칙성일 뿐이라는 흄의 인과성 이론은 원자론적 사건들의 규칙적 연쇄가 과학적 법칙이라는 견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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