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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스마트폰 사용 실태와 아이의 온전한 발달 돕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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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스마트폰 사용 실태와 아이의 온전한 발달 돕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5. 28. 15:20

초등학생 스마트폰 사용 실태와 아이의 온전한 발달 돕기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1

어느 날 놀러온 친구의 아기와 그림책을 보았다. 아기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고는 특이한 행동을 했다.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벌리며 줌을 당기려고 하는 것이다. 놀라서 친구를 보니 피식 웃는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그림책 보여 주거든.”

 

#2

유치원 영아반 아이들의 체험학습에 보조교사로 따라갔다. 아쿠아리움의 거대한 수족관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데 한 아이가 휘둥그레 수족관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유리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금붕어를 옮기고 싶고 돌멩이를 실행시키고 싶어서. 그 아이는 현실계의 수족관을 처음 본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신세계

 

우리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 실제의 세계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만나 그 속에서 세계를 배워가는 인류가 우리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TV와 컴퓨터가 대중화되었을 때 벌어진 문제와 유사하다. 그러나 더 급진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 TV와 컴퓨터는 고정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며 인터넷을 통해 어디에서든 유비쿼터스의 신세계를 실현하고 있다. 식당에서도, 공원에서도, 차 안에서도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준다. 영유아 시기부터 아이들은 화면 속의 사진을 보고, 동영상을 시청하고, 게임을 즐긴다. 이런 모습이 너무나 대중화되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역시 다수다. 스마트폰을 쥐어 주면 일단 조용하고 그 사이에 쉬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안 좋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조금씩 그 허용 시간이 늘어난다. 그렇다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까?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물건을 만지고 입에 가져간다. 어떤 대상이든 촉각을 통해, 그리고 미각과 후각, 시각, 청각 등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이런 모습은 초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무엇이 됐든 신기한 건 만져보고 싶어 한다. (박물관에 왜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스마트폰은 이 감각 경험의 기회를 막는다. 오로지 시각과 청각만이 필요하다. 아니, 터치 기능이 있으니 아주 제한된 촉각 경험은 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어린아이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그 신기한 세상을 속속들이 알고자 하는 존재다. 도구는 아이의 몸, 즉 신체의 감각기관이다. 비가 그친 뒤 하늘에 뜬 무지개의 빛깔이나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참새 소리, 단단하고 매끈매끈한 자갈이나 거름을 넉넉히 준 텃밭의 흙냄새, 노지에서 자란 딸기의 달콤함 등은 아이들이 평생 세상을 신뢰하고 사랑하게끔 해주는 감각적 경험이다. 사과향을 첨가한 사과맛 음료나 나무처럼 만든 플라스틱 장난감, 대형 화면으로 보는 바다 등은 실제적 감각의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

 

거짓 정보에 익숙해진 아이는 진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면의 본질과 세상이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거짓되고 공허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세상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사과맛 음료 말고 사과를, 플라스틱 나무 말고 진짜 나무를, 화면 속 바다 말고 현실의 바다를 주어야 한다. 당연히 스마트폰이라는 거울이 아니라 직접 세상을 만나야 한다.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눈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점점 잃어가는 힘이다.

 

초등학생과 스마트폰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게 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부모와 연락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스마트폰을 사 줄 때는 필요할 때 자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이고, 아이들도 그것이 주된 이유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스마트한 기능은 단지 연락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동영상 시청이고 그 다음이 게임이다. 그밖에도 음악을 듣는다거나 웹툰을 보고 SNS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간다. 하루에 적게는 30분 내외, 길게는 3시간에서 5시간 정도, 대개는 1,2시간 정도 그것을 들여다본다. TV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시간까지 합하면 적은 시간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사용 실태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다른 문답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많은 아이가 스스로 스마트폰의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자꾸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동영상 시청이나 게임뿐만이 아니다. 친구가 보내는 카톡을 확인해야 하고,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이 얼마나 많은 좋아요를 받았는지 궁금해서 참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그것을 참게 한다는 건 맛있는 과자를 식탁 위에 가득 올려놓고 조금만 먹으라고 당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아이들은 시간이 날 때, 그리고 딱히 할 게 없을 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일어나서 등교하기 전까지, 방과 후 학원에 가기 전까지 틈틈이 들여다보지만, 가장 오래 사용할 때는 집에 와서다. 이 말은 아이들이 집에 와서 딱히 할 게 없고 가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가족들 각자가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되어 버렸다. 아마 부모의 영향이 클 것이다. 부모가 시간이 날 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들여다보았다면 아이들은 그대로 모방하게 된다.

 

스마트폰 때문에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겼다는 아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쉼 없이 떠들고 놀면서 관계를 만들어 간다. 아이들 사이에서 놀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각자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면서 그 시간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SNS가 그 시간을 채워줄 수는 없다. 오히려 왜곡된 관계를 만들 위험이 있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은 자폐 증세와 흡사하다. 외부 세계에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분주하다. 자극적인 화면과 기계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게임과 동영상에 장시간 노출된 아이들은 일상 속 실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을 강제로 빼앗으면 곧바로 금단증세를 보인다. 짜증을 내고 고집을 피우며 우울해진다. 이 아이들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멈추질 못한다. 잠을 자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게 된다. 학교에서 항상 피곤해 하고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 아이들의 특징은 다 같이 하는 활동에 참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답지 않은 거친 비속어를 쓴다거나 분노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을 불러 물어보면 하나 같이 너무나 오래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더불어 숲이 되어 지켜야 한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존재이고, 몸과 마음은 기운이 연결시켜준다. 몸은 기운의 통제에 따르며, 기운은 마음의 통제를 따른다. 마음이 상하면 기운이 빠지고, 기운이 빠지면 몸이 아파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마음은 누가 다스리는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자아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릴 때, 또는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 자아를 잃어버릴 때 병적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발달단계상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다. 이제 겨우 마음이 여물기 시작하는 때이므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모와 교사의 자아가 약하면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겪으며 배워나간다. 보고 듣는 것뿐만 아니라 수없이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기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느낌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다. 그것을 안내해주는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목소리와 태도, 눈빛에서 세상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노래, 보여주는 그림과 움직임을 통해 세상이 아름다운 곳임을 깨닫는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생명력은 더욱 풍성해지며, 창의력의 바탕이 되는 상상력이 자라게 된다.

 

아이들을 스마트폰과 태블릿, TV와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힘이 필요하다. 학교 차원에서 교사 교육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 학부모 교육을 통해 어린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이 모아져야 한다. 아이와 연락을 하기 위해 전화기가 꼭 필요하다면 전화기능만 되는 핸드폰을 사 줄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함께 알아보고 공동의 규칙을 만드는 작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좋아한다고 밥 대신 사탕을 주고, 담배나 술을 줄 수는 없지 않겠나.

 

나아가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을 위한 치유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중독 증세가 심한 경우 외국에서는 모든 전자기기로부터 분리시킨 뒤 숲이나 농장에 보낸다고 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몸으로 하는 놀이와 운동을 많이 하고, 악기 연주와 그림 그리기, 연극 등의 예술 작업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공교육의 수업 시간에 많이 활용할수록 좋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다양한 예술 활동을 가족이 함께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학교 차원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TV 등에 대한 캠페인을 벌여나가는 것이 좋다. 한두 가정에서의 노력은 별 힘이 없지만 학교의 모든 가정이 함께 노력할 때 그것은 하나의 문화가 될 것이다. 더불어 학교 수업에서도 인터넷 수업 프로그램의 사용을 지양하고(컴퓨터와 멀티비전의 사용 역시) 몸으로 직접 배우는 수업을 지향한다면 좋겠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은 악()이다라는 시각은 곤란하다. 그것들은 현대문명의 편리한 이기이고 적절하게 잘 사용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발달단계상 어린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의지와 감성의 힘을 더 많이 사용해 배운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자극들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가만히 거기에 반응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그것에 빠져 산다면 아이들은 결국에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많은 아이가 이미 과잉행동장애와 집중력 부족을 겪고 잠을 푹 자지 못해 아침에도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 교육은 치유적인 활동을 더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스마트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비인간적이고 인간에 대해 무지한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이기주의라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지 오래다. 교육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이 없다면 세상은 더욱 끔찍한 곳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아이들이고,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이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참고도서

 

크리스토퍼 클라우더·마틴 로슨, 박정화 옮김, <아이들이 꿈꾸는 학교>, 양철북

조엘 바칸, 이창신 옮김,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 알에이치코리아

마틴 라지, 하주현 옮김, <TV의 무서운 진실>, 황금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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