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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형벌의 목적 - 손철우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형벌의 목적 - 손철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9. 21. 16:15

형벌의 목적

 

전문위원 손철우
 

 
1. 형벌론 개요
 
형벌은 신체의 자유, 재산, 나아가 생명에 대한 제한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정당성에 관하여 오랫동안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왔는데, 형벌의 정당성은 결국 형벌의 목적에 대한 논의로 귀착된다. 한편 형벌은 범죄를 통제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에 불과하다. 형벌은 사회분쟁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의 다양한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하며 본질적으로 해악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형벌은 가능한 한 가장 최후에 그리고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결국 형벌의 부과는 적법한 목적을 충족하면서도 도덕적 가치 또는 실용적 관점 등에서 제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형벌의 목적에 대한 이론은 전통적으로 응보이론과 예방이론으로 대별되었다. 응보이론은 형벌의 목적을 반가치판단의 대상인 일탈 내지 그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상쇄에 의한 정의실현으로 파악하는 입장으로, 형벌은 정의를 위하여 그 자체로 성립되는 것이고 다른 목적과 연관을 맺지 않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절대설’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예방이론은 형벌이 그 자체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이라는 목적에 의하여 정당화된다는 입장으로, ‘상대설’로 불리기도 한다. 예방이론은 그 대상에 따라 다시 일반예방과 특별예방으로 나누어지는데, 일반예방은 일반인에 대한 형벌위하 내지 규범의식의 강화를 수단으로 범죄의 예방을 꾀하는 것이고, 특별예방은 범죄인 개개인을 중심으로 범죄를 예방하려는 것이다. 보다 세분하면 일반예방은 일반인에 대한 위하를 추구하는 소극적 일반예방과 일반인의 규범의식의 강화를 추구하는 적극적 일반예방으로, 특별예방은 범죄인의 격리를 추구하는 소극적 특별예방과 범죄인의 재사회화를 추구하는 적극적 특별예방으로 구 별할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적극적 일반예방이론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다만 우리나라 학계에서 ‘적극적 일반예방’의 개념이 통일적으로 정립되지는 않은 상태로 보이고 이로 인하여 그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용이하지 않다. 적극적 일반예방이론의 특징에 대하여는, ① 적극적 예방목적을 정의와 인간존엄에 기초하고 장차 규범에 대한 신뢰의 보장에 의한 규범에로의 승인을 초래하는 형벌의 응보적 성격과 연결시키고(새롭게 정형화된 절대적 형벌이론의 재발견), ② 형법의 법치국가적 정형화에 의해 국가형벌권을 제한하여 범죄인에게 해악적 요소인 형벌의 투입을 최소한으로 줄임으로써 범죄인에 대한 인격존중을 더욱 강조하며(인도주의 사상의 부각), ③ 형법을 유일한 또는 최초의 사회통제수단이 아닌 전체 사회통제수단의 일부로 이해하여 형법의 투입을 최후적 그리고 최소한으로 제한하며(형법의 최후수단성의 강조), ④ 형법의 법치국가적 정형화를 꾀함으로써 형벌을 범죄와의 인도적인 관계의 형성을 위해 단순히 수단화하고 있다고 설명된다.
 
한편 영미의 경우 형벌의 목적에 대하여 다소 다른 입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형벌의 목적을 규범적 목적(normative goals)과 기능적 목적(functional goals)으로 구별한다. 먼저 규범적 목적에 대하여는 교화, 격리, 위하 등을 통하여 사회적·개인적 효용성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인 것과 정당한 형벌 부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응보주의적인 것이 있다고 설명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륙법계의 전통적인 형벌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한편 기능적 목적은 David Rothman 등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것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을 관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형벌의 기능적 목적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서는 소송관계인의 입장에서 개별적 사건에서의 정당한 결과의 성취,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적절한 유죄협상 비율의 유지, 소송절차에서 다른 소송관계인과 우호적 관계의 유지, 인적·물적 제한 범위 내에서 사법시스템의 효율적 작동 등이 형벌의 기능적 목적에 포함된다고 한다.
 
형벌론은 모두 국가형벌권의 정당화 근거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그 이론들의 관심 방향, 논리적 성격 등에 있어서는 서로 이질적이다. 즉 응보이론은 주로 과거에 범해진 범죄행위에 주목하는 것인 반면, 예방이론의 관심방향은 범죄예방이라는 미래지향적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응보이론은 행위자의 책임상쇄라고 하는 규범적 내용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 예방이론은 일반인의 위하와 규범의식의 강화를 통한 범죄예방 또는 범죄인의 위하나 격리 및 재사회화에 의한 사회방위라는 구체적·경험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각각의 형벌론을 독자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경우에는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없으므로 오늘날은 세 가지 견해를 결합시킴으로써 각각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극복하려는 절충설이 지배적 견해이다. 이러한 절충설에 의하면 행위자를 처벌함에 있어서는 책임상쇄와 예방이 함께 요구된다. 책임과 예방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책임은 이미 행하여진 행위에 대한 개념인 반면, 예방은 앞으로의 행위에 대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개념적으로 구별되는 책임과 예방을 아우를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형벌론을 조화롭게 절충하는 것은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어려운 과제라고 판단된다.
 
2. 형벌의 목적과 양형기준
 
형벌론은 주로 범죄론을 중심으로 형법과 형벌에 대한 정당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지, 형벌목적이 개별적 양형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또 형벌에 관한 정당화 근거를 일원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만큼 해석을 통하여 형벌론을 양형에 원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제하에 형벌론을 통한 양형기준의 방향 내지 원칙 설정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견해가 있다.
 
이와 같은 견해도 충분히 수긍되는 측면이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형벌의 목적에 대한 논의는 형벌 부과의 정당성을 찾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형 일반 또는 양형 실무에 있어서 변화의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역할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형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 도입하기로 한 권고적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에서도 형벌의 목적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양형의 판단척도로서 형벌목적이 논의되어야 하고, 그 형벌목적에 따라 양형인자가 발견 내지 확정되고 그러한 인자들에 대한 평가방법(양형인자의 가중, 감경 등)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순수한 응보이론으로 일관하게 된다면 결국 양형기준 설정에 있어서는 범행의 중대성에 대하여만 주목하게 될 것이므로 만약 범죄인에 대한 처벌이 그 범행의 중대성과 정확하게 일치하기만 한다면 과거 범죄전력이나 재범의 위험성 관련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형벌의 목적과 양형기준 설정의 관련성은 외국의 양형기준 설정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 양형위원회는 1970년경 거세게 제기되었던 교육형주의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여 교육형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양형기준을 설정하면서 행위자적 양형요소 중 교육, 직업적 기술, 종전 취업기록, 가족관계와 신뢰도, 사회적 유대관계와 같은 요소들은 무시하였다. 또한 미네소타주 양형위원회의 경우 1980년경 양형기준을 설정하면서 형벌의 목적에 대하여도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였는데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특히 구금 여부와 관련한 처분선(disposition line)에 변화가 생겨 양형기준의 형태가 달라졌고, 미네소타주 양형위원회에서는 수정된 응보주의에 입각하여 최종적인 양형기준을 설정하였다고 한다.
 
3. 양형기준 설정을 위한 형벌의 목적
 
이미 살펴본 것처럼 형벌의 목적에 대하여는 오랫동안 논의가 지속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하나의 이론으로 귀결되지는 못하고 있고, 응보주 의, 일반예방주의, 특별예방주의 중 어느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형벌 부과의 정당성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양형기준 설정 과정에서도 특정한 하나의 형벌론에 전적으로 기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충설의 입장을 취할 경우에도 어느 쪽에 보다 우위를 둘 것인가의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된다. 또한 형벌론 사이에 상충되는 측면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방법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아직까지 학계에서 통일적인 견해가 확립되지는 않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범죄의 특성에 따라 형벌의 목적에 차등을 두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뇌물수수 범죄의 경우 범죄를 저지른 당해 공무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신분을 상실하게 되므로 특별예방적 관점의 고려 필요성은 현저히 낮아지거나 전혀 없게 되고, 결국 주로 응보적 관점 및 일반예방적 관점에서 양형기준을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마약 투약과 같은 중독성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인의 치료를 통한 재범 방지가 중요성을 띠게 되므로 아무래도 적극적 특별예방 관점이 우선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상습적인 범죄인은 경우에 따라서 재범 방지를 위한 격리가 요구됨으로써 소극적 특별예방 관점이 우선할 수도 있다.
 
다양한 범죄를 일도양단의 형태로 구분하여 형벌의 목적 중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를 정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으나, 일단 향후 구체적 논의 전개를 전제로 아래와 같은 기본원칙을 상정할 수 있다.
 

 
물론 일부 범죄유형에 있어 특별예방주의가 가장 중요한 형벌의 목적으로 강조되는 데에 대하여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교화를 통하여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교육형주의에 대하여 거센 비판이 제기되었고 그 결과 부정기형제도, 가석방제도 등을 폐지하는 양형개혁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양형기준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약물범죄 등 일부 범죄유형에 대하여는 교육형주의가 다시 강조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연구에서 적절하게 관리되고 적절한 범죄인을 대상으로 한 교화 프로그램은 재범 가능성을 낮춘다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정시설 및 인적 자원의 부족, 재범예측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형벌을 통하여 특별예방, 특히 범죄인을 교화시키는 적극적 특별예방주의를 제대로 실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적으로 교정 단계에서의 인적·물적 자원의 확충에 보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범죄유형별로 형벌의 목적에 다소간의 차이를 두는 경우 양형인자 추출, 양형인자에 대한 평가 등 양형기준 설정 과정에서 제기 되는 구체적 문제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차이가 예상된다. 다만 위 기준은 논의를 위한 하나의 방안에 불과하므로 향후 양형기준 설정 과정에서 범죄 유형별 형벌의 목적에 대하여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형벌의_목적과_양형기준의_목적(손철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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