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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의 교육학 (1) - 새학년 워크숍에 다루어야 할 주제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회복적 정의의 교육학 (1) - 새학년 워크숍에 다루어야 할 주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2. 16. 22:42

회복적 정의의 교육학 (1)

- 새학년 워크숍에 다루어야 할 주제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새학년이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서 꼭 해야 할 일은 '교육과정 세미나' 이전에 '교육철학 세미나'여야 한다고 본다. 학년을 배정하고 업무를 분장하는 일, 일년 교육과정을 세우는 일 역시 큰 일이지만 한해 동안 학교가 지향해 나갈 가치를 선정하는 작업은 이 모든 일에 앞선다. 그동안 공교육의 근본적 문제는 교직원들이 주체가 되어 학교의 철학을 세우지 못한 데서 왔다. '우리는 왜 아이들을 가르치는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러한 질문 없이 국가의 지침을 기계처럼 따라오지 않았나. 그러니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매뉴얼이 없으면 당황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근대 학교 제도에서 교사들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작동하길 요구받곤 했다. 후기 근대 사회에 이르러 그러한 관념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그것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사도 인간이고 아이들도 인간이라는 것, 이것이 명확해진다면 우리는 인간적인 교육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창조적 존재이고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에 주체성이 대단히 중요한 가치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적인 문화를 통해 새학년을 준비해야 한다.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인간적 문화란 어떤 모습일까? 승냥이 같은 짐승들은 위계를 통한 지배와 복종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동등한 인격체이므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원은 가장 평등한 도형이다. 원을 이루는 점들은 모두 중심점에서 동일한 거리를 갖지 않나. 그러니 우리는 둥그렇게 앉아 서로를 알아가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인간적 관계가 형성된 뒤에 학교 철학을 논하고 업무를 나누는 게 맞다. 무조건 업무부터 다루는 회의는 얼마나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가.

학기 초 아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서클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듯, 교사들도 서클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달라진 구성원들과 함께 각자의 컨디션을 이야기하고, 관심사와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지도 돌아가며 이야기해 볼 주제이다. 말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지만,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갖게 되는 타인들 역시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러한 대화모임에는 진지함과 함께 유쾌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화모임의 진행자는 유머와 진중함의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국 교육계에서 가장 부족한 지점은 교육철학이다. 철학은 "왜?"에 대한 논리적 성찰이자, 실천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하여 수업을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가? 이에 대한 분명한 답 없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이겨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린 세대는 연일 뉴스에 나오는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전쟁위기,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사들은 어떤 비전을 가져야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너무 거창한 주제로 흘러가지 않아도 되지만, 교사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꼭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들을 묶어내 학교의 비전으로 세워야 한다.

과연 교사들은 어떤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길까? 아마 다음과 같은 낱말들이 모아질 것이다. 행복, 즐거움, 존중, 배려, 예의, 능력, 안전, 협동, 사랑, ...... 모두 소중한 가치이다. 그러한 가치는 교사의 삶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간다면 학교에서 함께 추구해야 할 3대 가치 또는 5대 가치가 필요하다. 이후 전개될 학교의 수업활동과 행사 들은 모두 이 가치들을 토대로 계획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가치들을 선정하는 작업을 진지하게 진행해야 한다. 선정된 가치들은 하나씩 각자의 의견을 되물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예를 들어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조율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회복적 학교는 회복적 정의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교를 말한다. 회복적 정의는 이제 사법 분야에서 벗어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가치 체계가 되었다. 그렇다면 회복적 정의는 우리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 것인가? 기존의 근대 사법이 갖고 있는 응보적 정의 관념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토대로 하여 법에서 도덕을 분리하고 제도에서 인간을 분리해 내었다. 강력한 강제력을 가진 법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제도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제도는 필연적으로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사법이 기득권 카르텔의 특권을 지키고 강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자본뿐 아니라 사법계 자체가 특권계급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에 저항하는 자에 대해 사법이 어떻게 응징하는지를 우리는 요몇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다.

근대 사회에서 범죄는 사회 전체의 병증을 드러내는 징후가 아니라 범죄자 개인의 일탈로 여겨진다. 처벌 중심적 사법은 가해자 처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를 소외시킨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법은 영원할 수 없다. 아무리 특권의식을 가진 자들이 이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해도 역사는 그러한 모순을 용납하지 않는다. 회복적 정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다. 피해자 중심, 관계 중심의 사법이란 도덕과 통합된 법, 인간을 위한 제도를 말한다. 회복적 정의가 촉발시킨 새로운 사회-정신적 운동은 집요하게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가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고통을 겪는 피해자이고,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며, 파괴된 공동체의 회복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 아닐까.

지금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경쟁? 입시? 경제적 성공? 아닐 것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존중이고, 스스로 문제를 탐구할 수 있는 힘이며, 부조리를 깨부술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은 인간적 관계 속에서 양질의 지식을 얻어내고 또 창조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회복적 교육이란 이에 부합하는, 다시 말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간적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새학년이 시작되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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